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軍설명과 北통지문 곳곳서 차이… 통지문엔 월북 정황 없어

군·정보당국 분석과 엇갈리는 北 주장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9-25 18: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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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南 “방호복·방독면 착용 북한군이 기름 붓고 태워”

    • 北 “국가비상방역규정 따라 부유물 소각”

    • 南 “월북 의사 밝혀”

    • 北 “‘대한민국 아무개’ 얼버무리고 단속 불응”

    • 南 “해군사령부 등 북한군 상부 지시”

    • 北 “고속정장 결심으로 사격”

    • 서훈 안보실장 “차이점에 대해 조사·파악 필요”

    • 北 통지문에 ‘불법’ 5번 강조…피해자에 책임 전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해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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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전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가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밝힌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8) 씨 피살 경위가 한국군·정보당국의 분석과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을 전하면서도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 없이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시신이냐 부유물이냐

    9월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같은 날 오전 북한 통일전선부가 보낸 통지문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9월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같은 날 오전 북한 통일전선부가 보낸 통지문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남측과 북측의 설명이 가장 극명하게 나뉘는 지점은 북한군이 이씨의 시신을 소각했는지 여부다. 우리 군 발표에 따르면, 22일 오후 9시 40분 고속정에 탑승한 북한군이 이씨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20분 뒤인 오후 10시 방호복·방독면을 착용한 북한군이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에 태웠다. 당시 북한군의 행동을 연평도 주둔 국군 부대가 감시 장비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북측은 통지문에서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과 소리가 없어 수색했으나 침입자(이씨)는 부유물 위에 없었고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했다”며 “(이씨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서 소각”했다고 해명했다. 이씨를 향한 사격 자체는 인정했지만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태웠다는 것이다. 

    이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밝혔는지도 풀어야 할 문제다. 군은 대북 감시·감청 결과를 토대로 북측이 이씨의 월북 의사를 확인했다고 판단했다. 25일 정보당국 관계자는 “첩보 분석 결과, (이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과 사격이 이뤄진 것, 시신이 훼손된 것을 한 덩어리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북측의 설명은 달랐다. 북측은 통지문을 통해 이씨가 신원확인 요구에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사격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해 두 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된 것을 들었다. 

    사격을 누가 지시했는지를 두고도 설명이 엇갈린다. 국군은 북측 해군사령부의 지휘 계통에 따라 사격이 결정됐다고 파악했다. 25일 군 관계자는 이씨를 향한 북측의 사격에 대해 “관련 첩보를 전체적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군) 상부 지시에 따라 이뤄진 행위로 파악·평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북한 해군사령부 등 윗선이 해당 사안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배제할 수 없다”며 북측 수뇌부의 사격 지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씨에 대한 사격을 지시하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해 국가정보원은 25일 “이 사고에 대해 사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고속정)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 향해 사격”했다고만 밝혀 노동당·북측 수뇌부의 개입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북측 통지문을 공개하며 “우리 군 첩보를 종합한 판단 결과와 (북측 통지문이) 일부 차이 나는 부분에 대해 앞으로 지속해서 조사·파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과 밝혔지만 책임은 전가할 듯

    향후 북측 행보를 두고도 관심이 쏠린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이례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을 썼다. 북측은 ‘시신 훼손’으로 빗발칠 국제사회의 비난을 부담스럽게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통지문 내용이 알려지자 AP는 “북한 지도자가 남측에 사과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extremely unusual)”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북·미관계가 더는 교착되지 않길 바라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 내 여론도 신경을 썼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는 24일(현지시간) 북측이 서해상에서 한국 공무원을 사살한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북측이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리라는 전망에 무게감이 실린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정체불명의 인원 1명이 우리 측 영해 깊이 불법 침입했다가 우리 군인들에 의해 사살(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를 포함해 북측은 1450여자 분량의 통지문에서 불법이라는 단어를 다섯 차례나 썼다. 책임을 희생자인 이씨에 전가하려는 뉘앙스가 짙다. 

    2008년 7월 11일 박왕자 씨 사건 당시에도 북한은 사건 발생 다음날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사망사고는 유감이지만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 남측의 진상조사는 불허하며 대책을 세울 때까지 금강산 관광객은 받지 않겠다”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폈다. 박씨가 군사통제지역으로 넘어간 것이 원인이니 남측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되레 맞섰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공동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 재발 방지를 북측에 요구한 바 있다. 결국 공동조사는 무산됐고, 북한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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