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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⑦

지리산 터줏대감 김을생

“바람과 빛과 대화하며 함께 흘러가지요”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지리산 터줏대감 김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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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錦湖) 김을생 선생은 ‘지리산 터줏대감’이다. 70 평생 지리산에서 살아온 그는 스님들의 발우를 만들어 팔며 지리산을 오가는 고승, 기인, 달사들과 교분을 나누었다. 요즘은 가만히 앉아 청산과 냇물에게 말을 걸 때가 많아졌다는 그는 이미 지리산의 일부다.
지리산 터줏대감 김을생

집 뒤에 작은 토굴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경전도 읽고 염불도 한다는 김을생 선생. 그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만끽하고 있다.

“명산에는 반드시 명인이 있다!”필자의 답산철학(踏山哲學)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나보아야 제대로 산을 다녀온 게 된다.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산만 올라갔다 내려오면 팥소 없는 찐빵만 먹은 셈이다.

명산은 각기 지기(地氣)가 다르다. 지기가 다르면 거기에 머무르는 사람의 성향도 달라진다. 계룡산은 역대로 예언자가 많이 배출되는 산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기운이 강한 탓이다. 그래서 계룡산에는 주역파(周易派)와 비결파(秘訣派)가 운집해 있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계룡산을 더듬어야 한다.

속리산은 의술에 능통한 도사를 많이 배출한 산이다. 속리산파 인물들 가운데 침을 잘 놓거나 약 처방에 능통한 사람이 많은데 비로봉 밑 상고암(上庫庵)에 머무르면서 40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였던 학산(鶴山)스님이 대표적인 인물. 제자들에 따르면 학산은 평상시에도 밥을 잘 먹지 않고 자신이 약초로 제조한 환약(丸藥)을 복용했다고 한다. 밥 대신 환약만 먹으면서도 일생동안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비로봉 상고암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침을 놓아주고 약 처방을 하면서 인술을 베풀었다.

설악산은 차력과 축지, 그리고 무술에 조예가 깊은 도인이 많았다. 산 전체가 험한 바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바위가 험한 산들은 그 이름에 악(嶽)이나 악(岳)자가 붙는데, 이런 산에는 고대로부터 정신세계의 고단자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설악산도 마찬가지이다. 전통무예 ‘기천문’의 장문인이었던 원혜상인(元惠上人)이나 박대양(朴大洋)이 피나는 수련을 했던 곳도 설악산이다.

지리산 북쪽 사랑방 주인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 지리산. 둘레만 해도 850리나 된다. 설악산이 대표적인 골산(骨山)이라면, 지리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육산(肉山)이다. 골산은 바위가 돌출된 산이고, 육산은 흙이 두텁게 덮인 산을 일컫는다. 설악산이 마음을 긴장하게 만드는 산이라면 지리산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산이다. 육산이라서다. 역대로 지리산에는 불로장생을 추구했던 신선들이 살았다. 산이 두텁고 먹을 것이 많아서 숨어살기에 좋다. 현재도 별다른 직업 없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숨어사는 낭인과(浪人科)가 3000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지리산을 말하면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금호(錦湖) 김을생(金乙生·69) 선생이다. 남원군 산내면 백일리에서 태어난 그는 일생을 지리산에서만 산 지리산 터줏대감이다. 전주에서 학교 다닌 때와 군대생활 외엔 타향으로 나간 적이 없다.

선인들은 지리산 산세를 청학과 백학이라는 두 마리 학에 비유해 지리산에는 ‘남비청학쌍계사(南飛靑鶴雙磎寺)요, 북래백학실상사(北來白鶴實相寺)라!’는 말이 전해져온다.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를 만들었고, 북으로 날아온 백학은 실상사를 만들었다’는 뜻. 즉 지리산 남쪽의 정기가 뭉친 곳이 쌍계사이고 북쪽의 정기가 뭉친 곳이 실상사라는 얘기다.

김을생 선생이 사는 백일리는 실상사 바로 앞에 있는 동네다.

이 동네 앞에는 1000년 전부터 전라도 남원의 운봉과 인월 사람들이 경상도 함양의 마천 쪽으로 넘어 다니던 길이 있다. 즉 경상도와 전라도가 맞붙어 있는 접경지역인 것이다.

김 선생은 이곳에서 나무로 발우를 만들어 팔면서 지리산을 오가는 고승, 기인, 달사들과 접촉했다.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일컫는 말. 불가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할 때 그 징표로 옷과 발우를 전수할 만큼 승려에게는 필수품이다.

그는 목발우를 통해 평생 지리산 북쪽에서 사랑방 주인 노릇을 해왔다. 그가 축적한 ‘지리산학’과 ‘지리산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평생 지리산에 사셨지요. 어떻게 보면 산속에서 답답하게 산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청복(淸福)을 받은 ‘상팔자 인생’ 같기도 합니다. 지리산에 사는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두보의 시에 나오는 대목인 ‘전어풍광공류전(傳語風光共流轉)’이라고나 할까요. ‘바람과 빛과 대화하면서 함께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나이 칠십이 되니 이 시구가 그렇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혼자 가만히 앉아서 청산을 보면 말을 걸고 싶습니다. 때로는 골짜기에 흐르는 냇물이 제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 비로소 산천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풍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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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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