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손기정과 존 켈리가 우정 나누던 ‘성지(聖地)’ “심장이 터져도, 힘줄이 끊어져도 Fun Run!”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입력2008-06-10 13:5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선수들이 올림픽 마라톤 정신에 감동, “보스턴에서도 대회를 열자”고 제안하면서 이듬해인 1897년 시작됐다. 마라톤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서윤복(1947년), 함기용(1950년), 이봉주(2001년) 등 한국인 우승자를 3명이나 배출했다. 이 ‘명품 대회’는 올해로 112회를 맞았다. 지난 4월21일 열린 이번 대회에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가 참가했다. 고 기자는 지난해 5월19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열린 제2회 언론인 마라톤 대회에서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젊은 참가자들을 물리치고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마라톤 애호가.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그것은 성지를 향한 거대한 순례 행렬이었다. 장엄한 제의(祭儀)이자 화려한 퍼포먼스였다. 순례자들은 심장이 터질 듯한, 다리 힘줄이 끊어질 듯한 고행을 겪으면서도 정신은 오히려 영롱해지는 체험을 한다. 묘약을 먹은 것처럼….

    지난 4월21일 제112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린 미국 보스턴 교외 홉킨턴 마을. 스타트 라인에 선 참가자들은 메카를 찾은 순례자처럼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산티아고 순례 도로에 선 성직자의 얼굴도 이렇지 않을까. 인도를 향해 구도에 나서던 현장법사도 이날 아침의 마라토너들처럼 결연한 심경이었으리라. 니르바나를 향한 동경(憧憬)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마라톤이 아니고 무엇이랴.

    필자는 ‘8634’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출발지역에 들어갔다. 2만5000여 명의 참가자는 기록 순으로 매겨진 번호표를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로부터 받았다. 1번은 2007년 우승자인 케냐의 로버트 체루이요트(30) 선수다. 전문 선수인 ‘엘리트’들은 스타트라인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일반인 참가자인 ‘마스터스’들은 엘리트 선수 뒤편에 기록 순서대로 마련된 구역에 섰다. 42.195㎞의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달리는 ‘서브(sub) 3’ 러너들의 번호표 숫자는 대체로 1200번 이하다. 필자는 2007년 3월18일 서울에서 열린 동아마라톤 참가 기록증(3시간20분25초)을 조직위에 제출해 번호를 받았다. 필자처럼 8000번대 번호 참가자들은 대체로 3시간20분 안팎의 기록을 가졌다. 번호만으로 주위 참가자들의 기량을 판별할 수 있다.

    번호표대로 1000명씩 출발구역을 정했다. 8000번대 참가자들은 7000번대 뒤에, 9000번대 앞에 배치됐다. 구역마다 로프를 쳐서 다른 구역 번호표 참가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비슷한 실력의 참가자들끼리 출발함으로써 혼란을 막기 위한 조처다. 기량이 앞선 러너들이 먼저 출발해야 전체 흐름이 원활해진다. 속도가 빠른 달림이가 느린 사람들을 앞지르려 하면 충돌할 우려가 있어서다. 구역을 구분하는 로프는 출발 직전에 치워진다.

    40세 남자 기준기록 3시간20분



    보스턴 대회에 참가하려면 풀코스 기록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꽤 잘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스터스들은 보스턴 대회 참가 기준기록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 물론 나이별, 남녀별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40~44세 남자 3시간20분, 여자 3시간50분 △45~49세 남자 3시간30분, 여자 4시간 △50~54세 남자 3시간35분, 여자 4시간5분 등이다.

    오전 10시 정각에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한다. 출발에 앞서 간단한 의식이 진행됐다. 이날은 ‘애국의 날’이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영국 청교도가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건너와 건설했다. 1775년 4월19일 영국군이 보스턴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보스턴 시민들은 무기를 들고 결연히 맞섰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날을 기념해 매사추세츠 주와 메인 주는 매년 4월 셋째 월요일을 ‘애국의 날’로 선포, 공휴일로 삼는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린다.

    사회자가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 발언을 했다.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애국 군인들을 추모한다”고 말한 데 이어 여자 가수가 미국 국가를 불렀다. 미국 국가의 가사는 1814년 프랜시스 스콧 키 변호사가 영국군과 전투가 치러진 매킨리 요새를 바라보며 지은 ‘매킨리 요새의 방어’라는 시에서 비롯됐다. “오 그대는 보이는가 말하라(Oh say can you see), 새벽 여명의 빛을…. 오 말하라 성조기는 아직 저기 휘날리는구나”라고 시작하는 이 자작시를 키 변호사는 처남에게 건네줬다. 그 처남이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천국의 아나크레온(Anacreon in Heaven)’이라는 대중가요 멜로디에 이 노랫말을 붙여 전파했다. 이 대중가요는 원래 아나크레온이라는 친목단체가 파티에서 술을 마실 때 부르던 권주가였다.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제112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고승철 기자.

