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고액·상습 체납자의 재산 은닉 백태

[Focus] 친인척 계좌·암호화폐 활용, 비영리단체 출연…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4-11-22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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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납 세금 중 실제 징수율 고작 6%

    • 미술품 위탁, 음원 수익 증권, 암호화폐 투자

    • 재산 드러나지 않은 ‘정리 보류 체납액’ 110조 원

    • 체납자 사망 시 상속 포기하면 받아낼 방법 없어

    [Gettyimage]

    [Gettyimage]

    기초자치단체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공무원 A씨는 1년 전 고도로 지능화한 탈세 케이스를 적발했다. 유통 사업을 하는 고액 체납자 B씨가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를 수색해 아파트 매매계약서와 자동차 매매계약서를 찾았는데 매수자 명의는 체납자가 아닌 동거인으로 돼 있었다. B씨의 체납액은 소득세만 약 2억5000만 원. 더욱이 호화로운 생활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서 발견된 것은 명품 가방과 귀금속 몇 점이 전부였다. 화폐 다발, 외화, 골드바 같은 현금성 자산은 눈에 띄지 않았다. B씨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법인 계좌를 경유해 동거인에게 자금을 이체하는 방식으로 초고가 외제차와 아파트를 구입하고, 폐공장을 임대해 외화와 골드바, 현금을 옮기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했다. 해당 지자체는 B씨가 동거인 명의로 취득한 아파트에 대해 가압류 및 사해행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B씨와 동거인을 체납 처분 면탈범으로 고발했다.

    전문가 조력 받아 은닉 수법 날로 진화

    B씨 사례처럼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있음에도 지능적 수법을 동원해 재산을 고의로 숨겨 세금 납부를 회피하면서 호화 생활을 영위하는 고액·상습 체납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2억 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람은 고액 및 상습 체납자로 분류돼 이름이 공개된다. 2022년 말 누계 기준으로 4만 명이 명단에 올랐다. 이들이 밀린 세금은 42조5609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실제 징수가 이뤄진 금액은 2조5916억 원으로 전체 체납 세금의 6.1%에 불과하다.

    체납액 징수가 저조한 이유는 악성 체납자들이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자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 숨기는 등 지능형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데 있다. A씨는 “과거에는 세무 당국과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세무조사를 시행하면 금고 밑이나 베란다 등에서 현금과 외화, 금괴 같은 현금성 자산이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요즘은 다르다. 현금성 자산을 집에 쌓아둔 경우를 찾기 힘들뿐더러 세무조사에 대응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는 수법 또한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어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씁쓸해했다.

    10월 16일 국세청은 올해 30조 원에 가까운 세수결손이 예상됨에 따라 고액 체납 및 불복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침은 2023년 2조9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추적조사 실적을 거뒀음에도 현금 징수 비중이 10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면서 올해 30조 원에 가까운 세수결손을 막고 다각적 방법으로 세수를 조달하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현금 징수 비율 점점 떨어져

    강민수 국세청장은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탈세 대응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위해 필요한 세무조사는 적시에 엄정하게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강민수 국세청장은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탈세 대응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위해 필요한 세무조사는 적시에 엄정하게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재산추적조사 실적을 보면 2024년 6월 기준 국세의 누계 체납 건수는 517만2940건, 체납 금액은 107조7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23년 징수하거나 압류한 액수는 전년(2조5629억 원) 대비 12.2% 증가한 2조8750억 원을 기록했다. 국세청의 재산추적조사 실적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면서 9년 전인 2014년(1조4028억 원)보다 104.9% 증가했다. 반면 전체 추적조사 실적 대비 현금 징수 비율은 크게 떨어진다. 2023년 현금 징수 비율은 43.4%로, 2021년(61.4%)보다 18%포인트 하락했다.

    정부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세수 조달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악성 체납자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법까지 저지르며 재산 은닉에 열을 올린다. A씨는 “어떻게든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들이 많다”며 “악의적 체납 행위는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하고 건전한 납세 문화 정착을 저해한다”고 꼬집었다.

    과세 당국은 국세 수입이 저조할 때 재산추적조사를 활용해 부족한 세수를 일부 보전한다. 한 예로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세수 결손 우려가 제기되자 고액 체납자 추적 조사에 나서 그해 2조5564억 원을 징수 및 압류한 바 있다.

    과세 당국이 체납자의 재산을 추적할 때는 현금성 자산 확보에 중점을 둔다. 체납자 거주지 또는 사업장 등에서 현금이나 금괴 등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면 부족한 세수를 곧바로 메울 수 있다. 반면 타인 명의로 돌려놓은 재산은 체납자가 빼돌린 재산을 되찾아오는 사해행위취소 청구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그 처리 과정이 복잡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해당 자산이 체납자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체납자 명의로 재산을 등기해 압류 및 공매 절차를 거치면 비로소 국고로 귀속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체납자가 경제적 및 심적 부담감을 호소하며 현금으로 세금을 납부하면 현금 징수 실적을 올리게 된다. 다만 체납자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끝까지 납부하지 않고 버티면 채권으로 남는다.

