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을주 수행을 하는 증산도 신앙인들.
“천지공사는 현재진행형”
인류 구원을 위한 증산의 천지공사는 그가 죽을 때까지 9년간 계속된다. 증산의 천지공사는 우주적 개벽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종교학자들은 증산도가 인류사의 여타 종교운동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이는 무엇보다 이 세상에 대한 증산의 진단과 처방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증산이 행한 천지공사는 다른 종교들처럼 형이상학적 논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병든 하늘과 땅의 상극 질서를 뜯어고치고 만고 신명(神明)들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상생의 새 세상을 열고, 돈의 눈까지 틔워 돈도 선한 사람을 따르게 하는” 근원적이고 구체적인 인류 신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다.
증산도는 “천지공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천지공사의 완전한 실현은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것. 이런 후천선경의 메시지는 서구 근대의 세계관·인간관을 넘어서는 그의 주체적 인간관에서 비롯됐다. 증산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한 문장에 모두 표현했다. 증산도는 이를 하나의 선언으로 간주한다.
“모사재천 성사재인(謀事在天 成事在人).”
하늘은 새로운 세상을 열 새로운 법도를 이미 짜놓았으니 그것을 이룩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자 권리라는 뜻. 유교의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은 것이다. 증산은 도전에서 “이제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놓았으니 제 한도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고 했다. ‘새 기틀을 열’ 인간의 책임과 노력, 후천선경의 새 역사를 여는 인간의 주체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증산은 이와 관련, 주체적 인간관을 움직일 수 없는 불문율로 기정사실화한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니라. 이제 인존시대를 당하여 사람이 천지대세를 바로잡느니라.”
하늘과 땅, 즉 신(神)이나 대자연보다도, 인간이 우주에서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의미. 또 김일부가 쓴 ‘정역(正易)’의 한 구절을 인용해 종도들에게 이런 가르침도 내렸다.
“천지는 일월이 없으면 빈껍데기요 일월은 지인(至人)이 없으면 빈 그림자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인간을 중심으로 움직임을 선언한 일종의 ‘인간 선언’이다. 증산도 종도들은 그가 가난한 인간의 몸으로, 그것도 한국 땅에 태어난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
해원(解寃)과 여성해방 선언
증산의 ‘인간 주체’ 선언은 후천개벽 이후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개방적인 종교 사상으로 성큼 이어진다.
넉넉한 미래관도 함께 따라온다. 증산은 “천한 사람을 우대하여야 속히 좋은 시대가 이르리라”라고 하면서 “그게 후천선경을 여는 첫걸음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서 “이제는 해원(解寃)의 시대라. 상놈의 운수니 사람도 이름 없는 사람이, 땅도 이름 없는 땅이 기세를 얻으리라”라고 말한다. 증산은 역사상 모든 원통함과 한(恨)을 푸는 해원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했다.
해원사상은 요즘 사회과학 용어로는 해방사상에 견줄 수도 있지만, 해방을 맞은 개인 또는 집단이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해방의 완성까지 함축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증산은 수천년 동안 억압 받아온 여성의 인간적 위치를 제대로 잡아주었다.
“이때는 해원시대라. 몇천년 동안 깊이깊이 갇혀 남자의 완롱(玩弄·노리개)거리와 사역(使役·심부름)거리에 지나지 못하던 여자의 원(寃)을 풀어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건곤(乾坤)을 짓게 하려니와, 이 뒤로는 예법을 다시 꾸며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함부로 남자의 권리를 행치 못하게 하리라.”(도전)
명백한 여성해방 선언이다. 즉 해원의 이념은 세상의 위와 아래는 물론 남성과 여성의 위상마저 뒤바꾸는 구체적인 사회개혁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남성에게 비하받고 예속된 상태에서 해방된 여성의 모습은 어떠할까. 장차 여성은 고대 이래로 잃었던 태모(太母)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일까. 증산은 이때 절묘한 균형 감각을 발휘한다.
“부인이 천하사를 하려고 염주를 딱딱거리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쳤으니 이는 장차 부인의 천지를 만들려 함이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되지 못할 것이오, 남녀동권의 시대가 되리라.”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