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오늘 지각, 내일 결근, 모레 휴가…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6-11 15: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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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에도 승진에서 밀렸다. 교육 받을래, 파견 갈래? 하릴없이 붙잡혀 있기 싫어 우격다짐으로 시작한 파견 생활. 그런데 지내다 보니 이곳도 나쁘지 않다. 건강도 돌보고 공부도 하고 눈치 볼 사람도 없고. 몸을 낮추니 자존심은 좀 상해도 이렇게 편할 데가 없다. 고위 파견공무원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오한심’이라는 가상인물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팀장이 또 자리를 비웠다.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가려나 보다. 그건 옷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겉옷이 걸려 있으면 ‘마실(마을)’을 나갔겠거니, 옷이 없으면 집에 갔겠거니 하면 빙고다. 하긴, 그게 그거지만.

    이곳은 ‘국제외톨이애완동물지원단’. 국제업무를 하는 만큼 종종 각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비정기적으로 파견된다. 내가 모시는 오한심 팀장도 파견공무원 중 하나. 52세, 3급 공무원, 장점 유연한 혀, 단점 뻣뻣한 목. 이곳에 온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내가 오기 전에 출근해서 대기하고, 사무실 문 열어서 환기시키고, 불도 다 켜놓고, 가습기 물도 갈고….”

    이름과 달리 우락부락한 외모의 오 팀장은 출근 첫날 대수롭지 않은 요구사항을 줄줄 읊어대며 군기를 잡았다. ‘깐깐한 상사가 왔구나….’ 직원들은 앞으로 펼쳐질 고달픈 삶을 떠올리며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는 으름장이 무색할 기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의 일과는 이렇다.

    휴가 다녀오고도 연가보상비 신청



    오전 9시 반. 팀장 자리는 아직 비어 있다. 오전 10시. 여전히 ‘자리비움’이다. 돌아온 점심시간. 역시 연락이 없다. ‘오늘은 무단결근이로군’ 하면서 동료 기범씨와 마음 편히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 찰나, 띠리링~띠리링~ 전화벨이 울린다. 벨소리가 한심스러운 걸 보니 팀장이 틀림없다.

    “오늘 애가 아파서 못 나가겠어. 알아서들 하고. 뚝.”

    애가 지금 고등학생인데 아프기는 무슨…. 팀장의 결근 레퍼토리는 단순하다. 집안에 일이 생기거나, 몸이 아프거나, 애가 아프거나 가운데 하나다. 남보다 집안에 우환이 많다. 변명을 하는 데도 창의성이 빵점이다. 아침에 전화로 “오늘 사정이 있어 휴가를 낸다”고 통보하기도 한다. 이런 휴가는 물론 여름휴가까지 다녀오고도 휴가신청서는 작성하지 않는다. 원 소속부처에 휴가현황을 제출할 때는 다녀온 휴가를 안 다녀온 것처럼 거짓 기록해 연가보상비를 타낸다.

    사실 팀장이 결근해도 일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팀장의 유일한 공식 업무는 전자결재. 부하직원 또는 타 부서의 협조 요청에 결재를 하는 일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힘만 들이면 된다. 회사에 나오는 날도 오전시간은 온통 신문 읽기로 흘려보낸다. 매일같이 종합지 두 개와 경제지 하나를 꼼꼼히 정독한다. 정부 정책을 숙지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우편함에서 신문을 가져오는 일은 창피하다고 다른 직원에게 시킨다.

    나 : “우리 팀장말고도 파견공무원이 몇몇 더 있잖아. 합해서 한 다섯 명 되나?”

    기범씨 : “음… 좀 더 될 거야. 근데 다들 꽁꽁 숨었대, 우리 실장처럼. 아무리 파견직이지만 적게는 둘에서 많게는 열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조직의 장인데, 직원들한테 어쩜 다들 그리 무심한지….”

    수경씨 : “우리 단체에 온 다른 파견공무원들도 일이 없기는 매한가지인가 봐. 옆팀 팀장은 그 나이에 비행기 오락하느라 클릭 한 번 하면 되는 결재조차 미룬대. 그러고도 월급 다 받아가니 뻔뻔하지. 대놓고 쉬러 왔다 그러고 말이야.”

