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 경기하강’을 예고한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각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이구동성으로 ‘강세 예상’, ‘2000포인트 재도전’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한은 총재의 “금리동결” 한 마디에 ‘조정불가피론’으로 일제히 바뀌었다. 지금 증시는 오직 돈다발을 뿌려줄 열기구가 뜨기만 애타게 기다린다. 투자자와 자산가들은 그때를 이용해 한몫 챙기고 튀자는 심산. ‘시골의사’는 이런 세태에 대해 “순간은 즐겁겠지만 이내 구역질과 황달을 일으키고 종래에는 간경화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FRB 의장 벤 버냉키는 계속 금리 인하를 발표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이끌고 있다.
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 원칙론자는 정부가 나서서 신용위기를 구제하는 행위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폴 크루그먼과 같은 시장주의자는 도리어 ‘만시지탄’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수급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美, “신용위기 막자”…돈폭탄 돌리기
보통의 경우 자산가격은 경제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주가가 오르면 머지않아 경기가 좋아지고, 주가가 하락하면 경기가 나빠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주식의 가격이란 원래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이고,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은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원칙이 어긋날 때가 있다. 주가가 경기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게끔 시장 흐름이 자연스러우면 자산가격은 건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시장에 인위적인 개입이 이뤄지면 주가는 왜곡된다.
기업의 가치가 오르지 않았는데도 시장에 돈이 넘쳐흐르면 주가는 일단 오른다. 이상한 현상이지만 사실이다. 자고로 세상 모든 자산의 가격은 돈이 넘치면 오르고, 마르면 떨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비싼 값에 자산을 샀다고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품이 낀 가격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 개입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버냉키는 5월에도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월스트리트 빌딩가에 달러를 뿌려댔다. 그러자 주택담보 대출 때문에 집을 내놓게 생겼던 사람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또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일까 전전긍긍하던 금융기관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그렇게 공중에서 뿌려지는 돈을 한 움큼씩 쥐고 축제를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연신 폭죽을 터뜨렸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난 그들이 ‘버냉키가 뿌린 돈으로는 딱딱한 빵 한 조각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극의 서막은 오른다.
FRB가 금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중앙은행이 찍어내야 할 돈은 늘어난다.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의 조폐기가 돌아가는 속도만큼 물가는 오른다. 미국이 지급하는 원자재 가격과 상품 가격도 속등한다. 이는 다시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돈 가치의 하락을 부추긴다. 어차피 지금 중국을 비롯한 몇 나라의 물가는 고삐를 잃고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찍어낸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간 탓이다. 돈은 하늘에서 뿌려졌으되, 그 돈이 기존 돈의 가치마저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
버냉키는 이제 더는 ‘헬리콥터’를 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금리를 더 인하하면 달러 가치의 하락은 불 보듯하고, 인플레이션은 그의 통제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버릴 터.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지 않으려면 더 이상의 금융위기가 없어야 한다. 만약 앞으로도 주택 가격이 추가로 떨어지고, 그로 인해 시티뱅크나 리먼브라더스가 흔들리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헬리콥터를 타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의 달러 반등은 이제 더는 금리인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 기댄 중환자의 마지막 불꽃이다.
이러저러한 시각에서 보면 지금은 절묘한 균형점이다. 시장은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호재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금리가 인상될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유가는 더 이상만 오르지 않으면 견딜 만하고, 선진국 물가는 아직은 통제범위 내에 있다. 이 절묘한 균형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리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이제 어느 쪽이든 방향을 잡을 것이고, 그 방향은 장기간에 걸쳐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국부펀드가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에 지분을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행운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메릴린치가 끌어들인 자금의 표면이율은 10%가 넘는다. 최근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JP모건의 조달금리는 8%에 가깝다. 미국 최대의 투자은행들의 조달금리가 이런 수준이라면, 신용경색이 어느 정도일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래서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은 “신용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
한국엔 ‘열기구’라도 뜰까?
달러의 돈 보따리가 풀린 미국. 물가는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졌다.
하지만 시장의 속성은 절묘하다. 종착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단물에 혹하는 것이 시장이다. 일전에 말한 대로 투자자들은 절벽을 향해 달리는 마차에 서슴없이 올라탄다. 그리고 절벽에 도달하기 전에 뛰어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비극은, 마차가 언젠가는 절벽에서 추락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단순히 ‘운이 나빠서’ 하필이면 내가 내리기 전에 마차가 절벽에 이르는 상황을 맞는 것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우연한 행운은 마차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경험적으로 인플레이션 증가율보다 돈의 공급이 빠를 때 당장은 돈이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다만 누구나 마차가 떨어지기 전에 재빠르게 뛰어내리리라 여기지만, 실제 그 순간은 마차의 문을 열 시간도 없이 너무나 순식간에 찰나적으로 다가온다.
