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무(許丁戊·57) 감독은 웃으며 말했지만 기자는 도저히 따라 웃을 수 없었다. 갑자기 기자의 몸 어느 깊은 곳이 몹시 욱신거리고 얼얼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 이래서 ‘진돗개’라고 하는구나.
1978년 7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 축구대회. 이라크와 맞붙은 예선경기에서 혈기방장한 25세 허정무는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맹활약했다. ‘백넘버 15번 저 친구, 그냥 놔둬선 안 되겠다’ 싶었던 이라크 수비수가 마침내 하이킥성 육탄 태클을 날렸다. 높이 솟은 그의 축구화 바닥이 눈 깜짝할 사이에 허정무의 왼쪽 고환으로 날아들었다. 묵직한 충격을 느끼며 뒹굴었지만 ‘나도 갚아주마’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는 곧장 상대 선수에게 깊숙한 태클을 걸었다. 그러나 빗맞는 바람에 원을 풀지 못하고 교체된 뒤 구급차에 실렸다.
병원에 가서 보니 고환 겉부분이 손가락 두 마디쯤 찢겨 있었다. 그 안으로 ‘리쯔’처럼 둥글고 하얀 부위가 들여다보일 만큼 깊은 상처였다. 꿰매고, 약 먹고, 훈도시 비슷한 천을 구해다 사타구니를 잔뜩 조여 맸다. 왼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한의사 출신 주치의가 2~3일 동안 침을 놔주자 그제야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대회가 풀리그 방식이라 몇 게임 쉬었는데 우리가 결승까지 올라갔어요. 몸은 성치 않아도 결승엔 안 나갈 수 없잖아. 다친 지 닷새 만엔가 실밥도 안 떼고 결승전엘 나갔어요. 나도 참, 독종은 독종이야.”
결승 상대는 또 그 껄끄러운 이라크. 그러나 2대 0으로 낙승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허정무. 주요 부위를 크게 다쳤다던 한국 ‘15번’이 나 보란 듯 이를 서걱서걱 갈면서 선발 출전하자 이라크 선수들은 아연실색했고, 후반 20분께 교체돼 나갈 때까지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라운드를 휘젓던 허정무 근처엔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그곳’이 찢어지고도 곧장 맞태클로 응징에 나섰던 15번 아닌가, 저 몸으로 나왔는데 또 건드렸다간 무슨 험한 꼴을 당할까, 허걱. 더욱이 심판들도 모두 남자라 ‘15번의 아픔’을 절절이 공감하는 처지였기에 그날 밤 한국팀에 매우 우호적이었다는 후문이다.
기회 안 놓치는 게 기술
▼ 그런 독종 감독의 눈에는 요즘 선수들의 근성이랄까 투혼 같은 것이 영 못마땅하겠네요. 평소 체력훈련도 혹독하게 시킬 것 같습니다.
“아뇨, 시대가 변했습니다. 옛날에야 악이다, 깡이다 하면서 들입다 거칠게 치받아대면 ‘근성이 좋다’고들 칭찬했지요. 요즘은 달라요. 보복행위를 했다간 바로 레드카드를 받지 않습니까. 현대적 의미의 근성이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연마해나가는 자세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근성을 뒷받침하는 건 체력보다는 두뇌와 감각입니다.”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 돌아온다. 허정무 감독은 인터뷰 내내 ‘두뇌와 감각’을 강조했다. 7월13일 늦은 오후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딱 보기 좋을 만큼 그을어 있었다. 팔짱을 끼자 단단한 상체가 도드라졌다. “남아공에서 돌아와 2주 남짓 푹 쉬었다. 피로는 진작에 다 풀렸다”고 했다.
오전엔 골프를 쳤다고 한다. 92타. 며칠 전엔 78타를 쳤다. 기복이 심해 20타 아래 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골프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지,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유별난 ‘진돗개 승부욕’도 골프에서만은 예외다. 마음먹고 드라이버를 휘두르면 300야드를 훌쩍 날려 보낸다니 가끔 OB가 나더라도 스트레스는 화끈하게 풀릴 성싶다.
“미들홀에선 더러 원온도 합니다. 하지만 드라이버샷이 그린 30~40m 앞에 떨어지면 어프로치가 서툴러 보기, 더블보기를 예사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