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어부와 소년, 바다와 삶이 있는 풍경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6-11-07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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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영화 ‘노인과 바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아바나 외곽의 코히말 해변과 옛 성.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쿠바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바라데로 지역.

    스펜서 트레이시의 명연(名演)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1958년작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평생 고기 잡는 일에 종사한 노인의 집념과 내면을 고즈넉하게 담아낸 화면은 대부분 헤밍웨이가 집필하는 동안 머무른 곳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아바나(Havana) 외곽의 작은 항구마을 코히말에서 촬영됐다. 아바나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코히말은 10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자그마한 시골이다.

    영화 도입부에 어부 산티아고(스펜서 트레이시)와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린(펠리페 파조스)이 어구(漁具)를 메고 판잣집으로 귀가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은 마을 앞 해변이다. 필름 속의 아름다운 바닷가와 석조건물, 편안한 느낌의 어촌 풍광은 지금도 그대로다. 어찌 보면 코히말 해변이 곧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해변 곳곳에는 영화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영화를 보고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느끼게 될 ‘기시감(旣視感)’은 푸른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고즈넉한 성에서 시작된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이 자그마한 고성은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폐쇄된 상태. 영화를 촬영할 당시만 해도 군사목적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페인트 색이 바랜 벽면을 드러낸 채 마을과 바다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들어가볼 수는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거나 입구 계단까지의 산책만으로도 충분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지막한 방파제에 서서 멕시코 만으로 자취를 감추는 석양을 감상하는 기분은 매혹 그 자체다.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아바나 항구 전경. 지금도 영화 속 풍경 그대로다.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아바나 시내는 흡사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다.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아바나 아르마스 광장에서 꽃을 파는 여성.



    카페 라 테라자의 추억



    소년 마놀린이 음식과 차, 신문 등을 얻어 산티아고 노인에게 가져다주던 카페 라 테라자도 남아 있다. 촬영 당시 원작자인 헤밍웨이는 이 카페에서 상주하며 제작진과 주연배우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고 한다. 영화의 카페 실내장면 일부는 실제 카페가 아니라 인근에 지어진 세트에서 촬영되어 모양은 사뭇 다르지만, 라 테라자에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가득하다. 입구에 서 있는 엄청난 크기의 참치 그림이나 영화 촬영 당시 상황이 그려진 초대형 풍경화가 그것이다. 중앙 홀에는 영화 촬영에 협조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제작진이 기증했다는 세련된 조각상도 있다.

    지금의 카페 주인은 영화가 촬영될 무렵 10대였다. 그는 당시 헤밍웨이가 마을을 위해 여러모로 애썼다고 회상했다. 마을 주민들을 엑스트라로 출연시키고 여러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할 것을 제작진에게 요구해 상당부분 관철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이 많은 노인들은 헤밍웨이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노인과 바다’의 쿠바 아바나

    <b>1</b> 아바나의 골목에서 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b>2</b> 코히말 해변의 액세서리 판매상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b>3 </b> 대부분의 장면이 촬영된 코히말 마을. 원작자 헤밍웨이가 집필기간 중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b>4</b> 스페인 식민 시절에 건설된 아바나 요새.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b>5</b> 코히말 해변의 아늑하고 한적한 풍경.

    헤밍웨이와 카스트로

    카페 내부에 걸린 사진은 대부분 영화 주인공이나 영화 속 장면을 촬영한 것이지만, 헤밍웨이와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포착한 것도 있다. 카스트로는 오로지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영화가 촬영될 당시 직접 이곳 카페를 찾았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산티아고 노인과 마놀린이 함께 걷는 장면과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는 장면, 아이들이 뛰노는 장면을 촬영한 코히말 마을의 풍경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골목길 어귀에는 마놀린과 닮은 소년들이 산티아고를 닮은 어부들과 함께 걷고 있다.

    노인의 판잣집과 일부 해안 풍광은 코히말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라데로 해변에 조성한 세트장과 그 주변에서 촬영됐다. 바라데로 해변은 촬영 당시만 해도 개발되지 않은 작은 바닷가에 불과했지만, 스무 곳에 이르는 고급 리조트가 조성된 지금은 외국인 전용 휴양지역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현대식 시설 사이로 간간이 영화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편안한 휴식과 여가를 즐기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꼭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도 쿠바의 수도 아바나를 무대로 하는 영화는 많다. 그만큼 이 도시의 흥미로움이 많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했다는 뜻이리라.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골목들, 지금은 미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고풍스러운 자동차들,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옛 성, 성당, 항구, 그리고 독특한 선율과 율동을 자랑하는 음악과 춤에 이르기까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풍광을 간직한 아바나는 한두 마디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이 숨어 있는 곳이다.

    여행정보

    인천에서 아바나까지는 직항이 없어 미국 서부와 멕시코시티를 경유하거나(17시간) 파리 등 유럽도시를 거쳐야 한다(20시간). 아바나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30분 남짓, 코히말 마을까지는 15분이면 된다. 쿠바는 여권에 비자를 받는 게 아니라 출입국 카드 자체가 비자로 사용되므로, 항공권을 구입할 때 국내 대행사를 통해 미리 발급받는 것이 좋다. 미국을 경유할 경우에는 미국 비자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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