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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홍일점 임원 이현정 상무의 일침

“한국은 한 꺼풀 벗기면 농경사회, 비보이 뛰어넘어 구글을 보라”

  • 이현정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 상무

삼성전자 홍일점 임원 이현정 상무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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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제조업 공동화를 우려한다. 한편에선 지나친 규제와 강성 노조를 탓하고, 다른 한편에선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시정해도 제조업 공동화의 거센 흐름을 막을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고 넋 놓고 지켜볼 것인가.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2003년 삼성전자에 영입돼 해외 마케팅 업무를 총괄해온 이현정 상무가 최근 5년간 한국에서 지내며 진단한 한국 경제의 한계와 가능성.
삼성전자 홍일점 임원 이현정 상무의 일침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이라는 부서 특성상 우리 팀에는 한국인 직원과 외국인 직원이 섞여 있다. 문화행사 체험은 외국인 직원들에게 한국 문화를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다. 한번은 이들과 함께 비보이(b-boy) 공연을 보러 갔다. 특별히 비보이 공연을 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비보이의 성공을 이해하면 ‘한강의 기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한국에 온 나는 비보이 현상을 유심히 살펴봤다. 미국에서는 브레이크댄싱을 길거리 문화 정도로 이해한다. 원래 브레이크댄싱 무용수는 완벽한 체력을 바탕으로 고도의 테크닉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에 가깝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여기에 예술성을 추가했다. 미국에서는 동네의 재주 있는 아이 몇몇이 모여서 취미로 시작한 길거리 문화가, 한국에 전해진 다음엔 세계 최고의 한류(韓流) 문화상품이 됐다. 한강의 기적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5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최하위권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렇다 할 자원 하나 없이 말이다. 우리가 발명한 것도 거의 없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발명했든 우리는 피나는 노력으로 원산지보다 한술 더 떠 완벽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반도체가 그렇고, 평판TV가 그렇고, 휴대전화가 그렇다. 철강업이 그렇고 조선업도 그렇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대회마다 베스트 10에 한국 선수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세계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신이 내린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한국 젊은이의 DNA가 바뀐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일단 목표를 정하면 오로지 그것 하나에 매진하는 피땀의 결과다.

그러나 하루 10시간씩 그림 연습을 한다고 누구나 피카소 같은 위대한 화가가 되는 건 아니다. 명화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 붓놀림이 아니라 깊숙이 내재된 감성과 영감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장방식으로 비보이는 가능하지만, 피카소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요즘 한국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제조업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한다. 갖가지 원인 분석과 진단, 처방이 제시된다. 보수언론이나 재계에서는 좌파정부의 경제정책과 지나친 규제, 강성 노조를 비판하고, 진보언론이나 시민단체는 기업 투명성 문제와 균형 없는 산업구조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이런 원인들이 다 시정된다 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제조업 공동화 추세가 다소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지연될지 몰라도, 방향 자체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동화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GNP가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임금은 당연히 올라간다. 세계시장이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는 단계에서, 제조업이 한국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우리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소비자가 밀집한 곳에서 공장을 돌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동화는 제조업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산업에서도 일어난다. 내가 일하던 벨 연구소, 세계 통신시장을 주름잡던 루슨트 테크놀로지 같은 회사는 2000년 초부터 몇몇 첨단 개발업무까지 인도로 내보냈다. 현재 미국의 회계회사들은 단순 회계업무를 인도로 보낸다. 몇몇 미국 병원은 X-레이나 MRI 판독을 인도에서 해온다. 기업의 실시간 소비자 전화 상담은 영어권인 인도나 필리핀에서 맡아 하고, 미국 지방자치단체들은 과속차량이나 주차위반과 같은 행정처리를 영어권의 아프리카 국가에 외주를 주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전 세계에 깔린 초고속통신망 덕분이다.

비보이와 피카소

요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제조업 공동화는 더 큰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며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달나라로 이민 가서 딴살림 차리지 않는 이상, 문을 닫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대륙의 유럽 국가들이 자국 제조업과 노동자 보호를 위해 사회주의적 정책을 고수한 결과가 무엇인가. 그들의 현주소를 보라.

미국이 IT, 하이테크, 인터넷과 같은 미래지향적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대처 총리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영국병’을 치유하는 동안, 대륙 유럽의 위상은 점점 추락했다. 이제야 그들도 코스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그 일을 시작했고, 프랑스 국민은 이런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 영국식 자유자본주의가 유럽식 사회주의에 판정승을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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