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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담 기자의 ‘박근혜 경선 1년’ 밀착 취재기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은 박근혜, 제조자 먼저 먹는 ‘폭탄주 원칙’만 안 지켰다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박근혜 전담 기자의 ‘박근혜 경선 1년’ 밀착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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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담 기자의 ‘박근혜 경선 1년’ 밀착 취재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8월27일 서울 종로구 하림각에서 열린 캠프 해단식에 참석해 참석자들의 인삿말을 듣고 있다.

그의 1년여 경선 과정을 관통한 것도 이 솔직함이었다. 그러나 원칙만 고집하는 모범생에 대한 주변의 우려는 컸다. “그것만 가지고는 거친 정치판, 치열한 경선전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의 사무실은 2006년 가을, 문을 열었다. 당시 박 전 대표의 사무실은 대선 캠프라기보다는 확대 비서실 정도였다. 그는 좀체 경선 운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조직 활동도 없었고, 언론에도 나서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선이 너무 일찍 과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박 전 대표 측 의원들이 경선 패인의 핵심적 이유로 꼽는 게 이 시절이다. 당 대표직을 내놓은 뒤 박 전 대표는 2006년 6월에서 9월까지 대략 4개월가량 언론에서 사라져 있었다. 활동이 없었다. 그 시기 이명박 전 시장의 활동은 정반대였다. 이 전 시장측이 조직 장악에 박차를 가한 것이 이맘때였다. 당시 박 전 대표에게는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측근들의 건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움직이지 않았다.

“강 대표에게 예의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이 시기에 손을 놓아 버리고 언론에서 사라진 이유는 또 있었다. 박 전 대표는 ‘강재섭 대표가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돼 막 활동을 시작한 마당에 이전 대표가 너무 언론에 노출되고 돌아다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시기 박 전 대표 측의 활동 공백은 이후 조직 경쟁에서 이 전 시장 측에 밀리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결국 추석을 전후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간의 지지율 격차가 거의 2배 가까이 벌어지는 원인이 됐다. 후에 따라잡는데 그만큼 힘이 들었고 결국 턱 밑까지 와서 패배하고만 것이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다는 혁신안도 결과적으로 박 전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그것은 박 전 대표의 대표 시절 만들어졌다. 그는 2006년 6월 당 대표직을 내놓는다. 이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 “바보 같은 짓”이었다.

위기의 한나라당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그가 대선을 1년6개월이나 남겨두고 당권을 스스로 내놓을 이유는 없었다. 내놓는다 해도 대통령 선거 1년 혹은 6개월 전에 내놓으면 될 일이었다.

2005년 만들어진 혁신안의 금과옥조 같은 조항이 당권 대권 분리였다. 의도는 이랬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는 유력 대선 후보인데다 당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왕적 총재였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대선 후보와 당권과의 거리를 띄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분’만 그런 것이었다. 당시 혁신안을 만든 주체들에게는 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박근혜 전 대표를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더 강했다. 2006년 6월에야 시장과 지사직을 내놓고 퇴임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지사와 박 전 대표가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정 경쟁을 위해 박 전 대표도 비슷한 시기 당권을 내놓고 사퇴하라는 얘기였다. 어찌 보면 억지스러운 주장이었지만 박 전 대표는 두 말 없이 받아들인다.

7월19일의 검증 청문회는 박 전 대표 측 처지에서는 무척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는 “5·16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구국 혁명”이라고 답했다.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해서도 변호로 일관했다. 많은 이가 “박근혜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고 평했다. 중도층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드는 완고함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결국 ‘이 같은 이미지로는 외연을 넓힐 수 없다’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 ‘제2의 이회창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확대재생산 됐다.

“나에 대한 정치공세”

사실 그는 고집과 강단으로 살아왔다. 18년의 삶을 그렇게 버텼다. 고집과 강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청문회 때 쉬운 길을 알았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나 최 목사에 대한 평가에 집착하지 않으면 됐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혁당 재건위 재심 결과가 무죄로 나왔을 때였다. 박 전 대표의 캠프에서 참모회의가 열렸다. 공식 반응을 어떻게 내놓을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결론은 “피해자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였다. 회의 결론이 박 전 대표에게 전달됐다. 박 전 대표는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이어 일주일 시차를 두고 긴급조치 위반 사건 판결 판사의 명단이 공개됐다. 한 기자가 박 전 대표에게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의 첫 마디는 “나에 대한 정치공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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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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