    토지 양도 대금 비영리법인에 출연

    ‘비영리법인 재산 출연’은 세금 은닉의 전형적 수법으로 통한다. 특히 체납자가 고령일 때 본인이 설립한 비영리법인에 전 재산을 출연해 강제 징수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매매업자 C씨는 토지를 고액에 팔았음에도 양도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양도소득세 등 수십억 원 납부를 고지했으나 C씨는 이를 고스란히 체납했다. 국세청은 C씨가 강제징수를 회피하기 위해 양도 대금을 비영리법인에 출연한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비영리법인과 C씨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체납 처분 면탈범으로 고발한 뒤 고액 및 상습 체납자 명단 공개 대상자로 선정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입금하는 과정에서 친인척 계좌에 숨겨 납세의무를 회피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자신의 계좌에 입금 내역이 남지 않게 하려고 친인척 명의 계좌 여러 개에 소득을 분산해 놓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현금을 인출해 생활비로 사용하는 것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D씨는 해외 지사에서 받을 돈을 친인척 명의 계좌로 수차례 입금하게 한 뒤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이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D씨는 이런 식으로 빼돌린 소득 10억 원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D씨의 꼼수는 국세청 감시망에 적발됐다. D씨의 외화수입금 계좌 및 친인척 금융계좌에 대한 거래 내역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재산 은닉 혐의가 확인돼 사해행위취소 청구소송을 당했다.

    하지만 악성 체납자들 사이에서 C씨와 D씨의 수법은 하수로 취급받는다. 사업 매출을 누락하기 위해 사업장을 폐업 신고하고, 가족 명의로 동종 사업을 영위하며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매출 누락에 대해 고액 세금이 부과되면 휴업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위장 이혼한 뒤 배우자 명의 사업장에 수입 금액을 은닉하는 체납자도 있다. 이런 경우 과세 당국은 어떻게 은닉한 재산을 찾아낼까.

    서울 소재 한 지자체의 세금 징수 담당 공무원은 “체납자가 주소와 달리 가족 명의 또는 전 배우자 명의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는지 여부부터 확인한다”며 “실거주가 확인되면 가택수색을 통해 가족 명의 또는 전 배우자 명의 사업장에 은닉한 재산을 찾아 압류한 뒤 공매해 세금을 징수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미술품 감정가로 활동하는 E씨는 부동산을 처분한 후 양도소득세를 신고하지 않아 10억 원 이상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다.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배우자에게 증여하는 방식으로 체납 처분을 회피하기까지 했다. 국세청은 E씨가 부인 명의로 박물관을 운영하며 고미술품을 감정하고 경제를 주도한다는 정보를 수집하고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E씨가 해당 박물관의 실질적 소유주임을 확인하고 수색을 집행한 결과, 수억 원 상당의 도자기를 압류해 국세 채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정리 보류 체납액 분류되면 사실상 징수 불가능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재산추적조사 실적을 보면 2024년 6월 기준 국세의 누계 체납 건수는 517건2940건, 체납 금액은 107조7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23년 징수 및 압류액은 2조8750억 원에 불과하다. [뉴시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 재산추적조사 실적을 보면 2024년 6월 기준 국세의 누계 체납 건수는 517건2940건, 체납 금액은 107조7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23년 징수 및 압류액은 2조8750억 원에 불과하다. [뉴시스]

    최근 강남에서는 미술품이나 투자 상품으로 재산을 숨긴 뒤 세금을 체납하는 일이 빈번하다. 미술품 위탁 렌털, 음원 수익 증권 등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해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하는 수법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신종 투자상품에 투자한 체납자 등 최신 투자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 분석을 통해 재산 은닉 혐의가 있는 41명을 재산추적조사 대상자로 선정하고 강제징수를 추진하고 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활용한 재산 은닉도 문제다. 외환과 달리 암호화폐는 국가 간 거래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맹점을 악용해 암호화폐를 은닉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올해 하반기부터 암호화폐의 가격 상승과 거래량이 증가함에 따라 암호화폐로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에 대한 기획 분석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암호화폐거래소 5곳을 대상으로 100만 원 이상 체납자의 이용 실태를 조사해 35명의 암호화폐 6000만 원어치를 압류한 상태다.

    문제는 재산 은닉 수법이 교활해지면서 체납자에게서 드러난 재산이 없거나 채권을 현금화하지 못해 ‘정리 보류 체납액’으로 쌓여 있는 체납 세금을 징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리 보류 체납액이란 체납자의 소재 파악이 안 되거나 소득이 없는 경우, 무자력(無資力·채무가 재산의 합을 초과하는 것) 상태인 경우 등으로 강제징수나 집행이 불가능해 행정력 낭비를 막고자 강제 징수 절차를 ‘잠정적으로’ 종료한 체납액을 뜻한다. 2024년 6월 기준 정리 보류 체납액은 89조9000억 원으로, 전체의 83%에 달한다. 징수 가능성이 높은 정리 중 체납액은 17조7000억 원(16.5%)에 불과하다. 110조 원에 육박하는 누적 체납 세금의 대부분이 장부상 채권일 뿐 실제 걷을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더욱이 체납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상속포기나 한정상속이 가능해 사실상 정부가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국세청이 은닉 재산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도 수십조 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하니 국가재정 사업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체납세금 징수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체납 징수 역량뿐만 아니라 악성 체납자에 대한 강제징수와 행정처벌 강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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