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있는 건물 드문 한국 박물관
최악의 건물 15·17위, 전부 박물관
밋밋하고 답답한 이건희 컬렉션 기증관
소장품 이야기 대신 관념, 수사만 담아내
일본 나가사키현 미술관 건물 사이로 운하가 흐른다. [이광표]
나가사키항 인근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컬렉션이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건물이 그리 화려하지도 않다. 대신 미술관의 외관이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 건물 사이로 운하가 흐른다. 바닷가에 위치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적지 않다.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루브르 아부다비 박물관은 바닷가 인공섬에 올라앉아 있다. 그러나 건물 사이로 물길이 흘러가는 박물관·미술관은 거의 보질 못했다.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운하의 물길이 건물 사이를 흐르는 것인지, 건물이 운하 위를 가로지르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미술관 2·3층에서 물길을 내려다보는 풍광은 감동적이다. 건물 자체의 디자인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운하 위로 건물을 가로질러 배치하겠다는 그 과감하고 참신한 발상이 돋보인다. 참 많이 부러웠다.
이건희 기증관 설계공모 당선작 유감
10월 2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송현동 국립문화시설’ 건립사업에 선정된 ㈜제제합건축사사무소의 ‘시간의 회복’ 조감도. [문화체육관광부]
문체부와 심사위원회는 설계공모 당선작에 대해 “대한민국다움의 사상적 정신을 소나무와 상징적으로 연결해 다각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다움, 사상적 정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하다.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선정 사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시간의 회복’은 경복궁과 전통 건축에서 보이는 중정형 패턴을 적용한 3개의 건물 안에 상설 전시 공간 5개, 특별 전시 공간 1개를 배치해 전시 콘텐츠에 따라 다양한 구성을 보여줄 수 있고, 전시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관객들은 열린 공간 사이로 자연을 다시 만나게 되는 구성도 우아하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축가에 따르면 외관은 소나무를 활용해 기억 속의 소나무 언덕과 오늘날 송현문화공원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그을린 외피를 통해 오늘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 온 우리의 역사를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송현문화공원 인근에 경복궁이 있는 것을 감안해 전통 건축에 보이는 중정을 건물 3채에 모두 도입했고, 송현동(松峴洞)의 내력을 살려 건물 외관에 소나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을린 소나무 외피를 통해 우리 역사의 시련을 상징하겠다는 것이다. 조감도의 첫인상은 밋밋하고 답답한데 이 설명을 접하니 더욱 무거워진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을 전시하는 공간인데, 왜 이렇게 무거워야 한다는 말인가. 바로 옆에 경복궁이 있다고 해서 전통 건축의 구조를 원용할 필요가 있는지, 지금은 소나무도 별로 없는 곳인데 과거 송현(소나무 언덕)이었다고 해서 소나무 이미지를 가져올 필요가 있는지, 여기에 굳이 역사의 시련을 가미할 필요가 있는지, 꼬리를 물고 의문이 이어진다. 관념과 레토릭(수사)은 가득하지만,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기증관의 무거움이라고 할까.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 월간 ‘SPACE’가 건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지어진 현대건축물 가운데 최악의 건축물을 선정하는 설문조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17위를 기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과 성곽 이미지의 간극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개관했다. 박물관 건축물은 당시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정림건축의 작품이 당선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건물 한 동으로 이뤄져 있다. 건물의 길이는 무려 300m에 달한다. 매우 길다. 건물 왼쪽에서 3분의 1 지점쯤에 중앙 통로가 있고 왼쪽은 사무 공간이고 오른쪽은 전시 공간이다. 건물 앞에는 크고 둥근 연못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연못 뒤로 육중하고 길쭉한 옅은 갈색 건물 한 채가 가로놓인 형태다. 육중하기는 한데 그 이상의 감동은 없다. 관람객의 느낌은 그냥 육중함에서 멈추어버린다. 미적인 매력이나 건축 자체의 감동은 발견하기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 건축디자인에 대해 설계자는 전통 성곽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물관 건물 앞에서 성곽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건축 개요’란에 적혀 있는 건물 설명을 보자.
“견고한 성곽은 외부와의 단절이라는 긴장감을 자아냄과 동시에 우리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한다는 안정감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자체가 두 벽을 세워 만든 공간으로 벽면을 지붕 높이까지 뻗어 오르게 함으로써 성벽의 견고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는 천장으로부터 자연채광이 각층 깊숙이 미칠 수 있게 하는 실리적인 기능을 고려한 것이다.”
설명은 이러하지만 관람객들은 이 의도와 의미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건 건축가의 관념이고 레토릭이다. 그것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전달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설령, 성곽의 이미지를 우직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실제 건물은 그저 답답하게 다가온다. 300m짜리 일자형 건물 하나가 떡 하니 놓여 있는 형국이다 보니 실내의 관람 동선도 단순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세종시에는 국립박물관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의 대표적 문화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곳엔 국립어린이박물관, 국립디자인박물관, 국립도시건축박물관, 국립기록박물관, 국립디지털문화유산센터, 통합운영센터 및 통합수장고가 단계적으로 들어선다. 따라서 박물관별로 공모를 거쳐 건축설계안을 마련한다. 그러나 첫 계획의 하나로 2016년 종합운영계획을 공모한 바 있다. 일종의 마스터플랜이었는데, 당시 당선작 조감도는 전체 디자인이 밋밋하고 답답했다. 높이가 비슷한 넓고 납작한 육면체 건물이 죽 늘어선 모습이었다. 실제 설계안은 아니라고 해도 어쩌면 이렇게 멋없는 디자인이 당선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그 후 박물관단지 건립이 진척되면서 개별 박물관의 설계안이 나오고 있다. 종합계획안 조감도의 디자인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많다. 2013년 12월 개관한 국립어린이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국립박물관단지의 조감도가 나온다. 박물관 건물이라기보다는 행정 관공서 건물을 보는 듯하다.
