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프라 완비…4년 내 ‘연구중심 약학대학’ 유치”
- 산학협력단장 때 3년간 연구비 3400억 끌어와
- “숲, 호수, 둘레길로 ‘가장 가고 싶은 대학’만든다”
- 2학기부터 ‘레지덴셜 칼리지’ ‘오픈 캠퍼스’ 시범 시행
전북대는 지난 1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 수준의 논문(SCI논문) 증가율 전국 1위, 이공계 교수 1인당 SCI급 논문 수 국립대 1위, 재정 지원 사업 증가율 국립대 1위, 가장 ‘잘 가르치는 대학’ 평가 전국 1위, 향후 5년간 지원되는 대학 특성화 사업 전국 1위 등의 눈부신 성과를 냈다.
지난해 12월, 이 대학의 ‘선장’이 바뀌었다. 전임 서거석(61) 총장이 8년(연임)의 임기를 마치고 간선 투표로 새롭게 선출된 신임 이남호(56) 총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이 총장은 전임 총장 시절 산학협력단장을 맡아 재임 3년 동안 무려 3400억 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유치한 인물이다. 전북대의 괄목상대할 발전의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9명의 후보가 난립한 총장 선거에서 4차 선거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끝에 1순위에 오른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2순위 후보와 함께 교육부 장관의 임용 제청을 받은 이 총장은 청와대 인사검증도 무난히 통과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총장에 임명됐다.
2월 6일 오전 9시40분, 취재진은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20분쯤 일찍 총장실을 찾았다. 총장에게 결재를 받거나 보고하려는 대학 관계자들로 부속실은 분주했다.
“하하하….”
접견실에서 여러 사람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개 좀 딱딱하고 더러 엄숙하기까지 한 여느 대학 총장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잠시 후 이 총장이 취재진을 맞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껑충한 키, 조금 마른 몸매. 정장이 잘 어울린다.
“학생 없다고 문 못 닫죠”
▼ 취임한 지 50일 정도 지났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침 8시 반쯤 출근하는데, 서울 출장 갈 일이 많아요. 우리 지역 출향(出鄕) 인사들과 동문들, 기관장들 이런 분들을 주로 뵙죠. 낮에는 일정이 빠듯해서 차분하게 뭘 집중력 있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보고를 받아요. 주말에는 전화도 덜 오고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보고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하고, 시간도 충분하니까요.”
▼ 주말이 따로 없다는….
“거의 없습니다. 주말 저녁까지도(웃음).”
▼ 막상 대학총장을 맡아보니 어떻습니까.
“정말 무거운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산학협력단장도 해봤지만, 그때와는 무게감이나 책임감 이런 것들이 완전히 달라요. 사실 잠도 잘 안 오고, 깨어 있을 때는 단 1초도 학교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개인 사생활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 현재 전북대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떤가요.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 특히 국립대학들이 많이 어렵죠. 학령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정원 감축 문제가 있는데, 거점 국립대학엔 공공의 책무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기초학문이랄까, 보호학문이랄까, 예체능 부문 같은. 사립대학은 학생 자원이 없으면 언제든 문을 닫으면 되지만 거점 국립대학은 그럴 수가 없거든요. 또 하나, 재정 문제가 심각합니다. 정부의 반값 등록금 정책이 지난 6~7년간 계속됐습니다. 인상은 없고 동결 또는 인하. 동결은 인하나 똑같습니다. 자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야 하니까요.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든 대학의 공통적인 어려움이죠.
우리 대학의 경우 전임 총장이 이끈 지난 7~8년간 급성장했습니다. 지표상으로 고도성장을 해왔는데, 성장에는 그늘이란 게 있게 마련이잖아요. 그걸 구성원들이 분담해왔던 거죠. 그 시간이 길어지다보니까 피로감 같은 것이 좀 있습니다. 총장이 새로 바뀌니까, 다들 그런 피로감을 좀 풀어주겠지 하는 기대가 있는데…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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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 해법은 ‘모험생’
▼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라는 비전을 제시했는데, 바로 그런 의미인가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죠. 보다 근본적인 것은 각 교수님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누수가 된 부분을 없애고 하는 방식으로의 성장은 여기까지다, 이제 이 단계에서 우리가 최소한 현상유지 또는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성장의 시대에는 개별 교수님의 역량에 의존하고 그걸 축내는 방식이었다면, 성숙의 시대에는 뭔가 새로운 기준을 찾아서 주춧돌과 대들보를 세워 지붕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죠.
