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갬블러(Gambler)’를 아세요? 제가 소개할 갬블러는 영화 제목이 아니라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비보이 그룹입니다. 그들은 시련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인생의 도박판’에서 멋지게 이겨나가고 있죠. 세계적인 비보이배틀대회 연이은 우승! 대단하죠? 이제 그 갬블러가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한답니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많은 비보이 팀 가운데 갬블러가 유독 빛나는 이유는 뭘까요?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배틀(battle)’은 비보이대회의 꽃입니다. 권투경기 보신 적 있죠? 배틀이 권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몸을 직접 부닥치지 않고, 주먹이 아닌 춤으로 대결한다는 것입니다. 춤 실력이 곧 승패를 가르고 계속 이기면 ‘우승’을 하게 되죠. 그래서 비보이는 결전의 그날만을 기다리며 뛰고 구르고 돌고 날아다닙니다. 땀 흘리고 또 땀 흘리는 생활의 연속. 배틀이란 상대팀과 우리팀, 이렇게 둘이 돌아가며 한 번씩 춤을 추는 건데, 관객은 이들의 실력을 보고 우수한 팀에 더 많은 환호를 보냅니다. 그러니 비보이는 배틀이 끝나면 몸이 휴지조각처럼 된다고 하네요.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비보이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혹 ‘갬블러’라고 들어보셨나요? 한국 비보이 중에서 세계대회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팀이랍니다. 2007 미국 프리스타일 세션 준우승, 2006 미국 호다운 대회 우승, 2005 미국 프리스타일 세션 우승, 2004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 2004 프랑스 비보이 월드컵 우승…. 미국 배틀대회에서 미국 아닌 다른 나라가 우승한 적은 갬블러가 최초라고 하네요.
사단법인 한국비보이협회 이요섭 사무총장도 갬블러를 한국 최고의 비보이 그룹으로 꼽습니다. 미국 비보이 대회에서 외국팀 사상 최초로 우승했고,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거둔다는 이유에서요. 팬만 해도 15만명에 달하고요. 물론 ‘익스트림’ ‘라스트 포 원’ ‘익스프레이션’ ‘맥시멈 크루’라는 그룹도 잘나가지만 으뜸은 갬블러랍니다.
이 팀이 얼마 전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는데요. 파라마운트가 제작하는 댄스영화 ‘하이프 네이션’에 주연급으로 출연한다는군요. 영화는 갬블러와 미국 힙합그룹 B2K 간의 댄스 배틀을 다룰 예정인데 제작비가 총 2500만달러나 들 거랍니다. 갬블러 멤버들은 아직까지 실감이 안 나 얼떨떨하고 어색하답니다.
B-boy의 고향은 뉴욕
비보이(B-boy)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전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A급이 아닌 B급, 다시 말해 불량 청소년을 뜻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남자라는 군요. 그럼 비걸(B-girl)은? 맞습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여자입니다.
비보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 후반 뉴욕 브롱스의 DJ 쿨 헉(Kool Herc)이 처음 사용했대요. 노래 중간에 가사 없이 간주만 나오는 부분을 ‘브레이크’라고 하는데, 앉아 있다가 이 부분만 나오면 무대에 나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쿨 헉이란 사람이 꽤 재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브레이크 부분을 연이어 들려주면 사람들이 계속 춤을 출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레코드 2장에 브레이크 부분만 연결해 들려줬더니 예상대로 브레이크가 끝날 때까지 춤을 췄다고 합니다. 쿨 헉은 당시 간주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을 ‘브레이크 보이’라고 불렀는데, 전파되는 과정에서 말이 줄어 비보이라고 불리게 됐답니다.
