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NSA의 주요 도청기지.
그러나 이렇듯 막강한 조직과 엄청난 예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9·11테러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는 워싱턴 고위당국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건 이후 벌어진 광범위한 내부감사와 조사를 통해 9·11은 미국 정보기구들의 대표적 ‘정보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실태 파악에 실패한 사실이 기름을 부었다. 9·11위원회는 “미국 정보기구들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냈을 뿐”이라고 평가했으며, 팻 로브츠 상원의원은 “이란이 몇 년 뒤에 핵무기를 갖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그 답을 전해줄 (정보기관) 사람들 역시 모른다”고 비꼬았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한들, 기관 간 공조와 조율이 부실한 상황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자명해진 것이다.
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정보공동체는 지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뉴욕타임스’에서 정보기관을 담당하는 팀 와이너 기자는 최근 ‘포린 폴리시’ 9/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1급 비밀 정보 서비스를 창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숙련된 분석관과 용기 있는 공작관으로 구성된 새로운 정예부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공동체 개혁에 나선 미국의 목표는 “정보기구 간 ‘불협화음’을 ‘화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다. ▲정보공동체 통합 강화 ▲정보기관 간 협력 확대 ▲정보공동체의 문화 개선 ▲최첨단 기술정보 도입이 그 것. 반대로 일각에는 이러한 개혁이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적 정보독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토대 위에 세워진 미국 최초의 정보기관은 CIA다. CIA는 1947년 7월26일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에 서명하면서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에 법률적 근거를 가진 정보기관은 없었으며 정보·국방·대외정책 기구는 분리돼 있었다. 정보기구의 조직화는 미국적 가치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CIA가 출범하는 데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CIA가 창설된 이유는 제2의 진주만 기습을 예방하면서 미래 전략 구축에 필요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어떤 정보기관에도 ‘정보 독점권’을 주지 않았다.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조직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해온 것이다.
정보는 인간정보(HUMINT·Humane Intelligence), 신호정보(SIGINT·Signal Intelligence) 영상정보(IMINT·Image Intelligence)로 크게 나뉜다. CIA는 그중에서 인간정보(미국내 인간정보는 FBI)에 치중했으며, 신호정보는 NSA가 획득했고, 적국의 시설과 움직임을 촬영하는 영상정보는 NRO의 몫이었다. ‘정보 독재’를 막으려면 HUMINT, SIGINT, IMINT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 분리된 것이다. 그래야만 대통령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이 ‘견제의 원칙’은 가장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물처럼 얽힌 조직이 정보 분석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비등했다.
CIA와 국방부의 주도권 싸움
정보기관들의 협조는 9·11테러 당시 납치범들에 대한 정보 교류의 난맥상에서 드러났듯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CIA 사람들은 미국내에서 테러범들을 추적하는 일은 FBI 소관이라고 떠넘긴다”고 꼬집으면서 “미국의 정보기관 조직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복잡해져서 결국엔 호환성 없는 컴퓨터들이 뒤엉킨 것처럼 지휘계통이 엇갈린다”고 지적했다. 16개 정보기구의 조율자는 명목상으로는 CIA 국장(DCI·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이 담당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실질적인 협조·협력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정보 및 해외 정보의 수집과 정보분석을 통합, 조정하는 기구가 세워져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CIA는 정보예산의 80%를 쓰는 펜타곤과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결과는 펜타곤의 ‘완승’이었다. 2004년 16개 정보기구를 지휘 감독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CIA의 ‘맏형’으로서의 위상은 추락했다. DNI가 정보관련 예산을 감독하고, 국내와 해외의 정보활동을 지휘하는 구실을 맡게 된 것. DNI의 초대 국장은 1980년대부터 국방부의 공작업무를 수행해온 존 네그로폰테 현 국무부 부장관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