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전두환은 차지철의 힘을 빌렸다?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6-05-13 15:51:1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충립 전 수경사 보안반장은 10·26이 불거진 주요인의 하나로 차지철에 대한 전두환, 노태우의 맹종을 꼽았다. 이들이 차지철의 자만심을 부채질한 끝에 10·26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그 무렵 차지철, 전두환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한 군 출신 경호원은 ‘신동아’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는 김충립 씨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전두환은 차지철보다 세 살이 많고 정규 육사 출신인데도 간부후보 출신으로 2년 선임인 차지철에게 낯간지러운 일을 많이 했다. 육군 준장 계급장을 단 전두환이 경호실에서 매주 시행하는 국기하강식 때마다 제병지휘관이 돼 ‘경호실장을 향하여 받들어 총!’ 구령을 하며 부대를 지휘했다. 이어지는 분열식에선 단상의 차지철을 향해 ‘우로 봐’ 하면서 긴 칼을 들어 경례를 붙였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정도 소수 부대의 제병지휘는 30대대장인 육군 중령이 해야 할 일이었다. 장군이 그렇게 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차지철을 영웅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차지철은 육사 출신 장군들을 직속 부하로 거느리면서 박 대통령이 국군의 날에 군을 사열하듯, 자신도 ‘제2의 대통령’ ‘부통령’ 자격으로 경호부대를 사열하며 권력의 맛을 즐겼다. 그는 국회와 정부 인사들을 사열식에 초청하고 식사를 대접하며 자신의 권위와 대권욕을 과시했다.”

    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낸 김용태 씨의 증언도 비슷하다.  

    “하루는 차 실장이 경복궁 연병장에서 국기하강식을 하니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가보니 국무위원, 국회 상임위원장과 각 군 참모총장 등을 다 불러놓았더군요. 자기(차지철)가 지휘봉을 잡고 앞줄에서 경호부대를 사열하는데 탱크가 막 왔다갔다 하고 굉장하더군요. (…) 차실장은 뚜렷한 철학도 없고 권력욕이 하늘까지 뻗어 있던 황당무계한 사람이고 성장 과정의 콤플렉스 때문인지 권력에 무한 집착했지요. 저는 차 실장 밑에서 작전차장보를 했던 전두환 씨가 결국 그런 차 실장을 보고 배운 일면이 있다고 봐요. 12·12라는 것이 권력의 힘과 약점을 아는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 아닙니까. 차 실장이 군을 장악하면 권력을 뺏을 수 있다는 꿈의 씨를 뿌린 것이고 전씨가 열매를 거둔 거라고 저는 봅니다.” (‘청와대 비서실’ 93~94쪽)



    비서실장 김계원의 증언에서 차지철에 대해 켜켜이 쌓인 김재규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하 루는 김(재규) 부장이 이런 불평을 하더군요. ‘형님, 각하께 보고하러 가면 차지철이가 먼저 보고하고 있어요. 차지철이가 나온 뒤에 들어가 각하께 말씀드리면 각하 표정이 시큰둥해요. 다 아는 이야기를 왜 반복하느냐는 식이에요.’ 김 부장은 그런 차 실장 때문에 무척 속을 태우다 끝내 일을 저질렀지요. 나도 정보부장할 때 보면 중요 정보를 나보다 먼저 각하께 보고한 사람이 그렇게 미울 수 없었어요.” (‘청와대 비서실’ 92쪽)



    對전복부대 지휘관 장악 기도


    김충립 씨는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에 보직된 것은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천거도 있었지만 ‘차지철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1996년 3월 18일 열린 12·12 및 5·18 사건 2차 공판에서 ‘정보보고를 통해 차지철은 이재전 경호실 차장을 천거했다는 걸 알았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당시 심문 요약.

    김상희 부장검사
    피고인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된 것은 국방부 장관이던 노재현이 피고인을 진종채 보안사령관 후임으로 박 대통령에게 추천했기 때문이죠?

    전두환 사실입니다.

    당시 상당한 권력암투가 있었던 김재규 중정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보안사령관에 자신의 측근이 임명되도록 하기 위해 김재규는 문홍구 장관을, 차지철은 이재전 경호실 차장을 각각 천거하였다는데 사실이지요?”

    본인도 정보보고를 통해 알았습니다.

    피고인이 1980년 8월에 이르러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10·26 당시의 직책이 보안사령관이었던 것이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건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죠.

    이 에 대해 김충립 씨는 “차지철이 이재전 차장을 보안사령관에 천거하려 했다는 정보보고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여러 정보보고를 종합 분석해봤을 때 차지철이 차장으로 데리고 있던 정병주 소장을 특전사령관에, 전성각 소장을 수경사령관에, 작전차장보로 데리고 있던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앉히는 것으로 대전복부대 지휘관 모두를 자기 부하로 장악하려 한 게 맞다”고 확신했다.    

    그의 말처럼, ‘부각하’ ‘부통령’으로 불리던 차지철은 서서히, 그러나 강력하게 주변 권력을 강화했다. 전두환은 차지철의 그러한 오만함을 채워주며 경호실 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권력 핵심으로 진입한다. 그러나 공판 심문 전두환의 답변을 보면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큰 힘이 됐다고는 생각지 않은 듯하다. 차지철의 힘을 빌려 썼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