당시 뉴욕 뒷골목에는 히스패닉계가 몰려들면서 흑인과의 패권 다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졌다는데요. 비보잉(비보이가 춤을 추는 행위)을 할 때만큼은 폭력적인 분위기가 덜해서 이 춤을 추는 애들이 꽤 있었다나 봐요. 비보잉의 대유행이 시작된 거죠. 그런데 춤을 출 때도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누가 얼마나 어려운 춤을 추느냐 하는 걸로 승부를 가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싸움하듯이 춤을 춘다고 해서 비보이 경연대회를 배틀(battle·전투)이라 부르게 됐답니다. 그럼에도 주먹이 아닌 춤으로 대항했기에 비보잉은 평화를 이끄는 춤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갬블러’
한국 비보이는 1980년대 중반 미군 부대에 있던 비보이 비디오가 우리 사회로 흘러나오면서 시작됐대요. 이요섭 사무총장이 그러더군요. 비보이 김효근씨에 따르면 1985년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선보인 ‘뉴욕시티 브레이커즈’ 비보잉이 AFKN을 통해 한국에 방영되고, 급기야 ‘박남정과 친구들’ ‘인순이와 리듬터치’에서 활동하던 댄서들이 곡의 중간에 이 춤을 선보이며 비보잉이 크게 알려졌답니다. 보신 기억 나세요?
갬블러 소속의 비보이 오세빈(26)씨는 1992년 남성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터보’가 노래 중간에 비보잉을 했던 걸 잊지 못한다 합니다. 그만큼 멋있었던 거죠. 그러다 1997년 남성 삼인조 그룹 ‘솔리드’가 콘서트 중에 뉴욕의 ‘에어 포 스크루’ 비보이 시저(Ceaser)를 게스트로 출연시키자 본격적으로 유행했대요. 급기야 그해 한국 최초의 비보이 그룹 ‘피플크루’가 결성됐고요.
길다고 하면 긴 비보이 역사를 굳이 말씀드린 이유는 갬블러가 나타난 배경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그러니까 2002년, 김정대(27)씨가 7명을 데리고 갬블러라는 비보이팀을 꾸렸답니다. 갬블러를 본격적으로 성장시킨 건 새 리더, 장경호(25)씨고요. 현재는 멤버 수가 30여 명으로 늘었더군요. 이번에 제가 만난 6명은 영화 출연이 확정된 갬블러의 핵심 멤버로 앞에서 소개한 정대씨, 경호씨, 세빈씨와 아직 소개하지 않은 이상진(24), 범상길(24), 박경호(23)씨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갬블러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죠. 한국비보이협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비보이 인구는 최소 30만 이고, 그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비보이 팀은 10여 개랍니다. 그렇다면 그 많은 팀 중에서 한 팀이 유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5월9일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해가 머리 바로 위에 있을 때 만났는데 작별 인사하고 나니 자정 무렵이더군요. 그래도 부족해 다음날 그들의 공연을 보고 갬블러 멤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이들의 성공비결, 이제부터 상세히 공개하겠습니다.
“춤추면요? 정말 좋죠. 즐겁죠. 행복하죠.”
무엇보다 이들의 공통점은 춤 자체를 즐긴다는 겁니다. 열심히 하는 사람 위에 즐기는 사람 있다는 말 아시죠? 이들이 바로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세계 최고의 헤드스피너라는 평을 듣는 상길씨도 비슷한 말을 하네요.
“춤추면요? 정말 좋죠. 즐겁죠. 행복하죠. 한번 빠지면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공부도 하면 재미있잖아요. 춤도 그래요. 한번 돌면 다른 방식으로 돌고 싶고 그래요. 점점 재미있어지니까.”
리더 경호씨는 무대에 서면 존재감이 강하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일상생활 하다 보면 자기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데 음악 듣고 춤을 추면 육체와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걸 자각한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황홀경에 빠져 꽂힌다”라고 표현하더군요. 좀 철학적이죠? 비보이를 만나 느낀 것 중 하나가 이들이 거칠어 보이지만 굉장히 철학적인 구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빈씨는 춤에 빠진 이유에 대해 좀 더 재치있게 말하더군요.
“젊음을 표출할 데가 없었는데 춤을 추니까 자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물론 관객들이 환호하면 더 좋았죠. 여학교에 가서 춤출 때 들리던 비명에 몇 달은 그냥 살았는걸요.”
