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박카스 섹스’와 ‘돗자리 성병’

  • 정정만 M&L 세우미(世優美) 클리닉 원장 / 일러스트·김영민

    입력2008-06-09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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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카스 섹스’와 ‘돗자리 성병’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전체 머릿수의 10%에 근접한 481만여 명(2007년 65세 이상 인구 481만1631명)이 어느새 한반도 남쪽에 고령사회(aged society)를 건립한 것이다. 평균수명은 해마다 늘어나는 반면 출산율은 낮아지고 베이비 부머 세대가 무더기로 노인 인구에 편입되면서 2026년에는 전 인구의 20.8%가 노인이 되는 초고령 노인 공화국(Superaged People´s Republic of Korea)의 도래가 예측되고 있다.

    현재 법률적 또는 의학적으로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총칭한다. 15세에서 64세에 이르는 생산인구 3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미래의 부담(2030년)을 거론하며 대비가 시급하다고 법석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제논리적 대비책엔 노인이 ‘국가동력에 기여하지 못하고 젊은이들의 노동력에만 의존해 끼니를 때우는 비루한 사람’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노인의 품위를 경시한 풍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대의 빛나는 젊은이를 능가하는 완숙한 재능과 인품을 지닌 신세대 노인들은 ‘65’라는 숫자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다. ‘65’라는 제한 때문에 이제 막 절정에 오른 전문적 역량을 포기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역동적 에너지를 보탤 수 있는 기회를 사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다. 사회의 인위적 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쫓겨가는 신세다. 연륜만으로 노인을 정의하는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노인을 영어로 ‘elderly’ ‘the old (man)’ ‘the aged’, 연금으로 생활하는 고령 미국 시민을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령대에 따른 색다른 구분 방식도 대두했다. 45~65세 연령층을 ‘중년(middle age)’, 65~75세는 ‘젊은 시니어(young senior)’, 75~85세를 ‘중년 시니어(middle senior)’, 85세 이상을 ‘완숙한 시니어(mature senior)’로 구별한 것이다.

    실제로 노인은 폐차 시기에 근접한 허름한 차량이 아니다. 연식만 오래됐을 뿐 아직도 탄탄대로를 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비좁은 골목길도 누빌 수 있는 잔여 성능과 원숙한 운전 기술도 갖췄다. 젊은이보다 출중한 창조적 열정과 의욕을 인위적인 숫자로 잘라내는 사회제도의 모순 때문에 반칙 한번 써보지 못하고 강제 퇴장당한 노인들. 할 수 없이 자신의 역량을 접고 여생을 침식하는 무채색 세월에 실려 보내야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독거노인 인구가 70만을 상회하고 그 가운데 72.1%는 한 달에 30만원 미만으로 힘겹게 생명줄을 이어간다. 이들 기층 노인에게 남산과 파고다공원은 부담 없는 쉼터로 소문나 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노인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처지에서 이곳은 도회지 기층 노인들에게는 사교의 터전이요 정보의 산실이자 ‘박카스 섹스’와 ‘돗자리 성병’의 사단(事端)이 빚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흔히 노인의 성을 무시하거나 희화화한다. 성은 젊은이만의 전유물이며 노인은 당연히 무성적 존재라고 여긴다. 노인의 성을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를 저질 코미디로 비하한다. 하지만 ‘지푸라기’의 여력만으로도 이성을 갈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은 나이와 무관한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노인이 된 후에야 터득한다.

    남산과 파고다공원에서 암약하는 ‘돗자리 아줌마’와 ‘박카스 할머니’는 노인의 성본능을 제대로 꿰뚫고 있다. 박카스로 접근해 소주(燒酒)의 흥취를 빌려 돗자리 깔고 이뤄지는 한순간의 성적 조우(遭遇). 노인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공략하는 사특한 아줌마와 실로 오랜만에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 노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암거래라고 치부하기엔 어쩐지 안쓰럽고 서글프기만 하다.

    노인의 성 문제는 노인복지 문제의 일부로 함께 다뤄져야 한다. 인간은 성적 존재이며, 성은 건강이 유지되는 한 죽는 순간까지 외면할 수 없는 근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건강이 유지된다면 아무리 늙은 육신이라도 성적 비축의 여지는 남아 있다. 고령이라고 비축분이 고갈되진 않는다.

    인체가 노후하면 성적 관심이나 성적 흥미(libido)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발기의 순발력이나 지구력, 그리고 발기 강직도가 약간 줄고 질의 윤활화가 지연되거나 감소하며 질 윤활액의 양이 줄어든다. 질 벽이 위축돼 성교통(性交痛)이 잦아지고 사정할 때 정액 분출력이 약화되며, 정액의 양이 감소하고 극치감의 강도도 약화하며 한 번 사정 후 다시 발기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즉 불감응기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적 교류가 차단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당뇨병, 심혈관 질환, 기타 퇴행성 질환, 그리고 장기 복용하는 약물이 노인의 성적 욕망과 성 실행 능력을 차단한다. 그러나 노인의 성을 정지시키는 커다란 원인은 오히려 비성적(非性的), 비육체적 요인들이다. 독거노인은 물론 여성 배우자의 비협조 때문에 파트너 확보가 쉽지 않고 극심한 경제난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인의 성을 위축시키는 것은 사회적 편견이다. 또한 노인 스스로 그 편견에 갇혀 성적 욕구나 흥미를 억압하는 습성이 노인의 성을 은폐, 음성화시킨다. 박카스 성병이나 돗자리 성병도 잠행하는 노령 섹스의 소산이다. 노인의 성 실상은 미국 통계에서 유추할 수 있다. 57~64세의 73%, 65~74세의 53%, 75~85세의 26%가 아직도 성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노인 남성의 50%, 노인 여성의 25%가 자위행위를 하며 노인 남성 인구 7명 중 1명꼴로 비아그라를 복용한다.

    노인의 ‘노(老)’자는 원래 ‘존경’의 뜻을 담고 있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노사(老師), 존경하는 형님을 노대형(老大兄), 친한 벗을 노붕우(老朋友)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노인’이라고 하면 ‘가난’ ‘고독’ ‘질병’ 등 부정적인 상념들이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비롯된 편견 때문에 존경의 뜻을 내포한 보통명사의 의미가 심하게 변질된 것이다.

    방송작가 김광휘는 ‘노인이야말로 가장 진화한 인간’이라고 설파한다. 조물주의 프로그램에 의해 서서히 진화해 문명인다운 면모를 갖춘 존재가 노인이라는 논리다. “진화하기 전, 젊은 시절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무조건 배 터지게 먹고 치마 두른 여자만 보면 오로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신나게 돌진해 일을 저지르고 쾌락을 베고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자는 원시인 생활에 익숙하지만 나이를 먹은 후에는 어느새 문명인이 되어 앞뒤를 가리고 이치를 따지며 윤리성을 헤아리고 때로는 본능을 억제할 줄도 하는 문명인으로 진화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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