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생의 초등학교 시절.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바람막이가 있다. 소수의 정치권 인사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386세대를 단순한 정치적 특권층으로 한정짓는 것은 오판이다. 정치권 386도 그 세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인물들이지 외계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실제 이들의 점유 영역은 훨씬 폭넓다. 영화계의 386세대 감독들은 한국사회에서 이 세대가 가진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1980년대 최고 감독 중 하나로 꼽히던 곽지균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타전됐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현실이 그를 극단적 선택을 하게 내몰았다고 한다. 겨우 50대 중반 나이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충격이다. 1980년대를 대표하던 배창호 감독 역시 영화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 정도 경륜이면 예술가로서 원숙미를 뽐낼 법도 하지만 또래의 봉급생활자들처럼 영화판에서도 50대가 퇴출 대상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386세대 감독들도 50대가 되면 선배들의 전철을 밟게 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에 등장한 이들은 30대에 흥행 감독 칭호를 획득한 인물이다. 이른바 ‘아웃라이어’는 이렇듯 특정 시기에 특정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출현한다. 이들의 등장이 긍정적 작용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박찬욱은 평생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심정을 공공연히 밝힌다. 세계적 거장의 칭호를 획득한 그라면 충분히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곽지균은 극단적 선택에 내몰려야 했다. 왜 자신의 시대를 대표했던 이 천재 감독은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

386세대 감독들이 다음 세대를 고사시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신들이 30대에 흥행감독의 지위를 차지한 것과 달리 오늘날 이름난 30대 감독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영화판에 뛰어든 유승완 정도가 있을 뿐이다. 황금세대는 이렇게 세대 간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 같다. 이들을 중심으로 앞뒤 한 세대가 초토화되는 것이다.
힘의 불균형 현상은 영화계에 결코 이로울 리가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세계적 거장’이란 잿밥에만 관심을 둔다.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경력을 한국영화의 성취라고 해석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 영화계에는 이상한 전통이 있는데 배우들의 해외 수상은 거의 여성이 독식한다는 점이다. 가난한 시절부터 한국 여배우의 경쟁력만큼은 독보적이었다. 이는 해외영화제의 심사기준이 어떤 눈높이에서 이뤄지는지 짐작케 한다.
할리우드에서 동양계 남자배우가 성공하려면 쿵푸를 하거나 어릿광대짓을 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해외영화제에 출품되는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배우의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 여성을 학대하는 역할이 그것이다. 이렇듯 현실과 괴리된 역할이 해외 평단과 국내 관객의 반응에 극단적 차이를 낳는 것이다. 왜 자국 관객이 아닌 해외 평단을 의식해 만든 작품을 높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이들의 영화는 사실상 백인 남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주는 ‘오리엔탈 포르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