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의무교육은 12년이다. REX
편향 교과서 어이할꼬
박근혜 대통령은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 없다면) 통일이 돼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는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검정교과서가 몇 종인지는 형식적 숫자일 뿐이고 사실상 1종의 편향 교과서”라며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적 교과서를 선택해 다양성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편향성 논란의 중심엔 사관(史觀)이 있다. ‘민중사학’과 이에 반발하는 측이 충돌한다.
민중사학은 반(反)외세를 앞세운다. 검정제 시행 이후 민중사학계 인사 상당수가 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했다. 현행 교과서에 편향성이 있는 건 문제지만, 국정교과서 1종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국정과 검정이 경쟁하는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역사 해석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으며 독점해서도 안 된다. 일방적 견해를 주입하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역사는 집단의 기억이다. 권력이 특정 해석을 주입한다 해서 집단의 기억이 바뀌는 게 아니다. 기억 투쟁은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다.
북한의 교과서에는 국정화의 폐해가 고스란히 담겼다. 권력(김일성, 김정일)이 역사 해석을 독점한다. 계급사관, 유물사관으로 역사를 서술했다. 좌편향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우리 민중사관식 교과서 서술의 최고봉 격이다. 북한 교과서 ‘조선력사’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활동’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력사’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을 살펴봤다.
북한 역사교과서의 명칭은 ‘조선력사’다. 총 6권.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에서 3권씩 배운다. 북한의 의무교육은 12년이다. 유치원 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 2014년 개편된 학제다. 2002~13년엔 유치원 1년, 소학교 5년, 중학교 6년이었다. 2002년 이전에는 의무교육이 11년이었다. 소학교를 인민학교(4년)라고 칭했으며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는 고등중학교(6년)였다.
‘조선력사’는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왕이나 봉건 통치자들의 역사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투쟁 역사와 창조의 역사를 알자는 것”이라면서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혁명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대중을 역사의 중심에 뒀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중사관과 시각이 유사하다.
‘조선력사’ 1권은 을지문덕, 대조영, 우륵, 혜초 등 인물 중심으로 옛날 얘기하듯 서술돼 있다. 2권은 고려, 조선 역사를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소개한다. 1, 2권은 “왕건은 궁예를 왕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2권 1과 ‘첫 통일국가를 세운 왕건’)라는 식의 ‘…습니다’ 문체로 서술한다.
3~6권은 ‘고주몽은 기원전 298년 부여에서 태어났다’ 식의 ‘했다’ 문체로 돼 있다. 3~6권이 본격 서술이다.
3권은 ‘1장: 원시공동체 사회’, ‘2장: 노예소유자 사회’, ‘3장: 봉건사회-첫 봉건국가들’, ‘4장: 발해와 후기신라’로 이뤄졌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역사발전 5단계설(원시 공산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을 따른 것이다. 한국은 고대, 중세, 근세, 근대, 현대로 시기를 구분한다.
4권은 고려, 5권은 조선을 다룬다. 6권은 1905~1929년이다. 북한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때를 1910년 경술국치가 아니라 1905년 을사늑약으로 본다. 1905~1945년이 일제강점기인 셈이다.
1930년 이후 역사는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활동’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력사’라는 이름의 교과서에 담겼다. 김일성의 역사가 나라의 역사가 된 것이다. 1930년부터 최근까지를 다룬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이라는 별도의 교과서가 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이 역사 해석 권한을 독점한다. ‘조선력사’ 1권은 김정일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
김일성의 말은 ‘교시’, 김정일의 말은 ‘말씀’이다. 북한은 “수령은 오류가 없다”고 가르친다. ‘교시’ ‘말씀’은 인민이 관철할 목표다. 생활총화 때도 ‘교시’ ‘말씀’을 근거로 자아비판, 상호비판을 한다. ‘교시’ ‘말씀’은 실제 발언을 적은 게 아니라 특유의 형식으로 각색해 정리한 것이다. 경제학 논문도 ‘교시’ ‘말씀’을 인용해 작성한다.
“동족 배신한 신라 통치배”
‘조선력사’에서 사실 서술이 아닌 역사에 대한 평가를 다룬 부분은 김일성, 김정일의 해석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역사 해석에 따른 적통은 고조선→고구려→고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신라의 3국통일과 조선 건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라에 대한 역사 해석은 김정일이 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조선력사 3권). 통일신라는 3권 4장 ‘발해와 후기신라’에서 △고구려에 대한 배신 △백제에 대한 배신 △신라의 배족행위 항목으로 다룬다. ‘조선력사’에서 “후기신라”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가르치는 대한민국에 비견되는 존재다.
북한에서 고구려는 강성대국이다. ‘조선력사’ 3권 3장의 목차는 1절 : 강성대국 고구려, 2절 : 백제, 3절 : 신라로 이뤄졌다.
