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3명이 탄핵심판…나라 망한 꼴
‘헌법 현실’ 파국 맞아 개헌 불가피
12·3 비상계엄, 대통령·야당의 ‘무책임 정치’ 결과
대통령직선제와 내각불신임권 갖춘 이원정부제가 대안
윤석열·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개헌 분위기 역대급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이 3월 11일 서울 강남구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사무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2024년 22대 총선을 기점으로 마지막 모델이 현실화했다. 더불어민주당(161석)과, 그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14석)이 175석을 차지하며 총선에서 승리한 것이다.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순간이다. 즉각 “윤석열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에 빠졌다”고 진단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12·3 비상계엄을 기점으로 “데드덕(dead duck) 상태에 놓였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헌법학자인 성 전 총장이 보기에 비상계엄 사태는 87년 체제에 대한 ‘데드덕 선언’이었다. 87년 체제의 마지막 과제를 “대통령이 거대 단일 야당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로 보고 있었는데,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이를 돌파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3월 11일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이전부터 문제적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는데, 결국 상황이 지금처럼 흘러갔다”며 “‘헌법 현실’이 파국을 맞았으니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인데…”
이날 서울 강남구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성 전 총장은 연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인데 대통령 3명이 탄핵심판 때문에 헌법재판소로 갔으니 나라가 망한 꼴”이라며 혀를 찼다. 자신의 연구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현실화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오래전부터 ‘87년 체제’에서 파생될 다양한 국정 모델을 연구해 왔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 대한 모델이다. 대통령은 상수(常數)고, 국회의 양상에 따라 모델이 나뉜다. 윤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의 축’이 병존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헌법 이론에 따르면 ‘최근의 주권적 의사’, 그러니까 최근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에게 정당성을 더 부여한다. 대통령 임기 초기 여소야대였지만 (야당이) 참았던 이유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을 동의해 준 것이다. 그러다 2024년 22대 총선을 기점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면서 ‘더 이상 대통령의 인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런데 87년 모델에서는 해당 방법이 펼쳐졌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결국 정치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문제는 야당 입장에서 대선을 앞두고 자칫 ‘심판론’에 엮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각에 참여했다가 괜히 국정 운영의 책임을 함께 지면 어떻게 되겠나. 당연히 ‘차기 대선에서 승리해 정부를 장악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현행 체계에서 탄핵을 제외하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국 대통령과 야당이 모두 ‘무책임 정치’를 했다. 12·3 비상계엄은 정치적 무책임이 극단으로 나타난 경우다.”
‘무책임 정치’는 어쩌다 파국으로 이어졌나.
“윤 대통령은 임기 동안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1번만 만났고, 이마저 단독 회담이 아니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계속 고위공직자 등을 탄핵소추했다. 그러다 윤 대통령이 못 참고 폭탄을 터뜨린 게 비상계엄이다. 파탄에 이른 것이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가설로만 남았던 상황(단일 야당의 과반 의석)을 잘 극복해 냈다면, 87년 체제를 그대로 이어가도 됐다.”

“87년 체제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헌법’은 아니다. 30여 년 동안 잘 작동했는데, 6번째 가설, 즉 대통령과 단일 과반 야당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권력 분점과 타협을 못 했다. 고장이 났으니 수리해야지 별수 없다. 문제가 발견됐는데 그대로 들고 갈 순 없지 않나.”
“대통령이 전봇대 뽑는 일까지 살피지 말자”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역량이 중요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검찰 생활만 하다 바로 대선에 뛰어들다 보니 정치에 대해 이해가 낮은 상태로 대통령이 됐다. 게다가 야당은 0.73%포인트 차이로 선거에서 졌기 때문에 ‘대통령만 고꾸라뜨리면 집권할 수 있다’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의회를 장악한 만큼 대선만 승리하면 여대야소가 돼 권력을 100%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권 다툼 때문에 갈등이 깊어졌다. 제6공화국은 끝났고, 제7공화국으로 가야 한다. 국회가 2023년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다. 개인적으로 이를 (의원내각제의) ‘내각불신임권’과 동일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부가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예 의원내각제의 본질적 요소인 국회의 ‘정부불신임권’을 부여해야 한다.”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 요소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헌해야 한다는 것인가.
