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국회에서는 생소한 성격의 두 그룹이 여권 권력투쟁의 핵으로 자리 잡게 된다. ‘대선주자 이명박 캠프’ 출신 및 ‘서울시청 출신’으로 구성된 친이 전위대 ‘안국포럼 그룹’과, 공천 과정에서 거의 죽다 부활하게 되어 박근혜 전 대표와 이젠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가 된 한나라당 내 ‘친박 그룹’이 그들이다. 두 의원 그룹은 계보정치를 새로이 촉발시킬 수 있는 등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다.
2007년 1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 대선캠프 사무실로 활용된 안국포럼(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박의원 30여 명이 1월31일 대책회의를 위해 국회도서관 회의실로 들어오고 있다(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 본선을 거치며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4·9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 출마를 포기한 한 중진 의원의 분석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은 청와대 및 내각 인사 파동,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으로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한나라당과 텃밭인 영남의 지원사격을 거의 못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6월부터 18대 국회가 시작되면 이명박 정부에도 새로운 추동력이 생겨 지금보다는 훨씬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신진기예’에 거는 MB의 기대
이 추동력은 한나라당이 전체 의석 299석의 과반을 넘는 153석을 차지한 만큼 17대 국회 막바지 때와는 달리 새로 구성될 국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란 산술적 구도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새 국회에 포진할 ‘친(親)이명박’ 계열 의원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MB이즘’으로 무장한 ‘친이’ 신진기예들이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하나로 뭉쳐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 보호하면서 새 정부 이념에 맞는 정책을 내놓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18대 국회에 진출한 한나라당 소속 153명 가운데 ‘친이’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은 모두 107명이다. 전체의 70%다. 이 정도면 한나라당을 장악해 이 대통령에게 충분히 힘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당 안팎에 포진한 ‘친박’ 의원들 때문이다. 지금 정치상황에서 보면 ‘친박’은 새 국회가 개원하더라도 사사건건 ‘친이’를 중심으로 한 여권 주류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18대 국회의 ‘친박’ 계열 한나라당 소속 의원은 5월13일 현재 박 전 대표를 포함해 33명이다. 당장은 수적으로 ‘친이’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 밖의 ‘친박’이 있다. ‘친박연대’ 소속 의원이 14명, ‘친박’ 무소속 의원이 12명이다. 당 안팎의 ‘친박’을 모두 합치면 59명에 달한다. 주요 입법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고도 남는다. 박 전 대표를 향한 이들의 신뢰와 결속력도 상당하다.
당 밖에 있는 친박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박 전 대표는 5월11일 호주·뉴질랜드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에 대해 “5월말까지는 가부간에 결정이 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새 대표를 뽑는 7월3일 전당대회 이전 복당에 반대하는 강재섭 대표와 “복당 문제는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밝힌 이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박 전 대표는 출국 전날엔 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단독 오찬회동을 갖고 ‘친박’ 인사들의 일괄 복당을 면전에서 요구해 “개인적으로 복당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는 언질을 받은 상태다. 박 전 대표는 공항에서 “어제도 (이 대통령과 회동에서) ‘5월말까지는 결정 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거기에 대해 결론이 나면 그게 당의 공식 결정이라고 받아들이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그래야 나도 결정을 할 것 아니냐”고도 했다.
백성운, 이춘식, 정두언, 조해진, 정태근 (왼쪽부터 차례로)
“나도 결정할 것 아니냐”는 말은 두 갈래로 해석됐다. 먼저 자신이 4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친박’ 당선자 일괄 복당을 전제로 7월 전당대회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기에 일괄 복당이 불발될 경우 직접 경선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친이’ 핵심 중에서도 박 전 대표에게 당권을 맡기는 게 순리라는 의견이 있어 이것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박 전 대표의 ‘결정’이 한나라당 탈당을 포함한 또 다른 ‘중대 결심’을 의미할 수 있는 까닭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박 전 대표가 5월말로 복당 시한을 못 박은 배경도 새 국회 원내 구성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복당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든 매듭지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의 별도 원내교섭 단체 구성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스케줄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당내 33명 가운데 일부라도 데리고 당을 나가 ‘친박’만으로 새로운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정권 초기에 엄청난 힘을 갖는 적대 세력을 만들게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여권 내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친박’ 계열의 복당은 시간문제로 인식돼 있다. 심지어 당내에선 “강 대표가 체면 때문에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7월까지 복당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면 아예 강 대표 스스로 한 달 가량 먼저 조기 사퇴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는 말도 나왔다.