고구려를 다룬 3권 3장 1절은 “지난날 우리나라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강하던 시기는 고구려였습니다”라는 김일성의 ‘교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상무기풍과 군사력”을 ‘강성대국 고구려’의 배경으로 꼽는다. ‘조선력사’는 “강성대국 고구려는 강대한 국력을 가졌으나 말기에 단합이 이뤄지지 못해 동족의 나라들을 배신한 신라 통치배들의 배족행위와 당나라 침략군에 의해 멸망한다”면서 “내부가 분열하고 투항·변절자가 나타나 침략자와 손을 잡는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백제는, 김일성의 해석에 따르면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다. ‘조선력사’의 백제사(4쪽) 서술은 고구려사(18쪽), 신라사(8쪽)보다 짧다.
‘조선력사’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직접 계승한 나라다. 김정일은 “동족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던 고구려의 지향은 10세기 초에 창건한 고려에 의해 계승됐다”(조선력사 4권)고 해석했다.
북한 학생들은 유물사관에 입각한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운다. REX
‘조선력사’에 따르면 조선은 건국돼서는 안 될 나라다. “리성계 일파”가 왕권을 찬탈해 “봉건 통치배”들이 “인민을 수탈한” 부끄러운 역사다. 김일성의 해석은 이렇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
‘조선력사’ 5권은 “조선의 봉건적 착취 형태”를 규탄하면서 “착취와 압박이 있는 곳에서는 반항이 있는 법”이라는 김일성 ‘교시’를 인용한다. “함경도 농민전쟁”(이시애의 난) “평안도 농민전쟁”(홍경래의 난), “1862년 전국 농민폭동”(진주민란 등 71개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항쟁),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에 방점을 찍었다.
‘조선력사’는 선사시대를 “원시공동체 사회”로 규정한다. 고조선, 부여 등은 “노예소유자 사회”다. “봉건사회”는 삼국시대~조선시대다. “17세기에 자본주의적 관계가 나타났다”(조선력사 5권)고 본다. 카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꿰맞춰 서술한 터라 억지스럽다.
1884년 갑신정변은 실패한 부르주아 개혁(김일성, “갑신정변은 궁중에서 일어난 단순한 권력싸움이 아니라 나라의 근대화를 목적한 부르주아 개혁이었습니다”)이다. ‘조선력사’는 “진보적인 관료들이 정권을 잡아 국가기구를 뜯어고치려고 했으나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지도자들은 양반 관료 출신으로 계급적으로 미숙했다”면서 “김옥균은 우리나라를 개명시키려고 한 부르주아 개혁운동자였고 애국자였다”고 서술한다.
한국 역사교과서는 갑오개혁(1894년) 이후를 근대로 본다. ‘조선력사’도 5권이 갑오개혁에서 마무리된다. 북한은 갑오개혁을 “민족적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개혁”이라고 규정하면서 “우(위)로부터 실시된 개혁이었으므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토지를 농민에게 나눠주지 못한 것이 한계”라고 지적한다.
북한은 1946년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1945~1961년에 걸쳐 생산수단 국유화를 완성하면서 사회주의를 성립한다. ‘조선력사’에 따르면 원시 공산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사회→자본주의사회(“자본주의적 관계가 나타난 17세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완성한 것이다.
‘조선력사’는 이렇듯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에 맞춰 역사를 서술한다. 삼국시대~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는 한국의 사학자는 없다. ‘조선력사’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에서 ‘민중사관’이라고 일컫는 관점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인민의 저항사’가 서사의 큰 줄기다.
대원군의 집권~임오군란까지는 “외래자본주의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5권 4장)이다. “갑오농민전쟁”을 다룬 5권 5장 3절의 첫 문장은 이렇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 김일성은 “갑오풍운의 총아 전봉준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한 점의 불꽃”이라고 평가한다.
고려사도 “12세기 후반~13세기 초의 대농민 전쟁”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평양 농민군의 투쟁” “망이농민폭동” “경상도 농민군의 투쟁” “실패한 만적의 폭동계획”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신라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9세기 후기신라의 농민전쟁(“붉은바지농민폭동” 등)”이 유일하다.
반외세도 북한 역사 서술의 핵심이다. 침략에 응전한 역사도 민중을 중심에 두고 서술한다. ‘조선력사’는 대몽 항쟁기를 “봉건몽골의 고려 침략기”로 규정하면서 인민의 투쟁사로 기록한다. “국토 완정을 위한 고려민들의 투쟁” 덕분에 “원나라 침략세력을 몰아냈다”고 서술한다.
