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류세 10% 인하, 고유가와 환율 상승에 효과 반감
- 주유소협회, 오피넷 도입에 “마른걸레 짜기” 반발
- 복수 폴 제도 유명무실해진 속사정은?
- 첨가제, 자사 식별제만 넣고 타사 제품 섞어 파는 정유사들
- 복수 폴 도입, 수입사 시장점유율 높아지자 정유사 이익 급감
- 유류업계 “공급자(정유사) 경쟁시켜야 기름값 낮출 수 있다”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오피넷) 시행(4월15일)을 며칠 앞두고 기자와 만난 주유소업계 관계자들은 하소연부터 늘어놨다. 한 인사는 “극단적으로 말해 주유소 상표 표시 제도(폴사인)만 폐지해도 기름값을 당장 20%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폴사인 제도가 뭐기에 그 제도만 없애면 기름값을 20%나 낮출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피넷이 소매업 간 경쟁을 촉발하기 위한 제도라면, 폴사인 제도를 폐지하면 공급사(정유사)들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연간 수조원씩 이익을 내는 정유사들은 놔두고 소매상에 불과한 우리(주유소)만 경쟁시켜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동석한 다른 관계자가 말을 받았다.
“한번 계약하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폴사인 제도는 현대판 노예계약이나 다름없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지난 3월10일, 유류세를 10% 인하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서민 고통이 가중된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다. 그러나 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환율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유류세 인하 효과는 곧 상쇄됐다.
유류세 인하 당시 잠시 내린 기름값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고, 5월 들어 서울 시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ℓ당 1800원을 넘어 190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1조2000억원의 세수 감소까지 감수하면서 단행한 유류세 인하 조치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류세 인하의 추억
정부는 유류세를 낮춘 데 이어 추가로 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4월15일부터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 오피넷(www. opinet.co.kr)을 도입했다. 전국 주유소별 판매가격을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주유소 간 가격경쟁을 부추겨 유가를 낮추겠다는 취지에서다.
4월15일 오피넷 도입 첫날엔 한 푼이라도 기름값을 아끼려는 소비자들이 홈페이지에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서버가 다운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피넷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제도 도입 초기의 열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유류 소비자가 오피넷을 통해 전국 모든 주유소 가격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값싼 주유소를 찾아가 기름을 넣으려면 더 값비싼 기름을 소비해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통구조 개선이 더 시급
더욱이 오피넷에 나타난 값싼 주유소에도 함정은 있다. 오피넷에 공개된 주유소의 기름값은 제휴 신용카드(이른바 보너스카드)로 결제했을 때의 주유금액이다. 제휴 신용카드 소지자가 아니면 ‘값싼 기름’을 넣지 못하는 것이다.
오피넷 도입을 계기로 무한경쟁체제로 내몰린 주유소 사장들의 불만은 갈수록 고조됐다. 한국주유소협회 함재덕 회장은 “마른걸레를 짜도 분수가 있지. 주유소간 가격인하 경쟁을 부추겨 기름값을 낮추겠다는 것은 적자에 허덕이는 주유소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라며 분개했다. 힘없는 소매업자인 자신들만 쥐어짠다는 볼멘소리다. 함 회장은 “기름 유통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주유소만 옥죄는 것은 유가 인하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항변했다.
정부는 유류세를 낮춘 데 이어 추가로 유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4월15일부터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 오피넷(www. opinet.co.kr)을 도입했다.
폴사인 제도는 석유제품 판매에 있어 부당한 표시·광고행위를 방지하고 소비자의 브랜드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고시로 1992년에 도입됐다. 주유소 입구에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이라고 커다랗게 씌어 있는 입간판은 주유소와 정유사 간 폴사인 계약을 통해 세워진 것들이다.
폴사인 제도는 석유류 제품의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제품 선택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양질의 석유 제품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정유사와 주유소를 수직관계로 만들어 정유사가 시장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치 주유소가 정유사의 계열사처럼 돼버렸다는 것이다.
주유소업계는 고시제도 탓에 주유소가 자유롭게 거래처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업활동마저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유소협회 한 간부는 “(정유사와) 한번 계약을 맺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며 “노예계약도 그런 노예계약이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A주유소가 B정유사와 폴사인 계약을 체결했다면, A주유소는 B정유사 이외의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지 못한다. 독점 공급 조항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폴사인 계약에 묶인 주유소는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책정한 공급가격에 기름을 납품받을 수밖에 없다.
수직 계열화의 폐단
단수 폴사인 체제에서 정유사가 공급가격으로 횡포를 부리는 폐단이 발생하자 정부는 2001년 복수 폴사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써 한 주유소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제도 도입에 발맞춰 복수 폴을 등록한 주유소 가운데 상당수는 정유사의 압력에 시달렸다. 올해로 제도 시행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전국 1만2000여 개 주유소 중 복수 폴을 사용하는 주유소는 3%대에 지나지 않는다.