    나 : “사실 실무선의 일도 그리 많진 않은 것 같아. 2년간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던 나로서는, 조직을 절반으로 줄여도 근무 시간 안에 충분히 맡은 일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건의 했다간 머리에 정 맞겠지? 암튼 오늘 팀장 없어서 일할 맛 난다.”

    팀장 없는 사무실에서 평온한 오전을 보낸 뒤 점심 메이트들과 부대찌개를 먹으며 실컷 그의 흉을 봤다. 부원들인 기범씨, 수경씨가 내 점심 메이트. 오 팀장은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일이 없다. 1년 동안 식사를 같이한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 그렇다고 서운하다는 건 아니다. 근무 태도가 엉망이면서도 큰소리치는 상사와 그 상사를 무시하는 부하직원이 마주 앉아봐야 서로 불편하기밖에 더하랴. 그가 지능적으로 부하직원들을 괴롭히는 상사는 아니다. 마땅한 일이란 게 없으니 괴롭힐 사정도 못 된다. 하지만 그의 존재만으로 사무실 공기가 무겁다. 지난 1년 반 동안 ‘쿡’ 찌르면 터질 만큼 쌓인 크고작은 불만 때문일 거다.

    논문 쓰랴 화초 가꾸랴, 바쁘다 바빠!

    파견공무원 ‘오한심’씨의 한심한 일상
    오후 2시. 다 큰 애가 아프다더니 오 팀장, 느닷없이 사무실에 들렀다. 오자마자 SPSS책을 꺼내놓고 낑낑대더니 뭔가 신통치 않은지 신경질적으로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응, 그래서 거기서 어떻게 한다고? 어…그 값은 그렇게 처리하면 되는 거야?”

    벌써 한 시간째다. 요즘 오 팀장은 통계와 씨름 중이다. 전화 통화 대부분은 통계에 대한 문의 내용이다. 물론, 거는 전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박사학위를 밟는 중이다. 경영 쪽을 공부하는데 정확히 전공이 뭔지는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 통화, 시키는 일 모두 논문과 관련돼 있다. 파견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초지일관 논문에만 마음을 쏟았다. 이따금 영어번역, 문서편집 같은 일을 시킬 땐, 얼굴 거죽이 비상하게 두꺼운 신인류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파견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논문을 여기서 끝낼 작정”이라며 우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더니 정말 1년 더 있게 됐다. 요즘 바깥 분위기가 살벌해 몸을 사리기에도 좋다나 뭐라나.

    “아이고, 이게 생각보다 무겁네.”

    얼마 전 새로 오신, 인상도 마음 씀씀이도 푸근한 청소 아주머니가 가쁜 숨을 내쉬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웬일인지 손에는 물주전자가 들려 있다.

    “아주머니, 웬 주전자예요?”

    “에, 저기 팀장님 방에 화분들이 있더라고. 고것들이 목마를 것 같아서.”

    그러나 우리 팀장, 고마워하기는커녕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게 분명하다.

    “아주머니, 화초는 제 책임이에요. 화분에 물은 제가 줍니다. 앞으로도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물 여러 번 먹으면 우리 화초들 썩습니다.”

    역시나 그랬다. 화초 가꾸기는 논문 쓰기에 버금가는 실장의 중요하고도 소중한 일과다. 마른 걸레로 이파리 하나하나 얼마나 열심히 닦는지 모른다.

    오후 3시 반 즈음. 마우스로 딸깍, 몇 건의 결재를 처리한 뒤 옷을 갈아입는다. 매일 오후 두어 시간은 운동을 한다. 회사 주변 산책 코스를 걸을 때도 있고 헬스장에서 땀을 뺄 때도 있다. 그런 뒤 회사로 복귀해 바로 퇴근하거나 곧장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으로 오 팀장의 하루는 마무리된다. 짐작건대 이후 일과는 수업을 듣거나 함께 박사과정을 듣는 동료들과 스터디를 하거나 집으로 가거나 세 경우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팀원들 모두 저녁을 함께하잔다. 근처 오리집으로 갔다. 가본 적이 있는 곳인데,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오리요리 코스를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 이집 괜찮네. 좋네. 식구들 한번 데리고 와야겠구먼.”

    팀장도 이 집이 마음에 드는가 보다. 평소 건강을 끔찍이 챙겨 기름진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고 음식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스타일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군말이 없다. 혼자 신나 떠드는 팀장의 온갖 세상사와 논문 이야기로 간만의 회식은 ‘밥고문’이 되고 말았다. 그 맛있던 오리 요리도 오늘은 그냥 그랬다.