    미국 국가가 불려지자 그 장중한 멜로디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가사 때문인지 바로 옆에 선 20대 여성은 감격에 겨워 코를 훌쩍거린다. 언뜻 보니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그녀 옆에 선, 키가 껑충 크고 말끔하게 머리를 다듬은 30대 남자는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기자의 귓전에는 안익태 선생 작곡의 애국가 선율이 맴돈다. 뇌리에 한국의 순국선열들이 떠오른다. 마침 바로 길 왼쪽에 한국인 교민들이 운영하는 보스턴 장로교회 건물이 보인다. 한글 간판이 애국심을 자극한다. 마라톤 대회이니만큼 한국을 빛낸 마라톤 선수들의 모습이 살아난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슬픈 금메달’의 주인공 손기정(1912~2002) 선생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61년 전인 1947년 4월19일, 이곳 보스턴 대회의 스타트 라인 부근에 서 있는 손기정의 모습이 환영(幻影)처럼 나타난다….

    손기정과 존 켈리의 우정

    손기정과 보스턴 마라톤. 무슨 인연이 있을까. 먼저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1936년 베를린올림픽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뛴 그는 당시로서는 ‘마(魔)의 2시간30분 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손기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운동화를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 트랙을 빠져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18위로 들어온 미국 대표선수 존 켈리는 손기정의 손에 들린 운동화를 유심히 살폈다. 무척 가벼워 보였다. 존 켈리는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 손기정의 신발과 무게를 비교했더니 짐작대로 미국산 운동화가 훨씬 무거웠다. 그는 손기정에게 우승을 축하하며 “이 신발을 내게 줄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이들은 경기 전에 코스를 답사하다가 만나 서로 호감을 갖게 돼 서너 번 함께 달리며 연습한 적이 있었다. 천천히 달리며 연습할 때 존 켈리는 키 163㎝의 손기정에게 “귀하는 체구는 작지만 아주 강인하게 생겼다”고 찬사를 던졌다. 손기정이 당시 비공인 세계최고기록(2시간26분14초) 보유자라는 사실도 알았다. 존 켈리 자신도 1935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32분7초의 호기록으로 우승한 바 있어 금메달 후보였는데 손기정과 함께 달려보니 자신의 기량이 약간 모자란 듯했다. 동갑이라는 점이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했다. 손기정은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 존 켈리에게 흔쾌히 운동화를 선사했다. 존 켈리가 신어보니 맞았다. 키는 손기정보다 약간 컸지만 발 크기는 같았다. 손기정의 신발은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이 구분돼 있었고 가벼웠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올림픽이 끝나고 각자가 귀국한 뒤에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유한다. 손기정은 존 켈리에게 신발을 두 켤레 더 보내줬다. 존 켈리는 손기정에게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라고 4번이나 편지를 보냈다. 존 켈리는 보스턴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으며 1945년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손기정과 존 켈리의 오랜 우정에 관한 비화(秘話)는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양종구 기자가 2004년 4월 보스턴 대회를 취재하러 갔다가 그를 단독 인터뷰하면서 확인됐다. 그때 존 켈리 옹은 “손기정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Me Korean, not Japanese)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하면서 “2년 전 손기정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슬펐다”고 말했다. 존 켈리 옹은 이 인터뷰 직후 별세했다.

    1947년 2월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는 한국 선수단이 제51회 대회에 참가해달라고 초청전문을 보냈다. 존 켈리가 손기정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조직위원회에 건의한 결과였다. 당시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직후여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미국 군정이 실시될 때였으므로 해외여행을 하려면 군정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미국 달러는 금쪽처럼 귀했다.

    남승룡, 서윤복의 ‘된장찌개 파워’

    한국선수단은 감독 손기정, 선수 남승룡·서윤복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1947년 4월3일 미국 공군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복 이후 한국대표단으로서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순간이었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일본 공군기지,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을 경유해 4월8일 천신만고 끝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나이·직업·기량 등이 다양한 마라톤 애호가들이 ‘꿈의 코스’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공항에는 기자가 여럿 나와 한국선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존 켈리가 한국선수단에는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이 있다고 신문사에 알렸기 때문이다. 손기정과 존 켈리는 11년 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은 반가워 얼싸안았다. 존 켈리는 남승룡에게도 반가움을 나타냈다. 베를린올림픽 때 자신을 추월해 날쌘 경주마처럼 달려나가던 남승룡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1911년생인 남승룡은 손기정 감독보다 한 살이 많았다. 36세 노장 선수로 참가한 것. 존 켈리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참가했다. 그의 눈에는 1923년생인 24세 청년 서윤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체구는 왜소하지만 몸매가 탄탄해 보였다. 한국선수들은 호텔에서 며칠 묵다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보스턴 교민 백남용씨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된장찌개를 먹고 나니 힘이 솟았다. 자동차를 타고 코스를 둘러보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난코스였다. 첫 5㎞까지는 거의 내리막이었다. 이때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면 오버 페이스하기 십상이었다. 손기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32㎞ 지점에 나타나는 오르막을 승부처로 삼는 작전을 짰다.

    족패천하(足覇天下)

    드디어 대회일인 4월19일 정오, 남승룡과 서윤복은 나란히 출발했다. 8개국 선수 184명이 출전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우승 후보로 1946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핀란드의 피타넨, 1946년 보스턴 대회 우승자인 그리스의 키리아키데스 등을 꼽았다. 한국 선수들은 작전대로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달렸다. 선두그룹 대신 중위 그룹에 끼었다. 서윤복은 15㎞ 지점에서는 20위권에, 20㎞ 지점 이후에는 5~6명이 달리는 선두 그룹에 몸을 담았다. 우승 후보 피타넨이 맨 앞에서 달렸다. 25㎞ 지점을 넘어서자 피타넨과 서윤복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형국이 전개됐다. 28㎞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서윤복은 응원 나온 손기정을 발견했다. 손기정은 “우승해서 돌아가자”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서윤복은 응원 덕분에 스피드를 올려도 힘이 달리지 않았다.

