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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알프스의 하이디는 보조금을 먹고산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농촌의 비밀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알프스의 하이디는 보조금을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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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와 농촌, 문명과 자연의 조화가 가능한 비밀 하나는
  • 농업 직불금이다. 직불금을 받고 자연친화적으로 생산한 제품은 높은 값에
  • 팔려나간다. 농장을 잘 관리해 그림 같은 농촌 풍광이 유지되면 관광객이 늘고,
  • 관광수익은 다시 농업보조금으로 지급된다. 이상적인 선순환 구조다.
알프스의 하이디는 보조금을 먹고산다

전형적인 스위스 농가와 농촌 풍경.

지난해 봄 스위스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남편의 사촌 다니엘이 만 30세 생일을 맞아 친지들을 서른 명쯤 초대했다. 스위스에서는 환갑, 칠순, 팔순뿐 아니라 스물, 서른, 마흔, 쉰 살 생일까지 특별히 여겨 파티를 연다. 친지들에게 저녁식사로 신선한 타조고기를 대접한다기에 타조고기로 유명한 식당에서 파티를 하나보다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들판 한가운데 있는 타조농장이었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땅이 질퍽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오는 건데!

결혼식이냐, 농업박람회냐

이 농장의 농부가 가이드가 돼 농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타조가 어떤 동물인지 설명해줬다. 이윽고 농장의 한 건물에 마련된 소박한 연회장에서 농부네 가족이 준비한 타조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며 생일파티를 즐겼다. 연회장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외양간의 타조들을 보면서 타조고기를 먹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타조들에겐 미안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의 생활방식에 익숙한 나는 스위스인들의 삶에 농업이 무척 가깝고 친숙하게 자리 잡은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뚜렷하지만, 스위스에선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에서도 조금만 벗어나면 금세 푸른 들판에서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인구 1만8000명의 소도시에서 사는데, 기차로 8분이면 스위스 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 장크트갈렌(St.Gallen)에 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집 창문 밖으로는 저 멀리 들에서 풀 뜯는 소들이 보인다. 도시와 농촌, 문명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이다. 이런 환경은 스위스인들의 생활방식과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준비할 때 나는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10월 중순쯤 결혼식을 치르자”고 예비 남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렵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10월 중순은 곤란해. ‘올마(OLMA)’가 열리는 기간이잖아.”

“올마? 그게 뭔데?”

“매년 장크트갈렌에서 열리는 스위스 농업식품박람회.”

“농업박람회랑 우리 결혼식이랑 무슨 상관이야? 자긴 농부도 아니잖아.”

“우리 결혼식 하객의 상당수가 이미 올마에 가기로 계획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기간에는 교통체증이 빚어질 테니 결혼식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어.”

“우리 하객들 중엔 농부가 없는데?”

“농부가 아니라도 장크트갈렌의 수많은 시민이 매년 올마에 간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납득이 제대로 안 됐지만 어쨌든 예비 남편의 의견을 따랐고, 우리는 농업박람회가 끝나고 10월 말에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올마에 직접 가보고서야 남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올마는 1943년부터 매년 10월 중순에 11일간 장크트갈렌의 올마 박람회장에서 열리는데, 농업·식품 관련업종 종사자뿐 아니라 이 지역의 시민들, 나아가 관광객들까지 찾아오는 큰 축제다. 지난해에는 무려 37만5000명이 올마를 보러 왔다. 성인 기준으로 하루 17스위스프랑(약 2만 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도 박람회 기간 중 여러 차례 올마를 찾는 시민도 많다. 그러니 올마는 가족, 친구 등과 함께 온 시민들로 연일 발 디딜 틈이 없다.

비싸도 身土不二!

알프스의 하이디는 보조금을 먹고산다

대도시와 가까운 곳에서도 들에서 풀을 뜯는 소를 자주 볼 수 있다.

올마에서는 이 지역의 건강하고 잘생긴 소들을 비롯해 돼지, 양 등 가축들을 전시하고 농업 관련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가전제품, 생활용품 부스도 마련돼 일반 관람객들은 이것저것 구경하며 살림을 장만한다. 음식 파는 부스에서 요기를 하고 가축들을 구경하며 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도 여럿 마주친다. 수많은 장크트갈렌 시민이 이곳을 찾으니 친구, 친척, 오래도록 못 본 학교 동창들까지 마주치고 얘기를 나누는 건 흔한 풍경이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재미를 위해 많은 시민이 올마를 찾는다. 농업박람회가 농업 종사자들만의 박람회를 넘어 20, 30대 젊은이들까지 손꼽아 기다리며 찾는 축제라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스위스 국민의 삶에 농업이 이렇게 친숙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수시로 목격하면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위스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40% 정도로 작은 데다 그마저 평지는 적고 대부분이 험준한 산과 호수로 이뤄져 농업에는 매우 열악한 여건이다. 흔히 ‘스위스’ 하면 떠올리는 푸른 전원 풍경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 치즈 때문에 스위스가 농업국가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농장의 대다수는 가족 단위의 소규모 농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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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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