주유소협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6월 기준으로 209개이던 복수상표 등록 주유소는 1년 반 뒤인 2005년 12월 171개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복수 폴을 등록했더라도 서로 다른 두 정유사를 동시에 취급하는 주유소는 전국적으로 한두 곳에 지나지 않았다. 경쟁관계에 있는 정유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 상표를 등록한 주유소는 대부분 특정 정유사 한 곳과 무상표로 운영되고 있다.
서로 다른 정유사로부터 값싼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어 주유소에 유리할 것이라는 복수 폴사인제가 이처럼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 삼호주유소 조익구 대표의 실패 사례는 복수 상표 표시 도입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지 보여준다.
2001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조 대표는 그해 9월 강남구청에 복수상표 변경 등록을 했다. 그간 SK 상표 하나만 사용하다가 복수 폴을 허용한 석유사업법시행령에 따라 SK와 무상표의 복수 폴을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날짜 / 정유사 | SK | GS | 현대 | S-oil | 무폴 |
1999.6 | 36.3% | 26.5% | 21.0% | 13.1% | 3.1% |
2007.11 | 35.3% | 27.8% | 19.7% | 14.0% | 3.4% |
비교 | -1.0% | +1.3% | -1.3% | +0.9% | +0.3% |
* 2007.11월 현대오일뱅크에는 SK인천정유(1.2%)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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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SK측에 “7년 동안 SK글로벌(현 SK에너지)에서만 유류를 공급받아 판매해왔지만 지속적인 적자 운영이 불가피했다”며 복수 폴 등록 배경을 설명했다. SK 측이 자신이 운영하는 삼호주유소에 다른 SK주유소보다 유류 마진을 작게 해서 공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복수 상표를 등록하게 된 또 다른 이유였다. 조 대표는 무상표로 별도의 폴을 운영하면 SK 이외의 다른 정유사에서 시장에 값싸게 내놓는 기름을 사들여 적자폭을 줄이고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정유시설의 과잉투자로 정유사들이 매년 생산하는 기름은 내수 수요를 20% 이상 초과하고 있다. 석유협회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집계한 ‘정유사 생산 대비 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정유사들이 생산한 기름의 총량은 9억2310만2000배럴이고, 이 가운데 7억6195만4000배럴이 국내에서 소비됐다. 내수 대비 생산 비율은 121.1%. 1억6000만배럴이 초과 생산된 것이다.
사문화한 복수 폴사인 제도
잉여 생산된 기름 가운데 대부분은 수출 등으로 해소하지만, 일부 기름은 자사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지 않는 대리점이나 현물시장 등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유소가 복수 폴사인을 등록하면 계약을 맺은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것 외에도 타사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삼호주유소가 복수 폴사인을 사용한 지 7개월쯤 뒤 SK 측에서는 “지속적인 타사 물량 사입으로 선의의 SK 고객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정상적인 거래관계 유지가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며 SK 폴사인과 로고 등의 철거를 통보했다. SK는 고객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조 대표는 복수 폴사인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했다. 결국 SK는 상표표시 계약을 해지하고 SK 이미지를 상징하는 시설물들을 철거해갔다.
복수상표 등록 이후 폴사인과 로고가 철거된 사례는 그밖에도 많다. 그나마 조 대표의 경우 ‘무채권 주유소’였기 때문에 더 이상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 무채권 주유소란 정유사에 채무가 없는 주유소를 말한다.
주유소 하나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토지 비용 외에도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들기 때문에 주유소 설립자 대부분은 주유소를 설립하기 전에 정유사로부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돈을 빌린다. 차입 당시 폴사인 계약을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유사 차입금이 많은 주유소일수록 정유사에 약한 것은 자명한 일. 정유사들이 차입금을 일시에 회수해 가거나 기름 공급 자체를 줄임으로써 주유소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정유사가 마음만 먹으면 주유소 하나쯤은 얼마든지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자체 상표로 영업하고 있는 김 사장은 “특정 정유사에 얽매여 있지 않으니까 속 편하다”며 “매일 정유사나 대리점 등에서 발표하는 기름값을 보고 가장 저렴한 것을 사다 판다”고 했다. 유가 선택권이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얘기다. 김 사장이 이처럼 무폴 주유소를 자신 있게 운영하는 것도 정유사에 빚진 게 없기 때문이다.