    승부의 관건은 막판 오르막 지점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왕산, 안산을 오르내린 서윤복은 언덕 오르기에 유달리 강했다. 여기서 속도를 올리니 피타넨이 뒤처졌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달릴 때였다. 큼직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서윤복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그는 개를 걷어차다 넘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잠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사이에 피타넨이 앞질러 갔다. 이를 악물고 일어난 서윤복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이번엔 오른쪽 신발끈이 풀려 헐렁거렸다. 신발끈을 다시 맬 시간 여유가 없었다. 불편하지만 그대로 질주해 다시 피타넨을 추월했다. 마침내 결승 테이프를 끊으며 우승했다. 기록은 2시간25분39초. 귀국한 서윤복에게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라는 휘호를 써주며 축하했다.

    1950년 4월에도 손기정은 한국선수단을 이끌고 보스턴을 찾았다. 이 대회에서 함기용 선수가 2시간32분39초로 우승했다. 2위는 송길윤, 3위는 최윤칠이 차지해 한국인이 1, 2, 3위를 석권하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이뤘다. 1930년생인 함기용은 마라톤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전학을 온 꿈나무 청년이었다. 손기정의 조련을 받아 기량이 일취월장, 약관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마침내 보스턴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함기용이 귀국하자마자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면서 보스턴 우승 메달과 보스턴에서 입었던 훈련복 등을 동대문야구장 오른쪽 외야 한구석에 파묻었다. 그해 9·28 서울 수복 이후 그곳을 찾은 함기용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땅을 파서 훔쳐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함기용 옹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는 2007년 5월에 함옹을 위해 다시 메달을 제작해줬다.

    2001년 4월16일 보스턴 대회에선 이봉주 선수가 2시간9분43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94년 보스턴 대회에 참가한 바 있어 코스에는 익숙했다. 이봉주의 우승은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아프리카 선수들의 보스턴 석권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어서 현지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봉주는 이듬해인 2002년 보스턴 대회에도 참가했으나 2시간10분30초의 기록으로 5위에 그쳤다.

    달리는 첨단과학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웰슬리 여대에는 보스턴 대회 때 학교 앞 도로에 나와 응원하는 전통이 있다.

    2007년 보스턴 대회 때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몹시 추워서 참가자들이 혼났다고 한다. 올해는 쾌적한 날씨다. 출발 무렵 기온은 9℃, 하늘은 쾌청하다. 뒤편에 선 참가자들은 앞서 출발하는 엘리트 선수를 볼 수가 없다. 이럴 줄 알고 필자는 출발구역에 들어서기 전에 엘리트 선수 출발점에 가서 그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자코메티가 만든 인체 조형물처럼 몸매가 깡마르고 길쭉하다. 아쉬운 것은 엘리트 선수 출발구역에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점.

    드디어 필자가 속한 그룹도 스타트! 필자는 이날 ‘마라톤 정장’을 차려입었다. 상의는 소매 없는 싱글렛, 하의는 짧은 팬츠. 상의는 동아일보사 마라톤 동호회 ‘동동주(東同走)’의 로고가 새겨진 것을 입었다. 요즘 마라톤 경기복은 ‘스포츠 과학화’에 힘입어 땀을 빨리 증발시키는 쿨맥스 등 고기능성 섬유로 만들어진다. 신발도 첨단기술을 동원해 제작한 고급 제품이 수두룩하다. 엘리트 선수는 무게가 170~200g에 불과한 신발을 신는다. 이런 신발을 손으로 들면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가볍다.

    마스터스 참가자 중에서도 체중이 덜 나가고 기록이 ‘서브3’인 고수들은 이런 운동화를 고른다. 엘리트 선수는 신발에 따라 기록이 30초 안팎씩 차이가 난다고 하니 1~2초를 다투는 그들에게 신발 선택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아디다스, 나이키, 아식스 등 신발 메이커들은 자사 제품을 신은 선수가 우승하도록 선수 개개인의 발에 맞는 신발을 개발하느라 열을 올린다. 선수들은 스포츠 용품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제품 홍보 역할을 맡는다.

    마스터스들도 마라톤에 심취하다 보면 상하의, 신발, 양말, 모자, 마라톤 시계, 선글래스 등을 브랜드 제품으로 갖추려 애쓴다. 수십만원을 들여 고급 제품을 사 쓰면 편하게 달릴 수 있고 기록도 향상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 달림이들은 마라톤에 입문한 후 마라톤 용품 구입비 때문에 부인과 다투는 경우가 많다. 고기능성 신발은 10만~13만원에 이른다. 신발 수명이 800㎞ 정도이므로 열심히 연습하는 러너는 두세 달 만에 갈아치운다. 겉보기엔 멀쩡하므로 부인이 “신발 산 지 얼마 됐다고 또 사느냐”고 따진다. 신발장에는 운동화가 그득해진다. 어느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또 귀가 솔깃해진다. 아스팔트의 충격을 잘 흡수하는 신발이라느니, 반발력이 극대화된 고무를 사용했다느니 하는 광고를 보면 부인의 지청구를 감수하고라도 신제품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이도 적잖다.

