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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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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평화주의 반전론자들은 그런 훈련프로그램이 베트남전쟁에서 마구잡이로 양민을 학살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더러, 미국사회의 총기범죄율을 높인 한 원인이라 분석한다. 전쟁은 후방의 폭력범죄 증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미 사회학자 다이엔 아처와 로즈메리 가트너는 1980년 매우 흥미로운 조사작업을 벌였다. 베트남전쟁에 미국이 개입했던 10년(1963∼73년) 동안 미국의 살인범죄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 무엇 때문인가를 밝히는 것이 그들의 연구과제였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남성에 의한 살인율이 101%, 여성에 의한 살인율이 59% 늘어났다.

두 사회학자는 특히 그런 살인범죄 증가가 베트남전쟁에서 폭력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미국 사회로 복귀한 뒤 적응을 못해 저지르는 범죄 때문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조사작업을 진행하면서 두 사회학자는 미국사회가 전반적으로 베트남전쟁 개입기간에 폭력화됐음을 알아냈다. 이들의 연구결과인 ‘미국 전역의 폭력과 범죄’(1984년판)에 따르면, 베트남 참전세대가 아닌 45세 이상에서도 살인범죄율이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높아졌다. “폭력을 합법화하는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일반사회도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런 폭력적 경향이 이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조사결론이다.

한 가지 생각해볼 부분은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전쟁 속에서도 가능한 한 타인을 죽이는 것을 피하려 들지라도, 집단을 이루면 잔인해진다는 점이다. 르완다 학살이나 보스니아 학살도 결국은 집단에 의한 전쟁범죄였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답을 찾으려 했던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 1973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콘라트 로렌츠다.

독일 군의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소련군에 잡혀 4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로렌츠는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지녔지만, 지성(intelligence)과 이성(reason)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63년에 펴낸 그의 ‘공격성향론’(On Aggression)은 “(전쟁에서는) 개인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살인을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젊은 병사 개개인을 놓고 보면 전쟁의 공포를 지닌 약한 존재이지만, 명령계통을 지닌 집단을 이루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 보스니아나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을 저지른 전쟁범죄자들은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폭력의 도(度)를 높여갔었다.

데이브 그로스먼 교수의 ‘살해론’은 화제의 책이다. ‘전쟁과 사회에서 살인을 배우는 심리적 비용’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퓰리처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로스먼은 이 책에서, “인간은 살아 있는 목숨을 빼앗는 데 본능적으로 저항감을 갖지만, 군대가 개발한 여러 기술적 훈련을 통해 그런 혐오감을 덜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로스먼은 특히 베트남전쟁에 초점을 맞춰 어떻게 미국 병사들이 미 전투사에 등장하는 어느 전쟁보다 베트남전에서 훨씬 많이 살육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로스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을 폈다. 첫째,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죽이길 본능적으로 망설인다. 둘째, 그러한 망설임은 보다 기술적인 군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없앨 수 있다. 셋째,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근접전에서 사람을 죽이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정상적인’ 병사의 반응은 마치 유명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의 ‘죽음의 5단계’ 과정(“그럴 리 없다”며 자신이 치명적인 병에 걸린 것을 부인→“하필이면 내가 왜 그런 병에 걸렸나” 하는 분노→우울증→자신과의 타협→곧 다가올 죽음의 현실을 인정)과 같다.

큐블러-로스의 5단계 이론을 이라크전쟁에 적용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미군 병사는 처음엔 “내가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명분 약한 전투에 휘말렸나” 하는 분노와 현실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투를 거듭하면서 죽음이라는 냉정한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이때의 ‘죽음’은 미군 병사 자신의 죽음은 물론이고 미군의 강력한 화력에 숨지는 이라크 현지인들의 죽음도 포함된다. 처음엔 이라크인을 죽인 것을 찜찜해하다가 차츰 익숙해지는 그런 과정이다. 전투와 긴장이 거듭될수록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상처를 입는다.

이 같은 분석은 이미 여러 전쟁연구자들로부터 올바른 것으로 검증받았다. 이를테면 베트남전쟁 참전자들 가운데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발병률이 여러 차례 미군 공습을 받았던 베트남 사람들의 PTSD 발병율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그러하다(베트남전쟁 참전 미군병사 가운데 30%가 PTSD 증상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전쟁연구자 존 키건이 쓴 여러 책들도 이런 주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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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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