물론 당 밖의 ‘친박’이 일제히 복귀하더라도 원내 판도로는 ‘친이’의 절반을 조금 넘을 뿐이다. 그러나 ‘충성도’가 다르다. 현재 박 전 대표를 따르는 세력은 당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자신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데 대한 ‘보은(報恩)’ 의무감과 차기에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반면 ‘친이’ 진영은 범(汎)이명박계 개념으로 107명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당초 원내 기반이 약했던 이 대통령이 경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다양한 그룹을 껴안았고, 그들이 정권 창출에 일조를 했지만 서로 이질감이 큰 것이다. 여기다 이재오 의원의 낙선으로 구심점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또 이들은 차기 대권 경쟁이 본격화하면 다시 새로운 ‘주군’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수 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새 국회에서 한나라당 ‘친이’ 그룹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이는 세력이 있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산실(産室)인 ‘안국포럼’에서 활동하다가 국회에 입성한 소장파 참모 출신이다.
노무현 386 측근과 유사
안국포럼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퇴임 직후인 2006년 6월말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개인사무실을 내면서 만든 초기 선거캠프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안국포럼 출신들은 경선과 대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가운데 18대 국회에 입성한 인물은 모두 11명. 정두언(서울 서대문을)·이춘식(비례대표)·백성운(고양 일산 동구)·조해진(경남 밀양-창녕)·정태근(서울 성북갑)·강승규(서울 마포갑)·권택기(서울 광진갑)·김용태(서울 양천을)·김효재(서울 성북을)·김영우(경기 포천-연천)·박준선(경기 용인 기흥) 의원이다.
이 가운데 정두언 의원만 재선이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따라서 원내 경험이 없는 이들이 과연 ‘친이’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안국포럼팀은 대권 플랜을 훌륭하게 짜고 실행까지 완벽하게 마친 1등 개국공신 그룹이다. 이 대통령이 가신(家臣)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중요한 임무를 맡길 경우 비록 초선 집단이지만 경우에 따라 정풍 운동을 일으키면서 여권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안국포럼 그룹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386 참모’ 그룹과 유사한 점이 많다. 백지 상태에서 대권 플랜을 만들고 그것을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결국 정권을 창출한 것부터가 그렇다. 안국포럼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은 노 전 대통령이 386 참모에게 보낸 애정에 못하지 않다. 또 안국포럼팀의 소속감도 모두가 ‘형’ ‘동생’으로 통하던 노무현 정부 386 실세 그룹에 뒤지지 않는다. 안국포럼 사람들은 초기에 자신들의 명함에 ‘AF002’, ‘AF003’ 하는 식으로 일련번호를 매겼다. AF는 안국포럼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이고 숫자는 일종의 서열이다. 이런 단결력으로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선봉장 노릇을 했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안국포럼 멤버들이 참여정부의 386 참모 역할을 대체할 것”이란 말도 정가에 나돈다.
이혜훈, 유승민, 유정복, 이정현, 구상찬 (왼쪽부터 차례로)
특히 안국포럼 그룹은 노 전 대통령의 386 측근들보다 국회에 진출한 폭이 훨씬 넓다. 노 정부 386 참모 가운데 17대 국회에 진출한 인물은 이광재·서갑원·백원우 의원 등 소수였다. 대신 윤태영·천호선·윤후덕·정태호·양정철·김종민 전 비서관 등은 청와대에 남아 5년 내내 비서실을 장악했다. 반면 안국포럼 팀의 경우 청와대에는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과 김백준 총무비서관, 김희중 제1부속실장 정도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대부분 여의도에 입성했다.
