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논쟁적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쾌도난마

“시험공부 끝낸 친구(美) 꾐에 책 덮고 따라가는 ‘바보’ 돼서야…”

  • 케임브리지=성기영│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sung.kiyoung@gmail.com│

    입력2010-11-18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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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구조 다른 20개국, 환율 조정만으로 무역 불균형 해소 힘들어
    • G20 개발 의제에 목소리 높인 공은 인정… 문제는 옳은 얘기만 나열한 점
    • 미래 산업 발전 저해할 한미 FTA
    • 불온서적 지정보다 화나는 건 저서 둘러싼 진지한 논쟁 없는 것
    • 추상적 이론 연구자 대접하면서 사례 연구 학자는 천시하는 한국 경제학 풍토
    • “후진국에선 제 책 복사해 돌려보라고 해요”
    ‘논쟁적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쾌도난마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경제학자 장하준(47)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 things that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신간은 대한민국이 단군 이래 최대 외교 이벤트 ‘2010 서울 G20 정상회의’의 막바지 준비작업에 여념이 없을 무렵 한국 독자에게 던져졌다. 교보문고 웹사이트에 마련된 G20도서 코너에서 이 책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자 장하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이날 800년 된 중세 도시 케임브리지의 길바닥은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사납게 흩뿌리는 비바람에 젖은 낙엽이 무수하게 엉켜 스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서울에서는 G20 행복 무드가 절정에 이르던 11월8일이었다.

    ▼ 서울 분위기는 무척 들떠 있더군요.



    “글쎄요. 동네서 잔치하면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죠. 그런 면에서 이해는 가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잘나서 (G7 회원국이 아닌 나라 중) 가장 먼저 개최권을 딴 것이 아니고 어떻게 순번이 돌아오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거든요. 게다가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걸 통해서 세계무대 주역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죠.”

    순번 돌아와서 개최한 G20

    ▼ 중국은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을 들어 돈 풀어서 다른 나라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은 중국의 위안화 정책이 문제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라는 것도 환율 조작이나 다름 없거든요. 중국이 환율 페그(peg·연동)해서 (위안화 가치를) 못 올라가게 하는 거나 미국이 돈 풀어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나 다 똑같은 짓이라는 거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 있잖아요?”

    ▼ 미국은 한걸음 나아가 애초부터 경상수지 목표치를 설정해서 인위적으로 관리하자고 했는데요. 실현 가능성과 효과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중국이 흑자가 막 쌓여서 어느 한도에 이르면 그 다음부터는 수출을 안 한다는 건가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구체적 제안이 없어요.”

    ▼ 과거에도 자율규제 같은 방식으로 무역수지의 균형점을 찾아간 역사적 경험들은 있지 않습니까?

    “그건 (개별) 산업 차원에서 시행했던 거죠. 일본 자동차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문제가 되니까 수출 자율규제라는 조치를 내세웠어요. 그런데 말만 자율이지 결국 이것도 (수입국과) 사전에 한도를 정해서 하는 거예요. 특정 산업에서는 지표가 보이니까 이런 방식이 가능해요. 한 해에 일본 차 몇 만대 이상 못 들어온다고 정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수천만 가지 상품을 생산하는 수백만 개 기업의 거래를 모두 모아놓은 것이 무역수지인데 그걸 어떻게 통제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 환율과 무역수지 조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건가요?

    “경제 구조가 서로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환율 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환율을 통해 효과를 보려면 과거 일본이 했던 것처럼 1년에 두 배, 세 배 평가절상하던가 해야 하는데 결국 일본이 그것 때문에 거품 생겨서 망했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은 내심 ‘우리도 일본 꼴 날 수 없다’고 다짐하면서 절대 그렇게 안 할 겁니다.”

    플라자 합의의 교훈

    ‘논쟁적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쾌도난마

    장하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된 지 열흘 남짓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장 교수가 말하는 ‘일본을 망하게 한 그것’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가리킨다. 일본의 대미 흑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누적되자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선진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일본의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올려 문제를 풀자고 합의했다. 수출 주도형 일본 경제는 살인적 엔고로 인해 기업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폈다가 결국 부동산 거품으로 이어지면서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낳고 말았다.

    ▼ 1980년대에는 다섯 개 나라만 합의하면 환율로 인한 무역수지 불균형 해법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개나 되는 나라가 그와 같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까요?

