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실패한 외교’

北 고농축우라늄의 수수께끼

  •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kwkoo@kyungnam.ac.kr

    입력2008-06-09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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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한 외교’

    ‘실패한 외교’ : 찰스 프리처드 지음, 김연철·서보혁 옮김, 사계절, 324쪽, 1만5000원

    “부시 임기 내에 진전을 이루고자 하는 미국의 열망, 언론에 보도된 북한과 시리아의 핵 확산 의혹, 그리고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의 전략적 가치,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2008년은 6자회담 과정에서 많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워싱턴의 한국경제연구소(KEI) 소장인 찰스 프리처드(C. Prichard)가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에 참여, 관찰한 기록인 ‘실패한 외교’(2007년 Brookings Institution Press)의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프리처드는 미국 육군에서 28년간 복무했고 그 가운데 9년을 일본에서 근무했으며, 클린턴 행정부에서 대통령국가안보특보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국 선임국장,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 대사 및 특사 그리고 KEDO 미국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한국어판 서문이 작성된 2008년 3월 프리처드는 6자회담의 어려움을 예측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현재 북미관계의 순항으로 6자회담의 장래 또한 밝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를 둘러싼 북미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시설의 불능화를 약속하면서 핵과 관련된 기록을 미국에 넘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필자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시작된 이른바 ‘제2차 북핵 위기’가 한 고비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프리처드의 책과 그의 ‘불길한’ 예측을 읽고 있다.

    위기와 협상이 반복돼온 북미관계의 역사를 보면 이 엇박자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프리처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의 언론은 단기적 관점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늑대의 출현을 즐기다 망했던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시론(兩是論)을 견지하는 것이 관찰자의 권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술 연구자의 정체성은 진실의 탐구에 있다는 것이 원론이지만,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학술 연구는 없다는 ‘정치적’ 과학철학이 이 엇박자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단호한 결론을 내리지 않게 하는 유용한 변명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제2차 북핵 위기 생산에 참여

    북미관계의 순항을 보면서 호기심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게 사실이다. 연구자로서의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는 생존을 보장하는 사활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2차 북핵 위기를 야기한 직접적 원인이었던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프리처드의 책이 혹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프리처드는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그 시간에 평양에서 그 위기의 생산과정에 참여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의 부제를 ‘북한이 어떻게 핵무기를 가졌는가에 대한 비극적 이야기(The Traged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로 달고 이것은 도덕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전개했던 부시행정부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북한이 핵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중심내용으로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책의 서평에서 제2차 북핵 위기의 원인에 주목하고 싶다. 이 책의 2장은 제2차 북핵 위기의 원인과 발생과정을 다루고 있다. 프리처드는 2002년 10월을 ‘회상하면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생각하면서도 “각각의 분야에서 북한이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하면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안을 준비했다”는 “과감한 접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2002년 10월 이전에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려던 정책이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김정일을 격렬히 비난한 뒤에야 대통령이 그와 같은 긍정적 조치, 즉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리처드는 2002년 ‘6월’ 부시 대통령의 ‘과감한 접근’ 정책과 그에 기초한 대통령의 특사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뉴욕대표부 대사인 박길연을 만났다. 미국 특사의 평양 방문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프리처드는,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비밀스러운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해 새로운 정보 평가를 내놓은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 관계 확인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언급인데, 그는 그 시기가 2006년 6~7월이라고 말한다(특사 파견 결정과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한 미국의 인지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프리처드는 자신이 처음에는 의혹으로 생각했던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의혹이 아니라 확신으로 바꾸게 된 계기를 좀 설득력 없게 말하고 있다.

    ‘내가 왜 HEU 정보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군 정보장교로 미국 육군에서 28년 동안 근무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국제정치의 희극

    필자는 정말 그의 확신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알고 싶다. 프리처드는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확신한다고 말한 다음 과거의 자료를 미래의 자료로 정당화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는 1994년 제네바합의의 주역이었던 갈루치(R. Gallucci)와 리스(M. Reiss)가 ‘2005년’ 함께 쓴 논문을 인용한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당시 우리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서울에 알려주지도 않았고, 평양의 HEU 프로그램에 관한 어떤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만약 진실이 이렇다면 2002년 10월의 사고는 예정된 것이다.

    프리처드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이 책에서 답하지 않는다. 아직은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음모론’이 싫어 던진 몇 가지 질문이다. 많은 질문이 있지만, 핵심만 언급해 본다.

    프리처드는 ‘북한은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켈리와 프리처드에게 미국이 자국에 위협을 가한다면 핵보다 더한 것을 갖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데, 미국은 왜 그것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간주했을까. 북한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 계획을 부정하고 있다. 필자가 북한을 두둔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두둔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미국 법정에서처럼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는 놓치고 싶지 않다.

    미국적 논리에 따르면 북한의 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당시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북한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왜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을까. 그 다음이기는 하지만 2003년 미국 CIA 보고서와 2002년 10월 현장에서 통역을 했던 분은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의혹이라고 이야기할까. 그리고 북미관계가 풀리고 있는 지금 미국은 고농축우라늄에서 ‘고’자를 떼고 농축우라늄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제2차 북핵 위기를 의도가 담긴 사건으로 해석하게 하는 증거는 너무도 많다. 이제 누구나 말하는 것처럼 고농축우라늄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는 정상화의 길을 밟고 있다. 만약 이렇게 가는 게 싫으면, ‘나쁜 국가’ 북한과 협상하는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어렵겠지만, 윤리적으로는 정당한 것이 아닐까. 한국 정부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동북아 평화 위한 장치 필요

    프리처드의 기록은 고농축우라늄이 ‘진실’이더라도 북미관계는 잘 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국제정치의 희극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과 미국 둘 다 고농축우라늄과 관련하여 부분적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도 우라늄의 고농축을 위해 필요한 알루미늄관을 수입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프리처드가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비밀을 공개하는 것은 미국 국내법 위반이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이익은 존중되어야 한다. 프리처드는 자신의 기록이, 미국 내 대북정책 결정과정과 북미관계와 한미관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프리처드의 이 책이 더 많은 진실이 담긴 다음 책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프리처드는 기록의 말미에서 동북아 차원에서 상설 안보포럼의 창설이 줄 이점을 말한다. “6자회담의 실패가 새로운 안보 틀의 형성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주민으로서 우리는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의 제도화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북핵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동북아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2002년 10월의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 진실 없이 이익의 실현을 위해 가는 새로운 길은 이익의 부조화가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다. 2002년 10월의 정치와 진실이 그 과정에 있었던 정책결정자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주목하고자 했던 관찰자들을 통해 밝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프리처드를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또 다른 기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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