노 정부 386 실세들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주력했다면 안국포럼 그룹은 국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박영준 비서관은 공식 정무 라인은 아니지만 수시로 ‘이심(李心)’을 원내의 옛 동료들에게 전달하면서 청와대와 안국포럼 그룹 사이의 의사소통 창구 역을 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원내에 진출한 안국포럼 그룹의 고참은 59세 동갑인 이춘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백성운 전 경기도행정부지사. 여기에 유일한 재선인 정두언 의원이 핵심 실세로 등장해 있다. 당료 출신인 이춘식 의원은 이 대통령의 ‘포항 인맥’으로, AF002 명함을 사용했다. AF001은 이 대통령의 명함이었다. 또 백성운 의원은 안국포럼 비서실장을 지냈다. 정두언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시장이던 이 대통령과 워낙 호흡을 잘 맞춰 ‘MB의 복심’으로 불렸다.
18대 국회에서 MB 친위부대 노릇을 하겠다는 안국포럼 출신들의 각오도 대단하다. 대선 당시 ‘MB의 의중’을 언론에 전달하는 일을 맡은 조해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 여부는 우리(안국포럼 출신)의 성패와 직결되는 것 아니냐”면서 “원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이 대통령이 출범 초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새 국회 출범과 함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몸을 던져야 한다는 데 모두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
▼ 안국포럼 그룹이 원내에서도 정치 결사체로서 이 대통령의 친위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 있는데.
“그런 쪽보다는 비공식 모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회 연구단체로 등록하거나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단체가 되기보다는 사안이 있을 때마다 만나는 모임이 될 듯하다.”
▼ 응집력을 키우려면 모임을 공식화하는 게 낫지 않나.
“공식화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어차피 ‘안국포럼팀’이니, ‘하이서울팀’이니 하는 내부 명칭이 있지 않나. 일부러, 의식적으로 그렇게 표방을 하면 주목받게 되고 불필요한 말도 듣게 될 것이다.”
하이서울팀+GSI
‘하이서울(Hi, Seoul)’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 캐치프레이즈였다. 서울시청에 근무하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몸을 던진 사람들은 ‘하이서울팀’이라 불렸다. 안국포럼은 하이서울팀에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제전략연구원(GSI) 멤버 일부가 더해진 형태다.
▼ 앞으로도 한나라당 내부에서 ‘친이’와 ‘친박’이 부딪치는 일이 많을 테고, 그럴 때 ‘친이’ 직계인 안국포럼 출신들이 전위대 노릇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사안에 따라서 (안국포럼 그룹이 ‘친박’과) 대치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중도적 입장을 보이면서 박 전 대표 측과의 이견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91년 4월6일 박철언 당시 체육청소년부 장관(맨 오른쪽)이 민자당 최대 사조직 ‘월계수회’ 포기선언을 하고 있다.
▼ 백성운 의원이 박 전 대표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
“박 전 대표든 누구든 정권 초기에는 (차기 대권) 예비주자가 당 대표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럴 때는 ‘관리형’이 적합하다.”
▼ 가령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같은 인물 말인가.
“그분 정도면 괜찮다.”
이춘식 의원은 “대통령이 ‘친이’도 없고, ‘친박’도 없다고 했는데, 그런 문제에 간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반면 박준선 의원은 “박 전 대표의 협력이 절실하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의회권력이 중요한데 손을 내밀어서라도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다. 복당이든 정책연대든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11명의 한계와 잠재력
그러나 이 같은 견해 차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한 방법상의 이견일 뿐이다. 안국포럼 그룹은 얼마든지 행동통일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관심거리는 안국포럼 그룹이 독자세력화에 나설지 여부다. 물론, 여기서 독자세력화란 한나라당 내에서 이너서클을 형성해 이 대통령 보호에 몸을 던지는 일종의 친위대를 만드는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조심스러워한다. 이춘식 의원은 “친목모임 형태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은 몰라도 정치조직으로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 세력화를 하려면 그만한 인원이 필요한데 11명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안국포럼 자체만의 독자세력화는 한계가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멤버들의 생각도 별 차이가 없다. 한 멤버는 “서로 살아온 길이 다른데, 안국포럼이 과거의 틀 안에 갇혀 세력화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대통령께 부담을 드릴 수도 있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원내 친위세력의 구축 범위를 좀 더 광범위하게 잡는다면 독자 정치세력화의 여지가 생긴다. 안국포럼팀은 총선이 끝난 뒤인 4월14일 당선자들이 모여 만찬 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그때는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선거를 치르고 처음 대면하는 자리라서 심각하게 의논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주 한잔하고 회포를 풀면서 선거 때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끝났다”고 전했다.
