2020년 1월호

책 속으로

‘말의 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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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0-01-08 1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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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힘’ 펴낸 김병민 시사평론가
    절제의 품격 갖춘 논객이 전하는 1급 노하우

    김병민 지음, 문학세계사, 256쪽, 
1만4000원

    김병민 지음, 문학세계사, 256쪽, 1만4000원

    소설가 김훈은 ‘연필로 쓰기’에서 “말이 병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듣는 자가 있어야 말이 성립되는데, 악악대고 와글거릴 뿐 듣는 자는 없다”고 했다. ‘와글대는 한국’을 지탱하는 기둥은 미디어다. 칼을 품어 병든 말이 ‘사이다’라는 명분을 뒤집어쓴 채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이 와중에 절제의 품격을 갖춘 토론으로 유명한 시사평론가 김병민(37)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가 ‘말의 힘’을 출간했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말의 힘은 결국 내공에서 나온다. 내공 쌓는 습관을 책에 녹였던데. 

    “수년간 방송에서 전직 장관, 국회의원, 청와대 대변인, 변호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대담했다. 대한민국에서 말깨나 한다는 거인들이 저마다 가진 장점을 관찰했다. 그것이 책 쓰는 데 모티프가 됐다. 더 큰 거인의 어깨는 매일 아침 채널A ‘돌직구쇼’ 출연을 준비하기 위해 읽은 8종의 조간신문이다. 4년간 횟수로만 1000회 넘게 출연했으니 그간 읽은 신문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스마트폰 시대라지만 기자들이 집단지성으로 기록한 세상사가 담긴 신문이야말로 거인의 어깨다.” 

    -기술적으로 언변을 단련하는 노하우가 있나? 

    “차에서 라디오 뉴스를 틀어놓고 앵커의 발언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래리 킹이 쓴 ‘대화의 신’을 보면 혼자 있을 때 금붕어와 대화하는 연습이 말의 힘을 기르는 데 유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떠드는 건 아니다. 닮고 싶은 사람, 말을 잘하고 싶은 영역의 전문가 발언을 연습한다.” 

    -방송에서 거친 말을 하지 않는 논객으로도 유명한데. 

    “방송 토론은 큰 틀에서의 대화다. 그 대화는 상대 진영에 속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를 지켜보는 시청자와 나누는 대화이기도 하다. 생각이 다른 무수히 많은 시청자가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방송 토론의 목적이 있다. 하지만 방송을 하다보면 내 편만 든든히 구축해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정치인이 많다. 자신의 소신은 강조하되 상대의 논리적 주장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20~30대 청년에게 ‘말의 힘’이 중요한 이유를 전한다면? 

    “청년도 자기 분야에서 노력하다 보면 성취가 쌓인다. 그러다 벽에 부닥치는 순간이 온다. 생각의 간극이 큰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벽을 뚫기 위해서는 상대를 말로 설득해 협업의 에너지를 증폭시켜야 한다. 한편으로 윗세대도 애써야 한다.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의 말 한 마디가 가진 함의를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다음에 훨씬 큰 자신감을 갖고 말을 하더라. ‘너희는 몰라서 그래’라는 꼰대 인식 대신 ‘그렇게 생각했다니 대단하네’라는 태도로 20대를 대하면 그들의 입이 열린다.” 



    책에는 그간 저자가 방송과 강의를 하며 습득한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얼굴 맞대고 말을 섞는 게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저자의 소신이 본문 곳곳에 묻어 있다. 말로는 역시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과 김진 채널A 앵커가 추천사를 썼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나쁜 교육
    안전주의와 과잉보호가 만들어낸 i세대의 ‘非진실’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프시케의숲 572쪽, 2만4000원

    조너선 하이트· 그레그 루키아노프 지음, 왕수민 옮김 프시케의숲 572쪽, 2만4000원

    세상에는 ‘진실’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대중을 호도하는 여러 개의 비(非)진실이 있다. 때론 그 힘이 너무 강해 비진실이 이끄는 대로 세상이 끌려가기도 한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교육단체 수장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대단한 비진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만든다’ ‘늘 너의 느낌을 믿어라’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이의 투쟁이다’가 그것이다. 그런데 너무 어렵다. 글로만 봐서는 과연 이것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들다. 

    저자들은 이러한 비진실과 정반대되는 논리가 진정한 진실이라고 말한다. 즉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 ‘느낌은 우리를 엉뚱한 길로 이끌 때가 많으므로, 느낌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아야 비로소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삶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사이의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관대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가 진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왜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진실로 알려져 있는 것들을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현재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i세대(1995년 이후 출생한 인터넷 세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기준으로 말하면 근래 관심을 모으는 ‘밀레니얼 세대’라 하는 1990년대생 얘기다. 이들은 과거보다 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증,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 온라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누군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이편저편을 나눠 적대시하는 일이 일상화돼버렸다. 결국 저자들은 진실로 포장돼 있는 비진실 때문에 i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삶이 점점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주장한다. 