    “힘들 겁니다. 또 합의를 이뤄내더라도 누구도 큰 불만이 없을 만큼 일반적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플라자합의 같은 경우 발전 단계도 비슷하고 능력도 비슷한 나라들끼리 합의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미국과 인도네시아처럼 큰 차이가 나는 나라를 같은 기준으로 묶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요.”

    결국 장하준 교수와 G20 정상회담을 전망하는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며칠 뒤 발표된 서울 정상선언은 그의 비관적 전망이 맞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각종 외신들이 쏟아낸 분석 기사의 논조들이 이를 증명한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은 정상회의의 ‘성과’보다 무역 불균형 시정 조치를 ‘연기’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정상회의가 가까스로 최소한의 기대에 부응한 수준이라고 논평했다. 영국 BBC는 한걸음 나아가 G20 정상회의가 동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의문마저 제기했다.

    환율과 경상수지 이외에도 서울 G20 정상회의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있다. 선진국들이 어떤 방식으로 후진국 개발 전략을 도와서 동반 성장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느냐다. 이런 개발 의제는 서울 정상선언의 부속서에 따로 담겼다.

    ▼ 한국 정부가 후진국 개발 의제를 제안해 정상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고 하더군요. 논의되고 있는 의제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이 내놓은 개발 어젠다를 보면 너무 ‘순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 과거 경제발전 과정을 보면 산업정책이나 토지개혁이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너무 ‘센’ 것 같으니까 아예 얘기도 안 꺼내고 있어요.”

    ▼ 사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죠. 이미 지난번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실무작업반을 구성하기로 합의해놓은 바 있고….

    “물론 한국이 개발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인 공은 인정해야겠죠. 문제는 그냥 옳은 이야기들만 죽 늘어놓았다는 거예요. 사회간접자본 늘리고 교육 확대해야 하고. 누구나 다 동의하는 것들이잖아요. 마이크로 파이낸싱도 그래요. 작고 가난한 나라 돈 빌려주는 데 차별하지 말자는 것 좋은 이야기죠. 그러나 그렇게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면 개발 의제는 아예 필요 없었을지도 몰라요.”

    남아공에서 통한 ‘장하준 식 처방’

    이른바 ‘동반 성장’에 대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주장은 일관되고 명쾌하다. 후진국에는 일정 시점까지 보호무역을 용인해주고 유치산업(Infant industry) 보호 같은 국내 산업정책도 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시장개방 논리를 전도하는 선진국들이 실상은 죄다 그런 방식으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는 장하준 교수가 ‘사다리 걷어차기’부터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거쳐 이번 신간까지 2, 3년에 한 번씩 (학술논문이 아닌) 대중용 서적을 세상에 내놓으며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에는 동시에 물음표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설령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선진국들이 지난 20~30년 동안 정부 개입 방식으로 현재의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치자. 그러나 2010년 오늘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을 보라.

    골목 슈퍼마켓 아줌마도 좀 먹고살게 대형마트를 조금 규제하겠다는 국내 경제정책을 세우면서도 WTO(세계무역기구)니 FTA(자유무역협정)니 하는 심판들이 언제 어디서 완장 차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이 글로벌 경제 시대에 그런 1970년대 방식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또 혹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을지도 모른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가까스로 만원버스를 잡아타고 문가에 매달리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당신은 운전기사가 정류장마다 정차해서 우산 든 승객들을 꾸역꾸역 싣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버스 꽉 찼으니 다음 정류장은 적당히 지나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하는가. 솔직히 대답해보라고.

    ▼ 선진국 시장 문턱은 낮춰주고 후진국은 보호무역을 용인해주라는 주장을 꾸준히 해오셨죠?

    “네. 만약 선진국 시장 문턱을 낮춰주라고만 해보세요. 그럼 후진국들은 지금 갖고 있는 것만 팔지 않겠어요? 세계 어느 나라가 커피 팔고 면화 팔아서 부자가 됐습니까? 그런 데서 돈을 벌어서 더 생산성 높은 산업에 투자해야만 경제가 발전하거든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아요. 노동자들 하루 열다섯 시간씩 쥐어짜서 번 돈으로 다른 산업에 투자해서 잘 살게 됐잖아요?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하는데 G20도 그렇고 사람들 대부분이 이 방정식의 반쪽만 이야기하고 있어요.”

