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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고수들의 인문학 비평 모음집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온라인 고수들의 인문학 비평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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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이란 필명의 회원은 ‘위기론에 대처하는 한국문학의 자세’라는 묵직한 제목의 글에서 일본 소설의 국내 범람 현상을 개탄했다. 그는 일본 소설을 주례사 비평으로 옹호하는 평론가들에 대해 “비평가들이 출판사로부터 돈을 받는 고용인의 위치에 머문다면, 그래서 작가와 비평가의 유희적이며 공허한 권력의 위상학에만 몰두한다면 그것은 결국 돌고 도는 굴레 내에서 서로 부패할 뿐”이라 질타했다.

필명 ‘세바스찬바흐’는 ‘나쁜 년을 바라보는 몇 가지 방식’이란 글에서 소설가 정이현의 작품들을 비판했다. 서울 소재 대학을 나온 중산층 여성들의 ‘수다’로만 가득 찼다는 것이다. ‘지름신’의 강림 탓에 카드 대금을 걱정하고,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낭만을 꿈꾸며, 불필요한 비판에 휘말리지 않으려 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것이 작가의 한계라는 것. ‘계급’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엉터리 번역, 부끄러워해야

외국문학 부문을 펼쳐보자.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푸른괭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이 오늘날까지 독자를 사로잡는 이유는 소설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 때문이라 분석했다. 작가 자신은 반(反)허무주의 소설을 염두에 두고 썼고 작품 발표 당시에는 그렇게 읽혔으나 세월이 흐르며 밑도 끝도 없는 허무주의 소설로 읽힌다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거의 모든 작품은 특정한 시대정신에 귀속되는 듯하다고…. ‘푸른괭이’는 고전의 번역도 시대 흐름에 따라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수, 박형규 등 원로 러시아문학가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번역본은 훌륭하기는 하지만 독자의 언어감각이 변하므로 이에 걸맞게 재번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죽기 전에 꼭 내 손으로 번역해보고 싶은 책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고 밝혔다.

많은 댓글이 붙은 ‘논쟁의 고원’이란 장(章)을 읽으면 카페 내 소통, 번역, 스크린쿼터 등 여러 현안에 대해 회원들이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필명인지 본명인지 불분명한 ‘김남시’는 ‘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하기 쉬운가’라는 발제문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사적(私的) 글쓰기와 공적(公的) 글쓰기의 경계를 허물어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인터넷에 올린 사적인 감정과 생각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공적 이슈와 결부되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회원은 ‘참을 수 없는 번역의 부끄러움’에서 비평가 힐리스 밀러의 ‘문학에 대하여’(동문선, 2004년) 번역본이 적잖은 번역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글을 올려 ‘불멸 회원’이 된 ‘로쟈’는 “이런 엉터리 번역서를 낸 데 대하여 저자에게 사죄할 일이며, 이런 쓰레기 같은 번역서를 내는 데 동원된 종이들과 잉크들에게 부끄러워할 일이다!”라고 썼다.

필명 ‘n-69’는 도올 김용옥의 ‘효경 한글역주’에서 오역 몇 개를 찾아냈다. 전체적으로 유려한 필치의 번역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옥에 티가 눈에 그슬리는 것으로 지적했다.

책 대신 TV 켜면 희망없다

흥미진진한 기행문 3편도 눈길을 끈다. 폴란드 포즈난에 체류하는 필명 ‘sophie’는 발트해 연안의 도시 그단스크에서 셰익스피어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5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현지에 도착했다. 그곳 주민 남자의 안내로 극장까지 헤매지 않고 찾아갔다. 폴란드인들은 걸음이 무척 빨라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숲속 야외무대에서 공연된 ‘한여름 밤의 꿈’을 발성 좋은 배우들의 연기로 즐겁게 감상했다. 연극 한 편을 보고 다시 기차에 5시간 동안 몸을 싣고 돌아왔다.

중국 상하이의 필명 ‘루이차오’는 한국문화원 방문기를 실었다. 번화가 빌딩 2,3층에 자리 잡았는데 철통같은 경비가 인상적이란다. 현관문은 닫혀 있고 방문객이 벨을 누르면 안에서 열어준다. 장서 4000권이 비치된 도서관은 매우 한적했다. 한국영화를 정기 상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인 방문객을 늘려야 할 것을 제안했다. ‘루이차오’는 몇 달 뒤에 문화원에 갔더니 중국인들이 몰려와 태권도, 한국요리, 사물놀이 등을 배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변화를 실감했다.

모스크바에서 체류기를 보낸 ‘로쟈’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의 부음(訃音)을 듣고 애도하는 글로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며 프랑스 철학자까지 관심의 대상으로 두고 있으니 그의 지적 스펙트럼이 넓음을 알겠다. 독서 마니아인 그는 “책을 읽는 대신에 TV를 켜는 문화에는 희망이 없고, 지식인이 책을 쓰지 않는 걸 ‘겸양’으로 치는 나라에도 희망은 없으며, 학생들이 글쓰기와 짜깁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라에도 희망은 없다”고 강조한다.

유난히 두툼하고 무거운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느라 행복하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풍성한 메뉴의 내용을 뒤적이느라 행복했지만 며칠간 만사를 제쳐두어야 함은 생활인으로서 고통스러웠다.

신동아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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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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