최근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주가예상을 들어보면 17개 증권사 중 16개 증권사로부터 ‘강세 예상’이 나왔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신 있게 ‘조만간 2000포인트 재도전’을 외쳤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하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선언했는데 시장은 강 장관의 발언을 우습게 본 셈이다.
한 나라 경제수장의 발언은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 어지간해서는 ‘경기침체’와 같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발언이 심리적인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개적으로 그렇게 발언했다. 이를 두고 경기부양책을 펴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설마 대한민국의 경제수장이 그 정도의 상황인식을 하고 있겠는가. 물론 설마가 사람 잡을 수도 있지만.
증권사들이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기침체 발언에도 증시의 방향성을 ‘상승’ 쪽으로 보는 것은 신용위기의 끝이라는 인식과 우리 기업의 실적 호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황을 좋게만 볼 때의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기분 좋은 증시 전망을 보면서 ‘모두가 좋다고 말할 때 시장은 반대로 움직인다’는 ‘합창 반대의 원리’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증권사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면 한국 역시 헬리콥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열기구 정도는 타고 돈을 뿌릴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주식시장에 들어온 투자자금의 대부분이 작년 주가 상승과 최근 주가 하락 과정, 즉 1850~2000포인트 사이에 몰려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정략적 주장일 수도 있다. 꽤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증권사들이 1850포인트대에서 펀드 환매가 집중될 것을 우려해 시장을 안심시키려고 단합했다는 음모론적 시각이다. 물론 이런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시절이 어느 때인데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들이 모여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담합을 하겠는가. 그러나 너무 한목소리로 강세를 일제히 외치는 데 대한 일종의 경계심은 가져야 한다. 그만큼 기관투자자들이 고객의 신뢰를 잃은 탓이다.
시장의 기대는 오직 ‘유동성 공급’
어쨌건 정부의 적극적 경기부양 의지는 재정집행이나 금리인하로만 표현된다. 하나는 재정수지 악화를 감수하고 나라가 직접 돈을 뿌리는 행태이고, 다른 쪽은 은행으로 하여금 돈 보따리를 풀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유동성은 늘어나게 마련이고, 늘어난 유동성은 자산가격을 부풀린다. 아직 물가는 ‘견딜 만하고’, 그동안 자산시장은 게임을 벌일 태세를 갖춘다. 그들은 그런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폭음을 한다고 해서 당장 간경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즐겨라’ 하고 매일 술잔을 들이켠 다음에야 서서히 구역질이 나고 황달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즐길 수 있다. 지금 시장의 기대는 오직 유동성 공급에 대한 기대, 그 자체인 셈이다.
이쯤 되면 ‘유동성’이라는 말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 따져볼 필요가 생긴다. 중앙은행의 기능은 통화의 총량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이때 ‘적정수준의 통화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통화량의 크기와 변동’을 파악할 수 있는 잣대가 있어야 한다.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 돈만이 돈이 아니라 어음이나 수표, 기타 옵션까지 모두 돈이기 때문에 화폐의 실제 총량을 알기 위해선 특별한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예측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화정책, 신용정책을 만든다.
통화엔 현금뿐 아니라 예금 등도 포함되므로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발권이나 금리정책뿐 아니라 은행에 대한 검사권 등의 통제력을 발휘한다. 이때 통화지표는 ‘물가안정·완전고용·경제성장·국제수지 균형’ 등의 통화신용 정책 목표를 구사하기에 적절해야 한다. 지표가 불완전하면 이런 목표를 조절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통화지표는 이러한 정책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당국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총통화량’이나 ‘금리정책’ 수단이 즉각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성돼야 한다. 만약 통화당국이 잘못된 지표를 보고 금리를 올리거나 통화량을 늘리면 앞서의 통화신용정책의 목표에 어긋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기에 각국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지표를 개발하고 사용해야 된다.
우선 우리나라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 M1(통화)·M2(총통화)·MCT(금전신탁)·M3(총유동성) 등의 통화지표를 활용하고 있는데, 연간 통화공급 목표는 당해연도에 예상되는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유통속도의 변화 등을 감안해 정하며, 금융환경이나 시장환경, 국제정세 등을 감안해 금리나 환율, 심지어 주가나 주택가격까지 감안한 통화정책을 편다. 또 최근에는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데 있어 과거 개별 은행의 자금공급 규모를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직접규제 방식에서 탈피해 재할인정책·지급준비율제도·공개시장 조작 등의 간접규제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나타난 각국 중앙은행의 추세이기도 하다.