    ▼ 하지만 그것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가 부딪치는 G20 같은 기구에서 합의 가능한 내용은 아니죠.

    “그럼요. G20이 WTO처럼 처벌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장 할 수 없더라도 테이블에 이런 의제를 올려놓는다는 건 중요한 거죠. 이번에 유럽연합에서 갖고 있던 IMF(국제통화기금) 이사 2명을 후진국에 주기로 합의했잖아요? 이런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으니까요.”

    ▼ 그럼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G20 스무 나라 중 몇 나라나 ‘장하준 식 처방’에 동의할까요?

    “중국,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들은 솔깃하죠. 사실 브라질과 남아공,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들에는 제가 많이 불려 다니는 편이거든요. 멕시코도 객관적 조건으로는 관심이 있을 법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있으니까 선뜻 나서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국회의원이나 특허청장 같은 관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긍정적 반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저개발국 경제정책을 자문해서 ‘이렇게 해냈다’는 성공 사례를 제시해줄 수 있습니까?

    “남아공 무역산업부 같은 경우는 산업 발전전략 세우는 데 제 견해를 꽤 반영한 걸로 알고 있고요. 에콰도르도 대통령이 경제학자 출신인데 저를 좋아해서 자기네 산업 발전전략 세우는 데 제 얘기를 많이 가져다 썼더군요.”

    장하준 교수는 이렇게 주로 후진국 경제를 다루는 학자다. 그런 면에서 후진국 경제에 대해 그가 설계해온 해법이 선진국 정책 담당자나 주류 경제학자들을 충분히 불편하게 할 법도 하다.

    도발적이고 이단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이름과 책 제목을 영문판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고 무작위로 서평 몇 편을 읽어보았다. ‘Ha-Joon Chang’이라는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수식어 중 눈에 띄는 것은 ‘provocative(도발적인)’ 또는 ‘contrarian(이단적인)’ 같은 단어들이었다. ‘rising young star (떠오르는 스타)’ 같은 표현도 있었다. 그렇다면 비주류 경제학자 중에서 스타 반열에 오른 장하준 교수가 보는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의 일부로서 G20의 미래는 무엇일까.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후진국들이 지난 200~300년간 식민지배에 눌려 지내다가 독립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거든요. IMF와 세계은행은 돈 내는 순서에 따라 투표권이 결정되고 유엔 같은 경우 중요한 결정은 모두 안보리 상임이사회에서 내려지죠. WTO도 말로는 모든 회원국이 동등하게 한 표씩을 행사하는 민주주의적 기구라고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컨센서스 방식 운영’ 등을 내세우면서 투표 자체가 이뤄지질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 인구의 3분의 2쯤을 반영하는 기구라는 면에서는 G7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 사실이죠.”

    “토킹숍도 무의미하진 않다”

    ▼ 하지만 일부 후진국들에서는 금융위기를 자초한 사람들이 모여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시선도 있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G7이 자기네 힘만으로 위기 극복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여서 조금 기분 좋게 해준 다음에 너희가 돈도 좀 대고 재정지출도 확대해서 우리 좀 도와달라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 G20 내에 사무국을 설치해서 상설기구화 하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제대로 하려면 사무국도 만들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할 경우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는 어떻게 다르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거든요. 물론 OECD에 인도와 중국은 안 들어가 있지만 서로 비슷한 얘기를 하는 두 기구를 그냥 놓아두는 셈이죠.”

    ▼ G20 회원국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를 놓고도 논란이 일 수 있지 않을까요?

    “맞아요. 사실 20개 나라를 누가 정했는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냥 G7 국가들이 누구누구 넣자고 해서 이뤄진 거라고요. 당장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우리는 왜 못 들어가느냐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또 방글라데시 같은 경우도 가난하기는 하지만 아시아에서 보자면 (중국과 인도 빼고)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데 안 끼워 주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어요. 결국 회원국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행동원칙을 담은 헌장을 만들 것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합니다.”

