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보수는 날아드는 혜성 보며 멸종 직감하는 공룡 신세”

[Special Report] ‘소수파 집권세력’ 전락한 보수, 최후 골든타임

  • 조귀동 ‘이탈리아로 가는 길’ 저자·정치경제 칼럼니스트

    입력2024-07-22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고령화·지방·탈종교…보수에 들이닥친 3개의 혜성

    • 60대 ‘근로 노인’ 20년 전보다 10% 이상 ↑

    •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해진 ‘보수 표밭’ 등한시

    • 인천·경기 유권자 호남 19.9%, 충청 18.3%

    • 개신교세 위축, 수도권 지지기반 타격

    • 1990년대에 머무른 보수, 과거 정치 방식에 안주

    • 보수 기반 ‘기초체력’, 어떻게 키울 것인가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이던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동아DB]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자유당 총재이던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3당 합당을 선언하고 있다. [동아DB]

    2012년 선거와 2024년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보수 정치세력이 어떻게 구조적 열세에 처하게 됐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고령자 지지율이 하락했다. 2012년 대선에서 60대 이상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은 72.3%(KBS·MBC·SBS 출구조사 기준)였는데,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67.4%(연령별 지지율을 주민등록인구수로 가중평균)로 하락했다. 특히 60대 지지율은 62.9%에 그쳤다. 두 번째로 충청권과 제주도 등에서 민주당 독주가 확연해졌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대전·세종·충남·충북에서 54.4%, 제주도에서 50.5%를 각각 얻었다. 그러나 올해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 득표율을 합치면 충청 45.2%, 제주도 37.3%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지지세를 자랑하던 개신교의 지지도 뚝 끊겼다. 2012년 대선 당시 개신교 단체들은 조직적으로 박 후보를 지지했는데, 교회는 유권자를 풀뿌리 수준에서 보수 진영에 가깝게 만드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였다.

    보수가 몰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건 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대졸 화이트칼라층이나 바로 뒤 세대인 1970년대생의 강고한 친(親)민주-반(反)보수 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단단했던 지지기반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나아가 과거의 지지기반이 도리어 보수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고령화, 지방 문제, 탈종교화 등 한국 사회 변화가 보수에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다. 보수는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과거 지지에 안주해 제대로 신경 쓰지 않은 ‘텃밭’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로 노인’이 민주당 지지하는 까닭

    고령화는 노화 속도가 늦춰지고, 노인 건강이 개선됨을 의미한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와 강민구 빛고을전남대병원 교수 등이 2008∼2020년 국민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해 65세 이상 노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노쇠(frailty)’ 상태에 있는 노인 비율은 2008년 41.1%에서 2020년 23.1%로 급감했다. 거꾸로 건강한 노인 비율은 같은 기간 28.7%에서 44.2%로 증가했다. 60∼64세 인구가 병원에서 진료받은 평균 일수는 2013년 29.82일에서 25.62일(건강보험진료통계)로 감소했다.

    건강하고 근로 능력이 있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경제활동 참가도 활발해졌다. 60∼64세 인구의 고용률은 2004년 53.5%→ 2014년 58.5%→ 2024년 4월 64.6%로 급격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 고용률은 29.8%→ 31.8%→ 40.1%로 늘었다. 올해 4월 현재 50~54세 고용률은 79.4%, 55~59세는 76.4%다. 60대 초중반의 경제활동은 질적 측면에서는 몰라도 양적 측면에서는 50대 중후반과 큰 차이가 없다. 더욱이 70대 이상 취업자 수와 증가율도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70대 이상 취업자 수를 따로 집계하기 시작한 2018년 126만8000명이던 70대 이상 취업자는 올 상반기에 192만5000명으로 6년 만에 65만7000명(52%)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에서 물러나면서 과거 정치의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근로 노인’은 현재나 미래의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60대의 윤석열 대통령 부정 평가비율이 2022년 하반기 가파르게 상승한 배경이다.

    노인 일자리의 상당수는 보건·사회복지 분야에서 나온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간접적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분야다. 5월 고용보험 산업별 가입자 자료를 보면 60∼64세 가입자의 16.6%, 65∼65세 가입자의 20.8%가 ‘사회복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병·의원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은 3.3%와 2.8%다. 건물관리·경비·청소 등이 속한 ‘사업시설 관리, 사업 지원, 임대 서비스’ 종사자(60∼64세 13.3%, 65∼69세 18.8%)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사회복지나 보건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55∼59세의 경우 사회복지 서비스업 종사자는 11.6%, 병·의원 종사자는 4.2%다.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자산이나 노후보장 정도에 따른 불평등 문제가 중요해진다. 모아둔 자산이나 인적자본을 활용해 노후에 필요한 소득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국민연금 등 노후보장 체계가 1980년대 이후 점진적으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구인회 서울대 교수 등의 연구(‘행정자료를 활용한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심층분석’·2021)에 따르면, 2019년 국민연금 연 수급액은 410만 원에 불과했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42.0%였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2040년까지 동일 출생 연도 내 인구 집단에서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노동시장 참여 여부뿐만 아니라 자산소득, 사업소득,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 등에서 모두 격차가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었다.

    보수는 노인들을 표밭으로 여겼지만, 가난하고 건강한 노인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대응은 등한시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을 공약하고, 2014년 기존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부분 도입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노인들에게 절실한 일자리는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적극 나선 문재인 정부나 2010년대 각종 복지사업에 열을 올린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로 만들어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인들이 느는 건 세대 효과보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민주당이 더 부합하기 때문이라 봐야 할 것이다.

