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5일(현지 시각)의 화재로 폐쇄됐던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12월 7일 재개관한다. 같은 달 7일과 8일에 거행되는 재개관식은 초대된 사람만 참석 가능하다. 일반인에게는 9일 개방한다. 재개관 행사는 TV로 세계 각국에 중계될 예정인데, 아마도 지난해 5월 6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진 찰스 3세 대관식의 화려함을 넘어서기 위해 프랑스가 자존심을 걸고 준비하는 ‘세기의 쇼’가 될 전망이다. 영국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참을 수 있다면 프랑스가 아니다.
이 글에서는 12세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진 때부터 이 성당에서 연주했던 새로운 음악과 그 음악의 탄생 배경을 짚어보고,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오르간이 설치돼 있는 이 성당의 구조와 음향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12월 7일 재개관하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Gettyimage]
2019년 4월 16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뒤덮고 있다. [뉴시스]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조와 음향
노트르담 대성당같이 라틴식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십자가의 밑부분에 해당하는 성당의 출입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동쪽을 바라보는 십자가 위쪽엔 제단이 위치한다. 그리고 동서로 길게 늘어진 건물과 남북으로 교차하는 십자가의 중심에 첨탑이 세워진다. 이 첨탑의 바로 아래에서 동쪽 제단 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이 성가대가 위치하는 자리다.
성당 내부에선 서쪽 출입구부터 동쪽 제단까지 길게 이어진 통로만 보일 뿐, 이 성당이 십자가 모양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이 성당의 자랑인 오르간은 서쪽 출입구 바로 위에 설치된 장미창 바로 아래에 있는데, 동쪽 제단 쪽에서 밀려오는 성가대의 소리와 출입구 쪽에서 밀려가는 오르간 소리가 통로 중간에서 만나 성당 전체를 가득 채우는 음향 구조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전통적으로 4명의 수석 오르간 주자를 두고 있다. 한 연주자가 한 해에 3개월씩 맡아 연주하며 당대의 가장 뛰어난 오르간 주자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이 자리를 차지한다.
출입구가 있는 서쪽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면 정면에 두 개의 탑이 보인다. 오른쪽의 남쪽 탑에는 이 성당에서 가장 큰 종으로 프랑스혁명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종인 ‘에마뉘엘’이 걸려 있다. 왼쪽의 북쪽 탑은 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꼽추’의 주인공 콰지모도가 기거하던 곳으로 ‘마리’ ‘가브리엘’ ‘앙주’ 같은 이름을 가진 9개의 종이 걸려 있다. 이 종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자적으로 제어되도록 개량돼 악기처럼 소리를 낼 수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전통 복원운동과 고딕건축
1804년 12월 2일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회화 작품.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위키피디아]
노트르담 대성당의 한 오르간 주자는 이 성당의 오르간 소리가 건물 내부에 반사돼 다시 돌아오는 데 약 7초가 걸리며, 연속된 음이 7초 간격으로 메아리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마치 시간이 영원히 회귀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이 회귀 경험의 비밀은 고딕건축이 만들어낸 높은 천장과 궁륭(穹窿)에 숨어 있다. 궁륭이란 아치(arch)를 여러 개 겹쳐 무게를 효율적으로 분산하는 건축 기법인데, 고딕 성당에는 특별히 늑재 궁륭(肋材穹窿·Rib Vault) 이라는 아름다운 궁륭이 사용된다.
13세기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돔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Gettyimage]
12세기 노트르담 악파와 다성음악
고딕건축은 12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이즈음 카페왕조의 프랑스 왕들은 늘어나는 인구를 기반으로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를 추구했고, 그 결과 파리는 유럽 최대 도시가 됐다. 이 시기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는 스콜라 철학이 태동해 번성했고, 1215년 세워진 파리대학은 스콜라 철학의 중심지가 됐다. 파리대학 설립을 후원한 필리프 2세는 루브르성을 지어 왕궁으로 삼고, 선왕이던 루이 7세가 1163년 시작한 노트르담 대성당 건축도 계속 후원했다. 1285년 즉위한 필리프 4세 때 프랑스의 중앙집권화는 절정에 이른다. 프랑스의 주권을 강화하는 가운데 로마 교황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해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겨버린 왕이 필리프 4세다.
프랑스가 유럽을 제패하고 파리가 유럽 최대 도시로 발전하면서 신학·철학과 새로운 건축의 중심지가 돼가고 있을 때, 서양 중세 음악사에서 가장 혁명적 변화가 파리에서 일어난다. 교회에서 다성음악(polyphony)이 허용된 것이다.
