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호남 껴안기④]
호남 비례대표 추천제로 중도보수 싹 틔운다
朴탄핵 거치며 10%이던 호남 지지율 5%대로 폭락
지난 총선처럼 호남 후보도 못 채우는 사태 막아야
호남서 한 표 만들면 전국서 3표 생긴다
‘동행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25% 할당으로 호남 신인 찾는다
당 지도부 적극 지원 나서 김종인 필두로 호남 중요성 강조
지지율 상승을 넘어 영호남 아우르는 전국정당 되겠다
국민의힘은 호남 진출의 선봉장으로 정운천(비례대표) 의원을 선택했다. 국민통합위원회(이하 통합위원회) 위원장에 정 의원을 선임한 것. 정 위원장은 보수 세력 중 드문 호남 출신 정치인이다.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직을 내려놓고 2년 뒤인 2010년 돌연 전북으로 내려가 2016년 새누리당 후보로 전북 전주을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했다. 보수의 불모지라 불리는 호남 지역에서 고군분투해 성과를 낸 것이다.
정 위원장은 장기전에 능하다. 그는 1984년 농업으로 성공하겠다며 적수공권으로 전남 해남에 자리 잡았다. 20년 뒤 그의 꿈은 이뤄졌다. 2004년 그의 별명은 ‘벤처농업계의 이건희’였다.
국민의힘 서진(西進)을 두고 정 위원장은 어떤 장기 전략을 세웠을까. 9월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 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국민의힘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은 정운천 의원. [조영철 기자]
文 분열 외칠 때, 국민의힘은 국민 통합 좇는다
- 국민의힘이 말하는 국민 통합은 어떤 의미인가. 자세히 설명해 달라.“지금까지의 정치는 상생보다는 분열로 지지자를 모았다. 9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단적인 예다. 의사나 간호사 모두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국민 건강을 위해 노력한 의료진이다. 당장 의사단체가 정부와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대립각을 세우니 대통령은 의사가 떠난 자리에서 고생하는 간호사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선악 구도를 만들어 지지자를 결속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정치는 지지자를 결집할 수는 있겠으나 확실한 적을 만들게 된다. 통합의 정치는 합리를 기반으로 한다. 편을 갈라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다. 분열의 정치는 극복해 나가야 할 과거의 유산이다. 동서 지역감정 해소를 시작으로 세대·성별·이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 통합을 위해 힘쓸 예정이다”
- 통합위원회가 호남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까.
“국민의힘이 가장 모르는 곳이 호남이다.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진행 과정만 봐도 호남 지역과 보수당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28개 지역구 중 12곳에만 후보를 냈다. 지역구 선거에 나갈 사람이 없을 정도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취임 초기 “호남 지역에 후보도 못 내는 정당을 전국정당이라 볼 수 있느냐”며 호남 약세를 지적한 바 있다”
호남서 국민의힘 지지율 25% 정권교체도 가능
8월 19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참배하고 있다. [동아DB]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경우 약세 지역으로 꼽히는 영남에서도 25%가량의 지지율이 나온다. 반면 국민의힘은 약세 지역 호남에서 지지율이 5%대에 불과하다. 이를 25%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다.”
2012년 대통령선거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남 지역 득표율은 10%, 전북 지역은 13.2%, 광주는 7.8%였다. 반면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권역별 득표율을 보면 미래통합당 전남 지역 득표율은 5.6%, 전북과 광주는 각각 7.6%, 4.0%를 기록했다. 10%대의 미미하던 전남 지역 보수 지지층이 더 줄어들었다.
- 9월 2일 T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수도권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36.6%로 민주당(33.7%)보다 높다. 보수 정당 지지율이 상승세인데 왜 호남에서만 지지 기반이 특히 약하다고 보나.
“가장 큰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다. 전국민이 보수 세력에 실망한 사건이다. 지지자가 적은 호남은 그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민주당의 행보에 호남 사람들이 만족한 부분도 있다. 특히 문재인 정권 초반 1기 내각에 호남인사를 대거 중용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20명 국무총리(이낙연·전남 영광),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김상곤·광주), 법무부 장관(박상기·전남 무안), 국토교통부 장관(김현미·전북 정읍), 농림수산식품부장관(김영록·전남 완도), 방송통신위원장(이효성·전북 익산) 등 6명이 호남 출신 인사였다.
-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지지율 25%를 달성하면 정치권 판도가 크게 바뀔까?