주유소 점유율 변화 거의 없어
정유사별 주유소 점유율을 살펴보면 복수 폴제가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알 수 있다. 단수 폴제가 시행되던 1999년 6월 기준 SK는 전국 주유소의 36.3%를 점유했다. 복수 폴제를 시행한 지 6년이 지난 2007년 11월 기준 SK의 점유율은 35.3%로 불과 1%포인트 감소했을 뿐이다. 같은 기간에 GS는 26.5%에서 27.8%로 1.3%포인트 증가했고, 현대오일뱅크는 21.0%에서 19.7%로 1.3%포인트 줄었다. S-OiL은 13.1%에서 14.0%로 0.9%포인트 늘었다. 1999년 3.1%이던 무폴 주유소는 2007년에 3.4%로 0.3%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복수 폴제가 시행되는데도 정유사별 주유소 점유율에 큰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정유업계와 주유소업계의 설명은 상반된다. 정유업계가 “정유사들이 주유소를 확보하기 위해 그만큼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데 비해 주유소업계는 “상표 표시제에 따른 수직 계열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유소업계는 정유사들 사이에 이미 제품교환(자사 제품과 타사 제품을 섞어 파는 것)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브랜드 선택권 보호는 허구’라고 강조한다. 한국석유협회와 산업자원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S-OiL을 제외한 SK, GS, 현대, SK인천(현재는 SK에 합병)정유 4사의 내수 판매 기름 가운데 제품교환을 통해 판매된 양은 30~4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한 해 제품교환 실적을 살펴보면, SK는 전체 내수 대비 제품교환 비율이 무려 48.3%에 달했다. 즉 2006년 한 해 동안 SK주유소에서 판매된 기름 가운데 타사 제품 비율이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는 얘기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의 제품교환 비율은 각각 37.6%와 37.9%였고, SK인천정유는 68.6%에 달했다.
제품별 교환비율을 살펴보면 휘발유의 교환비율이 54.5%로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유(38.3%)와 등유(41.7%)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결과적으로 2006년 한 해 소비자가 구매한 휘발유 가운데 절반 이상은 정유사 간 제품교환이 이뤄진 ‘섞은 기름’인 셈이다.
정유사들은 휘발유의 경우 제품교환을 통해 구입한 타사 제품(반제품)에 첨가제를 5~7% 넣어 자사 브랜드 제품으로 차별화한 뒤(완제품) 주유소에 공급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유소업계는 제품교환 전에 이미 완제품을 생산해 정유사 간 제품교환을 한다고 반박한다. 그 근거로 한국석유품질관리원에서 조사한 ‘각 사별 휘발유 품질시험성적서’를 제시했다. 제품교환 전에 이미 지식경제부의 ‘석유품질고시’에 적합한 완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유를 교환할 때는 휘발유와 달리 첨가제도 없이 자사 식별제만 넣어 타사 제품을 그대로 유통시킨다고 한다. 소비자 브랜드 선택권 보호를 명분으로 폴사인 제도 유지를 강조하면서 뒤로는 제품교환을 통해 ‘섞은 기름’을 판매하는 것이다.
‘정유사들의 제품교환 불가피론’
정유사 간 석유제품 교환에 대해 대한석유협회는 “정유공장과 저장시설이 지역별로 편재돼 있어 저유시설의 중복투자와 물류비 증가를 억제하고 교통유발을 줄이기 위해 제품교환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정유사는 품질보정과 관리능력이 충분할 뿐 아니라 최종적으로 상표를 표시한 주체라는 점에서 소비자 피해보상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이 섞일 경우 그 품질을 책임질 수 없지만, 제조자인 정유사 간 제품교환은 믿을 수 있다는 논리다.
폴사인 제도가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수직 계열화로 정유사 간 경쟁구조를 없앤다는 점이다. 만약 폴사인 제도가 없다면 모든 정유사는 1만개가 넘는 주유소를 상대로 자사 제품을 구매해달라며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
구분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휘·등·경 | 0.04 | 0.74 | 1.97 | 4.50 | 7.86 | 5.94 | 3.00 | 1.68 | 1.56 |
*자료 : 산업자원부 2007에너지산업주요통계 |
구분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정유부문 | 13,868 | 15,306 | 6,838 | 5,517 | 7,263 | 21,926 | 14,740 |
*자료 : 금융감독원 공시자료, 비정유부문은 석유화학·석유개발·윤활유 등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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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폴사인 제도를 통해 주유소와 한번 계약을 맺어놓으면 계약을 해지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기름을 공급할 수 있게 돼 판로 확보를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정유사들은 자사 제품의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브랜드 홍보에 치중한다.