이후 몇 사람씩 따로 모임을 갖던 안국포럼 그룹은 18대 국회가 개원하는 시점에 다시 모여 이명박 정부 성공을 위한 각오를 다지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난상토론을 거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0일 만에 20%대로 곤두박질친 원인을 분석하고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의를 통해 안국포럼 그룹이 결속을 다지고 결의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정치권에서 하나의 정치결사체로 비쳐질 수 있다.
특히 ‘친박’ 계열의 공세가 거세질 경우 안국포럼팀이 나서서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비교적 강한 ‘친이’ 직계들을 규합해 이너서클을 구축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조해진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합류한 초·재선 의원들까지 범위가 확대될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춘식 의원이 말한 ‘11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평론가인 황태순 전 박철언 의원 보좌관은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놨다.
“20년 전 월계수회 연상”
“안국포럼 그룹이 당장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상도동계나 김대중 대통령 때의 동교동계 같은 거대한 이너서클을 형성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계보정치로 나아가는 과정을 밟을 수는 있다. 추동력이 나타나게 되면 충분하다.”
황 전 보좌관은 꼭 20년 전인 1988년 13대 국회 출범 당시 박철언 의원이 이끌던 ‘월계수회’가 처음에는 지금의 안국포럼과 같은 11명의 의원으로 시작해 나중에 60여 명의 대규모 이너서클로 자리 잡은 과정을 설명했다. 월계수회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강재섭 현 한나라당 대표도 월계수회 멤버였다.
“당시와 지금의 여권 내부 상황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지금 구주류인 ‘친박’ 세력 때문에 이 대통령의 여권 장악력이 떨어져 있듯이 그때도 전두환 전 대통령 추종 세력인 구주류로 인해 노태우 대통령은 사사건건 견제를 당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박철언 의원이 여당인 민정당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범(汎)노태우’ 그룹 규합에 나섰고, 결국 나중에는 범월계수 의원이 60여 명으로 불어나 3당 통합과 5공 청산작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20년 전과 지금은 정치상황이 다르다. 당시 정권은 여소야대 구도에 발목이 잡혀 있었지만 지금은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친박’ 세력이 이탈이라도 하면 하루아침에 여소야대로 돌아선다. 여기다 구주류의 견제를 받는 것은 똑같다. 문제는 20년 전의 박철언 전 의원과 같은 ‘리더’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서서 안국포럼 그룹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착수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다.
안국포럼 출신 한 의원은 ‘지금 당신들의 리더가 누구냐’는 물음에 “리더는 없다. 연장자는 있을지 모르지만…”이라고 했다. 이점이 월계수회와 안국포럼 그룹의 가장 큰 차이점일 수 있다. 다만 앞으로 실질적으로 이끌어 갈 것으로 주목받는 인물은 있다. 안국포럼 그룹의 유일한 재선 의원인 정두언 의원이다. 정 의원의 장점은 세력 범위가 안국포럼 그룹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특히 이재오·이방호 의원이 빠졌기 때문에 ‘친이’계 전체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는 총선 과정에서 수도권 공천자 55명을 모아 이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공천 반납을 요구하는 ‘친위 쿠데타’를 주도했다. 이 일로 이 대통령의 진노를 산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내에서 그의 위상은 더 올라갔다.
한나라당의 수도권 압승으로 ‘쿠데타’ 가담자 55명 가운데 상당수가 당선됐고 정 의원은 이들을 ‘생육신’으로 부르면서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정 의원으로선 이들을 안국포럼 그룹에 ‘플러스알파’로 추가하는 1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다만 이 부의장을 비롯한 친이 원로그룹과의 관계 등으로 안국포럼 그룹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이춘식·백성운 의원도 ‘리더’로 떠오를 수 있으나 원내 경험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MB당’, ‘수도권당’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뒤 여러 가지 외부 악재까지 겹쳐 역대 정권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집권 초반 인기 급락 현상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8대 국회가 개원했다. 17대 국회와는 달리 여대야소로 출발한 만큼 국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친박’ 세력이 여권 내부에서 이 대통령을 포위하고 있는 구도가 이 대통령에겐 부담일 것이다. 친위부대인 안국포럼 그룹이 돌파구를 마련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렇다면 안국포럼팀을 주축으로 한 ‘친이’ 계열을 상대로 당의 헤게모니 다툼에 본격 나설 ‘친박 그룹’의 역학구도는 어떨까. 당 밖의 ‘친박’ 인사 복당이 성사됐을 경우와 당분간 현 상태로 당내 ‘친박’으로만 꾸려질 경우를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친박 복당 문제와 상관없이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경선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친박이 복당하면 당 대표 경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니 이 경우 불출마는 당연하다. 복당이 불발된 상태에서 당에 남아 있더라도 당권에 도전하기는 어렵다. 당내 ‘친박’ 33인으로는 승산이 희박하다. 이 경우 ‘친이’의 전략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박 전 대표의 성격상 그렇게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선그룹+이정현·구상찬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5월10일 청와대 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당의 구심점이 돼달라”며 사실상 대표직을 제의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측은 “대표직 제의 자체가 없었다”면서 “뒤통수를 맞았다”고 반박한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불신만 쌓여가는 모양새다.
