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강원도 살리기’ 10년 도백(道伯) 김진선

“은퇴하면 강원도 내려와 사세요, 후회 없을 겁니다”

  • 정현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8-06-10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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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규제완화로 지방 투자기회 다 빨려들어가”
    • “은퇴자 위한 ‘시니어 커뮤티니’ 리스트 연말 공개”
    • “혁신도시 재검토 말 안 돼…경제논리보다 균형발전 우선”
    • “강원도 성장동력, 동해에서 찾겠다”
    • “‘네오 투어리즘 프로젝트’로 체류형 관광 유도”
    • “남북관계, 지자체나 민간도 접근해야”
    ‘강원도 살리기’ 10년 도백(道伯) 김진선

    ●1946년 강원 동해 출생<br>●동국대 행정학과 졸업<br>●제15회 행정고시 합격, 강릉시장, 강원도 행정부지사<br>●現 강원도지사(3선), 전국시도지사 협의회장

    최근 김진선(金振·62) 강원도지사가 구설에 올랐다. 농지 투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에게 땅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김 지사였다는 한 인터넷매체의 보도 때문이다. 5월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국정설명회에 참석한 김 지사가 이 대변인에게 “투기목적으로 땅을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거나 나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 기자들에게 내가 추천한 땅이라고 해명해도 좋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게 발단이었다.

    김 지사의 태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통합민주당은 “개발 정보를 미리 흘린 것은 공인의 신분을 망각한 것이다”라며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과거 이 대변인과 한 식사 자리에서 은퇴 후에 강원도에 와서 살면 웰빙생활도 되고 강원도는 인구도 늘어 좋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권유했을 뿐 특정 지역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사라고 추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김 지사는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에게도 “은퇴하면 강원도에 내려와 사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그가 제의한 것은 은퇴자들을 위한 ‘시니어 커뮤니티’ 단지. 개발정보를 흘려 불법 이득을 취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강원도의 장점을 조금이라도 알리겠다는 ‘최고경영자’ 의지로 읽혔다.

    “5~30호의 개별 단위로 외지인들이 와서 노후를 보낼 만한 ‘시니어 커뮤니티’ 단지를 강원도 곳곳에 만들려고 합니다. 그곳에선 건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 합니다. 리스트를 만들어서 올해 하반기부터 공개하려 합니다. 강원도의 장점을 생각해서 많이들 와주시면 좋겠어요.”

    1998년 이후 3선 연임 도지사인 그는 이처럼 강원도 ‘홍보대사’ 노릇까지 겸하고 있다. 지난 5월초 강원도 내 8개 기업과 미국을 방문해 120억달러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6월 방영 예정인 SBS 드라마 ‘식객’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이나 15번째 프로축구팀인 강원도민프로축구단(강원 FC) 창단을 주도한 것에서도 강원도의 이미지를 알리고 브랜드 가치를 키우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소통을 조율하는 자리까지 맡아 전국적으로 바쁜 몸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정책이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지난 4월25일 그를 만나 각종 지방정책과 관련, 의견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김 지사는 이 밖에도 동해안 개발, DMZ 한민족평화지대,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야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지방 위기감”

    우선 수도권 규제완화와 혁신도시 재검토 문제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단기간에 매듭짓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수도권 규제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은 먼저 지방경제를 살리고 수도권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8.4%가 몰려 있고, 제조업체의 57%, 금융대출의 67%를 수도권이 차지할 정도로 집중도가 높아 국가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에만 수도권 내에 LG전자·팬택·한미약품·일동제약 같은 4개 대기업의 공장 증설이 이뤄지는 등 규제완화는 이미 부분적으로 이뤄져왔기에 지방자치단체들의 위기감이 더 커졌다.

    원주시 반곡동 일대 360만㎡의 땅에 조성 중인 강원 혁신도시 사업은 한국관광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13개 기관 4000여 명의 직원을 상주시키고 3만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전 예정 기관의 국고지원 요구가 과다하고, 혁신도시 내 인구유입이 낮을 수 있으며, 주택 미분양 등이 우려된다며 재검토하고 있다. 4월말 현재 82%의 보상이 끝난 상태이고, 2574억원이 이미 투입된 상황.

    ‘강원도 살리기’ 10년 도백(道伯) 김진선

    김진선 도지사는 강원도를 한국의 ‘생명건강산업의 수도’로 만들 계획이다.