    ▼ 정상선언을 내놓았을 때 어느 정도의 구속력이 있을지도 논란거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회원국 상호간 압력(peer pressure)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유럽 국제정치 시각에서는 이렇게 회원국 숫자는 많고 결속력은 느슨한 거버넌스 구조를 두고 말잔치(talking shop)에 불과하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토킹숍도 전혀 무의미한 건 아니에요. 일단 어젠다에 올려놓으면 회원국들이 계속 요구하고 걸고넘어질 수 있으니까요. 과거에 G7에서 선진국들의 해외 원조를 국내총생산(GDP)의 0.7%까지 올리자고 결정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액수로 따지면 여전히 많이 내는 나라지만 이 비율을 절대로 안 지킵니다. 그럴 때 ‘약속해놓고 왜 안 지키냐’고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1% 이상 원조하는 나라들에는 이런 합의사항이 격려가 될 수도 있고요.”

    40대 중반 남성이 주요 독자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다소 급진적으로 비칠 법한 장 교수의 책들은 한국 시장에서 빠르게 그리고 꾸준히 팔린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11월 첫째 주 기준으로 교보문고, 알라딘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측의 설명에 따르면 주로 40대 중반 남성이 이 책의 주요 구매층이란다.

    이상하지 않은가? 박정희 시대 경제 모델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 1980년대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고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이 많고 반(反)재벌 정서가 강할 법한 이 세대가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2004년 출간 저서 제목)’는 장 교수의 저서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40대 남성 중 장하준의 주장을 지지하는 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을 꼼꼼히 읽어보았건 보지 않았건 많은 사람은 그가 제시하는 경제발전 모델에 질문을 던진다. 그럼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고. 장 교수의 대답은 이렇다.

    “옛날에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까 꼭 그걸 지금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한국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후진국들도 더 잘 발전하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한국도 아직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미 FTA처럼 미래 산업발전을 저해할 만한 정책들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평범한 독자 대부분은 장 교수의 주장을 잘못 읽고 있는가. 말하자면 과테말라나 케냐 수준의 국가들은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처방전을 내놓았는데 ‘한국에서 그것이 가당한 일이냐’고 역정을 내고 있다는 말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장 교수가 국가별 경제 발전 단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쓰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의 분류 중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 한국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중 어디에 속합니까?

    “정확하게 경계선에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선진국 중 최하위라고 보면 돼요. 국민소득 2만달러면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포르투갈 아니면 과거 동유럽에서 가장 잘살았던 슬로베니아 정도에 해당하거든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아주 특이한 경우라는 겁니다. 우리처럼 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와서 선진국 말석에라도 낀 경우가 없어요. 우리처럼 빈곤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가진 인구가 수천만 명 살아 있는 나라도 없고요. 선·후진국 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여기까지는 전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한국이 다리 역할을 하며 가난한 나라에 넘겨줘야 할 경험이 뭐냐를 따지고 들면 입장은 확연히 갈린다. 대외 개방과 시장주의적 경제운용을 통해 이룩한 성장이냐 아니면 보호무역과 정부 개입 정책을 기반으로 선진국을 맹렬히 추격해 따라잡은 것이냐가 쟁점이다.

    장 교수는 물론 전자는 신화와 위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후자의 모델을 통해 경제 기적을 이룬 것이 분명한데도 안 그런 척 꾸미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 필요한가

    필자는 이를 두고 미국 중심 경제에 편승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차원의 경력 세탁 같아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한술 더 떠 조직폭력배에 빗댔다. 조폭한테 만날 얻어맞던 녀석이 이제 힘이 좀 생기니까 자기도 조폭에 가담해서 다른 놈들 패고 다니면서 정작 과거에 맞고 살았던 얘기는 안 한다는 거다.

    결국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필요하냐’의 문제로 모아진다. 또 필요하다면 가능하냐는 의문도 뒤따른다. 경제발전 모델을 연구하는 제도경제학자에게는 핵심적 주제다.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들조차‘가난했던 시절 이야기다’ 또는 ‘독재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선 미국만 보세요.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는 분야 대부분이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에 힘입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들이에요. 항공군수산업이 그렇죠. 반도체도 미국 해군에서 돈 대서 개발하기 시작했죠. 생명공학 분야를 봐도 미국 의약품 연구개발에서 정부가 대는 돈이 30% 정도나 됩니다. 게다가 프랑스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은 민주주의 하면서도 산업정책 많이 했거든요. 스웨덴은 국민소득의 절반을 정부가 산업정책에 쓰는 나라인데 스웨덴더러 민주주의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역사적 예화가 가득 찬 글쓰기를 즐기는 경제학자답게 그는 이런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한번 기억해보세요. 자기는 3주 전쯤에 시험공부 미리 다 끝내놓고 시험 보기 1주일 전쯤 되면 영화 보러 가자는 둥 미팅하러 가자는 둥 하면서 다른 친구들 공부 못하게 하는 녀석들이 꼭 있죠? 이게 바로 미국이에요. 자기는 할 것 다 하면서 너희들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죠. 그런 말 하고 다니는 놈도 나쁘지만 거기 속아서 공부 안 하는 놈은 더 바보라는 거죠. 지금 한국이 그런 바보가 될지 모를 처지에 있는 겁니다.”