M1, M2, M3 통화지표
지표 중에서 ‘통화(M1)’는 화폐의 지급수단 기능을 중시해 현금과 요구불 예금(보통예금·당좌예금 등)을 포함한 지표다. 가장 단순하며 통계적으로는 명확하다. ‘총통화(M2)’는 통화보다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로서 통화에 포함되는 현금과 요구불 예금뿐만 아니라 정기예금, 정기적금 등 은행의 저축성 예금, 그리고 거주자 외화예금을 포함한 개념이다. 저축성 예금을 통화지표에 포함시키는 것은 저축성 예금이 비록 거래적 동기보다는 자산증식을 위한 동기나 미래의 지출에 대비한 예비적 동기를 갖고 보유되지만 약간의 이자소득만 포기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요구불 예금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거주자 외화예금도 국내의 지급결제수단으로는 다소 제약이 있지만 요구불, 저축성을 불문하고 언제든 원화로 바뀌어 국내에서 유통될 수 있기 때문에 총통화에 포함시킨다.
우리나라는 총통화가 다른 통화지표보다 경제성장, 물가 등 실물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해 1979년 총통화를 통화관리의 중심지표로 사용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M2A는 총통화에서 장기저축성 예금을 제외한 단기유동성지표다. 즉 자금의 만기에 따라 자금의 유동성이 달라지므로 장기예금을 제외한 지표가 필요한 때문이다. 총유동성(M3)은 총통화에 제2금융권의 각종 예수금과 금융채, CD, 상업어음매출과 환매조건부채권(RP)까지를 포함시킨 가장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이며 시장의 전체 유동성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지표다. 그래서 이런 지표들은 한국은행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신문에서 M2·M3 증가와 같은 기사들이 나오면 시중의 유동성 중에서 어떤 부분이 늘어났고 줄어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자료가 된다.
정부의 유동성 조작 3가지 방법
그러나 한국은행이 이런 지표를 분석만 하고 정작 통화량을 조절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중앙은행은 이런 지표들을 바탕으로 통화량, 즉 유동성을 조절하게 되는데, 그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물론 그중 대표적인 것은 금리조절이다. 다음으로 재할인율과 지급준비율을 조절하는 방식인데, 재할인율 조절이란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빌려주는 자금의 이율을 높이거나 낮춰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자금규모를 조정함으로써 통화량을 줄이거나 늘리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금리는 직접적으로 모든 금융거래자에게 적용되지만, 재할인정책은 은행에 우선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시중에 자금이 필요이상으로 많이 풀려 있다고 판단되면 재할인율을 높인다. 그러면 은행들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규모를 줄일 것이고, 은행이 중앙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이 적을수록 대출도 저절로 줄어들 것이다. 은행이란 이자 마진으로 수익을 내는 곳이므로 차입금리가 높아지면 대출이 줄어든다. 반대로 시중자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재할인율을 낮추면 은행을 통해 시중에 공급되는 자금의 양이 늘어난다.
다음으로 지급준비율(지준율)을 조절하는 방법도 있다. 얼마 전까지 중국의 물가가 상승하고 증시가 과열양상을 보이자 중국 당국이 빼내든 카드가 지준율 인상이었다. 지준율은 금리만큼 강한 무기는 아니지만, 시중의 유동성을 붙들어 두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지준율은 고객의 예금인출에 대비, 은행들이 예금의 일정부분을 한국은행에 맡겨두는 지급준비금의 적립비율을 말한다.
5월8일 어버이날 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동결’을 이끌었다.
지준율 제도는 원래 예금자보호제도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통화량을 조절하는 금융정책수단으로서 사용가치가 더 커졌다. 금리를 올리면 직접적으로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고 대출받은 기업이나 개인들의 이자부담이 커지지만, 지준율을 높이면 은행이 대출해줄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들면서 시중에 자금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금리인상보다는 지급준비율 인상이 훨씬 후유증이 적고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인 셈이다.
중국이 금리인상 대신 지준율 인상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면 위안화 상승을 자극할 게 뻔한데 유동성은 줄여야겠기에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지준율 인상뿐이었다.
하지만 지준율 인상은 총통화 대비 금리 왜곡을 불러올 수 있는 까닭에 지나치면 후유증을 낳는다. 여신과 수신의 적절한 효율성이 떨어져 금융기관으로선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급준비율 조절은 재할인제도 및 공개시장 조작과 함께 3대 통화정책 수단으로 활용된다. 즉 중앙은행은 시중에 자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다고 판단되면 지급준비율을 높여 통화량을 줄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지준율을 낮춰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다.