이렇게 춤을 즐길 수 있는 건 ‘춤은 내 운명’이라고 느끼는 친구가 많아서일 겁니다. 리더와 이름이 같아 ‘작은 경호’로 불리는 친구(박경호)는 키도 작고 뚱뚱한데다 공부도 별로 못했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피플크루’란 그룹과 도내 청소년 대회 참가자가 비보잉 하는 걸 보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흉내 냈대요. 멋있어서요. 당시 이연걸 나오는 영화를 좋아해 무술 흉내도 내고 다니던 터라 어렵지는 않았답니다. 그러다 학예회 때 반대표로 뽑혀 god의 춤을 추면서 비보잉의 기본을 보여줬고요. 남들 앞에서 정식으로 춤을 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이때 비로소 ‘춤이 나와 맞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갬블러 리더, 장경호. 회전을 위주로 하는 파워무브가 특기인 이상진. 탑락업락(팔을 위주로 추는 춤)을 잘하는 김정대. (왼쪽부터 차례로)
‘갬블러 창시자’로 불리는 정대씨. 그는 무지막지한 연습을 성공의 비결로 꼽습니다.
“대회 일정 잡히지 않았으니 연습하자,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연습하자, 새해니까 연습하자, 토요일이니까 연습하자고 했어요. 다른 팀이 5시간 연습한다면 6시간 연습했고, 밤에 연습한다면 새벽까지 연습했습니다. 갬블러 리더인 장경호는 지금 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전세계 비보이 중에서 가장 많이 연습했을 겁니다.”
팀원들은 들어올 때부터 ‘연습’으로 단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리더 경호씨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부산 사직동 실내체조장에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부산 양정 청소년수련관에서, 다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오보앙’ 팀에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스텝’ 팀에서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러고선 잠시 쉬다 다시 아침 일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3일 동안 잠 안 자고 연습하니 많이 힘들었답니다. 노력이 있으면 그만한 성과가 있는 법. “그때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인지 실력이 최고로 많이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무식하게 해야 실력이 는다’는 진리가 다시금 떠오르는 대목이지요. 팀 막내인 작은 경호씨도 학교가 끝난 오후 4시 무렵부터 사회복지관 강당에 가서 문 닫는 10시까지 혼자 맹훈련했답니다. 착하게 생긴 경호씨가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1 때부터 학교 끝나면 춤만 추니까 친구가 없었어요. 나중에는 할 수 있는 게 춤밖에 없던데요.(웃음)”
연습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금연 하는 건 물론이고요. 담배를 피우면 폐활량이 줄어 불리하거든요.
다른 비보이 팀이 육군이라면 갬블러는 특전사입니다. 정대씨는 가장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미리 염두에 둔 이들을 불러 갬블러를 조직했습니다. 철저히 계산된 팀인 거죠. 축구에 포워드, 수비수, 골키퍼가 있듯 비보이에도 파워무브, 소프트무브, 콤보라는 포지션이 있어 이에 적합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들 팀의 리더였다는군요. ‘리버스’의 김정대, ‘오보앙’의 정설희, ‘드림스’의 이광선, ‘패거리’의 오세빈…. 그런 뒤 실력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목포, 전주, 부산을 돌며 비보이들과 배틀을 했고 그렇게 해서 찾은 사람이 현재 팀의 대표 장경호입니다. 실력자들이기도 했지만 리더로 활동하며 단원 관리에 치였던 사람들이라 알아서 열심히 한 건 물론이고요. 게다가 실력이 뛰어난 갬블러가 특히 잘한 게 바로 파워무브였답니다. 외국애들은 찌그러진 모양으로 하는데 갬블러는 직각 맞추는 걸 잘하는 편이어서 세계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거죠.
“우리 무대는 세계”
갬블러(gambler)의 뜻은 아시다시피 도박꾼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은 것은 모든 인간이 살면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랍니다. 인생에 베팅을 해보자는 의미이기도 했죠. 그러고는 애초부터 세계대회 제패를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다른 팀에 비해 베팅을 많이 하는 편이었죠. 가령 일본대회나 미국대회에 자비를 들이면서까지 가는 무모함…. 바로 이것이 갬블러의 베팅정신이죠. 갬블러가 비보이팀들 중에 가장 먼저 해외대회에 나간 것도 그래서 가능했고요.
