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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섹스심벌 이대근

“에로 배우? 내가 찍은 건 의미있는 예술영화”

1980년대 섹스심벌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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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말뚝이다. 단단하고 강한 몸매를 지녔다. 부리부리한 눈, 굳게 다문 입술, 웃으면 순진함이 묻어나는 이빨. 그는 자신의 별명이 미친 놈이었다며 “하나만 아는 사람”이라고 못박는다. 계집의 치마폭을 들추며 낄낄대거나 산더미 같은 장작을 패거나 화나면 바로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적인 광기까지.
  •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섹스심벌’이던 이 사내가 한때는 검은 장갑을 끼고 악당을 쳐부수며 오토바이를 타는 액션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1980년대 섹스심벌 이대근
‘뽕’‘감자’ ‘심봤다’ ‘사노’로 이어지는 일련의 토속물에서 이대근은 ‘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들 영화에서 머슴이나 산삼지기 역을 맡은 이대근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은 마을 씨름시합에서 우승을 한다든지 돌절구를 번쩍 들어올리는 식이다. 남성적인 힘에 대한 물신숭배에 가까운 과시는 ‘변강쇠’에 이르러 오줌줄기가 폭포가 되는 과장으로 나타난다.

‘뽕’에서 이미숙이 분(扮)한 안협은 뽕, 즉 자본을 모으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춘을 서슴지 않는 여자지만 유독 머슴인 삼돌만은 상스럽다는 이유로 배척한다. 삼돌에 대한 거부가 그녀가 자존심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는 시각으로 살펴보면, 영화 속에서 이대근이 맡은 삼돌은 하층민, 자연, 민초 같은 계급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싱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때론 다듬어지지 않은 욕망을 그대로 분출하는 이대근의 캐릭터는, 남성성이란 원초적 욕망이 계급에 부여하는 억압을 모두 거부했을 때, 즉 전근대라는 시대로 퇴행했을 때 나타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전근대의 억압에 갇힌 여성들이 성적(性的)인 유혹과 거부 사이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쳐야 한다면, 영화 속 그는 상층부 권력이나 주변 사람들의 멸시에 찬 시선에 의해 또 다른 비극적 종말과 대면하곤 한다. ‘뽕’의 삼돌은 결국 안협을 차지하지 못하고 ‘심봤다’의 산삼지기는 아이를 잃는다. ‘변강쇠’는 결국 옹녀와 산속에 숨어 들어 사람들을 등진다. 그러한 면에서 변강쇠와 옹녀는 성적인 강자가 아니라 성적인 소수자, 일종의 타자(他者)라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대근의 순박한 심장이 유현목 같은 대가의 손에 넘어갔을 때, 전근대에 속한 그의 기호학적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장마’에서 그가 분한 동만의 삼촌은 남과 북 어떤 이데올로기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손에 떨어진 ‘완장’이란 일시적인 권력을 탐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도 희생당한다. 결국 죽어서 구렁이가 되는 동만의 삼촌은 시대의 폭압에 희생당한 피해자, 분단의 희생양으로 비극성을 더한다.

‘변강쇠 콤플렉스’



분명 이대근은 김승호의 뒤를 이어 ‘큰 연기’를 하는 배우다. ‘뽕’에서 보여준, 자신의 모든 것을 여인에게 다 주고 사랑을 구하는 눈물어린 연기에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심이 서려있다. ‘감자’ ‘심봤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 그가 출연한 작품의 화려한 수상결과가 알려주듯 1980년대 토속물에서 이대근은 울고, 웃고, 분노하고, 절규하는 표현적인 연기를 해왔다.

그러나 이대근의 이름은 ‘클레오파트라를 기절시키는 강력남’으로 인터넷을 떠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관객에게 그는 ‘변강쇠 콤플렉스’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대근은 배우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존재인지도 모른다. 흡사 1950년대 미국에서 마릴린 먼로가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수십 년이 지나 일군의 호기심 많은 학자들이 1980년대 한국문화를 탐구한다면, 횡행하는 사회적 억압이 성(性)으로 치환된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타난 이 남자, 이대근을 다른 시선으로 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인터뷰는 섹스심벌로서의 ‘대물’ 이대근이 아니라, 이대근이라는 연기자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성을 만나기 위해서 기획된 것이다. 이야기 도중 엉뚱한 방향으로 튀곤 하는 이 배우는 역시 자신 속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연기하는 그런 종류의 배우로 보였다. 아직도 “남자는 여자를 ‘책임 보호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큰소리치는, 그러나 막상 딸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이 남자는 이제는 세상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마초, 수컷의 본성을 숨기지 못한다.

필자가 약속 장소인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사진촬영 중이던 그는, 자신의 이미지와 흡사한 커다란 진검을 들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여러 자세를 잡던 그가 필자에게 불쑥 칼을 내밀며 칼날을 만져보라고 했다.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칼끝의 느낌, 바로 배우 이대근에 대한 촉감적 인상이다. 결코 생계를 포기하지도, 우울한 감상에 젖어 깊이에의 강박을 스스로나 남에게 전하지 않을 것 같은 남자. 쑥스러워서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필자보다는 옆에 있는 남자 배석자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당신이라면 나를 이해하겠지’라는 표정으로 쉴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남자는, 이름처럼 큰 뿌리 같은 생명력과 힘으로 여전히 세상을 움켜쥐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해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정말 힘들어요. 나름대로 자기 것이 있는 사람, 하나의 이미지에 평생을 걸고 가는 사람은 카메라를 어려워하죠. 내가 영화만 300편을 했어요. 내 또래에서는 신성일씨 다음이에요. 영화계에 10년 동안 인기를 유지하는 배우는 많지 않아요. 그 이름만 보고도 관객이 극장을 찾는 배우, 그게 스타예요. 그들은 스타라는 책임의식이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어려워하는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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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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