    ▼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와 혁신도시 재검토는 시장경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강원도 차원에선 도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으니 이와 다른 내용을 주장하고 있고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시장주의자이고, 자율경쟁의 정신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장지상주의로 몰아가선 안 됩니다. 시장이나 자율경쟁에 맡기는 것은 수준이 비슷할 때 가능한 것이지, 워낙 격차가 벌어지면 독과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혁신도시는 원래 단순 경제논리로 접근한 게 아니었어요. 수도권이 과도하게 집중화하고 지방은 공동화(空洞化)의 문제가 있으니 공공기관들을 선도적으로 지방에 이전시켜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은 그 도시를 중심으로 연관산업을 키워 성장동력이 되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 정책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논리로 비용편익을 분석해 효과가 낮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지방과 수도권이 교묘하게 경쟁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수도권의 집중도가 높은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포화상태인데도 지금도 해마다 인구 30만명의 신도시 하나가 생길 정도로 집중화하고 있잖아요. 이제 수도권도 양보다는 질적 개선을 위해 제대로 관리해야 할 상황이 왔습니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국가 권역들이 그 특성에 맞게 발전하고, 그것이 하나로 모여 이뤄져야지, 수도권만 국가경쟁력의 근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수도권의 일정한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도권의 모든 것이 억제되고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파주 평택 인천 청라지구 등 여러 곳의 규제가 풀렸습니다. 수도권 규제를 많이 풀어 지방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도권의 자장(磁場)에, 그 블랙홀에 지방의 투자기회가 다 빨려들어갑니다. 그런 뒤엔 지방에 처방을 해도 그 약효가 먹혀들지 않습니다.”

    “총량성장주의 정책 경계해야”

    ▼ 경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로선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도권 규제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입니다.

    “1960~70년대 산업화시대에는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거점개발정책 등 총량성장주의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가 발전했죠.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그 후유증이 발생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도시-농촌, 공업-농업, 수도권-비수도권, 기업-노동자, 대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 간에 양극화가 극심해졌어요. 이를 치유하기 위해 성장균점, 균형정책이 나왔습니다. 지금 경제가 잠시 하강국면이라고 해서 또 다시 과거의 총량성장 위주 정책을 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성장과 균형정책이 보완적으로 가야지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어선 안 됩니다. 그래야 건실한 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현 정부에 조언하고 싶습니다.”

    ▼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의 관계는 어떠해야 합니까.

    “분권화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기업 같은 민간조직에서도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국가체제의 시스템을 분권형으로 재편할 때가 왔습니다. 정부와 시·도, 시·군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립이 필요하고, 재정개혁도 명백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헌법에는 지방자치와 관련된 부분이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실질적인 내용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어요.”

    ▼ 노무현 정부 때는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지난 정권 때 분권을 강조하기에 저는 ‘확고한 선택, 선시행 후 보완, 조기 매듭’ 등의 원칙들을 제시하면서 시행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분권 문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새 정부에 그것을 기대해보려 합니다. ‘참여정부’가 국가 균형발전에 대해선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지역의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등을 시도했죠. 그러나 성장정책도 강화했어야 했는데 분배 쪽에 치우쳤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는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시대까지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이 있었다면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이 될 수 있는 곳을 택해야 했습니다.”

    ‘강원도 살리기’ 10년 도백(道伯) 김진선

    김진선 도지사(왼쪽)가 4월28일 대한축구협회에서 K-리그 강원도민구단 창단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합리적 정책을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도백(道伯)의 임무는 바로 자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김 지사는 요즘 여러 가지 터닝포인트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동해안권 개발이다. 영동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동해를 낀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을 한데 아우르는 신동해권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그간 동해안 지역은 국가발전을 견인할 가능성과 성장 잠재력은 갖고 있었으나 국가 정책과 개발 축에서 소외돼온 게 사실이다. 최근 국토균형개발, 남북관계 진전 등에 따라 동해안권의 비중이 높아졌고, 정부 차원에서도 이를 집중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따라서 정부는 지난해 말 동해안 광역권 발전 특별법을 만들어 동해안 개발에 적극 나섰다.

    “동해안 개발, 2010년부터 가시화”

    법이 만들어짐에 따라 정부도 동해안권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동해안권 발전위원회를, 국토해양부 산하에 동해안 발전기획단을 두고 각종 개발사업에 대한 ‘원 스톱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또 동해고속도로 연장, 동해선 철도부설 등 광역 교통·물류 시설이 갖춰지면 동해안의 발전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동해안권 개발은 언제부터 가시화할까요.

