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숨길 수 없는 천상의 목소리와 천사의 향기
한밤의 팬 서비스 “아리스 다 모여!”
도밍고와 듀엣, 보첼리와 협업… 클래식계 아이돌
2022 평화콘서트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호중이 열창으로 아리스에 보답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6월 9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구청 정문 앞. 2020년 9월 10일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한 ‘트바로티’ 김호중이 대체복무를 마치고 밝힌 소집해제 소감이다. 소집해제를 축하하러 모여든 팬덤 ‘아리스’의 뜨거운 환호를 마주하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리스를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1년 9개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 모습 그대로 기다려줘서 감사합니다. 드리고 싶은 선물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활동하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어쩌면 김호중은 아리스의 환호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속사가 사전에 공식 팬카페를 통해 소집해제를 조용히 맞이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취재진이 서초구청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아리스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아리스의 상징색인 ‘임페리얼 퍼플’ 색깔의 옷이나 마스크를 걸치고서 말이다.
보랏빛 물결이 출렁였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리스 2명이 그에게 다가가 소집해제를 축하하는 꽃다발을 안겼다. 김호중은 아리스가 운집한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병역의무를 다한 김호중과 그를 지고지순하게 기다린 아리스의 재회는 그렇게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시작됐다.
김호중은 6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초구청에서 사회복무 소집해제를 알렸다. [김도균 객원기자]
아리스와 약속 지킨 라이브방송
김호중을 대면한 팬들은 감격에 겨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 아리스는 “김호중 씨가 탄 자동차 문이 잠깐 열렸는데 김호중 씨의 눈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며 “군복무를 무사히 마친 날 팬들의 환호를 받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상의 목소리와 천사의 향기를 지닌 귀한 가수다. 게다가 팬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배려하는 김호중의 아리스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김호중에게도 아리스는 특별한 존재다. 그는 아리스를 ‘우리 식구들’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팬 이상의 의미를 아리스에게 부여한 것이다. 소집해제 다음 날인 6월 10일 정오. 그가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을 진행한 것도 “소집해제 후 가장 먼저 아리스에게 인사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라이브방송에서 김호중은 팬들의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나도 보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돌직구’ 고백을 서슴지 않았다. 또 “사회복무요원으로 서초구청 관할 복지관에서 복무했는데 처음 몇 달은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리스가 있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 팬카페에서 아리스와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고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팬들의 편지와 댓글을 보며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음악적 영감 등 많은 것을 얻었다”고 어디에도 말하지 않은 속내도 털어놨다. 그는 “아리스가 그동안 방송국이나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질서정연한 모습과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매너로 일관해 관계자들의 칭찬이 자자하다”고 전하며 “아리스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엔딩 장식한 김호중, 객석 메운 아리스
김호중이 6월 11일 전국 각지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모여든 아리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성악가 겸 가수 김호중이 '신동아' 독자들을 위해 한 친필 싸인. [김지영 기자]
이날 김호중은 박정현, 윤도현 같은 대형 가수를 제치고 콘서트의 엔딩 무대에 올라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우리家’ 앨범에 수록된 ‘홀로아리랑’을 시작으로 철원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친구여’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춘천청춘합창단과 어우러져 ‘네순 도르마’를 열창했다. 그의 심연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철원과 마주한 북녘 땅에까지 들리지 않을까 싶을 만큼 장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준비한 세 곡이 모두 끝난 후 아리스가 “앙코르”를 외쳤지만 김호중은 개인 콘서트가 아니어서 이에 부응할 수 없었다. 대신 공연장 안에 모인 전국의 아리스와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는 팬 서비스를 선사했다. 한 아리스는 “별님(김호중의 별칭)과 사진도 찍고, ‘네순 도르마’를 라이브로 들어 오늘도 밤새 잠을 설칠 것 같다. 5~6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고 흡족해했다.
음악 천재의 재발견
‘네순 도르마’는 김호중이 성악도의 길에 들어서게 한 노래로 유명하다. 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은 그는 중학생일 때 우연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네순 도르마’를 듣고 성악에 빠졌다. 그때부터 준비해 지역 명문 예고에 진학하지만 성악가의 꿈을 제대로 꾸기 시작한 것은 경북 김천예고의 현재 교장인 서수용 교사를 만나면서다. 서 교사는 첫 대면한 자리에서 김호중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목소리로 평생 먹고살 수 있겠다”고 말했고, 김호중은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전학 간 김천예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성악가가 10년 걸려도 배우기 힘든 ‘네순 도르마’를 단 3개월 만에 완벽히 소화한 김호중은 세종콩쿠르와 소리콩쿠르에서 연거푸 1등을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지역 소도시에 있는 예고 학생이 두 대회를 석권한 것은 처음이었다. 김호중은 ‘네순 도르마’를 연습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돼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고딩 파바로티’로 출연하기도 했다.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 성악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중도에 자퇴한다. 이후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 클래식을 좀 더 깊이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그를 클래식 전공자로 인정해 주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2013년 3월 ‘나의 사람아’라는 대중가요로 데뷔한다. 그와 서수용 교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된 직후였지만 그를 향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은 음악회나 예식장을 전전하던 그에게 2020년 방송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은 인생역전의 기회를 줬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의 음악적 천재성과 인생 스토리에 마음이 움직인 이들이 바로 지금의 아리스요, 아리스의 구심점이 된 공식 팬카페 ‘트바로티’다. 아리스는 사회적 통념과 가난 때문에 뜻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김호중을 ‘별님’이라고 부르며 그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가수가 되기를 열망한다.
도밍고와 보첼리의 러브콜
김호중은 6월 26일 부산에서 열린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 공연에서 그와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생각엔터테인먼트]
김호중은 예전부터 도밍고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스타킹’에서 선보인 ‘그라나다’를 비롯해 독일 유학 중이던 2010년 6월 잠시 귀국해 ‘이홍렬의 라디오쇼’에서 부른 ‘베사메무초’, 김호중의 클래식 앨범에 수록된 ‘별은 빛나건만’이 대표적이다.
7월에는 김호중이 이탈리아를 방문해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와 협업을 진행한다. 음악계 한 관계자는 “김호중의 클래식 앨범이 해외 클래식 음반 순위 차트 상위에 오른 적이 있어 인지도가 높아진 것으로 안다. 세계적 성악가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호중은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6월 18일 팬들의 글을 보며 영감을 받아 만든 자작곡이자 아리스를 위헌 헌정곡인 ‘빛이 나는 사람’을 발매했다. 소속사가 당초 김호중이 전역한 후 컴백 곡으로 준비한 ‘나의 목소리로’는 발매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는 공연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김호중은 9월 30일부터 자신의 생일인 10월 2일까지 단독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연다.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포문을 여는 단독 콘서트는 김호중의 공백기 동안 아리스가 가장 열망하던 바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김호중은 1년 9개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린 ‘식구들’에게 멋진 선물이 될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서로를 향해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리스의 김호중’과 ‘김호중의 아리스’. 이들의 행복한 동행엔 브레이크가 없다.
*5개 꼭지로 이뤄진 <[Special Report] ‘영원한 식구’ 김호중과 아리스의 행복한 동행> 전체 기사는 오프라인 ‘신동아’ 7월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김호중과 아리스의 행복한 동행’을 大특집으로 다룬 ‘신동아’ 7월호 표지.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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