    내가 맡은 업무는 급여, 회계, 인사 등. 물론 법인카드 관리도 내가 한다. 카드는 부서 회식 때 사용하는 부서운영용 카드와 업무와 관계된 식사자리에서 쓰는 업무간담회용 카드 2개가 있다. 오 팀장이 하는 일 가운데 제일 한심한 게 또 카드와 관련돼 있다.

    짐작했겠지만, 두 카드 모두 순전히 팀장 개인용도로 쓰인다. 팀 분위기가 엉망이니 부서 회식을 할 일이 없고 업무간담회는 더욱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카드 쓰는 횟수는 1주일에 3번 이상.

    본인사용 본인기록 본인전결, 법인카드 3관왕!

    “다 처리했나?”

    오늘은 카드 기안하는 날. 기안에 대해 물을 때면 팀장은 어깨를 살짝 뒤로 젖히고 목소리를 한 톤 낮춰 위엄 있게 보이려 애쓴다.

    “네. 각각 45만원, 51만원씩 해서 총 96만원 올렸습니다.”

    카드를 쓸 때는 식사 한 끼에 1인당 5000~1만원으로 계산을 맞춰야 한다. 팀장은 늘 1인당 3만~4만원 하는 중식, 한식, 이탈리아식 음식을 먹는다. 내용과 상관없이 기안에는 ‘무명씨 외 5명, 업무간담회’라고 기록된다. 전결은 팀장 본인이 한다. 컨트롤할 상관이 없으니 천하무적이다.

    그런데 엊그제 휴일, 지난주 회식 때 갔던 오리집에서 14만원이 결제됐다. 이제 회사 근처까지 가족들이 진출했군, 혼자 생각한다. 주말 또는 공휴일 사용 영수증의 출처는 대부분 팀장 동네의 음식점. 뭐, 이건 반응을 보일 만한 일도 아니다.

    고위 공무원에게 수당 개념으로 나가는 월정직책급과 업무추진비. 이것도 수상하다. 원 근무 부처와 현재 근무 중인 파견 단체 두 곳에서 2중으로 수령한다. 그걸 숨기기 위해 예산을 올릴 때는 단체에서 받는 직책급과 업무추진비를 기타 항목으로 뺀다. 직책급만 월 55만원이니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한 공공기관은 국내 교육을 받는 간부들에게도 성과급은 물론 월정직책급과 직무수행경비를 꼬박꼬박 챙겨줬다더니, 이런 기관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

    퇴근 후 공기업에 근무하는 친구 하영이를 만났다. 하영이는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어도 시간이 아쉬운 친구다. 그네 회사에도 오 팀장과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5층은 또 한바탕 대공사를 했잖아. 행복기획관 자리에 누가 또 새로 왔거든. 부정기적으로 기획관들이 올 때마다 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야. 뭐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기자재는 또 얼마나 고급인 줄 아니? 유리로 된 칠판, 레이저 컬러프린터…쓰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이 올 때마다 최신 기자재로 갈아엎어요. 걔들이 울고 있어, 지금.”

    공무원 망신은 ‘세금충이’가 시킨다

    그곳 ‘행복기획관’이란 이름을 단 간부들은 출장도 잦다고 한다. 명목은 국제회의 참석, 박람회 관람, 해외 동향 조사 등인데,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실효가 없는 게 대부분이란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하영이는 출장수행을 도맡아 한다.

    “출장 가는 게 문제가 아냐. 간부급이라고 구색은 또 얼마나 맞춰야 하는데. 비행기는 비즈니스클래스 이상에 포터블 프린터와 A4용지까지 짐도 한 보따리 챙겨야 해. 회의 발언도 내가 직접 써드린 걸 그대로 읊지, 회의 내용 기록도 실무진이 해야 하지. 다녀와서는 출장복명이 기다리고 있고. 따로 집행해야 할 내 일도 쌓였는데, 출장 한번 다녀오면 한 달은 타격을 받아.”

    자릿수보다 사람이 많으면 보직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생긴다. 파견은 승진경쟁에서 밀려나 보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간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동떨어진 업무를 하는데다가 눈에 띄지도 않는 파견직은 물론 인기 빵점이다. 그런데 요즘같이 공무원들을 쪼는 분위기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우리 팀장만 봐도 그렇다.