1970년대 TV 광고는 대부분 제약회사 상품으로 채워진다고 해서 ‘약 선전’으로 불렸다. 최근에는 정유사의 광고 비중이 대폭 높아져 ‘TV 광고=기름 선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정유사의 브랜드 홍보가 많아질수록 소비자의 기름값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유사가 주유소 공급 가격에 광고, 홍보비 등을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유소에 선택권 돌려줘야”
소비자가 오피넷 등을 통해 값싼 주유소를 찾기 위해 번거로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동안 주유소는 정유사로부터 일방적으로 가격을 통보받고 있다. 결국 소비자가 얼마나 값싼 기름을 살 수 있느냐는 주유소가 얼마나 마진을 적게 남기고 파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유통 마진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유소에 정유사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서 유명무실한 복수 폴사인 제도의 정착을 유도하거나 아예 폴사인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거론되고 있다. 경실련 산하 경제정의연구소는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에 보낸 정책제언을 통해 “폴사인제를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사적 계약이 아닌 법으로 강제한 것은 공정경쟁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류업계 관계자들은 석유 수입업자들이 한창 활동하던 2002년에는 기름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고 입을 모은다. 복수 폴사인 제도가 도입된 데다 국내 정유사 외에 수입 정유사까지 주유소에 앞다퉈 기름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 공급자 간 경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유사들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주유소 공급가격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변경하는 등 석유 수입사의 공급가격 할인에 적극 대응했다.
경북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모 사장은 “그때는 (정유사마다) 서로 자기네 기름을 사달라며 가격을 내려 팔았다”고 회고했다. H주유소 김모 사장도 “아침이면 정유사 직원 서너 명이 앞다퉈 몰려와 더 싸게 줄 테니 자사 제품을 사달라고 부탁하곤 했다”며 “주유소 처지에서 보면 정유사로부터 저렴한 기름을 많이 사야 소비자에게 가격을 낮춰 팔 수 있다”고 했다.
복수 폴사인제가 도입되고 석유수입업자까지 제품 판촉에 나선 2002년에는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유통 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통해 집계한 정유사들의 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1조3868억원과 1조5306억원이었다. 하지만 복수 폴제가 시행된 2001년엔 6838억원으로 급감했고, 석유수입사의 시장점유율이 7.86%로 최고를 기록한 2002년에는 5517억원으로 최저 이익을 남겼다.
유류업계 관계자는 “당시 공급자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이 공장도 가격 대비 드럼당 최대 3만원(ℓ당 150원 수준)까지 할인되기도 했다”며 “주유소 간에도 치열한 가격경쟁이 벌어져 그 혜택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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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유사들의 가격경쟁은 2003년에 접어들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그해 수입사와 주유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기 때문. 방송사들은 ‘저질 수입유가 주유소에서 불법 유통됐다’고 앞다퉈 보도했고, 경찰도 ‘동남아산 저질 휘발유 등 석유류를 국내 정유회사 제품인양 속여 판매한 주유소업자 25명 검거’라는 보도자료를 내며 단속에 열을 올렸다.
공정위도 ‘주유소 상표 표시제 위반 사업자’에 대한 시정조치 강화에 나섰다. 묘하게도 공급자 간 경쟁이 치열해져 정유사의 이익이 급감하던 시점에 수입사와 복수 상표 표시제를 도입한 주유소에 대한 일제 단속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시장점유율을 차츰 높여가던 수입사들은 압수수색 등을 견디다 못해 파산했고, 이후 국내 정유사들의 과점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석유 수입사 대대적 단속의 비밀
2003년 10월 최대의 석유수입사이던 페타코가 몰락한 뒤 기름의 시장가격 주도권은 다시 국내 정유업계로 넘어갔다. 수입사라는 ‘메기’가 사라진 정유어장에 다시 평화가 도래한 것일까. 수입사 점유율이 높아지는 것에 반비례해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했던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은 차츰 큰 폭으로 뛰었다. 2002년 5517억원까지 줄었던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은 2003년 7263억원으로 늘었고, 2004년에는 무려 2조192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폴사인 제도가 주유소에 대한 족쇄로 인식될 소지가 다분하지만, 품질보증 면에서는 긍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유사들이 폴사인 계약을 체결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기름의 품질까지 보증한다는 점에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기름 선택권을 주유소에 전적으로 맡길 경우 비양심적인 일부 주유소업자가 저질 기름을 섞어 판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 일각에서는 오피넷을 적극 활용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주유소별 가격만 공개할 것이 아니라 품질까지 비교할 수 있도록 보완하자는 것이다.
정부도 규제완화와 유통경로 다변화를 틈타 불법·부정제품을 유통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에 대비해 시장감시 기능 강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유제품 시험·검사기관인 한국석유품질관리원을 법정기관으로 승격시켜 품질 및 유통관리 전담기관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관리원 측에 품질검사뿐 아니라 불법·부정제품 유통에 대한 추적 단속권까지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또 정유업계가 과점체제로 재편된 상황에서 주유소를 수직 계열화하는 폴사인 제도를 폐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경쟁원리를 도입해 최종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공급업자 간 경쟁을 촉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당국자는 “올 하반기 석유산업법 개정 등을 통해 정유 유통구조에 큰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이라며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국리민복에 충실한 정유 유통구조 개선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폴사인제의 운명도 올 하반기에는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