갬블러는 2005 일본 오키나와 스트릿스타일 페스티벌에서도 우승했다.
‘큰물에서 놀자.’
세빈씨도 리더십을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처음 팀을 꾸린 사람은 정대씨지만 현재의 리더 경호씨가 팀 운영을 잘한다고 하네요. 리더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멤버에게 반말하지 않고, 공연료를 투명하게 나누고, 인터넷 카페 관리도 잘해 팀원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거죠.
그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우연히 그의 가방 속을 보게 되었는데요. 거기에서 비보이랑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생뚱맞은 ‘물건’을 찾았습니다. 아대(손목 보호대), 빨간 면바지, 검정 티셔츠, 모자…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백과사전만한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책 제목에 놀라고 크기에 놀라고 저는 두 번 놀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이런 걸 보냐고. 그랬더니 그가 그러더군요.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 와 2평짜리 방에서 다리 뻗으면 할 게 없어서 심심했어요. 근데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그래서 연습 끝내면 책 봤죠, 뭐.”
물론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은 건 아니었답니다. ‘래리 킹의 대화의 법칙’과 ‘헨리 코헨의 협상의 법칙’을 보다 보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설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경호씨는 “근원적인 지식은 이 사람들이 다 다루는 것 같아서” 고전을 손에 들게 됐답니다. 처음 산 고전은 질 뒬리즈의 ‘천개의 고원’. 그런데 이건 너무 어려워서 잠시 접어뒀다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그는 리더로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데요. 그 힘도 바로 책 덕분이라고 하는군요. 조곤조곤 말하던 그가 오랜만에 ‘비보이답게’ 말합니다.
“책을 읽으니 닫혀 있던 뇌가 터지는 기분이 들던데요.”
이후 리더 경호씨는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해 더 많은 성과를 얻었답니다. 할리우드 영화 진출도 그중 하나고요. 얘기를 나눠보니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경호씨는 책을 통해 얻은 사고의 힘 덕분인지 스물다섯인 지금 부산예술대와 경희대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네요. 대단합니다. 춤과 책, 그리고 강사까지.…
“막노동해도 춤은 놓지 않았다”
팀원들의 자질도 뛰어납니다. 정대씨는 비보이 대회는 모조리 봤다고 합니다. 큰 대회든 작은 대회든 가리지 않고요. 콘서트도 많이 보는데 특히 그는 일본 음악그룹인 TRF 콘서트를 자주 본다고 합니다. 물론 시디로요. 다양한 춤이 많이 나와 배울 거리가 많다는 군요. 그걸 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려면 어떤 공연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답니다.
헤드스피너 상길씨는 이탈리아에 공연하러 갔을 때 뮤지컬 ‘노트르담의 파리’를 10번이나 봤다고 합니다. 그 음악 선율과 동작이 아름다워서 배우고 싶었대요. 곱추가 여자 죽을 때 줄 타고 올라가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저런 게 예술이구나, 하는 걸 느꼈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춤을 통해 관객이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게 됐습니다. 안무 짜는 데 더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에어로빅을 떠올려보세요. 한 음악에 많은 동작이 들어가잖아요. 팔도 뻗고 다리도 흔들고. 비보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곡을 완성하려면 많은 안무가 필요한데요. 이때 아이디어는 멤버가 각자 낸다고 합니다. 물론 리더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만요. 배틀도 중요하지만 안무를 잘 짜야 대회에 입상할 수 있으니까 신중을 기한다고 하네요. 가령 농구하는 동작이 인상적일 경우 그걸 퍼포먼스로 변형시키면 비보잉이 된대요. 기본적인 비보잉 동작(풋워크-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스텝을 밟는 것, 프리즈-동작을 순간적으로 멈추는 것, 파워 무브-회전을 위주로 하는 것, 탑락 업락-팔을 위주로 하는 것)을 활용해서 말이죠. 몸을 디귿자로 만들고 달걀처럼 만들기도 하면서 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스타일무브(자유로이 추는 춤)가 좋다는땅끝마을 소년 박경호. 세계 최고의 헤드스피너, 범상길. 프리즈(순간적으로 멈추는 동작)에 자신있다는 오세빈. (왼쪽부터 차례로)
“춤출 수 있는 공간하고 비보이들만 있으면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서 돌아가며 자고 친구에게 ‘양말 신는다’ ‘속옷 입는다’는 말 한 마디만 하고 가져가고 그랬어요. 눈칫밥 안 먹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친구 부모님들은 쫓아내기도 하셨어요.”