    마라톤 용품 전문매장에 가면 신발을 고를 때도 시간이 꽤 걸린다. 여느 운동화나 구두를 살 때처럼 발 크기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고 2~3m 걸어본 뒤 구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의 아치가 높은지, 낮은지 측정하고 발두께와 걷는 습관, 달리는 자세 등을 고려해서 고른다. 이를 측정하는 장비가 마련돼 있다. 판매 직원은 족부의학을 공부하고 발 관리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다.

    보스턴 대회 참가 자격 기록
    연령대 남자 여자
    18-34 3:10 3:40
    35-39 3:15 3:45
    40-44 3:20 3:50
    45-49 3:30 4:00
    50-54 3:35 4:05
    55-59 3:45 4:15
    60-64 4:00 4:30
    65-69 4:15 4:45
    70-74 4:30 5:00
    75-79 4:45 5:15
    80 이상 5:00 5:30
    *기준 기록은 해당 기록의 59초까지 인정됨.

    즉, 43세 여성이라면 3시간50분59초까지.


    2004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연습을 시작한 필자는 마니아급은 아니어서 신발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다. 신어서 편하고 적당한 쿠션을 가진 제품을 고른다. 신발장에 수북이 쌓일 만큼 많지도 않다. 보스턴에 갈 때는 약간 낡았지만 익숙한 운동화 두 켤레를 갖고 갔다.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을 골라 신었다.

    초반 10㎞는 Fun Run!

    심호흡을 하고 스타트 라인을 향해 천천히 달려나갔다. 브라스밴드가 장쾌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고조되면서 힘이 솟는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페인트로 ‘보스턴 마라톤 스타트’라는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출발지인 홉킨턴은 미국 동부의 전형적인 전원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2차선 아스팔트 자동차 도로가 있고 좌우 양쪽에 주택, 상가, 관공서, 교회 등이 서 있다. 동네 주민들이 거의 모두 나온 듯하다. 저마다 환호하며 응원한다. 바로 옆에 주민들이 서 있기에 그들의 표정이 또렷이 보이고 목소리도 잘 들린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광장처럼 넓은 도로에서 출발하는 동아마라톤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한국으로 치면 면(面) 단위 마을에 2만 5000여 마라톤 참가자가 몰려와 좁은 길에 길게 늘어서 있다가 순차적으로 출발하는 격.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마라톤에 입문한 사람은 누구나 보스턴을 메카로 여기고 언젠가 순례할 것이라며 열병을 앓는다.

    필자는 이 길을 달렸을 서윤복, 함기용, 이봉주 선수를 떠올리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초반 5㎞ 구간은 내리막이므로 오버페이스하지 않아야 후반 레이스가 편해진다는 조언을 숱하게 들은 터라 조깅하듯 여유 있게 달렸다.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차피 난코스로 이름난 곳이니 힘들여 달려도 기자의 최고기록엔 못 미칠 것 아닌가. 마스터스 달림이가 최고기록 운운하면 마라톤 문외한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3시간대, 4시간대 기록인 마스터스가 조금 빠르면 어떻고 느리면 어떠랴.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입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스터스라 해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 4시간 안에 완주하는 데 성공한 ‘서브 4’ 주자는 목표기록을 조금 높여 3시간30분 안에 달리겠다고 다짐하게 마련이다.

    2007년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19분50초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기자는 3시간20분 벽을 깼다는 데에 보람을 느낀 바 있다. 지난 3월16일 개최된 동아마라톤에서 번호표(흔히 ‘배번’이라 불림)를 받고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 ‘A4297’이란 번호표를 가슴에 떡 붙이니 신바람이 났다. 3시간20분 이내의 기록자에겐 A로 시작하는 번호표가 주어지며 앞자리인 A그룹 지역에서 출발한다.

    마라톤에 입문할 때 개인기록 면에서는 동아마라톤 A그룹 출발, 보스턴 마라톤 기준기록 달성을 목표로 세운 바 있다. 그러니 기자는 그 목표를 이미 이룬 셈이다. 이번 대회를 한국의 달림이들에게 충실히 보고하기 위해 조그만 취재수첩과 볼펜을 허리에 차는 작은 지갑에 넣었다. 달리면서 수시로 수첩을 꺼내 기록할 심산이었다. 펀런(Fun Run)을 결심했다. 달림이 은어로는 ‘즐달(즐겁게 달리기)’이다.

    도로 주변에 나와 응원하는 주민들 중엔 유난히 어린이가 많았다. 이들은 달림이에게 줄 먹을거리를 들고 나왔다. 가장 흔한 것은 오렌지였다. 먹기 좋게 잘라 손에 들고 러너에게 내민다. 초반 5㎞ 정도까지는 목이 마르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아 어린이들의 호의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받아 먹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6㎞ 지점을 지나니 왼쪽에 애쉬랜드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목조 2~3층 단독주택이 길가에 늘어선 마을이다.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과 주차장이 있는 집이 대부분이다. 정원에는 개나리와 철쭉이 활짝 피었다. 한국보다 위도상 북쪽에 위치하므로 봄이 한국보다 한 달가량 늦게 온다. 창가에는 화분을 놓아 우아한 분위기로 집을 가꾼 곳이 많다. 이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열렬한 응원을 펼친다. 멋진 시계탑 건물이 돋보인다. 간이의자에 앉아 팔을 휘저으며 응원하는 노인들도 눈에 띈다.