    가만 보면 불필요한 공공기관과 보직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유령 조직과 보직이 줄어들 것 같진 않다. 나도 언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잘못된 동료애가 파견직을 달갑지 않지만 필요한 존재로 남겨둔다. 파견직은 대외적으로 보이지 않는 TO이니까.

    물론 파견공무원 전부가 세금을 축내는 ‘세금충이’는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겠다. 국내 파견직은 특별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획단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 같은 곳은 업무 중요도와 강도가 높을뿐더러 능력을 인정받아야 발탁될 수 있다.

    “해외주재관, 교육파견 등을 제외한 국내 파견은 공무원임용령상 파견 가능 사유에 따라 이뤄져. 국가적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해야 하거나 타 부처의 전문인력이 필요할 때 등등. 두 단체가 파견에 합의하면 행정안전부가 내용을 검토해 승인하지. 출연 연구기관, 유관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으로 해당 공무원을 파견하곤 해. 국제기구 취업시 인정되는 국제기구고용휴직제도와 기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인정되는 민간기업휴직제도 같은 것들도 있고.”

    일전에 모 부처 인사팀 직원으로 있는 동창 경원이에게 팀장 흉을 바가지로 봤더니 “다 그런 건 절대 아니다”라고 정색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그렇겠지. 그렇지만 시대가 어느 때인데. 단 한 명일지라도 이런 작태는 지구 밖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고용휴직이니 민간기업휴직이니, 이런 제도가 왜 필요한 건데? 휴직이면 그냥 휴직이지 휴직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 근무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 급여도 받으면서 말이야. 그냥 보직 못 받은 사람들 내돌리려는 거 아니야?”

    “국제기구나 민간기구에서 외연을 넓히라는 거지. 글로벌 감각, 돈 버는 법, 이런 것들….”

    “공무원 일이란 게 예산 잘 편성해서 국민에게 투자하고 그런 일들 아닌가. 유급휴직이 있다는 기업체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특히 공무원들은 한가한 파견기관이 어딘지 꿰뚫고 있을 테고. 그냥 파견을 안식년처럼 여기는 것 같아.

    휴직 상태에서 사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때에 따라선 문제의 소지가 있지. 어떤 고위 공무원은 부처 관련 기업체 신사업전략팀 비스무레한 곳에 간부로 들어갔대. 원래 연봉 2배 정도의 좋은 조건으로. 부처로 복귀한 뒤에는 기업체에 있을 때 자신이 만든 사업안을 스스로 검토하게 됐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근데 그게 말이 되냐?”

    상사가 을(乙)인데…

    “흠. 그런 케이스도 있을 수 있지. 그런데 평가가 예방기능을 하잖아. 파견공무원이든 휴직 중인 공무원이든 모두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해. 너희 팀장처럼 배째라 하는 공무원은 많지 않아. 많을 수가 없어.”

    “흥. 그 평가라는 거. 우리 단체를 봐라. 오 팀장한테 상사라곤 단체장밖에 없는데 무슨. 어찌됐든 우리 단체가 하위기관인데 평가를 엉망으로 줄 리가 없잖아. 눈 가리고 아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 친구는 고위 파견공무원 하나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1년 뒤 다른 국제기구로 근무지를 옮길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데, 밤낮 없이 방에서 테이프를 틀어놓고 언어 공부에 그렇게 열심일 수 없다고. 나는 잠시 ‘그게 왜 칭찬받을 일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곧 친구의 말을 이해했다. 그것조차 하지 않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독립적이다. 식사는 혼자 해결하고 직원들과 어울리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존재 자체를 모르는 직원도 많다. 파견지의 업무와 비전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외부의 무언가와 분투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내 직장은 업무 성격과 환경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철새처럼 오가는 상사들 때문에 의욕을 잃었다는 직원들이 있다. 내가 본 고위 파견공무원들은 경계인이 아닌 외부인이었다. 분위기 흐리고 예산을 축내는 부정적 영향으로만 기능하는 외부인.

    The late mouse gets the cheese. 일찍 나온 쥐는 쥐덫에 놓인 치즈를 먹으려다 비명횡사하고 늦게 나온 쥐가 그 치즈를 차지한다는 유머다. 낮은 곳으로 숨어든 이 ‘late mouse’들을 주목해달라. 야금야금 보이지 않게 공무원 사회를 갉아먹는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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