성장이 빠른 변화라면 성숙은 바른 변화, 또 성장이 외형적인 지표나 수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성숙은 가치나 브랜드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대학 순위만 가지고는 브랜드를 만들기 어려워요. 또 명문대학들이 재미 봤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흉내 내서는 한발 앞서갈 수 없어요. 우리 대학만이 잘할 수 있는 것, 남들은 못하는 것, 그런 자원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자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휴양경관 자원을 첫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전북대처럼 도심에 있으면서 구릉지에 숲과 호수를 가진 대학이 흔치 않거든요. 그동안 그 가치를 잘 몰랐는데, 그걸 활용해서 큰 숲 속에 있는 대학, 캠퍼스 둘레길이 있는 대학, 세계에서 가장 가고 싶은 대학으로 만드는 게 순위 경쟁하는 것보다 손쉬운 방법이라고 봅니다.
또한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이 동문이고, 현대시의 시조 가람 이병기 선생의 발자취도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딴 ‘이병기·최명희 청년문학상’은 국내 대학 공모전 중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입니다. 그걸 중앙 언론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북대의 이미지가 되고 인지도를 높여주면 우수학생 확보, 취업률 향상, 발전기금 유치 등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런 게 바로 ‘성숙’이라고 봐요. 그러면 구성원들의 피로감도 덜어질 겁니다.”
▼ 현재 전북대의 취업률이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죠, 중위권 정도. 그 점에선 대학들이 다 어렵고, 고민거리가 많죠. 취업률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어떤 대학이 높으면 또 어떤 대학은 낮을 수밖에 없어요. 일자리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거잖아요. 저희 졸업생들은 지금까지 스펙을 가지고 서울 명문대학 졸업생들과 경쟁해왔는데, 그 방법으로 취업할 수 있는 학생이 10~20%쯤 됩니다. 그럼 나머지 80~90%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문제잖아요.
스펙만으로 경쟁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해법은 대학의 인지도, 평판을 바꿔놓든지 학생들의 컬러(color)를 분명히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모든 대학이 모범생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는데, 이제는 ‘모험생’이 필요한 시기죠.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 위해 부딪쳐보고 고민하면 문제 해결 능력이나 창의력이 생기고, 또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공동체 리더십과 배려심을 키워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업에 전북대 학생은 모험정신이 아주 잘 훈련된 학생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오픈 캠퍼스’와 ‘레지덴셜 칼리지’ 프로그램(상자기사 참조) 등은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얼마 전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창업 선도대학’으로 선정됐는데, 이것이 전북대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창업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진로나 취업 등 모든 프로그램이 다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갈 겁니다. 모범생이 아니라 모험생을 만들어내는. 창업이라는 게 테크닉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도전정신, 모험정신이 필요하죠.”
“투자해야 수확량 늘어”
▼ 산학협력단장 시절, 3400억 원에 달하는 산학연구비를 끌어온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비결이 뭡니까.
“먼저 투자해야 합니다. 저는 농사짓는 것을 예로 듭니다. 우리가 가을에 수확을 많이 하려면 그만큼 좋은 종자를 사와서 뿌리고, 부지런히 잡초도 뽑고, 필요하면 좋은 비료도 쓰고 저수지도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돈이 들어갑니다. 그걸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야 해요. 지금 당장 돈이 없다고 종자도 싼 것 쓰고, 저수지 만들 돈이 없다고 천수답 만들면 수확량이 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쓸 돈이 더 없어지고, 그다음엔 더 줄여야 되죠. 그동안 그런 악순환이 반복됐죠. 저는 그것을 선순환 구조로 바꾼 겁니다. 교수들이 연구 및 학술 진흥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22가지 사업을 새로 벌이고, 관련 예산도 70억 원이던 것을 150억 원으로 2배 이상 늘렸으니까요.”
▼ 어떤 효과가 있었습니까.
“일단 연구비 수입과 지출이 증가합니다. 우리 대학 내 인프라가 구축되죠. 덕분에 기성회계에서 그동안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쓰던 예산이 절감됩니다. 또 간접비라는 게 있습니다. 연구비를 받아오면 ‘세금’을 뗍니다. 학교도 그만큼 수입이 늘어요. 그걸로 또 투자할 수 있거든요.”
2014년 12월29일 전북대 진수당에서 열린 이남호 총장 취임식.
야트막한 건지산(해발 99m) 둘레를 따라 자리 잡은 전북대 캠퍼스 전경.
