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이명박 절반의 정직’

이미지 정치 시대의 성공전략

  • 김동률 KDI 연구위원·언론정보학 yule21@kdi.re.kr

    입력2008-06-09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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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절반의 정직’

    ‘이명박 절반의 정직’ : 허만섭 지음, 디오네, 240쪽, 1만2000원

    “이세상에 신비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양심이다.” 장 자크 루소의 거룩한 말씀이다. 이때 양심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한 맘을 의미한다는 게 루소의 뜻이다.

    그런데 인간사회가 어디 그런가. ‘한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정치행위에 다름 아니다.’ 유대인 속담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정치행위를 거짓말의 향연쯤으로 여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정직하지 않은데도 하늘이 도와주고 지켜줘서 대통령이 된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가 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해 무수히 많은 도덕성 검증의 위기를 맞았지만 유유히 극복하고 목표를 이뤄냈다. 대통령 이명박을 만든 요체는 절반의 정직, 달리 말하면 절반의 거짓이 힘이 됐다는 것이다. 이 허를 찌르는 가설을 가지고 쓴 책이 ‘이명박 절반의 정직’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절반밖에 정직하지 않은데도 어떻게 목표를 성취했을까. 어떻게 상대의 마음, 조직의 마음, 언론의 마음, 나아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것은 대인 관계가 아닌 미디어에 의한 의사소통 관계에서 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미디어에 의한 정치(media politics)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어떤 됨됨이인지는 뚝방길 유세장이나 뒷골목 고깃집에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거나 신문 가십란을 뒤적여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이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시대다.

    미디어는 이제 단순히 사실의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미지와 그림을 제공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발생한 요즘의 촛불시위도 바로 텔레비전과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에 의해 증폭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본래 미디어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미디어는 도리어 인간의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사고와 행동까지 지배하는 위치로 자릴 굳히고 있다. 정말 미디어가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경악할 만큼 커졌다.

    네거티브를 네거티브로 덮다

    저자는 ‘이명박 선거’를 지켜보며 그의 삶과 능력 등등이 어떤 ‘이미지 메이킹’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구축되고 진화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예컨대 복원에 부정적인 단면도 적지 않았지만 ‘이명박 = 청계천 = 실천하는 지도자’라는 등식의 이미지가 어떻게 고착화해 궁극적으로 ‘타임’지까지 나서서 그를 2007년 ‘환경 영웅(TIME Hero of the Environment)’이라고 치켜세웠을까.

    저자는 ‘네거티브 전략을 네거티브로 덮는 방식’으로 성공했다고 단정한다. 심지어 이명박은 네거티브의 최대 피해자였다는 고정관념조차 허구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정직하지 않음을 무기로 내세워 도덕성 검증으로부터 피해가며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미디어는 이처럼 가공할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등장한 ‘노무현의 눈물’ 광고가 상징적인 예다. 허벅지를 드러낸 반라의 미인이 들고 있는 한 입 벤 사과가, 덩그라니 놓여 있는 사과보다 더 맛있어 보이듯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미지(super reality)는 현실보다 한층 더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우리 현실(reality) 은 이제 언론에 의한 실체(medialities)로 대체되고, 정치논리(political logic) 역시 미디어 논리(media logic)로 바뀌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제 정치가들의 복잡한 정파관계나 깊은 신념을 문제 삼기보다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대로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의 성공을 현대의 이미지 정치시대에 귀납시키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의 분석처럼 이미지가 도덕성이나 능력, 이슈를 능가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정치, 경제보다는 단순한 것을 선호한다.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후보의 개인적인 속성, 인물, 여자관계, 인간성 이런 것들이 편하다. 복잡한 ‘BBK 사건’보다 청계천 복원이 쉽게 먹히는 이유다.

    그저 좀 때가 묻었지만 말단 사원 출신으로 거대기업 회장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를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personification)에 비춰 생각하게 된다. 존 F 케네디가 죽었을 때 국제관계의 변화보다는 젊고 예쁜 재클린과 세 살짜리 아들 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였다. 육영수 여사를 여읜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떠들어봤자 골치만 아파오는 복잡한 도덕성 검증보다는 결국은 이미지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위기라고 한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 비례해 불신과 혐오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래서 선거를 ‘조금 덜 나쁜 인간을 뽑는(the choice of less evil)’ 과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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