    DJP 연합으로 시작된 충청 공략…확장된 수도권化

    국민의힘의 뿌리는 1990년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 출범에 있다. 3당 합당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보수정당이 다양한 유권자 집단을 끌어안은 캐치올파티(catch-all party·모든 연령과 계층을 포괄하는 정당)가 됐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김영삼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을 선호하는 온건한 중산층, 서울 화이트칼라나 부산·울산 경남 일대의 대공장 블루칼라들을 포섭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호남을 포위하는 지역 엘리트 연합의 형성이다.

    한국의 지역 기반 정당은 지역 명문고와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 법조인, 고위 관료, 기업인, 언론인으로 일하는 재경(在京) 엘리트, 중앙정부의 계획과 재원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지역개발 사업, 그리고 해당 지역의 현지 엘리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재경 엘리트와 지역의 현지 엘리트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중앙정부의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다른 지역 엘리트 연합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지역 기반 정당이다. 민자당의 출범은 호남을 고립시키고, 영남과 충청 지역이 연합하는 형태로 안정적인 장기 집권 체제를 꾀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대가 이뤄졌다. [동아DB]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대가 이뤄졌다. [동아DB]

    ‌민주당은 이에 대항해 두 방향에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첫 번째는 수도권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지지세 강화다. 두 번째는 충청 등 비호남 지역에서의 기반 확대다. 1997년 대선을 계기로 영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도 똑같은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지역등권론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시작된 충청권 공략은 2000년대 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로 이어졌다. 2010년대 경기도 남부와 충청권의 급격한 개발과 연담도시화는 이 지역을 ‘확장된 수도권’으로 만들었다. 반면 보수는 변변한 지방 개발 담론이 없었다.

    물론 혁신도시 같은 민주당 주도 프로젝트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방 유권자 처지에서 뭐라도 하는 민주당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울 부동산에 매달리는 보수정당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전통적 지역개발 방식이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진 상황에서 지방 유권자의 마음이 어느 정당에 기울지는 명약관화하다. 충청과 제주, 강원도 영서 지역에서 민주당 세력은 커지는데 보수정당은 위축돼 온 이유다. 급기야 이제 ‘영남 포위’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가 됐다.

    게다가 충청에서의 세력 약화는 고스란히 수도권 경쟁력 강화에 발목을 잡았다. 한국갤럽 자료(허진재, ‘한국 대선 흐름과 유권자의 변화’·2022)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인천·경기 지역 유권자 가운데 호남 출신은 19.9%, 충청 출신은 18.3%였다. 이주민 비중이 줄어든 지금은 덜하지만, 수도권 선거에서 충청 출신 유권자 집단의 지지가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뒷받침한 경우가 있다. 가령 1995∼1998년 서울 종로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한 건 종로3∼5가 일대의 충청도 이주민 지지 덕분이었다. 충청 지역 이주민 비중이 높은 인천이 어느 순간 민주당의 철옹성처럼 바뀐 것도 이 같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개신교세 위축…탈종교화로 수도권 지지기반 타격

    4월 19일 국회에서 4·10 총선 낙선자를 비롯한 국민의힘 원외 조직위원장들이 국민에게 허리굽혀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4월 19일 국회에서 4·10 총선 낙선자를 비롯한 국민의힘 원외 조직위원장들이 국민에게 허리굽혀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개신교의 위축은 산업화 시기에 성장한 사회조직체들이 이전보다 위축되면서 보수 정치가 풀뿌리에 침투하고, 사람들을 동원해 낼 수 있는 역량이 함께 줄고 있다는 걸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그로 인한 대이주 과정에서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고 원자화된 개인들에게 정신적·사회적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성장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 가정집에서 5명으로 시작해 신자 수가 1979년 10만 명, 1984년 40만 명, 1992년엔 7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탈종교화하면서 개신교세(勢)도 위축되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실시한 ‘2023 한국인의 종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종교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2012년 55.1%에서 2023년 37.1%로 18.0%포인트 줄었다. 개신교 신자는 2012년 22.5%에서 2023년 16.6%로 감소했다. 특히 30대(21→ 11%)와 40대(26→ 14%)에서 신자 감소 폭이 컸다. 정치공학적 입장에서 탈종교화는 수도권 지역에서 보수의 지지기반에 큰 타격을 입힌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곳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과 호남 지역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종교의 영향력 감소와 세속화가 전통적 보수정당에 타격을 준 사례가 여럿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톨릭교회가 주도해 만든 기독교민주당(DC)이 1992년까지 줄곧 여당이었다. 그런데 1960∼70년대 이후 세속화와 도시화 등의 영향으로 교회의 영향력이 줄고, 덩달아 기민당의 지지기반도 위축됐다. 결국 기민당은 몰락하고 중도보수 정당의 지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포르자이탈리아’로 넘어가게 됐다. 한국에서도 교회의 위축이 비슷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수가 “(지구를 향해) 날아드는 혜성을 보면서 멸종을 직감하는 공룡들의 심정”이 된 건 한국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보다, 과거 정치하는 방식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 보니 결국 전통적으로 지지세가 강했던 집단까지도 등을 돌리게 됐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낮은 건 여러 요인이 있지만, 과거와 같은 강력한 보수 지지기반이 없다는 ‘기초체력’ 문제도 상당히 작용한다.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변화무쌍한 정치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기적 캠페인도 감당해 낼 수 없다. 전통적 지지자들의 불만을 사더라도 중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정책을 펼 여지도 적다. 문제는 이 기초체력을 어떻게 다질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거나 장기 계획을 세우는 모습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남아 있는 강성 지지층을 계속 끌어모아서, 그들의 지지라도 붙잡고 가는 행보가 전부다. 이재명·조국 심판론이 먹혀들어 가는 특수한 국면에서 어쩌다 승리하면 좋지만, 그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2등 정당’으로서 몫을 차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보수 정치가 되살아나려면 이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내야 한다.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8월호 표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