    10㎞ 지점을 통과하자 프래밍험이라는 작은 도시로 접어든다. 왼편에 프래밍험 역이 보인다. 역사(驛舍) 겉에 붙은 더께로 보아 철도 초기에 지은 건물인 듯하다. 그 옆에는 BOA(Bank of America) 지점 건물이 보인다. 깨끗한 양복 차림의 부부가 모자를 벗어 흔들며 응원한다. 도로는 여전히 평탄하다. 간간이 오르막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평탄하거나 내리막이다. 연도에 늘어선 주민들의 함성은 끊이지 않는다.

    100m 17초69 속도로 풀코스 완주

    15㎞ 지점 왼편에 내틱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현대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숍이 보여 반갑다. 현대차, 기아차가 미국에서 잘 팔리기를 기원한다.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시에 세워진 현대자동차 공장이 잘 가동되는지 궁금해진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얼굴도 떠오른다. 몽고메리 시를 공장부지로 낙점할 때 ‘몽고메리’가 ‘몽구’와 비슷한 발음이어서 골랐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정몽구 회장을 인터뷰해서 직접 질문하고 싶다.

    필자는 ‘5분 페이스’로 달렸다. 1㎞ 거리를 5분에 달리는 속도를 일컫는다. 이 속도를 풀코스 내내 유지하면 3시간30분58초에 결승점을 밟는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마라톤 레이스에서 중요하다. 엘리트나 마스터스나 마찬가지다. 속도가 들쭉날쭉하면 전체 기록이 나빠진다. 엘리트 선수들은 엇비슷한 기록 보유자끼리 무리를 지어 달리며 페이스를 가늠한다. 이들은 평소에 트랙이나 도로 연습을 통해 페이스 감각을 익힌다. 400m 트랙에서 연습할 때 이들은 한 바퀴에 70초 페이스 과제가 주어지면 1~2초 오차로 꾸준히 달린다. 고수 반열에 오른 마스터스도 한 바퀴 80초 목표로 트랙을 돌면 수십 바퀴를 돌더라도 매 바퀴 기록을 거의 79초, 80초, 81초에 맞춘다. 속도감각이 몸에 밴 것이다.

    속도와 완주기록 시간을 일목요연하게 표시한 ‘페이스 차트(pace chart)’라는 표가 있다. 1 ㎞를 3분5초로 달리면 2시간10분에 결승점을 통과한다. 3분12초면 2시간15분이다. ‘서브 3’ 기록을 위해서는 4분16초를 유지해야 한다. 1㎞에 4분16초(256초)이니 100m에 25.6초인 셈이다. 그 먼 거리를 이 속도로 달리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마라톤 코스의 가파른 오르막인 ‘상심의 언덕’ 옆에 세워진 존 켈리의 동상. 왼쪽은 청년시절, 오른쪽은 노년의 모습이다.

    현재 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은 2007년 9월30일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세운 2시간4분26초. 100m를 평균 17.69초로 달린 셈이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는 40대 남성이라면 전력 질주해도 100m를 17초대에 주파하기 어렵다. 운동장에 나가서 측정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마스터스들은 목표 페이스대로 달리기 위해 때때로 페이스 차트를 손목에 붙이고 달린다. 3시간10분이 목표라면 1㎞ 4분30초, 5㎞ 22분31초, 10㎞ 44분2초, 15㎞ 1시간7분32초… 이런 식으로 5㎞ 구간 간격으로 목표 시간을 적은 작은 종이를 손목에 붙인다.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시계를 보며 지금 스피드가 빠른지 느린지 점검한다. 길옆에는 1㎞마다 거리 표지판이 붙어 있다.

    마라톤용 시계는 1㎞마다 또는 5㎞마다 일정 간격의 ‘랩(lap)’ 타임을 측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레이스를 마치고 랩 타임을 분석하면서 어느 구간에서 속도 조절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마라톤 시계에도 첨단 기술이 속속 도입되면서 진화한다. 심장 박동수를 측정하는 심박계가 붙은 고급 제품이 있다. 위치 추적장치(GPS)가 부착된 시계를 차고 달리면 위치, 달린 거리, 달리는 속도 등을 훤히 알 수 있다. 30만원이 넘는 고가 첨단 제품이 즐비하다.

    보스턴 대회에서는 거리 표시가 마일 위주로 돼 있다. ㎞ 단위의 미터법에 익숙한 한국인으로는 불편하다. 초반부에는 ㎞ 표지가 보이더니 후반부에는 마일 표지만 보인다. 42.195㎞가 26.2마일인지도 여기 와서야 알았다. 0.2마일은 385야드라고 한다. 화씨 기온을 쓰는 미국 날씨예보도 섭씨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불편하다.

