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9월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이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국방개혁2020’과 ‘군구조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개혁의 기본 프레임을 읽다 보면 흡사 수학 교사가 칠판에 아름다운 공식들을 쭉 써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공식들만 달달 외우면 어떤 문제라도 다 풀릴 것 같다. 지금까지 국방부가 국민에게 제시해온 개혁안은 바로 그런 수준에서 설명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인사적체’ 해결 난망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이 앞서 말한 인력구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공개된 ‘국방개혁2020’안을 아무리 뒤적여봐도 인력구조나 인사구조 개선안은 없다. 특히 국방개혁기 군의 주축을 이룰 현재의 대령 이하 장교 인력구조는 여전히 노태우 정권 이래의 난맥상을 풀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해법이 누락된 대표적인 문제다.
재앙의 시작은 1989년 군 인사법 개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통해 장교의 정년연령을 연장한 결과 진급적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인사법은 1993년에도 한번 더 개정된다. 그 결과 소령은 43세에서 45세로, 중령은 47세에서 53세로, 대령은 50세에서 56세로 정년이 대폭 연장됐다. 이러한 정년 연장은 애초에는 육군사관학교 임관인원이 전임 기수보다 현저하게 많았던 31기가 대령으로 진급하던 무렵 30기 이하 기수들을 구제한다는 논리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정 당시 53세이던 23기부터 25기가 혜택을 입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이어졌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정년 연장은 지금까지 인력운용 난맥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 육사 28기는 대상자의 79.9%, 29기는 75.4%, 30기는 77.4%가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1968년 1·21사태로 임관인원이 80명 증가한 31기는 그 비율이 69.5%로 뚝 떨어졌고, 이후 32기 67.4%, 33기 66.5%, 34기 63.6%, 35기 60.7%로 꾸준히 저하됐다. 38기에 오면 대령 진급률은 56%로 떨어지고, 이후 기수는 50~60%에서 진급비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육군은 인사관리를 하고 있다.
장군 진급의 경우는 기수별 편차가 더욱 확연하다. 임관인원 대비 준장 진급 비율을 보자. 한창 ‘물이 좋았던’ 육사 20기는 25%, 22기 29%, 23기 28%, 25기 26%로, 육사를 졸업한 장교의 최소 4분의 1은 장군이 됐다. 그러나 이 비율은 29기 16%, 31기 14%, 32기 14%, 33기 13%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이 분야 사정에 밝은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장군 진급 대상이 되는 38기 이후는 13~15% 수준으로 진급률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히 진급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진급을 하더라도 언제 하느냐가 문제다. 육사 22기의 경우 41~42세면 장군이 됐다. 현재 국방장관, 합참의장, 각군 총장 기수인 27기부터 29기까지는 44~46세에, 30기의 경우는 47~48세에 장군이 됐다. 올해 준장 진급 대상이 되는 38기는 49~50세에 진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의 인력구조에서 고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상위계급 위주로 적체현상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인사 병목현상이 방치될 경우 현재의 군 인력구조는 ‘창군 이래 최악의 인사적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엉망이 된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5월 조영길 국방장관은 계룡대를 순시하면서 “국방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인사개혁”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2005년 국방개혁에 대한 대통령 보고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 추진으로 인해 군 간부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국방개혁2020’에 따르면 엄청난 부대 수 조정으로 자리 감소가 불가피한데, 간부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보충할 것인가. 부족한 병과나 남아도는 병과의 인원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년을 채우기 위해 눌러앉아 후배들의 진출기회를 막아버린, 육군 대령의 최소 30%에 달하는 인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국방개혁2020’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을 뿐 아니라, 군 인력구조 개선안에서도 뚜렷한 대안이 발견되지 않는다. 인력구조 개선이 없는 부대구조 재편이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한국군의 대혼란이 불 보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