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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어법(oxymoron)과 ‘현자(賢者)의 돌’

‘침묵의 소리’‘달콤한 슬픔’‘색즉시공’…대립으로 빚어낸 역설의 미학

모순어법(oxymoron)과 ‘현자(賢者)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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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순어법은 활발한 두뇌활동의 결과물이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를 결합시켜 우리를 더 높은 진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사용된 모순어법은 사고의 폭도 한없이 넓혀준다. 삶의 부조리를 포착하는 통쾌한 ‘말놀이’를 통해 인생의 묘미를 느껴보자.
우리는 1970~80년대를 ‘암울했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유행한 노래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다. 이들의 미성(美聲)과 화음은 어두운 뉘앙스를 풍기는 시적인 노랫말과 어우러져 전설이 됐다. 한국에서는 침묵이 깊어질수록 그 반동역학이 강해져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다. 며칠 전 TV에서 방영된 콘서트에서 사회자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학창시절 소풍을 갔는데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한 학생이 나와서 약 30초간 가만히 있었다. 사회자가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The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를 노래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학생은 인기상을 받았다.”

다음은 ‘The Sound of Silence’의 노랫말이다.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And no one dare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그 환한 불빛 속에서 나는 수많은 사람을 보았지,‘소리 내어 말하지 않지만 속마음을 말하는 사람들을’,‘듣는 척하지만 건성으로 듣는 사람들을’,‘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노랫말 짓는 사람들을’.아무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막지 못하네.)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silence like a cancer grows.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l,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나는 “바보들, 침묵이 암(癌)과도 같이 자라고 있음을 당신들은 알지 못하는군요.당신들을 깨우치는 내 말을 들으세요.당신들에게 내미는 내 손을 잡으세요”라고 말했지.하지만 내 말은 ‘소리 없는 빗방울’처럼 떨어져,‘침묵의 샘에서 메아리’쳤지.)

‘The Sound of Silence’, 즉 ‘침묵의 소리’라는 제목부터가 모순어법, 즉 옥시모론(oxymoron) 수사법을 사용한다. 노랫말 군데군데에도 옥시모론 기법이 드러난다. 잘 알려진 침묵에 관련된 수사로는 thunderous silence(천둥과 같은 침묵), a silent demonstration(침묵시위), Silence is gold, speech is silver(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 등이 있다.

사이 좋은 이혼?

겉보기에는 논리에 어긋나는 듯한 양면가치(ambivalence)를 모순어법을 동원해 기교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1979년 10월26일 밤 박정희 대통령이 급서한 후 신군부세력은 집권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혼란을 야기했다. 혼란을 원했던 측에서 보면 당시의 모습은 clear confusion(깨끗한 혼란)이자, fine mess(멋진 혼란)이었다. 그때의 혼란은 ‘우연을 가장하여 고의적으로(accidentally on purpose)’ 야기된 것이었다.

이미 격언이 된 의미심장한 모순어법도 많다. 영국 시인 테니슨의 His honour rooted in dishonour stood, and faith unfaithful kept him falsely true(그의 ‘영예’는 ‘불명예’에 뿌리박은 채 서 있고, ‘불충한 충성’은 그를 ‘거짓으로 진실’하게 하였소)라는 말이나, 스코틀랜드의 시인 제임스 톰슨의 Loveliness is, when unadorned, adorned the most(아름다움은 ‘장식하지 않을 때’ ‘가장 장식하는 것’이 된다)라는 말, 존 밀턴이 ‘실락원’에 쓴 Out of good still to find means of evil(악의 수단은 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이란 문장은 모순어법의 전형이다.

생활철학의 요소가 깃들인 모순어법도 있다. less is more(덜 받는 것이 득이다), agree to disagree(서로 견해차이를 인정해 다투지 말라), fall back in order to leap the better(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라) 등이다. More haste, less speed(급할수록 천천히)와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Haste makes waste)는 모순어법으로 표현한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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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번역가, 칼럼니스트 yeeeyo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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