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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이전 ‘Y작전’ 비화

합참, ‘무장병력 투입 및 진압’ 건의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Y작전’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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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미군기지 이전 ‘Y작전’ 비화

2006년 5월4일 평택 대추분교에 경찰이 진입하자 시위대가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이 정도로만 얘기됐다. 하지만 합참의장의 보고가 끝난 후 ‘합참이 큰일 날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국방부 일부 관계자들이 윤 장관에게 ‘완전 비무장’을 건의했다. 실탄은 물론 총기도 아예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어떠한 형태로든 총기를 가져갈 경우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불상사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자칫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혹시라도 현장지휘관이 열을 받아 실탄을 지급하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는 평택에 군을 투입하는 것을 일종의 대민지원으로 봤다. 모 심기 도우러 갈 때 총 들고 가나. 그래서 복장도 체육복으로 하자고 했다.”

“절대 총 쏘면 안 된다”

결국 윤 장관의 지시로 Y작전 계획은 크게 수정됐다. 군인들은 비무장에 체육복 차림으로 작전 현장에 투입됐고, 결과는 성공적인 편이었다. 국가정책을 수행하는 군이 민간 시위대에 두들겨 맞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한 일부 여론도 있었지만.

한 가지 더 바뀐 게 있다. 군 병력 투입 날짜다. 합참 계획은 4월28일에 투입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방부측은 임시국회 회기임을 감안해 투입 시기를 늦추자고 주장했고, 결국 5월4일에 투입하기로 결정됐다. 당시 임시국회에서 국방개혁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던 국방부로서는 민주노동당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기간에 군을 투입하면 민주노동당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판단이 군사적 판단을 밀어낸 셈이다.



투입 시기가 늦춰진 후 국방부 관계자들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 시민단체 등과 접촉하며 시위 농민들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범대위(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측의 강경한 태도로 별 소득이 없었고, 5월4일 예정대로 군이 투입됐다.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에게 확인 취재를 했다. 윤 전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지난 일이라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장하면 안 된다는 원칙, 절대 총을 쏘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합참의 ‘병력 무장’ 계획에 대해선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기본적으로 군인은 이동할 때 화기를 휴대하게 돼 있다.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무장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민(對民)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과격 대응은 위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합참은 ‘총을 가져가되 실탄은 별도 보관하겠다’고 했다. 나는 절대 총을 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사 시위대에 두들겨 맞는 한이 있더라도.

당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이 (병력 출동이) 자칫 5·18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 지론이, 좋은 국민도 국민이고 ‘나쁜 국민’, 즉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도 국민이라는 것이다. 합참의장이 신중한 사람이라 내 지시를 잘 따라줬다. 한명숙 총리와도 그 문제를 협의했다. 어쨌든 일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가. 결국 국민을 상대로 무장을 하지 않았다.”

‘무장’과 ‘진압’의 차이

이상희 전 합참의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합참이 계획한 ‘무장 출동’과 ‘진압’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김태영 육군 1군사령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 사령관은 육군본부를 통한 공식 취재절차를 요구했다. 육군본부측에 협조요청을 하자 국방부로 공을 넘겼다.

기자는 9월6일 오후 국방부 정책홍보실 관계자와 통화한 후 팩스로 질의서를 넣었다. 국방부는 9월12일 답변서를 보내왔다.

질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당시 합참측이 장관에게 보고한 Y-지원작전에는 ‘대추리에 무장한 병력을 투입하고 방어선을 넘어오면 진압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합참이 국방부에 ‘총기를 지급하되 실탄은 따로 보관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유사시 현장지휘관의 판단과 합참의장의 지시에 따라 발포할 수도 있다는 취지였는가. 둘째, ‘무장’과 ‘진압’의 의미를 설명해달라.”

국방부의 답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Y-지원작전’시 시위에 대비해 철조망 외부는 경찰, 철조망 내부는 군부대가 전담했고, 군 임무는 철조망을 훼손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 내부로 진입하는 시위 인원을 경찰에 인계하는 것이었음. 따라서 현지 부대는 총기는 물론 실탄도 휴대하지 않았으며 자위적 차원에서 방호물자인 전투경찰용 방패, 호신봉 등을 휴대하였음.

둘째, ‘무장’과 ‘진압’의 사전적 의미와 차이. ‘무장’은 전투를 목적으로 장비하거나 또는 그 장비를 의미하며, ‘진압’은 진정시켜 억누름을 의미함.”

첫째 답변은 그렇다 치고, 두 번째 답변과 관련해 국방부 정책홍보실 관계자에게 “질문 취지를 몰라서 그렇게 답변한 건지 일부러 엉뚱한 답변을 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물어보았다. 이 관계자는 “합참에서 작성한 것이라 국방부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기자가 “참 재미있는 답변”이라며 웃자 그도 웃었다.

신동아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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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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