“비상계엄 전인 지난해 11월 대한민국헌정회(헌정회)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야당의 잇따른 탄핵소추로 정치적 갈등이 이어졌고, 국정 운영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헌정회에서 관련 문제의식을 공유해 권력분산형 대통령제에 기반한 개헌안을 만들었다. 당시 기조 발제를 맡았고 ‘내각불신임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흔히 ‘이원집정부제’로 알려진 ‘이원정부제’를 꾸리도록 개헌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원(二元) 정부, 즉 대통령과 총리 두 수장으로 이뤄진 정부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딱 중간이다. 대통령제의 본질인 ‘대통령직선제’와 의원내각제의 본질적 요소인 ‘내각불신임권’을 모두 갖춘 체제다. 유럽에서는 외교와 국방, 유럽연합(EU) 관련 문제는 대통령이 처리하고, 나머지 국내 정치는 의회의 신임을 받는 총리가 처리한다. 한국의 경우 외교·국방·통일 문제는 대통령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국무총리가 맡으면 된다. 물론 국가 업무를 완전히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전봇대 뽑는 일까지 살피지는 말자’는 의미다. 내각과 국회의 소통을 돕는 정도면 된다. ‘폴리티션(politician·정치인)’이 아닌 ‘나라의 큰어른’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서는 하나둘 개헌 논의가 떠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은 2월 25일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직무에 복귀하면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사명으로 생각하겠다”며 운을 띄웠다. 국민의힘 개헌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3월 13일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의 가닥을 잡았고, 민주당 역시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3월 10일 개헌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성 전 총장은 “이원정부제로 개헌해 대통령과 국회가 무책임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경우 ‘4년 중임제’를 도입해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고, 국회 역시 내각에 관여하게 해 국정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는 대통령의 국회 견제 수단으로 ‘국회해산권’을 부여하고, 국정 마비 및 여야 간 갈등만 초래하는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이미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우려도 상존한다. 이원정부제에서 대통령의 실제 권한은 “의회 다수파가 어떻게 구성됐느냐”를 두고 갈린다. 성 전 총장은 ‘헌법학’에서 단일 과반 정당의 수장이 이원정부제의 대통령이 될 경우 그 실제 권한을 “전제군주”라고 평가했다. 이어 “의회의 다수파와 대통령이 동일한 정치세력이거나, 대통령을 그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일 경우에 대통령은 총리와 같은 실질적 권한과 왕과 같은 상징적 권한을 함께 가진다”고 분석했다.
현 상황에서 이원정부제를 채택하면 단일 정당인 민주당이 내각과 의회를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국정 동력은 강해질 수 있으나 반대로 상대 집단을 배제하거나 억압할 수도 있다.
“국가 권력구조에 정답은 없다.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바람직한 게 다르다.”
최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해 “내전 상태”라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여대야소 정국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선거제 개편을 병행하면 된다. 기존의 ‘소선거구 상대적 다수대표제’로는 안 된다. 호남권, 충청권 등 권역을 나눠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해야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면 다당제가 형성된다. 국회가 다당제로 굴러가면 연립정부가 형성되면서 완충 구역이 생기지 않을까. 독일은 늘 특정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연립정부를 꾸렸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국 안정을 이뤘다. 이는 ‘건설적 불신임투표제’를 도입한 덕분도 있다.”
건설적 불신임투표제란 무엇인가.
“건설적 불신임투표제란 의회가 차기 총리를 정한 후 내각에 대해 불신임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즉 차기 연립정부의 구성을 내각 해산보다 선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 역시 건설적 불신임투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경우 국회의원 수를 200명으로 줄일 수 있는데, (100명이 줄어든 만큼) 80명 규모로 정치적 다툼을 중재할 수 있는 상원을 꾸리는 것도 방법이다. ‘하원은 공화국의 상상력이고, 상원은 공화국의 이성이다’는 말이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상원으로 양극화의 버퍼(buffer)를 만들 수 있다.”
“개헌보다 큰 게 있다”
제도적으로 다당제에 힘을 실어주면 민주당 입장에서 손해 아닌가.
“그래서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를 제외한 모두가 개헌하자는 것이다. 이 대표는 본인이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생각하면, 대통령도 되고 여대야소 국면도 펼쳐지는데 무엇하러 개헌하겠는가. 역대 대통령은 선거 때만 되면 개헌하겠다고 공약하지만 막상 당선되면 입을 닫는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 역시 구속되자 개헌하겠다고 했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개헌보다 큰 게 있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개헌 분위기가 유사 이래 가장 활성화돼 있다. 물론 이 대표와 친명계 입장에서는 계엄과 탄핵을 화제로 삼으며 대선을 치러야 하는 만큼, 개헌을 얘기하면 이슈가 날아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3월 말 대통령 탄핵 선고와 이 대표의 항소심이 끝나면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이 시기가 클라이맥스가 될 전망이다.”
제7공화국의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
“대통령은 힘이 너무 좋으면 안 된다. 대통령이 힘이 넘치면 사고를 친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데 대통령이 모든 것을 장악하려 하면 문제가 생긴다. 2023년 부산 엑스포 유치전만 하더라도 바쁜 대기업 회장들을 부산과 파리까지 데리고 다녔다. 그들이 가고 싶어 갔겠나. 나아가 대통령은 나이가 좀 든 사람이 해야 한다. 80대는 너무 나이가 많다 치더라도 70대는 돼야 한다. 국회 등과 활발히 소통하는 국무총리야 5060세대가 맡아야겠지만, 대통령은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연륜 있는 70대가 하는 게 맞아 보인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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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이대로라면 49대 51 ‘피 흘리는 대한민국’ 된다”
“갈등 지속되면 ‘빨갱이와 파시스트 전쟁’ 벌어질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