“우리 대학에서는 처음인데요. 교학부총장은 대학원장을 겸직하면서 교무처, 학생·취업지원처, 입학본부 등을 관장하고, 대외협력부총장은 산학연구처, 대외협력처 등을 관장하면서 약학대학유치추진단장을 겸직하도록 했습니다. 이들 두 분한테 실질적인 권한을 많이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야 저한테 시간이 생깁니다. 대신 총장은 방향을 제시하거나 미션을 주죠. 남는 시간은 주로 대외활동과 대학 각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데 활용하려고 합니다.”
▼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은.
“앞에서 말씀드린 ‘모험생’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당장 올해 2학기부터 ‘레지덴셜 칼리지’와 ‘오픈 캠퍼스’ 시범 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 내에 건지산 둘레길, 한옥 정문, 한옥형 교직원회관, 전통 한옥 정원 등을 만들어서 국내에서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로 만들고, 문학상 제정, 전통공연예술단 창단 등 전북대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특히 약학대학 유치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죠.”
▼ 약학대학 유치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전망합니까.
“저는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 그걸 수습하는 형태로 처리하는 편입니다. 계산해서 하면 어렵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언론에다 공개적으로 ‘약학대학을 유치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 스스로를 몰아세우기 위한 의도도 있고. 여러가지 여건상 4년 내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조’는 대화·타협의 과정
▼ 교육부 쪽에서 반응이 있습니까.
“아직은, 전북대가 약학대학 유치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는 정도죠.”
▼ 약학대학 유치를 위한 특별한 전략이 있습니까.
“창조경제 시대에는 약대 인재 양성의 목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약학대학의 교육 목표는 약사 배출이었습니다. 약학대학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학부모와 학생이 약대를 선택하는 이유가 약국을 개업하기 위해서거든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약대 졸업생의 약국 종사자 비율은 80%인데 연구직 종사자 비율은 20%에 불과해요. 그런데 얼마나 우수한 인재들이 약학대학엘 가고 있습니까. 저는 그 인재들이 약국보다는 신약 개발이나 우리 사회에 보다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창조경제 시대의 인재 양성 목표가 돼야죠.
일본의 경우 (약대 졸업생 중) 약국 종사자가 40%, 연구직 종사자가 60%이고 미국은 거의 50대 50 정도예요. 선진국들에서 신약이 개발돼 나오는 이유는 약대의 인재 양성 목표가 약국 종사자 배출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전북대도 바로 신약 개발을 매개로 한 연구 중심의 약학대학을 생각하는 겁니다. 저희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주변 인프라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임상연구 분야로 의대, 치대, 수의대가 있고 또 기초학문으로 백업할 수 있는 자연대가 있고 자원을 다루는 농대, 환경생명자원과학대학이 있습니다.”
▼ ‘목재 건조학’ 분야에 오랜 연구 경험을 갖고 있는데, 총장직 수행에 도움이 됩니까.
“그럼요, 많이 되죠. 나무가 쇠보다 다루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쇠는 무생물입니다. 무생물은 다루는 사람이 열심히만 하면 됩니다. 나무는 생물입니다. 생물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욕구가 따로 있어요. 나무를 다루려면 대화도 하고 타협도 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 구성원이 다 생물이잖아요. 사람이잖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조정하고 타협하고 설득하는 게 필요한데 그게 협상이잖아요. 건조가 바로 그런 과정입니다.”
▼ 어떤 총장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냥 ‘멋진 총장이었다’,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어요. 제 자신을 많이 버리고 희생해야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거주형 대학) 단순한 거주 공간에 머물던 기존 대학 기숙사를 학습은 물론 공동체 활동, 인성교육 등을 통해 삶과 배움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바꾼 새로운 개념의 기숙 형태. 전공교육은 해당 학과에서 이뤄지고, 방과 후 기숙사에서 전인교육을 실시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시작으로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등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들이 시행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몇몇 대학이 도입해 운영한 결과 학생, 학부모, 교수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대는 신입생 전원을 한 학기 이상 기숙사에 입주시켜 이들에게 지역사회와 봉사, 대화와 협상의 기술, 리더십 세미나 등 다양한 공동체 학습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한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창의적 글쓰기와 예술창작 활동, 건강한 신체를 위한 체육활동도 병행할 계획이다. 오픈 캠퍼스(Open campus·열린 교정) 대학 8학기 중 최소 1학기 이상을 해외에 머무르면서 수업을 듣거나 현지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 전공 영역과 언어 영역, 봉사 영역, 문화탐방 영역 등으로 프로그램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소수민족인 마오리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옷과 생활도구에서 디자인에 대한 독창적 영감을 얻을 수 있고, 남미에선 생생한 문화탐방과 아울러 스페인어를 배울 수도 있다. 물론 전북대와 교류하는 해외 유수 대학들에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도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