    “키스 미” 외치는 웰슬리 여대생

    20㎞ 지점을 막 통과할 무렵 먼발치에서 소프라노 함성이 들려온다. 곧 웰슬리 여자대학생들이 나타날 모양이다. 미국 최고의 사립 여자대학인 웰슬리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비롯한 명사를 다수 배출한 명문학교다. 한국인으로서는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가 이곳 졸업생이다.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인 김영명씨는 어린 시절에 외국 생활을 해서 별 어려움 없이 명문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정 의원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다녀 보스턴에 몇 년 체류한 적이 있다.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도로 오른편에서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들 뒤에는 언덕에 붉은 벽돌로 지은 웰슬리 대학 캠퍼스가 보인다. 갖은 격문을 써붙인 피켓을 흔들며 환호성을 지른다. 웰슬리 여대생들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전통적인 격문 ‘오, 내게 키스해요(Oh, Kiss Me!)’가 눈에 띈다. ‘달림이들은 내 애인(Runners are my lovers)’라는 핑크빛 격문도 보인다.

    실제로 미국인 남자 몇몇은 여대생에게 달려간다. 그들의 뺨에 대학생들은 가볍게 입맞춤을 한다. 어떤 남자 러너가 다가가자 여학생 서너 명이 그를 둘러싸고 포옹한다. 여대생들 앞에는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어 밀착 포옹은 곤란하게 돼 있다. 한국인 가운데 보스턴 대회에 다녀온 남자들이 흔히 자랑하는 “키스와 포옹 세례를 수없이 받았다”는 무용담은 다소 과장된 것임을 알았다. 보스턴 대회 때 학생 대부분은 기숙사에서 나와 응원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여대생들 앞이라고 무리하게 달리다간 오버페이스하기 쉽다.

    웰슬리 여대생들의 응원 목소리가 사라지자 하프 지점(21.0975㎞)이 나타난다. 길 양쪽, 건물이 서 있지 않은 곳엔 메타세콰이어, 은사시나무, 히말라야시다 등 높다란 가로수들이 서 있다. 삼림 속 터널을 달리는 기분이다. 30㎞ 지점이 가까워오자 뉴튼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왼쪽에 우드랜드 컨트리 클럽이라는 골프장이 보인다. 골프장의 녹색 잔디와 파란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오른쪽엔 뉴튼 소방서가 자리 잡았다. 덩치가 큰 소방차 여러 대가 보인다.

    도로 주변에는 여전히 마을 주민들이 끊임없이 나와 응원 구호를 외친다. 주민들이 들고 나온 먹을거리 종류가 다양해진다. 오렌지, 바나나, 물, 초콜릿, 사탕, 쿠키 등을 나눠주기 위해 손을 뻗는다. 특히 어린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든 초콜릿을 받아가면 그 자체가 몹시 기쁜 모양이다. 이렇게 주민들이 주는 먹을거리가 많으니 대회 주최 측에서는 물, 스포츠 음료, 파워젤만 제공한다.

    물과 스포츠 음료를 담은 컵은 용량이 한국 마라톤 대회에서 주는 것보다 3배가량 큰 것이다. 한국에서는 작은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한다. 끈적끈적한 파워젤은 고농축 당질 제재로 달콤한 맛이 난다. 7~8㎝ 길이의 비닐봉지에 들었으며 상단부를 뜯어 빨아먹도록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마라톤 대회장 입구의 행상들이 3개 5000원에 판다. 보스턴에서는 30㎞ 지점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파워젤을 먹으면 허기가 사라지고 에너지가 보충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20㎞ 이후에는 5㎞ 지점마다 바나나, 초코파이 등이 주로 제공된다.

    ‘정봉수 신화’의 허실

    인체에서 글리코겐은 자동차 연료와 같다. 기름이 떨어지면 차가 멈추는 것처럼 인체도 글리코겐이 고갈되면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밥을 먹으면 소화 과정을 거쳐 글리코겐으로 저장된다. 저장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 연료 탱크에도 기름이 무한정 들어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30㎞ 정도 달리면 대체로 인체에는 글리코겐이 거의 바닥이 난다. 그래서 마라톤에서 30㎞를 넘으면 데드 포인트, 즉 사점(死點)에 직면한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혈당치도 뚝 떨어진다.

    이때부터는 체내에 축적된 지방이 글리코겐 대신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글리코겐이 쉽게 불이 붙는 고급 휘발유와 같다면 지방은 묵직한 중유처럼 느리게 탄다.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면 인체라는 엔진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아 그만큼 고통을 느낀다. 엘리트 선수는 지방을 에너지로 쉽게 활용하도록 단련됐거나 선천적으로 그런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글리코겐이 고갈될 때 파워젤을 먹으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파워젤의 당분이 금세 글리코겐으로 바뀐다는 과학적 근거는 확실치 않다. 심리적 효과에다 혈당치를 높여주는 효능이 있는 정도로 알려졌다.

    글리코겐 저장 용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른바 ‘식이요법’을 통해서다. 다음 일요일에 경기가 열린다면 월, 화, 수요일 사흘엔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목, 금, 토요일 사흘 동안은 그 반대로 탄수화물을 주로 먹는다. 첫 사흘간 고기와 물만 먹으며 운동하면 몸에 든 글리코겐이 거의 소진된다. 글리코겐을 고갈시킨 뒤 나머지 사흘간 밥, 빵, 국수 등 탄수화물을 집중적으로 먹으면 글리코겐이 빵빵하게 저장된다는 원리다. 휴대전화 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킨 뒤 충전하면 충전량이 극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미국에서 1970년대에 알려진 인체의 보상효과(compensation effect)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탄수화물이 모자라면 인체는 그것을 더욱 강렬하게 요구하는 상태로 바뀌며, 그때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저장을 극대화한다는 원리다.