이전까지 서유럽 교회에선 신앙적 일치를 강조하는 ‘우나보체(Una Voce·하나의 목소리)’라는 개념이 중시됐다. 교회에서 한목소리로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개인주의를 배제하고 통일된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다. 12세기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노트르담 악파가 등장하기 전까지 교회음악에는 단 하나의 선율만이 허용됐다. 초기 기독교의 다양한 공동체에서 발전한 교회음악은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 권력의 질서가 확립되면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표준화되고 통일됐으며, 이 과정에서 그리스 전통이 포함된 밀라노의 암브로시안 성가를 제외한 다른 전통은 모두 사라졌다. 교회 안에선 여자가 노래할 수 없었고, 오르간을 제외한 다른 악기는 모두 사용이 금지됐다.
하나의 목소리만 허용됐다고 해서, 초기 중세음악이 화성에 무지했던 것은 아니다. 교회 밖의 세속음악에선 이미 다성음악이 유행하고 있었고, 동로마 교회의 비잔틴 음악에선 여자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성의 교회음악 참여가 허용되고 있었으며 악기도 사용되고 있었다. 더욱이 소년들이 오랫동안 교회음악에 참여해 왔기 때문에 어린이의 높은 소리가 어른들의 낮은 소리와 화성을 이루어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는 것을 교회음악가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오래된 규약과 전통이 수백 년 동안 다성음악을 교회 안에서 금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고딕양식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워지면서 단성음악의 한계가 극명히 드러났고, 교회는 다성음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목소리만으로는 이 거대한 건축물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10개의 같은 악기가 내는 소리보다 5개의 서로 다른 악기가 내는 소리가 실제로 더 크게 들리는데 다양한 주파수가 겹치면서 음향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고딕건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천장이 높아진 공간을 단순한 주파수 대역만을 사용하는 단성음악으로는 채우기는 힘들었다. 두 배 이상 커진 공간에 노래하는 사람 수를 두 배 이상 늘린다고 해서 공간이 소리로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숙련되지 못해 완벽히 같은 음정을 내지 못하는 성가대의 소리는 주파수 간의 상쇄와 간섭으로 인해 더 작아질 수도 있다.
레오냉 (Léonin)과 페로탱 (Pérotin)이 노트르담 악파의 대표적 음악가다. 이들은 교회음악의 성부를 여러 개로 확장시켰고, 심지어 각 성부에 서로 다른 리듬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다성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화성적 다성음악이 아니고 각 성부가 각기 다른 멜로디를 갖는 음악이었는데, 바로 이점이 현대음악 감상자들이 중세음악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것이 거대해진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채우기 위해서 고안된 방법이라 이해하면 중세음악은 중세건축의 신비로움과 함께 한없이 매력적으로 들리게 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산란하는 빛과 높은 천장에 부딪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서로 다른 목소리, 다양한 리듬이 오랜 세월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켜온 실제 주인인 것이다.
레오냉과 페로탱 이후에 등장한 14세기의 프랑스 음악가들은 이 시대의 음악을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낡은 예술)’라고 하면서 스스로 ‘아르스 노바(Ars Nova·새 예술)’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음악 사조를 주창했다. 이 사조의 대표적 음악가인 필립 드 비트리(Philippe de Vitry)는 리듬과 박자를 더 세밀하게 표시할 수 있는 기보법을 고안해 중세 프랑스의 성당들을 더 화려한 소리로 채웠다. 이 음악 사조는 세속음악에도 영향을 줬으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음악으로 발전하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아마도 서유럽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낭만주의 음악 이전에 프랑스 음악이 이탈리아 음악에 큰 영향을 준 마지막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건축의 대표적 건물로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지만 서양 클래식 음악사에서도 핵심적 변곡점에 위치한 아름다운 공간이다. 음악을 지배하던 자들은 항상 그 시대의 가장 거대한 공간을 지배하는 자들이었으며, 음악은 거대해지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악기와 형식을 발전시켰다. 프랑스가 놀라운 건축물로 음악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다음 장면은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 건축이다. 이때 만들어진 음악은 바흐로 이어져 바로크 기악 음악의 절정을 이룬다.
김원
● 1970년생
●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 2023년 제1회 대한민국언론인대상 수상
● ‘당신의 밤과 음악’ ‘노래의 날개위에’ ‘명연주 명음반’ 등 KBS클래식 FM에서 다수의 프로그램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