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코칭스태프. 왼쪽부터 허정무 감독, 정해성 코치, 김현태 코치.
“실력이 비슷한 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실력차이입니다. 기회를 안 놓치는 게 진짜 기술이죠. (박)지성이, (이)동국이, (박)주영이 같은 선수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들어가 기회를 놓치곤 하거든요. 그래서 축구가 어려운 겁니다. 뇌에서 가장 먼 곳이 발 아닙니까. 그런 발을 손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축구가 쉽지 않은 거죠.”
▼ 우루과이 전에서 특히 그런 아쉬움이 컸습니다. 나중에 4강까지 오른 팀과 대등하게 잘 싸웠지만, 경기 직후 허 감독의 말씀대로 “골을 너무 쉽게 내주고 골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우루과이는 조직력이 예선경기에서보다 더 탄탄했어요. 포를란·수아레스·카바니 등 공격수 3명의 공수전환이 빠른 데다,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이 중원을 든든하게 지켰습니다. 우리로선 포를란을 어떻게 봉쇄하느냐가 고민이었죠. (김)동진이나 (이)영표를 붙이자니 우리 밸런스가 무너질 것 같아 결국 우리 식대로 갔습니다. (김)정우가 포를란을 좀 더 신경쓰기로 하고요. 이렇게 전반을 마무리하면 후반에 분명 기회가 올 것으로 봤습니다. 실제로 기회가 왔고요.
그런데 미처 생각이 못 미친 게 있었어요. 후반에 나설 때 ‘경기를 뒤집자’고 마음먹었어야 하는데, 만회골을 넣는 데만 급급했던 겁니다. 역전을 하려면 만회골을 넣고 난 뒤의 마음가짐과 움직임에 대해 미리 생각했어야 해요. 이걸 생각해두지 않은 탓에 동점을 만든 후 선수들이 안도한 나머지 한순간 진공상태가 생겼고 다소 느슨한 플레이를 한 겁니다. 아차 싶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우루과이가 그 빈틈을 놓치지 않더군요.”
허 감독과 기자는 초면이다. 우직한 허 감독은 약간 낯을 가리는 편이었고, 축구 취재 경험이 없는 기자는 ‘무지’의 소치로 그의 코멘트에 그때그때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주지 못했을 터. 그래서 처음 얼마간은 ‘아이스 브레이킹’에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월드컵 얘기가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자 그는 눈빛을 달리하며 본격적으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국민 상당수가 축구전문가로 거듭난 만큼, 허 감독의 ‘리뷰 :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지루하지만은 않을 듯해 옮겨본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에서 마라도나에게 태클을 거는 허정무 선수.
“그리스는 원래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을 노리는 팀이지만, B조에서 우리를 반드시 잡아야 할 상황이니 절대 수비 위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게 아주 보기 좋게 들어맞았죠.
아이고…그런데 아르헨티나 전은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어요. 어차피 이기리라고 생각한 경기는 아니지만, 전반만 실점 없이 버티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봤죠.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도 잘 버텼으니까. 아르헨티나의 찬스 대부분은 메시를 통해 이뤄지기에 메시를 영표에게 맡기고, 동진이를 영표 자리로 보내고, 주영이를 원톱으로 내세웠죠. 하지만 초반에 실점을 하고 나니까 이 구도가 무너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