유동성을 조절하는 또 다른 방식에는 ‘공개시장 조작’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구매조작과 매각조작으로 나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려 있는 채권을 사들이면 돈은 풀려가고 채권증서는 중앙은행으로 들어온다. 그만큼의 돈은 시중에 공급된다. 즉 통화량을 늘릴 수 있다(구매조작). 반대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팔게 되면 그 대금에 해당하는 현금은 중앙은행의 금고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매각조작). 이때 채권거래를 중개하는 시중은행에는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는 만큼 준비금이 늘어나고, 파는 만큼 준비금이 줄어든다. 이로써 금융기관은 지불준비금이 달라지고 여유분을 대출하는 능력에 변화가 생긴다. 따라서 유동성이 조절된다
‘금리동결’ 한 마디에 강세론이 조정론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동성’은 이렇게 정의되고 또 조절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방식의 유동성 조작이 모두 힘들어진 것이 지금 경제상황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중 유동성을 늘렸다가는 물가 상승에 기름을 부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두자니 경기침체가 가속화할 게 우려된다, 지금 한은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대개 선거로 선출된 정부는 통치기간 중에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물가상승은 2차적으로 천천히 발생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는 대개 경기부양에 가 있게 마련이다. 당장 굶어 죽느니 우선은 씨감자라도 먹자는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그 틈새를 노린다.
다만 중장기적인 사이클로 자산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단기적인 투자수익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기대감을 갖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고, 증권사들의 시황관이 그렇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경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의외의 상황이 일어날 변수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장기적 건강성을 주시하는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와 같이 2차산업의 시대가 끝나고 자산시장에 잉여자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나라가 섣불리 유동성을 늘리는 것은 예상보다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부나 금융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최근 경상수지 적자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대단히 불길한 조짐이다. 대규모 적자는 외환보유고를 까먹고 국가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적자라면 솥뚜껑만 보고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금융회사는 진짜 침체에 빠지기 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그런 조치를 기대한다.
하지만 한은 처지에서 보면 소비자 물가의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상승률 자체보다 추세가 무섭다. 작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이런 식의 물가 상승이면 금리차를 따라잡는 것은 순식간. 물가가 오르는데 금리를 내리면 돈의 가치가 허공에 증발한다. 그래서 한은 총재는 지난 어버이날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부의 따가운 눈초리를 무시하고 금리를 동결하는 ‘기개’를 보여줬다. 잘한 일이지만 주식시장은 다음날인 5월9일 무려 20포인트의 주가 하락, 채권시장은 급등으로 화답했다. 그만큼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손해 안 보려면 공부하라!
그러자 증권사들의 일사불란하던 대오가 일거에 흐트러졌다. 불과 5월초까지만 해도 압도적으로 전반기 내 2000포인트 돌파를 외치던 주장이 쑥 들어가고, 조정불가피론이 솔솔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놀라운 변신이다. 특히 올해 1/4분기 기업실적이 15% 정도 좋아진 점을 들어 2분기에도 그 정도 좋아진다면 당연히 2000포인트가 적정선이라고 호기롭게 외치던 목소리에 뒤이어 난데없이 ‘미국 경기의 회복이 전제’라는 조건이 붙기도 했다. 아울러 불과 1주 전만 해도 최근 주도주인 IT, 자동차를 매수하라고 외치던 목소리들이, 5월9일 하루 중국 관련주가 반등하고 IT, 자동차가 하락하자 금세 중국 관련주로의 주도주 교체론으로 뒤바뀌었다. 이쯤 되면 투자자들은 정신이 없다.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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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최근 증권사들의 강세론은 ▲금리인하 기대감(유동성 기대) ▲기업이익 증가 기대감(실적 기대) ▲환율 약세 기대감(2차 유동성 기대)으로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이익 증가에 대한 기대가 환율과 관련돼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결국 이 모든 것은 유동성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현명한 투자자라면 단기 유동성 증가가 가져올 위험요인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증권사의 매수·매도 의견보다는 자신의 견해를 따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신문에 가끔 등장하는 M2, M3 와 같은 말도 흘려버리지 말고, 그와 함께 생산자 물가상승률이 무려 9%에 달했다는 얘기도 챙겨야 하며, 다음 금통위에서 설령 금리를 내린다 해도, 그것 정도는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다는 사실도 알아둬야 한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너무 챙겨야 할 것이 많아서 피곤한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피 같은 내 자산을 투자하는 데 그 정도 수고는 안 할 도리가 없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