박 전 대표가 빠지면 당권에 도전할 만한 중량감 있는 ‘친박’ 인사는 당내에서 찾기 어렵다. 4선 김영선 의원과 3선 김성조·김학송·허태열·정갑윤·서병수 의원이 있지만 이들 중 한 명이 박 전 대표를 대리해서 대표경선 주자로 나서는 기류는 없다. 다만 일부가 최고위원직, 나머지는 국회 상임위원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때 박 전 대표가 유일하게 대전 선거사무실로 지원 방문한 강창희 전 의원이 6선고지에 올랐다면 ‘친박’ 진영을 대표해 당권에 도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친박 그룹의 선봉장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재선 그룹이다. 그중에서도 유승민·이혜훈·유정복 의원은 ‘골수 박근혜 맨’이다. 이성헌 의원은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 친박 무소속연대의 김무성 의원과 같은 옛 민주계 출신으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당 안팎의 ‘친박’을 오가며 연결고리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박 전 대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저돌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전투력도 갖춰 당내 친위대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초선의 이정현·구상찬 의원 등이 박 전 대표의 보루가 된다.
당 밖의 ‘친박’이 대거 복당할 경우 한나라당 내에서 박 전 대표 진영은 몸집이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정치적 파워가 커진다. 6선의 서청원·홍사덕, 4선의 김무성·박종근·이해봉·이경재, 3선의 이인기 의원 등이 복귀하면 일단 선수(選數)에서 ‘친이’는 위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다 박풍(朴風)에 힘입어 가까스로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송영선·김노식·김태환·유기준·한선교·최구식 의원까지 가세하면 친박 그룹의 규모, 중량감, 충성심은 안국포럼 그룹을 중심으로 한 ‘친이 진영’에 결코 뒤지지 않게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18대 국회 여권 내부에서 그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며 좋든 싫든 ‘한 지붕 공생관계’에 접어든 안국포럼 그룹과 친박 그룹은 ‘구태 계보 정치’로의 회귀인가, 아니면 ‘당내 이종교배’의 진화인가. 이에 대한 평가는 향후 이들이 구체적 정치 현안과 입법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친이명박 진영에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저조한 지지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 레임덕이 가시화하고 친이 진영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경우 안국포럼 그룹의 결속력은 느슨해지고 친이 진영은 차기 대선 주자군으로 개별 흡수되는 분열-와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나라당을 이명박당으로 만들겠다는 원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한나라당 밖 친박 의원의 일괄 복당이 무산되고 박근혜 전 대표가 마침내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카드를 꺼낼 경우 친박 그룹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내맡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나라당 복당도, 한나라당 탈당도 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어정쩡한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도 친박그룹에는 위기다. 한나라당 안팎으로 친박그룹이 포진해 있는 현상에 대해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명분을 제시하지 못하면 친박그룹은 정국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이 진영과 친박 진영으로의 분화가 여권 내부의 건전한 비판 촉발을 통한 정당 경쟁력의 강화로 이어지면 이는 양 진영에 모두 윈-윈이 된다. 일사불란하게 컨트롤되는 거수기 여당보다는 자기들끼리 요란하게 싸우면서 협력하는 여당이 국민에게는 더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반면 타협의 실종, 오기와 발목잡기, 대치와 분열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경우 두 진영을 포함한 한나라당 전체에 대한 회의감이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