    “동해안발전법 시행령이 올해 상반기 중에 시행되면 내년부터 법적용이 될 것입니다. 지역개발사업이 이뤄지고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갖춰지는 2010년부터는 발전사업들이 가시화할 듯합니다. 신지식 첨단산업벨트, 신에너지 산업벨트, 관광 휴양벨트의 틀 속에서 동해안을 잇는 울산 경북 강원도 지역이 공동으로 추진해나가려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3월 중순 강원도를 방문해 김 지사에게 “독자적 특별광역경제권인 강원도가 지역특성에 맞는 산업을 제시하면 적극 지원하겠다”며 동해안권 경제자유구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엔 전국 7곳의 광역경제권 중 유일하게 경제자유구역이 없다.

    ▼ 강원도라는 단어는 ‘여유’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언제든 가서 쉬고 싶은 곳으로 인식돼 있는 것이죠. 그런데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혁신도시 등을 너무 강조하니 그런 이미지와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입니다.

    “모든 지역이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높이고, 인구를 집중시키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양적·물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게 세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이 수도권처럼, 기계로 찍어낸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강원도도 그런 세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강원도는 맑은 공기와 물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습니다. 더욱이 건강 레포츠 휴양 등이 중시되는 시대이니 강원도를 ‘생명 건강 산업의 수도’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원도에서 나가는 물은 전부 1급수로, 산소 함량이 제일 높은 지역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그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겁니다. 강원도가 환경과 웰빙, 관광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2009년 6월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교통여건이 대폭 개선돼 강원도가 수도권 배후 신기업벨트 지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 최근 강원도가 3년 연속 기업유치 건수 1위를 기록한 것도 이런 여건과 맞물려 있다. 물론 이전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지방세 감면 등 세제 지원 혜택도 기업 유치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통팔달이 될수록 강원도의 관광수익 증가가 이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교통시설과 수단이 발달해 체류관광이 아니라 ‘당일치기’ 관광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 한국관광공사의 2007년 국민여행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는 국민이 가장 많이 찾은 숙박 여행지 1위(15.2%) 자리를 고수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방문지로도 조사됐다. 그러나 1인당 당일관광 횟수가 2005년 3.8회에서 2007년 4.6회로 늘어난 반면 숙박관광은 2.8회에서 3회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체류형 관광을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지역특성에 맞는 고품격 관광자원을 조성하고, 설악동과 강릉레저단지 등 국제 수준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재정비할 계획입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춘천마임축제, 동강사진축제 등 정착단계에 있는 문화 축제 등도 활용하고, 수요에 맞는 지식형·친환경형·체험형·웰빙형의 네오 투어리즘 프로젝트를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DMZ 한민족평화지대 구상

    강원도정과 관련,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김 지사가 최근 발표한 한민족 평화벨트 구상이다. DMZ(비무장지대) 내의 문화재 공동조사 발굴 및 연대 강화, 수자원 및 교통로 확보, DMZ와 연계한 관광자원화 등을 목표로 한 구상이다.

    ▼ 한민족 평화벨트 구상을 발표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강원도는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도이며, 도세(道勢)도 약하고 인구도 적고, 지역발전도 덜 된 곳입니다. 도민들은 국가로부터 푸대접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외지 사람들도 강원도를 ‘산골’이라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특히 DMZ 일대는 정지된 곳, 숨조차 쉴 수 없는 지역이었지요. 동해도 오랫동안 철조망으로 막힌 전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지사가 된 이후 DMZ 공간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가 평화벨트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 평화벨트 구상은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새 정부 출범 뒤 북한과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는데 강원도가 개별적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어 북한과의 채널을 별도로 확보하고 지금도 대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강원도 방식’이 모범적이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물론 현재 남북관계가 다소 정체상태라서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그런 기류에 관계없이 제 소신을 갖고 교류협력을 해나가려 합니다.

    강원도 차원에서도 분단 이전의 도 소재지인 북한의 원산을 두 번이나 가는 등 교류를 해오고 있습니다. 믿음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뭐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DMZ 한민족평화지대 구상도 그런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금강·설악 지역을 합쳐서 국제관광자유지대로 만들고, 개성공단의 남쪽 개념으로 철원을 평화도시로 만들어 북한근로자들이 그곳에 와서 일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기본적으로는 북한과 대화하길 원하기 때문에 방법론상에서 다소 엇갈리더라도 조만간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남북관계에서 ‘강원도 방식’이란 어떤 것입니까.