“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자가 한 명 생긴다면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2~3표가 생기는 셈이다. 호남 지역 국민의 마음을 돌리면 호남 출신 국민의 마음도 돌아간다. 서울·수도권, 영남 등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호남 출신 지지자들은 호남 지역 주민들과 지지 성향이 비슷하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호남 지지율이 15%만 넘어도 국민의힘이 전국 지지율로 민주당을 이길 수 있다.”
8월 13일 당시 미래통합당은 국민통합위 출범을 의결하면서 호남 지역에서 ‘동행 국회의원’ 갖기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동행 국회의원’ 운동은 다른 지역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현역 의원이 호남 지방자치단체를 배정받아 예산을 따내거나 민원을 청취하는 등 내 지역구처럼 살핀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 위원장은 당시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희망하는 의원이나 연고가 있는 의원을 중심으로 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행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25%로 호남 마음 녹인다
8월 13일 전북 남원군 금지면 집중호우 피해지역인 용전마을을 찾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뉴스1]
“‘동행 국회의원’ 운동을 통해 국민의힘 의원이 호남의 현안을 챙기고 지역 간 협업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호남 지역 41개 지방자치단체를 현역 의원들이 직접 챙기게 된다. 호남 지역에만 당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건 아니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지역 간 자매결연 등을 통해 영호남의 상생을 노리는 방식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전북 전주와 경북 김천 간의 철도 건설 계획이 있다. 철도가 지나는 지역의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협력해 영호남이 함께 이득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원래 ‘제2지역구 갖기’라는 이름이었지만 호남 지역이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에 ‘동행 국회의원’이라고 운동 이름을 변경했다.”
- 비례대표도 호남 출신을 배려한다고 들었다.
“‘호남인사 비례대표 우선 추천제’를 당내에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 원내 구성을 보면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 20번까지가 당선 확정권으로 보인다. 그중 25%인 5명을 호남 인사로 채울 계획이다. 호남인사 비례대표 우선 추천제는 국민의힘이 혼자 힘으로 해보는 석패율제다. 호남 지역 국민의힘 후보는 2위로 떨어지더라도 비례대표로 추천해 의원직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 호남 지역 지지율 상승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호남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새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보수 정치에 관심을 가진 젊은 인재가 호남에 있다 해도 사실상 당선이 거의 불가능하니 도전하려는 사람이 없다. 비례대표를 통해 이들에게 목적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비례대표 당선이 된 뒤에도 계속 지역구를 관리하며 당원 설득을 거쳐 당헌·당규에 이 내용을 명문화할 것이다.”
- 비례대표 25%면 꽤 큰 숫자다. 당내 반발은 없나?
“누구든 비례대표 우선 추천제 대신 호남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제시한다면 그 안을 채택하겠다. 대안이 없어도 반발하는 당원이 있다면 물심양면으로 설득하겠다. 나는 2019년 전주 상산고 자사고 지정 취소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은 이력이 있다. 반발이 있을 확률도 낮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통합위원회의 비례대표 우선 추천제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9월 3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취임 100일 맞이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권 20위 내 호남 인사 25% 추천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지역감정 극복하면 호남도 보수 지지 가능
- 8월 19일 김 비대위원장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등 최근 국민의힘이 호남 지역 구애에 본격적으로 나선 듯 보인다.“김 비대위원장이 비대위를 맡을 때부터 ‘국민의힘이 전국정당의 위치를 회복하려면 호남 지지율을 높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 전체에 있었다. 김 비대위원장의 5·18민주묘지 사과를 기점으로 실천에 나선 셈이다.”
- 지지율 상승을 노린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통합위원회의 궁극적 목표는 지지율 상승이 아닌 국민 통합이다. 폭우 피해지 방문도 국민의힘 당 지도부는 호남을 먼저 찾았다.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국민의힘과 호남이 친해질 통합위원회가 특별위원회가 아닌 상설 위원회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당이 선거를 위해 잠깐 호남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 통합을 위해 지역감정부터 극복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 국민의힘의 호남 구애에 지역 주민 반응은 좀 달라졌나?
“비대위원장의 사죄, 국민통합위원회의 행보 덕분에 지역에서도 국민의힘을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10년 전 한나라당 명함을 들고 전주를 찾았을 때는 주민들이 ‘한나라당’이라는 이름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정치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지역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주는 주민도 생겼다. 지금이 기회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해서 정부의 모든 정책을 기꺼워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최저임금 등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지역에서도 불만이 많다. 국민의힘이 이 불만을 듣고 해결에 나선다면 호남에서도 국민의힘이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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