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호크 도입 연기의 속뜻

미국 공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이러한 이유로 군은 전작권 전환이 예정돼 있던 2012년 이전에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를 도입하기로 하고 2005년부터 미국과 관련 협의를 진행해왔다. 당초 핵심기술 유출 우려를 이유로 수출을 거절하던 미국 측은 이명박 정부 들어 판매를 허용키로 했지만, 이번에는 한국 측이 경제위기에 따른 국방예산 감소와 전력증강 우선순위 조정 등을 이유로 2015년으로 도입을 연기한 바 있다. 대신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중심으로 중고도 무인정찰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글로벌호크와 중고도 정찰기는 동급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감시범위와 성능 차이가 크다.
이러한 정책변경의 외형적인 원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향후 수년간 운용할 수 있는 국방예산의 규모가 상당부분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정부는 2006년 수립된 ‘국방개혁2020’을 ‘국방개혁기본계획’으로 수정해 621조원의 소요예산을 599조원으로 삭감한 바 있고, 국방부가 요구한 전년대비 7.8% 규모의 예산 증액안을 3.6% 증액으로 마무리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이 “차관이 장관에게 보고도 없이 예산삭감을 청와대에 독자적으로 보고했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관계부처와 청와대에 보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군 전력구조 건설의 방향에 관해 청와대가 갖고 있는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고 당국자들은 입을 모은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미군의 지원, 특히 정보자산 협조가 유지되는데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고성능 감시·정찰자산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정부 핵심관계자들의 판단이 그것이다. 오히려 한정된 국방예산을 북한의 비대칭 위협이나 비정규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데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는 것. 천안함 사건 직후 쏟아진 “그간 군이 과도한 대양해군·전략공군 건설론에 경도되어 실질적인 위협을 감당하는 작업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 그간 무기도입과 관련해 군이 전문성을 주장하며 정확한 안보환경 분석에 근거하지 않은 ‘쇼핑 리스트’를 무분별하게 관철해오는 바람에 합리적인 예산책정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인식도 권력핵심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부터 청와대 외교안보자문단 모임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수차례 선을 그은 바 있다”고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