이건희 컬렉션이 불러일으킨 관람 열기
2021년 4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유족들은 국립중앙박물관(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1488점), 광주시립미술관(30점), 대구미술관(21점), 박수근미술관(14점), 이중섭미술관(12점), 전남도립미술관(21점)에 이건희 컬렉션 2만3181점을 기증했다. 그 기증은 압도적인 양과 빼어난 수준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언론과 대중은 “세기의 기증”이라고 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 반응은 기증작 전시의 관람 열기로 나타났다. 그해 여름부터 기증작 전시가 시작됐고, 이듬해인 2022년부터 본격화했다. 기증작 전시가 시작되자 치열한 예매 전쟁이 벌어졌고, 전시장에서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 전시는 지금도 열리고 있다. 현재는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증받은 작품 가운데 일부를 골라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해외 순회전(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미국 시카고 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도 시작한다. 이건희 컬렉션과 기증의 의미와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기증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강원도 자연과 유유자적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백자 청화 동정추월무늬 항아리’를 두드러지게 전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울러 전시장의 각 코너에 주제어를 적은 자그마한 명패를 걸었다. 정겹고 따스한 분위기, 레트로풍의 분위기가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든다. 이건희 컬렉션의 철학과 의미를 강원도 정서와 연결한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들은 이렇게 대중을 만나왔는데, 송현문화공원에 들어설 이건희 기증관의 설계공모 당선작을 보니 이런 매력을 경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일방통행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7곳에 기증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 소장 전시하겠다고 했다. 그러곤 서울 송현동으로 부지를 결정했다. 왜 굳이 한곳으로 모으겠다는 것인지, 왜 굳이 서울에 세우겠다는 것인지. 문체부의 결정 과정과 그 결과는 시종 불합리했다.
기증관 설계공모 당선작 보도자료를 보면, 설명 어느 구절에도 이건희 컬렉션 이야기가 없다. 소나무가 자랐다는 송현동 언덕만 떠오른다. 그리고 바로 옆에 경복궁이 있다는 지리적 위치가 떠오른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관한 다채로운 스토리는 찾아볼 수 없다. 송현동이라는 공간이 중요하고 이건희 컬렉션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송현동만 있고 이건희는 없다
주변 공간과의 조화, 송현동의 맥락에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 환경이나 주변 공간의 역사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이건희 기증관이다. 이건희 컬렉션과 그 기증의 의미를 어떻게 건축으로 구현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할 텐데 이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도 없다. 이건희 컬렉션을 어떻게 보여주고 대중과 어떻게 만나도록 할 것인지, 기증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반응과 전시 관람 열기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등등 이건히 컬렉션 기증의 특징을 추출해 전시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어떠한 암시나 단초도 발견할 수 없었다.
11월 한 달 동안 송현문화공원 현장에 당선작과 2~5등 수장작의 조감도 사진을 전시한다고 해서 현장에 가보았다. 패널에 적힌 설명을 보니 대부분 일반적인 설명이다. 건축물이나 설계안을 설명할 때 으레 나오는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설명뿐이다. 이건희 컬렉션과 그 기증 작품을 담아낼 건축물로서의 특징은 하나도 없다.
‘세기의 기증’을 담아내는 박물관·미술관이길 바랐는데, 그래서 이건희 컬렉션과 이건희 컬렉션 기증의 특징을 보여주는 관점이나 철학이 드러나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었다. 명색이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인데, 이건희 컬렉션과 연결된 특징은 단 한 줄도 보이지 않다니, 충격적이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을 소장 전시하는 박물관인지, 그냥 경복궁과 인사동 옆 송현동 빈터에 들어서는 미술 박물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문체부가 가칭으로 제시한 ‘송현동 국립문화시설’이라는 명칭에도 잘 드러난다. 문체부는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작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수장 전시 시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송현동 국립문화시설’이라고 했다. 비록 가칭이라고 해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관련 홈페이지에는 송현동 미술관을 가칭 ‘이건희 기증관’이라고 하고 있는데 왜 공식적인 자료에서는 굳이 ‘송현동 국립문화시설’이라고 칭하는 것일까. 이 명칭만 보면, 정체불명이 아닐 수 없다. 국립문화시설이라니, 대체 무슨 공간인지 알 수가 없다.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국내외적으로 흡인력과 응집력이 있을 텐데, 굳이 두루뭉술하고 모호하게 국립문화시설로 명명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참을 수 없는 기증관의 무거움
송현동 박물관인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관인가. 당선작을 보면서, 보도 자료를 읽으면서 시종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이건희 기증관을 짓겠다면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그렇고 설계한 건축가도 그렇다, 그래서 당선작을 보면 설렘이 생기지 않는다. 그저 밋밋하고 무거울 뿐이다. 경복궁 옆에, 인사동 옆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옆에, 서울공예박물관 옆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도심에 또 하나의 미술 박물관이 생기는구나, 하는 정도다.
전통 건축, 중정, 소나무, 외피, 역사…. 너무 무거운 관념이다. 저 관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이건희 컬렉션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그 괴리가 한없이 커 보인다. 나가사키현 미술관의 운하 물길은 그 자체로 구체적이고 생생한데 말이다.
* ‘명작의 비밀’은 이번 호가 마지막회입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