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국민의힘, 명태균 리스크 없애려면 당에서 사람 키워라

[특집 | ‘점입가경’ 위기의 보수] 尹 대통령에게 명태균은 ‘오리 엄마’였나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4-11-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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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 정부 여당 위기 본질은 ‘시스템의 위기’

    • 당직자 공채로 뽑고 외부에서 정치 신인 데려오니…

    • 공채 당직자가 초보 정치인 설익은 의사결정 뒷받침

    • 초보 운전자에게 스포츠카 운전 맡긴 꼴

    명태균 씨가 11월 9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창원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명태균 씨가 11월 9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창원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였다. 9월 5일, 인터넷 매체 ‘뉴스토마토’는 김 여사가 올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김영선 전 의원에게 “기존 지역구가 아닌 김해로 이동해서 출마하라”는 요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한 것이기에 파장은 컸다. 이 과정에서 명태균 씨의 존재가 처음 부상했다. 중앙 정치에서 생소했던 인물의 등장에 정치권과 언론이 술렁였다.

    이윽고 대선 전부터 김 여사가 명 씨에게 각종 자문을 해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그를 사기꾼 취급하며 대응을 거부했다. 여기에 발끈한 명 씨가 김 여사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김 여사는 그를 “명 선생님”으로 모셨다. 더불어민주당이 10월 31일 윤 대통령과 명 씨의 통화가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하자 파장은 한층 더 커졌다.

    의혹 제기와 반박, 새로운 증거의 등장, 이어지는 해명은 두 달째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끊임없이 제기되는 주장 중에도 교집합은 있다. 윤 대통령 부부가 정치에 입문한 2021년 명 씨를 처음 만났고, 당시 이런저런 자문을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도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정치 초보’의 ‘오리 엄마’

    오스트리아 출신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1903~1989)는 비교행동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비교행동학은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야생동물 서식지를 찾아다니고 때로는 집에서 직접 키우기도 하면서 동물의 행동과 그 기저에 깔린 본능을 탐구했다. 그 공로로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비교행동학 연구에 힌트를 제공한 건 기러기목 오릿과에 속한 조류인 회색기러기다. 1937년 그는 회색기러기를 키우며 관찰을 시작했다. 그 회색 기러기는 3년쯤 지나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는 새끼 기러기가 부화했다. 당연히 그는 새끼 기러기를 어미에게 넘겨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새끼 기러기가 소리를 꽥꽥 지르며 그의 손을 떠나길 한사코 거부하는 게 아닌가. 태어나서 눈뜨고 처음 본 과학자를 제 어미라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로렌츠 박사는 조류의 이러한 본능을 ‘각인(刻印)’ 효과라고 명명했다. 오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생명체를 어미로 인식한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정치인은 대단히 계산적인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본능에 사로잡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정치인이라는 존재가 본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변수를 오롯이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치적 성공은 실력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이 은사나 비선에 마음을 기댄다. 때로는 무속신앙에 자신의 운명을 내던지기도 한다.

    정치에 갓 입문한 윤 대통령 부부에게 지역에서 이름 날리는 정치 컨설턴트의 존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혹자는 명 씨를 정치 사기꾼 정도로 취급한다. 뭐든 다 본인이 한 거라는 허세는 그런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명 씨가 보여준 수법들을 봤을 때, 그가 정치와 선거에 꽤 감각 있는 인물인 건 부정하기 어렵다. 지역 언론과 여론조사 업체를 활용한 선거운동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명 씨는 2021년 당시 4선 김 전 의원과 손잡고 있는 인물이었다. 김영선이 누구인가.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한창일 때 수조 물을 퍼 마셔 이미지를 크게 구기긴 했지만, 1996년 무려 신한국당에서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한 중진의원이다. 1990년대에 젊은 여성 변호사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더군다나 2021년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던 정당이었다. 전통적 보수 지지층이 선호했던 윤석열과 2030세대 남성들이 일으킨 바람에 올라탄 이준석은 처음부터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입당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그로선 당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여기에 기성 정치권을 불신하는 ‘검사 윤석열’의 캐릭터가 더해졌다.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에 입당”(2021년 12월 23일)하고 정치인들을 “자기들끼리 해 먹는, 무식한 삼류 바보들”(2021년 12월 29일)로 취급하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당내 이해관계와 거리가 먼, 믿을 만한 전략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 막 정치에 눈뜬 윤 대통령 부부에게 명 씨가 ‘오리 엄마’ 같은 존재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상황이었다.

    기업 같은 보수 vs 동아리 같은 진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힘 중앙당사. [뉴시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힘 중앙당사. [뉴시스]

    윤 대통령이 만일 국회의원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정치권에 이런저런 경험이 있었다면 명 씨도 여러 조언자 중 한 명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대선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그에게 믿을 만한 조언자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네트워크가 빈약할수록 이미 한배 탄 식구들의 입김은 세진다. 그만큼 시스템은 무력화된다. 명태균 리스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윤 대통령 부부가 아니었어도 명 씨 같은 인물은 국민의힘에서 언젠가 한 번은 등장했을 것이다. 그런 비선의 등장을 부추기는 건 국민의힘 당내 문화다.