    ▼ 하지만 WTO에서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산업정책에 직접 개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 아닌가요?

    “몇 가지 예외로 해놓은 보조금들이 사실은 다 선진국들이 자기들 필요에 의해 만들어놓은 것들이에요. 농업 분야, 연구개발, 지역균형 발전 보조금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자기들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만들어놓은 거죠.”

    ▼ 과거 하이닉스 반도체의 회사채를 산업은행이 나서 인수했을 때 경쟁업체들이 이를 정부 보조금으로 주장하면서 상계관세를 부과한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 WTO로 갔죠. 최근에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을 놓고 유럽연합과 갈등을 빚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모두 국내 산업정책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 안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들이죠.

    “맞습니다. 옛날에 비해서는 제약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산업정책을) 하려고 하는 나라들은 WTO 규제와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길을 찾아나가거든요. 미국에서도 금융위기 이후에 자동차 산업 망하게 생겼으니까 (WTO에서 허용하는) 환경친화적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보조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일일이 확인해보지 않거든요.”

    ▼ 다른 자동차 산업 경쟁국이 미국을 WTO에 제소할 수는 있는 것 아닙니까?

    “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선진국이 그렇게 하면 후진국이 걸고넘어지기 힘들다는 거죠. 제소하려면 돈도 많이 드는데다 잘못 보이면 찍히지 않겠어요? 인도처럼 덩치가 크거나 아니면 NGO(비정부기구)들이 들고 일어나서 이슈를 크게 만들어 대응하기 전에는 힘들죠.”

    “한국 경제의 미래는 제조업”

    ▼ 한국 경제의 진로를 둘러싼 논쟁 중에는 ‘제조업이냐 금융업 같은 서비스업이냐’는 것도 있습니다. 장 교수께서는 제조업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해오셨죠?

    “네. 사실 탈(脫)산업화나 지식경제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따지고보면 옛날부터도 이미 지식사회였어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경제가 다 파괴돼서 1인당 국민소득이 페루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독일을 후진국으로 재분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독일 사람들이 경제를 재건할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 제조업 위기론의 밑바탕에는 한국 제조업이 이웃나라 중국과 경쟁해서 승산이 있겠느냐는 현실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쫓아오는 사람만 무서워하고 도망가는 사람은 무서워하질 않나요? 제조업은 더는 못하겠으니까 이제부터 금융업 하자고 달려들면 미국이나 영국이 ‘그래, 여기 와서 가게 차려놓고 해봐라’ 그런답니까?”

    ▼ 제조업의 효용성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있으려면 여기에 기술이 결합해야 하는데 정책적 관심이 떨어져 있고 실제 제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어 보입니다.

    “회의를 가지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아무도 성공 못해요. 성공한 기업들 보면 처음에 다 미쳤다는 소리 들었잖아요. 삼성이 반도체 하려고 할 때 돌았다고 했고 정부가 나서서 포항제철 짓는다고 했을 때는 세계은행(World Bank)이 나서서 차관 공여할 만한 나라들에 편지 보내서 돈 주지 말라고까지 했었잖아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답답하다는 투였다. 경우에 따라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인파이터 스타일. 엄격하고 이지적이고 차가운 논리를 앞세우는 경제학자의 전형적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서울대 교수직, 세 번 탈락한 이유

    그런데 장 교수의 책을 꾸준히 펴내온 출판사 측은 한국의 지식사회가 그의 책에 대해 진지한 논쟁을 걸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국방부에서 그의 대표작인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불온도서로 지정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출판사 관계자는 월가의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제의 허상이 드러났는데도 정작 이를 꾸준히 비판해온 장 교수에 대해서는 옳다 그르다는 논쟁조차 없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런 사실이 국방부 불온도서 지정보다 더 화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 국내외를 막론하고 교수님이 제시해온 발전 모델을 놓고 학술 논문을 통해 진지한 논쟁이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까?

