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초등학생들. 수학은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과목으로 꼽힌다.
- 초등3학년 한국수학인증시험(KMC) 금상
- 초등 3~6학년 전 학기 성균관대 KMC 응시해 장려상 수상
- 대교올림피아드 동상 수상
- 서울교대 경시대회 동상 수상
- 교내 학생회장
-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 글짓기 대회, 피아노콩쿠르에서 모두 최우수상 수상
이 학생은 초등 3학년 때부터 수학 실력을 겨루는 전국 단위 대회에서 수상 실적을 쌓아 국제중에 무난히 합격했다. 특수목적고 진학을 원한다면 역시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을 잘해야 한다. 에서 보듯 특목고 전형에서 수학과목 반영 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수학 중시’ 경향은 대입 때도 다르지 않다. 연세대와 고려대 둘 다 수시 일반전형 우선선발에서 수리영역 1등급을 요구한다.
학생을 평가할 때 수학을 가장 중시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학은 자기주도적 학습을 증명할 수 있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수학 학습을 통해 사고력과 추론능력, 문제해결 능력이 비로소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공자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아는 자는 제일 위요, 배워서 아는 이는 그다음이고 어렵게 배워가는 이는 또 그다음이나, 어렵게도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최하의 사람이니라”고 했다. 이 중 배워서 아는 이, 즉 ‘학교만 다니고도 깨닫는 자식’이 전통적인 ‘엄친아’ 쯤이 된다.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니, 제 또래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자녀의 결정’ 차단하는 부모
한데 아이들 대부분은 어렵게라도 배워가는, 즉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실력을 높이려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부모가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엄친아가 될 수 있다. 왜냐면 전통적인 엄친아는 타고난다기보다 부모가 자녀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방식으로 대응한 덕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로봇 취급할 때가 많다. 엄마가 아이를 혼낼 때 주로 하는 말은 “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느냐”다. 한 고등학생이 수련회에 갔다. 점심 메뉴가 돈가스와 육개장 두 가지인 걸 보고 배식대 앞에 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엇을 먹을지 정해달라고 했단다. 왜 이 학생은 한 끼 식사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걸까? 실수하기 두렵고, 생각하기도 귀찮은 것이다.
많은 부모가 ‘어른의 선택이 옳다’는 이유로 아이가 당연히 가져야 할 선택의 권한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심지어 빼앗고 있다. 부모는 자녀가 어리니까 이는 어쩔 수 없고, 나중에 철이 들면 당연히 간섭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눈에는 아이로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친절한 관리를 계속 받고 싶어 할 가능성이 높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자녀를 부모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는 아이로 키우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지난해 진학사는 고등학생 43만 명의 3개년 내신 성적을 분석했다. 그 결과 고등 1학년 성적이 3학년까지 유지될 확률이 75%로 나왔다. 성적이 2개 등급 이상 향상된 경우는 1.8%에 불과했다. 이 예외적인 학생들을 상대로 학습태도를 추가 조사했더니 무려 83.2%의 학생이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이 학생들은 “나는 꿈과 목표가 있다”고도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이 조사에서 더 주목할 점은 성적을 향상한 학생들이 목표 달성 후 얻은 최고의 보상으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꼽았다는 사실이다( 참조). 주변의 칭찬이나 부모의 물질적 보상은 그 뒤로 밀렸다. 이런 성공과 만족의 경험은 더 큰 꿈과 목표에 도전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작은 성공이 여럿 모여 큰 성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에너지를 한순간에 빼앗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흔들며 집에 들어온 아이가 “엄마~” 하고 외친다. 이 외침에는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부모에게 얼마나 칭찬을 받고 싶은지 많은 생각과 감정이 실려 있다. 이런 아이에게 엄마는 말한다. “거봐,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되잖아!” 이 한마디에 아이는 금메달을 송두리째 뺏길 뿐 아니라 다음 도전에 필요한 에너지마저 잃고 만다.
이따금 “우리 애는 도대체 꿈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들을 만난다. 정말일까? 세상에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아이가 부모에게 자기 꿈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말해봤자 인정받지 못할 테니까, 오히려 잔소리만 듣게 될 테니까…. 가출 청소년에게 가출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부모가 나에 대해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게 제일 싫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현재 서울대는 수석입학자를 발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봄에 모 일간지가 ‘서울대 계열별 마지막 수석을 만나다’라는 인터뷰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강원 삼척 출신 남학생이 인문계열 수석을 차지했는데, 이 학생은 중학생 때까지는 ‘도랑치고 가재 잡으며’ 공부에 관심이 없다가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유치에 거듭 실패하는 것을 보고 ‘훗날 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겠다’고 결심하면서 공부에 몰입했다고 한다. 최근 서울대 입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학업 성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가장 큰 요인으로 ‘자기주도적 학습’(78.4%)이 꼽혔다.