그랬던 그가 고2 때 난생 처음 공연으로 번 돈 15만원 중에서 7만원은 엄마에게, 3만원은 누나에게 주고 나머지는 통장을 개설해 넣어놨대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모은 돈이 3500만원이나 된다니, 대단하죠?
막노동한 비보이도 많습니다. 상길씨는 나이트클럽에서 학비를 벌었지만 부족할 때가 많아 일당 5만, 6만원을 받고 단독주택 페인트칠을 했대요. 한 달에 10번만 나가면 용돈이 됐대요. 지금도 새벽이면 일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력시장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그런 시절이 있어 오늘날 이렇게 성장한 것일 테지요. 고생 얘기하자면 리더도 빠지지 않습니다. 역시 나이트클럽에서 ‘용돈벌이 크루’를 조직해 비보잉을 했고, 부산 서면 인력시장에 가서 2년 동안 일당 5만원 받고 학교보수공사에 나갔다는군요. 물론 연습을 해야 하니까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면 나머지 시간에는 춤에 집중했답니다. 춤이 우선이었거든요.
그러나 비보이도 인간인 까닭에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인생의 전부가 비보잉이었던 세빈씨는 허무하다고 합니다.
“회의도 들지만 최선 다하고 싶어”
“세계대회에 나가 1등은 여러 번 했지만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춤을 춰서 비보이에 대한 인식만 올려준 것 같았습니다. 제 자신은 어디에도 없고요. 부상당해 사회에서 버려지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갬블러의 초기 멤버였다가 1년 전 다시 합류한 세빈씨는 지난 3월23일 폐막한 제26회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아메리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 ‘올웨이즈 비 보이즈’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비보이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보여주는데요. 그의 실제 삶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는 연극으로 발길을 돌리려 합니다. 의정부 안골마을에서 8개월간의 수련과정을 거쳐 얼마 전 극단 미추의 단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 ‘심청전’ 게스트로 참여한 세빈씨는 비보이처럼 짧은 역사가 아닌, 긴 역사가 있는 연극에 빠져보고 싶다네요. 그곳에서 체계적으로 재능을 키워보고 싶다고 합니다. 자유롭기만 한 비보이 일상에 지쳐서 말이지요.
“남들은 미쳤다고 그랬어요. 게스트로 출연하면 200만원 받는데 단원으로 들어오면 20만원 받는 거니까. 그래도 그곳에 가서 연기를 배우고 싶었어요.”
초창기 리더 정대씨가 리더를 그만둔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비보이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다른 걸 시도하려 했던 거죠. 그래서 개그맨과 배우 준비를 했는데 생각만큼은 잘 안 됐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물러서지 않고 ‘비보잉을 중계(?)하는 비보이 MC’였던 경험과 끼를 살려 방송 MC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라네요. 실제로 정대씨는 말을 참 재치 있게 합니다. 덕분에 인터뷰 내내 즐거웠습니다.
이처럼 다른 길을 찾으려 할 때도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간을 베팅하며 사는 갬블러입니다. 춤을 출 때면 현재를 즐기는 열정적인 비보이로 돌아옵니다. 리더 경호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뭘 할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정해놓으면 의존하게 되니까요. 어차피 불확실성이 판치는데 굳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이거 할 거다, 저거 할 거다’라고 단정 짓는 것보단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잘 사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