    “지난해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저스틴 린과 학술지에서 세 차례씩 기고하며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죠. 비교우위론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불행히도 뭐 그렇게 논쟁이 많지 않았던 것 같네요.”

    ▼ 왜 그럴까요?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추상적 이론을 주로 하다가 보니까 정책에 관심이 적으시거든요. 또 요즘은 미국의 최고 권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하니까 미국에서 주로 관심 가질 만한 주제들을 많이 다룰 뿐 한국 경제 이야기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요.”

    ▼ 경제학과 교수님들이 한국 경제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동의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단적인 예로 얼마나 많은 경제학 전공 교수가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방식에 차이가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정책에 관심이 있으면 해당 정책을 붙잡고 연구하는데 한국 교수님들은 자기 전공은 따로 있고 정책을 다루는 부분은 교수로서 일반적 지식을 갖고 다루시거든요. 게다가 주류 경제학에서는 추상적인 걸 할수록 더 고급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현실하고 별로 관계도 없는 거의 응용수학 수준의 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똑똑하다고 대접받고 실제로 특정 국가나 기업에 가서 사례 연구하는 사람들은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 경제학의 풍토에 대해 이렇게 직설적인 비판을 해대는 장 교수도 케임브리지대 교수 자리를 버리고 한국 학계로 돌아오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진 것만 해도 200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공모에 지원했다가 현재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에게 고배를 마신 적이 있고, 모교인 서울대 교수직에는 세 번이나 도전했다가 모두 쓴맛을 봤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 교수 채용에 한 군데 세 번씩 지원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세 번씩 떨어진 경우도 드문 것 같습니다. 연구 실적 이외에 다른 배경 요인은 없었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제가 하는 분야가 기존 교수님들과 워낙 다르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 하시는 교수님들 중에는 저를 자격미달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보시는 분도 있으니까 결국 연구 실적의 문제로 귀결되는 거지요. 서울대가 너무 특정 학파에 치우쳐 있다는 게 문제지, 누가 특히 저를 미워하거나 꺼려서 그런 건 아니죠.”

    “경제학 95%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

    교수 채용과 같은 민감한 문제에 관한 질문도 장하준 교수는 그냥 ‘쿨하게’ 대답해 넘겼다. 인맥, 학맥과 나이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인간관계 때문에 신중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슬쩍 찔러보려고 했던 사람이 머쓱해졌다.

    장 교수가 ‘쿨한’ 대목은 또 하나 있다. 신간을 내면서 경제학자들에 대해 스스로 밝힌 대목이다. 그는 ‘경제학의 95%는 상식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머지 5%도 쉬운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경제학자로서 스스로의 지식을 무장해제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학술적 결과물을 포함한 지적 상품에 대해 저작권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선진국들이 지적재산권을 내세워 후진국을 압박하는 것도 위선이라고 몰아붙인다. 중상주의 경제학자 리스트에서 따온 장하준 식 표현으로는 ‘사다리 걷어차기.’

    그래서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장 교수가 사인해준 책을 한 권 받아 들고 이렇게 물어봤다. 당신이 펴내는 책에 저작권을 주장하지 말고 후진국 국민에게 ‘카피라이트’가 아닌 ‘카피레프트’를 주장할 용의는 없느냐고. 역시 오래 생각지 않고 또 한 번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논쟁적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쾌도난마
    成 耆 英

    1968년 서울 출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서강대 국제경제학 석사

    現 영국 워릭대 국제정치학 석사, 동 대학원 박사과정

    前 시사저널, 주간동아, 신동아 기자


    “그냥 뭐, 후진국 가서 강연할 때 제 책 복사해서 돌려보라고 그래요. 대신 출판사에 얘기는 하지 말고. 저작권 회사를 통해서 포멀(formal)하게 하려면 복잡해지거든요.”

    탁월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경제학자답지 않은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여전히 질퍽거리는 케임브리지 날씨는 언제쯤 ‘쿨해’질지 모르겠다. 오후 4시30분인데 음습한 어둠이 이미 절반쯤 내려앉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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