    한국에서는 고(故) 정봉수 감독이 일본에서 배워온 식이요법을 이봉주 선수 등에게 적용해 재미를 봤다. 언젠가 TV 다큐멘터리에서 이봉주 선수의 식이요법 과정이 방영됐다. 억지로 고기를 먹는 장면을 보니 안쓰러웠다. 온돌방에서 선수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전기 그릴판에서 구운 쇠고기를 소금도 없이 씹어먹는 것이었다. 이봉주 선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처음 한두 끼는 몰라도 사흘 동안 고기와 물만 먹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봉주 선수는 “고기가 생고무를 씹는 것처럼 딱딱하고, 마라톤 연습보다 식이요법이 더 힘들다”고 고백했다. 이런 극단적인 식이요법은 다분히 ‘정봉수 신화’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식이요법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줬는지 여부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좋은 기록이 나오니 식이요법이 반복된 것이다.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모두 높이 평가돼서는 곤란하다. 단백질 위주라고 쇠고기만 먹으란 법은 없다. 닭고기, 생선, 달걀 등을 맛있게 조리해서 먹으면 되지 않나. 소금기 없이 먹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 고통스러운 식사 때문에 쌓일 정신적 스트레스는 신체 컨디션에 악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 아마 정봉수 감독은 선수들의 느슨한 정신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인내심 수련 차원에서 무염 고기를 먹인 게 아닐까. 한두 번으로 그쳤어야 했다.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정봉수 신화’가 국내 스포츠 학자나 당시 언론으로부터 비판받는 것을 듣지 못했다. 무관심 또는 무지의 탓이 아닌가 한다. 마치 정봉수 감독이 이를 창안한 것처럼 보도하는가 하면 그 과정을 흥미 위주로 다뤘다. 선수들의 건강을 점검하는 주치의는 그런 이상한 식이요법에 대해 왜 방관했는지 묻고 싶다. 미국, 일본의 정상급 선수 중에도 식이요법을 채택하는 선수가 더러 있는데 정봉수 스타일은 아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식이요법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 선수들은 정 감독의 폭력적인 제재가 두려워 고기를 억지로 먹긴 했으나 소화를 시키지 못해 화장실에서 토했다고 한다. 김이용 선수는 그것 때문에 위염을 얻어 선수생활을 중단할 위기를 겪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고비,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

    파워젤을 하나 먹고 나니 힘이 솟는다. 이제 곧 가파른 오르막인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이 나타날 지점이다. 그 길 옆에 존 켈리의 동상이 서 있다. 매사추세츠 주 출신인 그는 23세 때 보스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 84세 노인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대회에 참가했다. 61회 참가에 58회 완주, 2회 우승, 7회 준우승의 위업을 이룬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이다. 동상은 특이하게도 두 사람이 달리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왼쪽 동상은 그의 청년 시절의 모습이고, 오른쪽 동상은 노년의 모습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는 마라톤을 통해 불굴의 정신을 보임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상심의 언덕’은 한국에서는 한때 ‘심장파열 언덕’이라 잘못 번역됐다. 심장이 파열될 듯이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언덕이라는 뉘앙스로 들린다. 이름의 유래는 1936년 보스턴 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대회 우승자인 존 켈리는 32㎞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이 언덕에서 엘리슨 브라운에게 추월당해 낙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브라운이 우승했고 켈리는 5위로 골인했다. ‘보스턴글로브’ 신문은 ‘켈리를 상심시키다(Breaking Kelly´s heart)’란 기사를 보도했고 그때부터 이 언덕에 그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달려보니 가파르긴 했다. 500m가량 오르막이 계속되긴 했으나 심장이 터질 만큼의 심한 비탈은 아니었다. 상심이라는 말은 요즘 잘 쓰이지 않으므로 ‘실망의 언덕’ 정도로 번역하면 좋겠다.

    이 언덕을 넘어서니 오른편에 명문 보스턴 칼리지의 고색창연한 캠퍼스 건물이 나타난다. 이제 나머지 10㎞ 거리는 완만한 내리막이고 보스턴 시내로 접어든다. 도로 폭이 넓어지면서 응원 인파가 늘어났다. 시내의 주요 간선도로에 접어드니 시민들의 환호성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다. 북, 심벌즈 등 타악기를 들고 나와 마구 두드리는 중년 남자가 있는가 하면 전자 기타를 치는 젊은이들이 곳곳에 보인다. 실용음악으로 유명한 버클리 음대가 보스턴에 있어 그곳 재학생들이 응원하러 나오지 않았을까.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30분이 넘었다. 3시간30분 이상을 달린 셈이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 응원 참여 주민이 모두 60만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장됐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풀코스 거의 전 구간에 늘어선 주민들의 행렬로 봐서 사실임을 확인했다.

