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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피자 배달 ‘알바’의 추억

  •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

피자 배달 ‘알바’의 추억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알바 중 하나는 피자 배달이다. 배달하는 액수에 비례해 기름 값과 팁을 덤으로 얻고 법정 최저임금도 받는다.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인의 사적 공간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특권(?)도 있다. 일반 가정은 물론 월마트, 공장, 사무실에 편하게 들어간다. 저녁시간이나 이른 새벽도 가리지 않는다. 필자는 무려 7년 이상 지속한 이 알바를 통해 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것은 유학이 안겨준 색다른 선물이었다.

프로정신과 공동선

미국인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남의 말을 잘 믿어주지만 단 한 번의 거짓말도 용납하지 않는다. 프로 정신이 철저하다. 영업 마감 직전에 주문이 들어와도 배달을 한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고객과의 약속은 지킨다. 지역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도 아주 강하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단체행사가 있을 때 피자집은 전교생이 먹을 수 있을 분량의 피자를 공짜로 기부한다. 대신 피자배달원에게 교통사고라도 나면 가던 차는 멈추고 바로 달려온다. 마이클 샐던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던 공동선의 현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2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이러한 공동선과는 거리가 멀다. 참외 밭에서 일부러 신발을 고쳐 신고, 자두나무 아래에서 남보란 듯이 갓 끈을 고쳐 맨다. 삼척동자가 봐도 알 수 있는 이해관계의 상충을 경고하면 지나친 기우라고 면박을 주거나 증거를 대라고 윽박지른다. 정부의 고위 관료는 퇴직하기가 무섭게 대기업의 사외이사나 로펌으로 옮겨간다. 공직을 통해 얻은 정보와 인맥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판다.

기업체가 후원하지 않는 지식은 아예 생산되지 않고 곡학아세(曲學阿世)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 법조계, 종교계, 노동조합, 시민단체 할 것 없이 제 몫 지키기에 혈안이다. 국민의 분노가 허탈감과 무기력으로 바뀌면서 자살률도 오르고 있다.

1987년 민주화의 봄을 계기로 언론은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위한 공론장을 열었다. 국민은 비로소 소통했고 여론이 실체로서 등장했으며 권력은 언론의 감시를 받았다. 경제성장과 국가안보에 짓눌렸던 약자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아닌 평화, 차별이 아닌 평등, 경쟁이 아닌 공존, 거짓이 아닌 진실을 위해 언론은 앞장섰다.

언론은 점차 공적 자산으로 복원되었고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언론인은 긍지를 느꼈고 민주주의는 생동감에 넘쳤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봄은 짧았다. 1990년대 들어 좀 이상해졌다. 언론은 밤의 대통령을 자처했고 스스로 권력이 되어 친기업적인 가치와 의제를 전파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 파워 엘리트의 지형은 급변했다. 그간 한국을 이끌어왔던 관료집단과 토착 지식인은 해외전문가와 미국 유학파 지식인으로 대체되었다. 언론은 이번에도 재빠르게 변신했다. 언론은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됐다. 정치 무대도 장악하기 시작했다. 맹형규, 박성범, 이윤성, 정동영 등의 앵커를 비롯해 한선교, 이계진, 박찬숙, 박영선 등 아나운서가 대거 정계로 진출했다. 정계, 관계, 재계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급증했다. 대선 때만 되면 유력 주자 캠프에 언론인이 북적댄다. 논공행상에서 이들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정부 내에서 이들은 여론공학에 몰두했다. 정권의 얼굴 마담을 자처했다.

국민이 부여한 특권을 통해 축적한 전문성, 인맥, 국민적 신뢰까지 철저하게 사유화되었다. 그 결과가 추하고 참담할 것이라는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권 말기를 맞아 구속되거나 불명예 퇴진한 언론계 출신 인사다. 연대 파업 중인 방송사의 김재철, 김인규, 배석규 사장은 모두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 회복해야

1970년대 미국은 반전데모와 인권운동으로 뜨거웠다. 워크맨, 복사기, 카메라 등 당시의 뉴미디어로 무장한 대학생과 시민은 대안언론을 설립했다. 이들은 탐사보도에 매달렸다. 정부, 대기업, 군대, 정치권의 비리와 거짓이 속속 드러났다. 제도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국민은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베트남전 종식을 이끌어낸 펜타곤페이퍼 등 일련의 탐사보도를 통해 미국 언론은 신뢰를 회복했다. 한국 언론이 참고해야 할 역사다.

신동아 2012년 6월 호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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