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사라지고 있다. 사는 게 각박해져서 그런지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게 쉽지 않다. 피해를 당할 것 같아 물러서고, 도움이 될 것 같아 다가서다 보면 관계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간혹 우리로 묶이기도 하지만 그 끈은 금세 풀린다. 오늘을 사는 많은 이가 외로움을 느끼는 건 그 우리라는 울타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무례한 것일까? 한동안 깊이 고민했던 주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례한 것이 아니다. 무례해 보일 뿐이다. 다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인의 교양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의 국민으로 글로벌한 매너와 규칙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조건 무례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왜 그런지를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호작용의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화란 다양한 방식의 집단, 즉 민족, 계급, 종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나(I)’라고 하는 주체의 성립과정이다. 물론 이 집단적 구속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근대성이라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집단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적 합리성의 근거는 ‘나’라는 주체의 성립이다. ‘나’가 있어야 그에 상응하는 ‘너’라는 존재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와 ‘너’의 동등한 관계로서 만날 때, ‘우리(We)’가 가능해진다.
서양인은 타인의 존재는 항상 ‘나’의 상대방으로서의 ‘너’다. 동등한 주체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은 곧 ‘나’라는 주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곧바로 ‘날씨’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할 때, ‘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버가 저서 ‘Ich und Du’에서 ‘나’라는 존재의 근거로 ‘너’와의 관계를 지적하고, ‘나’와 ‘너’의 관계를 모든 의미 구성의 기본단위로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런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우리’가 성립되는 그 순간
반면 한국인의 상호작용 양상은 사뭇 다르다. ‘나’와 ‘너’의 상호작용이 서구인들처럼 곧바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라는 상호 주체의 만남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와 ‘남’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야만 가능하다. ‘남’은 상호작용의 상대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 된다. ‘우리’라는 경계선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서구인에게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성립된다면, 한국인은 ‘우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난 후에 비로소 ‘나’와 ‘너’가 성립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니?” 혹은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럴 수 있는 거니?” 거기다 대고,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라고 하는 울타리를 깨고, 바로 ‘남’이 되자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남’이 되는 순간 어떠한 합리적 상호작용도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번 성립된 ‘우리’는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서구인들과 달리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너’에게 ‘나’는 정말 간까지 빼줄 만큼 잘한다. ‘우리 사이’에는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낯선 이를 만나 이야기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바로 이 ‘우리’라는 경계선을 만드는 일이다. 일단, 말투를 듣고는 고향을 확인한다. 같은 고향이면 간단히 ‘우리’가 된다. 고향이 다르면 다닌 학교를 확인하려 한다. 고등학교가 같으면 ‘선후배’라는 아주 끈끈한 ‘우리’가 만들어진다. 학번을 통해 같은 연배가 확인되면, 서로 알 만한 사람 이름을 댄다. 둘이 함께 알고 있는 사람이 생기면 이 또한 ‘우리’로 이어진다. 친구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확인하려 해도 확인되지 않으면 입고 있는 옷 색깔, 사는 동네, 혹은 살던 동네까지 확인하려 한다. 그만큼 ‘우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없다. 각 대학의 수많은 최고위과정의 목적은 대부분 이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 다양한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놓는것은 보험을 드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존재의 근거다.
‘우리’안에 있어야 행복하다
독일에 유학 가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노력한 일은 독일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다. 주말만 되면 학생들끼리 모이는 이러저러한 파티에 정말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러나 ‘굿텐 탁’만 하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독일에 왔는지에 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문을 트고자 한국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면, 남쪽이냐 북쪽이냐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도무지 독일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를 찾을 수 없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도 그저 날씨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연극이나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 파티에 왔는지 서로 묻지도 않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듯했다. 서로 모르는 이들끼리 그토록 재미없는 이야기를 몇 시간이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계속 인사말만 하다 더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썰렁해지면 뒤에서 혼자 포도주만 홀짝거렸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구경할 수 없었던 다양한 포도주를 종류별로 홀짝거리며 공짜로 마시는 재미도 사뭇 쏠쏠했다. 혼자 포도주 마시고, 혼자 취한 나는 미친 척 기타를 들고 큰소리로 노래했다. 그러면 모두들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름 연습한 독일 노래를 부르며 중간중간 ‘에브리바디’를 외치면, 그 심심한 독일친구들은 열심히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게 전부였다.
파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쓸쓸할 수 없었다. 거의 4,5시간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작 이름이나 소속 학과, 사는 동네를 제대로 알게 된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내 개인적 삶에 관해 물어온 녀석도 전혀 없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다 그랬다. 만나는 그 순간부터 ‘나’와 ‘너’가 만나 아주 쉽게 ‘우리’가 되지만, 그뿐이었다. 돌아서면 그 ‘우리’는 아주 쉽게 해체돼버렸다. 발생론적으로 서구인들의 ‘우리’와 한국인들의 ‘우리’는 이렇게 질적으로 다른 종류인 것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