이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또래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편이다. 부모가 챙겨주고 관리해주는 ‘약발’이 잘 먹힌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부모보다 친구들이 좋아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자기 의견이 무시당했다며 자존심을 운운하고, 엄마아빠와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겨나는 횟수가 늘게 된다. 심지어 ‘자유’니 ‘독립’을 외치며 부모와 전쟁을 벌인다. 요즘 학부모들은 이 시기의 아들을 ‘무법자’, 딸을 ‘시한폭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어느 가정에서든 피할 수 없는 전쟁인데, 중요한 점은 이 전쟁이 중학교 3학년 이전에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이 고교 입학 전에 끝나지 않으면 고등 1학년 성적이 3학년까지 갈 수밖에 없다.
자녀와의 전쟁을 방지하거나 조기에 종료하는 것은 부모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 내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성장하기 바란다면 자녀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의 끈’을 늦출 필요가 있다.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실천방법을 선택하고, 결과를 인정하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서 이는 힘든 일이겠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인내해야 한다. 부모의 뜻과 힘으로 대신해주는 것이 당장은 쉽고 빨라 보이지만 아이의 ‘자립’을 방해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수학은 손으로 푸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 공부법 초중고 달라
중학생은 자존감이 가장 낮은 시기다. 스스로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시기라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힘들어한다. 이 시절의 아이들은 본심과 달리 행동할 때가 의외로 많다. 밉게 굴더라도 ‘사랑받고 싶구나’ ‘위로받고 싶구나’라고 생각하며 아이의 감정을 잘 받아줘야 한다. 아이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고 해서 그 즉시 이성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중학 수학은 도형이 중요하다. 모르는 문제는 문제풀이를 보되 문제와 풀이를 손으로 5번씩 반복해 써보면 도움이 된다. 중학생 때 손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고등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등학생은 공부 방법과 사교육 선택 등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려고 한다. 부모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극히 제한되며, 따라서 아이의 자기주도력 없이는 3년을 견뎌내기 어렵다. 그래서 고입 전 겨울방학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기간에 어떤 투자를 했느냐가 고교 3년을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진학사 조사에서 고등 1학년 때 1등급이던 학생이 3학년까지 1등급을 유지할 확률은 무려 95%에 달했다. 고교 수학은 자신과의 싸움이어서 사고력, 추론능력 못지않게 지구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문제는 복합, 변형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를 혼자만의 힘으로 풀어본 학생만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학습이란 배움(學)과 익힘(習)이다. 배움은 학교수업이나 EBS 수능방송, 인터넷강의를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성적 향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스스로 복습하고 확인하는 익힘의 과정을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데 이는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배웠으면(學) 내 것으로 만들어야(習) 하는 것이다.
중3 겨울방학이 고교 공부 좌우
하지만 학생 대다수가 배움을 통해 상당 부분 이해했다고 했음에도 실제 시험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이는 배움보다 익힘의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험이란 교과서 문제를 반복 내지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 있는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했는지, 다양한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키웠는지 확인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능은 사고력, 추론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을 요구한다. 해설과 정답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핵심인 것이다.
웽거와 에릭슨(Win Wenger · Anders Ericsson)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몰입의 수준에 따라 성취도에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몰입은 집중의 효과뿐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과제에 도전할 가능성도 높여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몰입은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훈련과 반복을 통해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공부할 때 쉬운 것부터 하도록 허용해줘야 한다. 종종 공부나 숙제의 순서를 정해주는 부모들을 만나는데, 아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만나면 몰입하기 힘들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성취감을 느끼고 몰입할 가능성이 커진다.
몰입한 이후에는 몰입의 수준을 높이는 것과 더 긴 시간 몰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더라도 성취감이 누적될 수 있도록 꾸준하게 실천해야 하고, 몰입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 ‘몰입의 희열’을 느낀 학생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학생이 된다.
대개의 학부모들은 우등생 또는 열등생이 된 원인을 자녀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부모 때문일 수 있음이 실험을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동일한 상황하에서 우등생 자녀와 그 부모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대화법을 사용하는 반면, 열등생 자녀와 그 부모는 상대를 비난하는 표현 때문에 정작 할 말을 못할 뿐 아니라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굣길부터 기분이 언짢다면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가 잘될 리 없다. 잠들기 전 야단맞은 자녀가 숙면을 취해 다음 날 머리가 맑을 리 없다. ‘엄친아’는 부모 하기에 달렸음을 명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