    흔히 거대 양당의 문화를 비교할 때 보수정당은 기업과 비슷하고, 진보정당은 대학 동아리 같다고들 말한다. 예전부터 기업, 관료조직과 가까웠던 보수정당은 작동하는 방식도 그들과 유사했다. 예컨대 사무처 운영 방식만 놓고 봐도 그렇다. 국민의힘계 정당들이 공채로 중앙당 당직자를 선발해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민주공화당을 창당한 김종필 총재가 당직자 공채 제도를 도입한 이래 보수정당은 공화, 민정, 민자, 신한국, 한나라, 새누리, 자유한국, 미래통합,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오랜 세월 공채 제도를 유지해 왔다는 건 그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시스템대로 돌아간다는 건 분명 강점이다. 시스템이 유지되는 만큼 경험과 노하우도 축적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과제도 생긴다. 바로 구성원들 사이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정치인은 정치인이요, 당직자는 당직자고, 보좌진은 보좌진이다. 당직자와 보좌진 중에서 정치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빈도는 민주당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관계 측면에서도 끈끈하지 못하다. 국민의힘 당직자와 보좌진 사이에서는 “의원들이 직원들을 노비 취급한다”는 볼멘소리가 종종 새어 나온다.

    반대로 민주당계 정당에선 구성원들이 대학 동아리처럼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화 세력이 중심이 된 정당이라는 역사적 배경도 일정 부분 작용한다. 특히 86세대 정치인들은 2000년 전후 정계에 대거 입문하면서 민주화운동 시절의 네트워크와 문화를 그대로 정당에 이식했다. 민주당에서 국회의원과 보좌진, 사무처 직원이 서로 형, 동생 하는 건 예사다. 직군 사이에 놓인 칸막이도 국민의힘만큼 높지 않다. 정치인, 당직자, 보좌진을 넘나드는 일이 흔하다. 이런 네트워크는 외부로도 확장된다. 민주당은 과거에는 운동권, 2010년대 이후에는 시민단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상호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시민단체 인사가 정치인이 됐다가 낙선 후 다시 시민단체로 돌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양당 문화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대학 동아리 같은 민주당의 성격은 특유의 배타성으로 이어진다. 인력풀 자체가 자기네 네트워크 안에서 돌고 도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형, 동생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한번 틀어지면 그걸 원래대로 회복하기란 매우 어렵다. 이땐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크게 작용한다.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일극 체제는 이런 토양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치인부터 일선 직원까지 모두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건 때로 큰 강점이 된다. 민주당에선 사실상 모든 구성원이 정치인이다. 언제든 출마할 준비가 돼 있는 상비군이 각 단위에 즐비하다. 장기로 비유하면 왕 후보군은 별로 없을지 몰라도 차·포·마·상 등 그를 뒷받침할 장수군은 늘 풍족한 격이다.

    국민의힘 시스템의 위기

    정치인은 정치인이요, 직업인은 직업인인 국민의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당직자나 보좌진을 동지가 아닌 부하, 아랫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선거철이 되면 당에서 일해 온 사람들을 끌어올리기보다 외부에서 명망가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후보군을 충원해 왔다. 지난 총선 때도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원 상당수를 정치 경력이 없는 신인들로 채웠다. 진보 진영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인물 여럿이 공천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좀 나올지 몰라도 그를 뒷받침할 인력풀은 점점 줄게 된다. 당을 위해 헌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명망가도 굳이 당의 역사와 유산을 존중하지 않는다. 민주당 정치인들과 비교해 객(客)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면 된다. 요즘은 잘 안 쓰는 말이 됐지만, 보수정당에서 제 안위만 챙기는 ‘웰빙 정치인’이 유독 많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국민의힘에선 선거 때마다 법조인·언론인·관료·학자 등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합류해 당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당선된 사람들은 당에 남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떠났다. 보수정당이 줄곧 여당을 도맡았던 시절에는 이런 식의 운영이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전략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입장에선 매번 참패하는 국민의힘보다 탄탄한 수도권 지지세를 바탕으로 많은 의석을 점유하는 민주당이 매력적 선택지가 됐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역으로 과거 민주당이 취했던 전략을 채택했어야 했다. 당에서 사람을 키우고, 훈련된 인물을 선거 때 배출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명망가 영입 전략은 필연적으로 당과 겉도는 정치인을 배출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스타가 된 정치인에게 당의 전통과 유산을 존중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렇게 등장한 정치인은 당의 시스템을 건너뛴 채 개인의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기 쉽다. 명태균 리스크는 이러한 국민의힘 관행이 낳은 구조적 위기의 결과다.

    윤 대통령과 명 씨의 통화 녹취가 공개된 이후 세간에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태블릿 PC의 등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물론 그 녹취만 가지고 당장 윤 대통령 부부가 공천에 개입했다든지 국가사업에서 명 씨의 편의를 봐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공개되는 증거들이 국정농단 사태에 버금가는 파장을 일으킬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교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암막 뒤에서 국가 자원을 함부로 쥐고 흔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명망가 영입 전략에는 늘 비선 실세가 존재할 위험이 따른다. 보수정당은 수십 년 이어져 내려온 당직자 공채 등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도 정작 그 시스템을 지휘할 리더들은 외부에서 데려옴으로써 불필요한 위기를 초래했다. 보수정당이 오랜 역사에서 완성해 온 시스템이 초보 정치인의 설익은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데나 이용되는 것도 문제다. 값비싼 스포츠카를 사놓고 초보 운전자에게 운전을 맡긴 꼴이다. 대한민국의 여당 정도 되면 정치인 몇몇의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게 정상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지금 이 홍역을 치르고도 그 교훈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비선 개입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 1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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