    “남북교류를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남북관계는 장기적 안목으로 봐야 한다, 둘째 정치적이고 전시적인 것은 배격하고 실질적인 교류를 지향한다, 셋째 공동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 넷째 모든 내용을 도민들에게 공개한다, 다섯째 북한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 상호신뢰를 갖도록 한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갖고 접근했더니 북쪽도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연어부활사업, 솔잎혹파리 병충해 공동방제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었지요. 탈무드에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잖아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자세도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 문제는 분권적,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중앙정부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젠 지방정부나 민간주체도 독자적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각기 맞는 수준의 교류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남북평화, 통일의 기초가 되리라 봅니다.”

    “정치 선진화 위해 헌법개정”

    ▼ 도지사 3연임을 했기 때문에 이번 임기를 마치면 다시 도지사에 도전할 수 없게 됩니다. 이후 정치적 목표가 있습니까.

    “끝까지 도지사로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후에 대해선 천천히 생각해볼 겁니다. 원래는 늘 마음을 비우고 언제든 야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신껏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상황을 지켜보면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정계에 진출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요. 아직은 반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요즘도 종종 정치적 발언을 하시던데요.

    “하하, 다른 사람들처럼 나라를 걱정하는 거지요. 개인적 욕심이 있어 그런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행정인이면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정치 선진화 없인 경제·교육·문화·과학기술 각 부문에서 선진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선진화는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분명한 정강정책을 갖고 정책대결을 통해 조화롭게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대 정당조차 대통령선거, 총선을 계기로 생멸하고 이합집산하고 있잖아요. 정당의 정체성이 없는 거죠. 또 지난 18대 총선 이후 지역주의, 계보정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정당의 공천 문제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는 권리는 국민에게 있는데 정당에서 좌지우지하니까 투표에 대한 국민의 열정이나 의무감도 옅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상향식 공천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 선진화를 이루려면 권력구조나 정치 체제를 시대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즉 대통령제를 보완할 것인지, 혹은 내각중심제로 갈 것인지 공론화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헌법개정도 논의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신동아’ 지면을 빌려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에겐 대대로 선비정신이 있었습니다. 명분이나 절제, 염치, 신념, 소신, 신뢰 같은 것들이죠. 달리 말하면 자리를 나아갈 때, 사양할 때, 물러날 때를 분명히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정신이 실종됐어요. 내각이나 관료사회, 정치인, 교수 등 지식인 그룹, 공공기관 책임자 같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그런 정신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정치인들도 아무런 명분이나 원칙 없이 이 당 저 당 기웃거리고, 학문보다는 정치에 관심 있는 폴리페서들이 넘쳐납니다. 정말 선비정신을 되찾아야 할 때 아닌가요?”

    그가 느닷없이 선비정신을 강조한 연유가 궁금했는데, 돌아와 그의 프로필을 보니 ‘율곡학회 이사’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는 또 예술가형 리더다. 흥에 겨워 일하는 것을 즐기고, 창의적이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 실력에, 그림을 좋아하며, 책 읽기를 즐기는 그의 기호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재해 탓에 빚 늘어 걱정”

    ‘중류지주(中流砥柱).’

    그의 집무실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다. 역경 속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사람, 혹은 그런 힘을 뜻한다. 어느 스님이 써준 이 글귀를 김 지사는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겉보기에는 세 번 연임 도지사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 그는 많은 역경을 헤쳐온 사람이다.

    “도지사를 시작할 때 강원도는 온갖 경제적 지표가 전국에서 바닥권이었습니다. 땅은 넓지만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열심히 해도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기반이 많이 쌓였지만 그래도 살림이 넉넉지 않아요. 게다가 재해가 많아 그것을 추스르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강원도 살림이 규모는 작지만 빚을 질 이유는 별로 없는데, 재해 때문에 지방채를 발행하다 보니 3000억원이 빚으로 남았습니다. 중앙정부가 재해 지원을 해줘도 강원도가 부담해야 할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강릉지방이 큰 피해를 봤을 때 기자는 재해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현장에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도민의 아픔을 직접 겪어야 하는 고통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강원도 살림(전체 예산)은 2008년 2조9974억원. 수원시 예산이 1조4700억원이니 남한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강원도 예산이 수원시 두 개 정도의 예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 지사는 ‘중류지주’의 노력으로 2005년부터 3년 연속 전국 시도 가운데 기업유치 1위, 춘천 원주 강릉 철원을 잇는 테크노밸리 사업으로 지역산업정책대상 수상(2008년 4월), 고급형 알펜시아 리조트 개발 등 커다란 성과를 내왔다. 그리고 요즘의 화두인 혁신도시, 동해안개발, DMZ 평화벨트, 생명건강산업수도 등의 난제들을 잘 지휘해나간다면 “명품 강원도를 세계화하는 데 초석을 쌓겠다”는 그의 바람은 어렵지 않게 실현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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