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 전투병력을 아프간에 보내려면 관련 장비와 물자 이송, 주둔지 건설 등 파병 준비에만 몇 개월이 걸리는 데다 현지에 가더라도 인질이 억류된 장소가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곧바로 작전에 투입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굳이 전문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종류의 작전엔 소규모의 특수부대가 적격이다. 실제로 7월 말 인질사태 해결을 위해 아프간 특수부대가 투입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피랍자 가족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720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아프간 미군기지에서 미군 특수부대로부터 인질구출 전문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군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성격의 부대는 육군 특전사 소속 707특수임무대대(이하 707특임대)다. 한국군에서 유일한 대(對)테러 전문부대인 707특임대는 88서울올림픽 개최와 관련, ‘국가 대테러활동지침’이 제정된 1982년에 창설됐다. 특전사 예하 여타의 공수부대들과 달리 특전사령관 직속인 이 부대는 1개의 고공지역대와 1개의 해상지역대, 2개의 특공지역대로 구성돼 있다.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
707특임대는 한국군 최초의 대테러부대인 606특공부대를 본떠 만들어졌다. 1978년 창설된 606부대는 청와대 경호실 직속으로 비밀스럽게 운용되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직후 소리 없이 사라진 비운의 부대다.
707부대는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 부대와 관련된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606부대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렵다. 물론 언론에 소개된 적도 없다. 그 정도로 이 부대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기자는 아프간 인질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던 8월 중순 우연히 606부대의 실체에 접근하게 됐다. 이 부대 출신 예비역 군인들의 증언을 통해서다. 아프간 인질 구출이 절박했던 때라 그런 훈련을 전문적으로 했다는 606부대의 전설 같은 얘기는 자못 관심을 끌었다.
606부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 그 계기는 1977년 10월에 발생한 독일 민항기 루프트한자 납치 사건이다. 1977년 10월13일 승객 86명을 태운 루프트한자 여객기가 권총과 수류탄을 든 테러범 4명에 의해 공중 납치됐다. 남녀 각 2명씩인 테러범들은 여객기를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강제 착륙시키고는 RAF(Red Army Faction·적군파) 재소자 전원 석방을 요구했다.
관제탑 협상팀과 납치범들 사이에 협상이 벌어지는 동안 독일의 대테러 특수부대인 GSG-9 요원들이 비밀리에 기체에 접근했다. 섬광탄을 터뜨리며 기내에 진입한 이들은 5분 만에 납치범들을 제압하고 승객 전원을 구해냈다. 승객 중에는 경상자가 3명 있었을 뿐 단 한 사람의 사망자도 없었다. 반면 범인 4명 중 3명은 사살됐고 1명은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됐다.
진급 유리하고 청와대와 가까워
독일 연방경찰 소속인 GSG-9은 1972년 뮌헨올림픽 직후 탄생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 창설 계기였다.
GSG-9은 모가디슈 사건을 해결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40여 개 국가에서 대테러 특공대를 만들기 위해 GSG-9에 협조를 요청하는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은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을 불러 대테러 특수부대 창설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