사라진 조선 왕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도 마찬가지다. ‘조선력사’는 임진왜란을 “임진조국전쟁”이라고 칭한다. “왕은 도망갔”으나 “애국심에 불타는 우리 인민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바다와 육지에서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한 사람같이 떨쳐나섰다”는 것이다(5권 2장).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관군의 이름이다. ‘조선력사’ 전체에서 “봉건 통치배들의 정점”인 조선 국왕의 호칭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병자호란은 “청나라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으로 서술한다. “왕을 비롯한 통치배들은 평양이 강점되자 수도를 버리고 강화도 또는 전주로 도망쳤”으나 “인민들은 침략자에 반대해 도처에서 용감히 싸워 큰 타격을 안기었다. 그리하여 적들은 할 수 없이 봉건정부와 화의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조선력사’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투쟁해온 역사를 강조한다. 근·현대사는 “미제”와 일제의 침략에 맞선 역사다. “미국 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인민들의 투쟁”(신미양요), “프랑스 침략자들을 물리친 인민들의 투쟁”(병인양요)(5권 4장)은 “사대투항적”인 “봉건 통치배들”의 “매국배족적 책동”과 비교된다.
‘日帝=美帝’ 구도 서술
1866년 셔먼호 사건은 1권, 5권에서 다룬다. ‘조선력사’가 특정 사건을 두 차례 다룬 것은 셔먼호가 유일하다. 1권 22과의 제목은 “대동강에 처박힌 셔면호”다. “미국놈”들이 “날강도만이 할 수 있는 강도적 요구”를 할 때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인민들이 침략자를 쳐물리치기 위한 성스러움 싸움에 떨쳐 나섰”다는 것이다. 5권은 셔먼호 사건을 더욱 구체적으로 다룬다. 1권, 5권에 똑같은 김일성 ‘교시’가 실려 있다. “미제국주의는 셔면호의 침입으로부터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동안이나 우리나라를 침략해 온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조선력사’ 6권은 일제강점기를 다룬다. “역사 연구에서 언제나 주체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라는 김정일 ‘말씀’으로 시작한 6권의 머리말은 “외래 침략자들과 반동적 봉건 통치배들을 반대해 줄기차게 싸우면서 역사 발전을 추동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6권의 1장은 반일 의병투쟁과 애국문화운동을 다룬다. 2장의 제목은 “1919년 3·1 인민봉기”다. 3장은 3·1운동 이후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쇠퇴”와 초기 공산주의 운동을 다룬다. 1장의 서술은 한국 교과서와 구분되는 특이점을 찾기 어려우나 일제 강점과 관련해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는 대목이 있다.
북한의 학제는 유치원 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이다. REX
6권 2장은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이 부르주아 민족운동 상층부의 투항주의적 행동을 박차고 반일항쟁에 나섰다”고 서술하면서 3·1운동을 “3·1 인민봉기”라고 규정한다. 민족대표 33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일제=미제’ 구도의 서술도 이어진다. “미제는 3·1 인민봉기가 부질없는 짓이라며 우리 인민을 모독하고 일제놈들에게 조선 인민의 반일 투쟁은 총칼로 사정없이 죽여야 한다고 부추겼다.”(2장 3절)
6권 3장은 초기 공산주의 운동을 다룬다.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상층 분자들이 반일 독립운동을 집어치우고 일제의 품속으로 기어들거나 다른 나라에 가서 매국배족적인 책동을 감행”하면서 “3·1 인민봉기”를 계기로 “대중운동이 장성(성장)”했다는 것이다. “독립군은 자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했다면서 1925년 “조선공산당이 창건”됐으나 “종파분자들” 탓에 “조직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없었으므로 “이 시기 투쟁은 수령의 출현을 목마르게 고대”했다고 서술한다.
박물관 보내야 할 교과서
1930년 이후의 역사는 앞서 언급했듯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활동’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력사’와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으로 가르친다. 북한 교과서는 “제국주의의 식민지”면서 “사대매국 정책”을 답습하는 곳으로 대한민국을 규정한다. 대한민국을 “인민에 의한” “자기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온 자랑스러운 역사”의 대척점에 두는 것이다.
‘미제와 일제의 조선침략 죄행’ 1장은 1930년 이후의 일제강점기(“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파쑈통치”)를 다룬다. 2장은 “미제의 남조선 강점” “조선침략전쟁 도발” “일본 군국주의의 조선 전쟁 가담” 등 8·15광복~6·25전쟁을 다룬다. 3장의 제목은 “전후 미제의 새 전쟁도발 책동과 일본 군국주의의 남조선 재침 책동”이다. 4장은 ‘미제와 일본 반동들의 ‘두 개 조선’ 조작 책동과 반공화국 압살 책동”을 다룬다. “리승만 괴뢰정권” “박정희 역도” “유신 잔당, 전두환 역도” “미제가 오랫동안 묻어둔 정치특무 김영삼 역도”가 4장에 등장한다. “미제가 정권 교체 연극을 벌여 ‘국민의 정부’를 출현시켰으나 ‘국민정권’ 역시 사대매국 정책을 답습했다”고도 평가했다.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활동’ ‘김일성 대원수님 혁명력사’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김일성의 행적이 역사가 돼버린 우상화 혹은 신격화 교재다. 통일 후 가장 먼저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교과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