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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를 통해 본 재일 코리안 100년

일본에 동화돼가는 재일교포 사회 희박해져가는 민족적 동일성

정대세를 통해 본 재일 코리안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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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를 통해 본 재일 코리안 100년

북한 축구국가대표 정대세 선수의 어머니 리정금씨.

그러나 당시 한국의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재일조선인에 대해 방관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반해 김일성(金日成) 정권은 이들을 재외공민으로 인정하고 재일 조선인들의 민족학교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남한지역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지만(97% 이상) 이들 재일교포 중 20~30% 안팎이 북한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총련계가 된 것은,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이념적인 성향 외에도 이 같은 역대 남북한 정권의 상반된 대(對)재일교포 정책도 이유가 됐다.

참고로 1974년 통계에 따르면, 총 63만8806명의 재일교포 중 경북 출신이 36.8%, 경남이 24.8%, 제주가 15.9%, 전남이 9.6%로 전체의 88.9%를 차지했으며 남한의 다른 지역까지 합치면 그 수는 97.8%에 달했다. 반면 북한 출신은 1.2%에 불과했다.

고3 때 평양으로 수학여행

김홍선은 일본인 가정을 찾아다니며 ‘짠반(殘飯)’을 얻어 돼지를 키우고 막걸리 밀주를 만들어 내다 팔았다. 그렇게 해서 혼자 몸으로 다섯 자녀를 키웠다. 가난한 살림에도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새끼돼지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등 학비를 마련해 5남매 모두 조선학교를 졸업시켰다.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진학시켰다.

김홍선의 차녀 리정금(59)은 성인이 된 뒤 조선학교 교원이 됐다. 정금은 경북 의성 출신인 정길부(鄭吉夫·69)와 결혼해 나고야(名古屋)에서 연년생으로 이세(二世·1983년생)와 대세(1984년생)를 낳았다. 정대세는, 자녀는 아버지의 국적을 따르게 돼 있는 일본의 국적법(1984년,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성을 따라도 되도록 개정)에 따라 한국 국적을 갖게 됐다. 조선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리정금의 국적은 ‘북한’이다.



정대세는 나고야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모두 총련계 조선학교였다. 축구에 재능이 있어 조선학교 초등부 때부터 선수로 뛰었다. 토건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정길부는 어릴 때부터 정대세에게 “일본인보다 2~3배 노력하라”고 교육시켰다. 정대세는 고교 3학년 때 처음 평양에 갔다. 축구부의 수학여행이었다. 마지막 날 양각도경기장 주차장에서 열린 불고기파티에서 정대세는 “가슴에 국기를 달고, 이 경기장에 반드시 돌아오고 싶다”고 인사말을 했다. 그는 후일 북한대표가 돼 이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다.

대학에 입학할 당시 정대세는 축구 명문인 일본의 모대학으로부터 입학 권유를 받았지만 도쿄(東京)에 있는 총련계 대학인 조선대학교를 택했다. 어릴 때부터 정대세와 같이 축구를 해온 형 이세도 이 학교 축구팀의 골키퍼였다.

정대세는 대학 졸업 후 2006년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타레팀에 입단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국가대표급의 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그러나 정대세가 국가대표가 되는 데는 국적이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한국 국적인 정대세에겐 당시 세 가지 길이 있었다. 한국대표로 뽑히는 길, 북한대표가 되는 길, 일본인으로 귀화해 일본대표가 되는 길이었다. 한국 국적으로 J리그에서 뛰고 있던 이충성(李忠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전 귀화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다. 유도 선수 추성훈(秋成勳)도 한국팀에서 활동하며 올림픽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귀화,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재일교포 출신 이외에도 일본 축구대표팀에는 브라질 출신 선수가 일본으로 귀화해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룬 경우가 있다. 이번 남아공대회에도 일본계 브라질인인 툴리오가 주전으로 뛰었고, 2002년과 2006년엔 산토스, 1998년엔 로페스 선수가 각각 일본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들은 유명선수가 많은 브라질의 국가대표 선수로 월드컵에 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 일본대표의 길을 택해 목적을 이룬 경우다. 북한대표로 나가고 싶으나 국적 문제로 길이 막힌 정대세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북한, 한국 국적 정대세에 여권 발급

정대세는 “공화국은 부모와 같이, 항상 나를 지켜주는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으로의 귀화는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말해왔다. 외할머니의 조선학교 건설 참여, 어머니가 수십년간 조선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조선학교를 나온 것을 생각할 때, 정대세가 한국이 아닌 북한의 국가대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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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각| 전 동아일보 기자 · 일본 주오대학 겸임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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