    드디어 피니시 라인! 3시간37분29초

    대로에 접어들었다. 저 멀리 피니시 라인이 보인다. 아무리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즐달’ 모드로 천천히 달렸다지만 한낮이 되니 기온이 오르면서 땀을 제법 흘려 피로가 엄습했다. 묵직한 다리를 부지런히 놀려 양팔을 번쩍 들며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드디어 완주. 3시간37분29초,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기록이다. 중간 중간에 수첩을 꺼내 취재 내용을 메모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자원 봉사하러 온 70대 여성이 활짝 웃으며 완주 기념메달을 목에 걸어준다. 체온 보호용 비닐을 씌워주는 자원봉사요원 노인도 나타났다. 바나나, 초코바, 베이글, 사과 등이 든 간식 봉지도 건네준다.

    출발점에서 맡긴 짐 가방을 도착점에서 찾아 옷을 갈아입었다.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고…. 필자는 풀코스를 20회 가까이 완주했다. 10회 이상 넘어가니 몇 번 완주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다수 달림이들은 “첫 완주 직후에 눈물이 왈칵 났다”고 고백한다. 필자는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무덤덤했다.

    보스턴 대회이든, 동네 강둑이든 달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굳이 보스턴 마라톤에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하는 달림이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명품 대회는 그만큼 브랜드 가치를 간직한 것을 어찌하랴. 인간은 어차피 상징적 동물 아닌가. 마라톤에서의 전통, 명문, 권위 등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보스턴’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라톤에 입문한 사람은 대부분이 보스턴을 메카로 여기고 언젠가는 순례해야겠다며 열병을 앓는다.

    보스턴 대회에 참가하려면 조직위원회에 인터넷으로 신청하거나 국내 대행사에 맡기면 된다. 필자는 대행업체인 마라톤여행 전문업체를 통해 신청했다. 기준기록에 도달하는 완주증명서, 여권, 미국 입국 비자 등을 팩스로 보냈고 패키지 여행경비와 마라톤 참가비를 송금했다. 전문업체로는 여행춘추와 에스앤비 두 업체가 영업 중이다.

    지난 4월18일 금요일 밤에 보스턴 숙소에 도착하니 ‘한국 마라톤 참가단 환영’이라는 한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월요일 오전에 대회가 열리므로 토, 일요일 이틀 동안 시차 적응 시간이 있다. 토요일 아침, 일요일 아침엔 한국 참가단 60여 명이 호텔 마당에 모여 체조를 하고 인근 호숫가 도로를 1시간가량 조깅하며 몸을 풀었다. 보스턴 시내에 가서 번호표를 받거나 마라톤 코스를 버스로 둘러보는 시간도 있었다. 짬을 내 하버드대, MIT대 등 명문 학교 캠퍼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자녀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는데 자녀들은 명문대 방문이 여행의 주목적인 듯했다. 호텔 외부에서의 식사는 대체로 한식당에서 해결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40대, 50대 연령층이라 여행사측은 양식보다는 한식을 선택했다.

    대회 당일 새벽, 미국 호텔 안에서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 벌어졌다. “한국인은 찰밥을 든든하게 먹어야 잘 달린다”는 속설에 부응하기 위해 여행사 측에서 새벽 5시에 찰밥과 나물 반찬이 든 도시락을 나눠준 것이다. 국물로 마시라고 작은 컵라면도 하나씩 곁들여서. 호텔 방에서 정갈하게 마련된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마신 다음 버스를 타고 오전 7시에 출발지점으로 이동했다. 미국 현지인보다 편하게 가는 셈이다. 홉킨턴 중학교 운동장에 내려 한국 참가단끼리 기념촬영을 했다. 전북 임실에서 온 임실마라톤 동호회 회원 12명은 ‘임실 치즈’를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사진을 찍는다.

    넓은 잔디밭에는 길이 100m, 폭 25m에 이르는 초대형 천막이 설치됐다. 천막 안팎에서 참가자들은 저마다 출발 준비를 했다.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베이글, 바나나, 에너지바, 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하는가 하면 느긋이 누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사람도 보인다. 슬리핑 백에서 잠자는 젊은이도 간혹 있다. 아마 여기서 밤을 새웠나 보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짐을 버스에 맡긴다. 이 버스는 도착점에 미리 가 있게 된다.

    이국땅에서 벌인 완주 축하연

    대회가 끝난 후 한국 참가단은 완주 기념 자축연을 벌였다. 완주의 감격에 젖은 일부 참가자들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한국적 풍경을 연출했다. 그래도 마라톤이 몸에 밴 이들이어서 과음은 하지 않는다. 각자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나이와 직업, 마라톤 기량이 다양했다. 최연소자는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무하는 이병도(24)씨, 최연장자는 서울 정릉동에 거주하는 박종언(73)씨였다. 직업은 변호사, 의사, 대학교수, 법무사 등 전문직에서부터 공무원, 회사원, 농업, 자영업 등 여러 직종 종사자가 망라됐다.

    경남 통영에서 온 외과의사 강성봉(49)씨는 “보스턴에 오기 위해 병원 일을 마치고 밤차로 상경했고 귀국길에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밤차로 통영에 내려가 이튿날부터 근무해야 한다”며 보스턴 대회 참가에 쏟는 열정을 나타냈다. 대회 기간에 회갑을 맞은 정면기(60)씨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와 완주기념 축하연 자리에서 케이크를 자르며 조촐한 회갑연을 겸했다.

    대회를 마친 이튿날인 4월22일 아침, 호텔 로비에는 ‘보스턴글로브’ 신문이 수북이 쌓였다. 4개 섹션 가운데 2개 섹션이 마라톤 기사로 채워졌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