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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게으름 있다

  •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내 안에 게으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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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부분이 있다. 게으름 예찬론이다. ‘느림의 미학’이나 ‘로하스족’으로 대표되는 게으름 예찬에 솔깃한 사람이 많다. “그래, 죽도록 돈 벌면 뭐해. 즐기며 살아야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굿바이 하고 싶은 게으름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으름이라기보다 ‘느림’과 ‘여유’라 해야 정확하다.

여유는 능동적 선택이고, 게으름은 선택의 회피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 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 하는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여유이고 후회만을 남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이 부분에도 밑줄을 쫙 긋는다. 여유와 게으름을 혼동하는 사람은 진짜 게으른 사람이다. 게으름 탈출법은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 7시면 사무실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까지의 2시간이 업무집중도가 가장 높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케줄 체크다. 회사 업무와 개인 일 가운데 오늘 꼭 해야 할 일과 피할 수 없는 일, 연락 등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체크한 다음,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매긴다. 그리고 한 뭉치 원고를 읽거나 고치거나, 글을 쓴다. 나만의 2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간다.

게으른 ‘아침형 인간’?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서서히 업무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하루 일정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오고, 전화가 걸려오고, 갑작스러운 회의가 소집되고, 앞의 일이 지연되고 뒤의 일이 밀린다. 한번 일정이 엉키면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이 마무리되질 않아 뒤죽박죽이 된다. 퇴근 무렵, 당초 처리하려 했던 일의 절반가량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결국 일을 싸들고 집으로 간다.



나는 내가 부지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굿바이, 게으름’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부지런한 게 아니라 분주할 뿐이고, 적절하게 취사선택할 줄 모르는 분주함은 오히려 게으름에 가깝다. 모든 일을 잘하려는 것은 환상이며 그런 환상은 우리를 ‘분주한 게으름’으로 몰고 간다.

주변적인 일에 매달리며 정작 중요한 일은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서둘러 해치우고 있지 않은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혼자 끌어안고 있다 전전긍긍하며 귀가하는가?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친절한 당신’인가?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늘 미약한가? 게으름의 실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외연이 넓다.

랍비 마빈 토카이어가 쓴 ‘탈무드2’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구약 ‘창세기’ 편에서 하루가 끝날 때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씌어 있는데, 유독 둘째 날만큼은 그런 말씀이 없는 이유를 놓고 랍비들끼리 논쟁을 벌였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둘째 날 하느님은 육지와 바다를 나누셨는데 그날 중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다음날로 넘겨서 “좋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슨 일이든 “다 끝나기 전에는 좋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고 있는 중이에요.” “거의 다 했어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당신도 게으름뱅이다.

신동아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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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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