    비진실을 부추기는 원인은 총 6가지다. △정치적 양극화와 정당 간 적개심의 심화 △10대의 불안증과 우울증 증가 △양육 방식의 변화 △자유놀이의 감소 △캠퍼스 관료주의의 성장 △정의에 대한 고조된 열정 등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뿌리를 아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한다. 결국 세 가지의 ‘대단한 비진실’은 과도하게 달아오른 ‘안전주의 문화’에서 잉태된 것이라 결론짓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은 부모들이 대학 입시 걱정에 치여 아이들의 자유놀이 시간을 죄다 줄이는 대신 비싸고 힘에 부치는 학원 수업에 아이들을 보내는 행태가 세계 어디보다 심각하다”(403쪽)라는 문장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 꽂힌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험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다. (중략) 그 선물은 우리가 어른의 감시도, 정해진 어떤 틀도 없는 아이들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405쪽).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러셀 커크 지음, 이재학 옮김, 지식노마드, 180쪽, 1만3500원 

    러셀 커크는 1953년 ‘보수의 정신’을 펴내며 미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정립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가 4년 후 젊은이들에게 보수주의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자 다시 집필한 것이 이 책이다. 커크는 개인, 가족, 사회, 역사에 대해 논하며 “악에 맞서 싸우고, 인간 본성과 문명의 유산을 지키며, 올바름을 위해 투쟁하는 게 보수주의자에게 주어진 과업”이라고 설파한다.


    최명길 평전
    한명기 지음, 보리, 668쪽, 3만3000원 

    병자호란으로 임금이 남한산성에 고립돼 있던 시절 조선 조정에는 ‘죽어도 오랑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척화파가 가득했다. 최명길은 홀로 화친을 주장한 인물이다. 지금까지도 척화파 김상헌과 비교되며 인구에 회자되는 최명길을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가 재평가했다. 그는 용기와 유연함,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지닌 최명길이 탁월한 정치가였다고 평한다.

    혐한의 계보
    혐한은 일본인의 일상 곳곳에서 배양됐다

    노윤선 지음, 글항아리, 304쪽, 1만5000원

    노윤선 지음, 글항아리, 304쪽, 1만5000원

    모리타화학공업의 모리타 야스오 사장은 2019년 8월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한 달 수출이 막히면 단순 계산해도 3억 엔이 빠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전자 기업들의 영화(榮華)는 막을 내렸다. 모리타 같은 부품소재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한국의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납품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돈 버는 길목을 막았다. 자해 행위에 가깝다. 그런데도 여론은 ‘수출 금지 지지’로 기울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8월 30일~9월 1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지한다’는 답변이 67%에 달했다. 혐한이 일본인의 일상에 똬리를 틀었다는 방증이다. 

    저자는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그 기원을 추적한다. 일본에서는 1000년 동안 ‘에타(穢多)’, ‘히닌(非人)’ 등 28종의 ‘불가촉천민’을 분류해 경계 짓는 전통이 강했다. 즉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혐오를 정체성 정치의 수단으로 써왔다”(24쪽)는 뜻이다. “‘에타’와 ‘히닌’은 사라졌지만 그들을 천시하는 감정적 관습은 쉽게 사라질 수 없다”(27쪽)는 게 저자의 판단. 

    더불어 “일본 극우파는 자민당, 극우 단체, 야쿠자의 세 꼭짓점이 만나 수십 년간 강화됐다.”(30쪽) 경찰예비대 창설, 보안대 설치, 자위대 발족 등 우익의 목소리가 발흥할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미디어가 혐한을 비즈니스로 삼았다. 주간지에 ‘한국 따위 필요 없다’는 특집이 꾸려지고, “혐한이 아닌 단한(斷韓)” 따위의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방송에는 한국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묘사가 매일 넘쳐난다. 

    일본 우경문학을 해부하는 저자의 솜씨는 특히 빛난다. 책의 시각을 빌리자면 우경문학은 가족애를 강조하면서 전쟁 가해 책임을 희석하는 연료가 됐다. 

    노사카 아키유키의 ‘반딧불이의 무덤’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사용된 미군 항공기 B-29기가 반복 등장한다. B-29기에 의해 폭격당한 일본 영토를 묘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대 배경인 태평양전쟁에 관한 언급은 없다. “피해자 일본의 관점에서 태평양전쟁을 바라보기 때문”(178쪽)이다. 

    ‘요코 이야기’는 패전 후 조선에서 피란길에 오르는 일본인 가족들의 고난과 역경이 이야기의 줄기를 이룬다. 하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내용은 한마디 언급 없이 도쿄 대공습만 계속 언급한다.”(192쪽) 반면 조선인은 사악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아베 총리와의 대담을 책으로 펴낸 햐쿠타 나오키는 소설 ‘영원한 제로’와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로 도합 1000만 부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마찬가지로 햐쿠타는 이 책들에서 가해자 ‘제국 일본’은 소거한 채 일본인의 비극만을 극대화해 그려낸다. 

    책 곳곳에는 혐한의 심적 기반 노릇을 하는 일본인의 혼네(本音·속내)에 가닿기 위한 분투가 엿보인다. ‘혐한 연구’로는 국내에서 처음 박사 논문을 쓴 저자의 첫 저서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지음, 사회평론, 276쪽, 1만5000원 

    진지하면서도 재치 있는 칼럼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한 김영민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신작. 전공 분야인 ‘논어’를 다뤘다. 그는 동양 고전이 마치 현대인의 모든 당면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여기는 세태를 비판하며 “고전 텍스트 읽음을 통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라고 말한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심심, 448쪽, 1만9800원 

    어린 시절 겪은 고통과 질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소아과 의사인 저자는 환자를 진료하다 문득 이런 의문을 품었다. 임상 경험과 기존 연구를 더해 그가 내린 결론은 ‘어린이에 대한 학대와 방임이 성인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성장하는 어린이 뇌가 스트레스 호르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면역계 이상 등을 초래한다는 분석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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