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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④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바람이 나인가, 내가 바람인가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지리산 은사(隱士) 시인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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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센 자리 같습니다. 암자터 같은 분위기인데, 어떻게 여기서 살게 되었는지요.

“원래 정년 퇴직한 교장선생님이 만년에 시를 읊으면서 살던 곳이었습니다. 몇 년 전 돌아가시고 비어 있었는데, 구례 사람들의 소개로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죠.”

-집세가 얼마나 되는가요.

“1년에 50만원입니다. 그동안 살았던 집 중 가장 비싼 집이에요. 이전에 살던 집들은 대개 공짜였거나 아니면 1년에 20만원 정도 줬습니다.”

그는 지리산 이곳저곳을 옮겨다녔다. 지리산 산동네에는 빈집이 많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7년 전 서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왔다. 서울살이가 징글징글해서다. 계속 있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무슨 대책을 세워놓았던 것도 아니다. 용수철 튕기듯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내려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지리산에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엔 섬진강변의 용두리 민가에서 살았다. 전에 안면이 있던 스님이 쓰던 토굴이었는데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 마침 비어 있어서 열쇠를 따고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 1년 살다가 피아골 조동마을의 빈집으로 옮겼다. 그 후 실상사에서 1년 반, 칠선계곡 입구에서 1년을 머물렀다. 그러다가 다시 구례 섬진강변의 마고실(麻姑室)에서 살았다. 마고실은 섬진강변에서 강변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동네.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2004년 초에 들어왔다.

지리산 둘레는 340km, 대략 850리 정도다. 구례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남원시 등 5개 시군(市郡)이 지리산권에 포함되어 있다. 지리산은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 낭인(浪人)의 해방구이자 자연주의자의 메카였다.

-지리산에서 사는 낭인과(浪人科) 인물은 대략 몇 명이나 되는가요.

“5년 전쯤 경찰서 정보과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략 3000명에 달한다고 해요. 지리산 둘레의 5개 시군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통계를 정확하게 낼 수는 없어요. 남쪽의 화개에 살다가 칠선계곡으로 옮기고, 거기서 다시 실상사 인근의 뱀사골로 옮기는 식이죠.

70∼80년대만 하더라도 수상한 떠돌이가 산에 들어와 살면 곧바로 경찰이 와서 조사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경찰이 마음대로 ‘족칠’ 수 없습니다. 대신 동네의 이장이 조사합니다. 동네 빈집에 이사온 지 3일쯤 되면 이장이 와서 신원조사를 해요. ‘내가 이 동네 이장인데, 경찰이나 마찬가지야! 신분증 내놔봐? 어디 이씨야?’ 반말로 캐묻기 시작하죠. 제 경우 ‘기자 하다가 왔다’고 했더니 말투가 즉시 달라지더군요. 그리고 나서 내가 지은 책을 한 권 주면 태도는 더욱 달라졌어요. 이장은 이 내용을 경찰서 정보과에 보고하는 것 같습니다.

낯선 떠돌이가 동네에 들어오면 처음 6개월 간은 동네 사람들이 탐색합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왔다갔다하니까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죠. 이 탐색기간을 원만하게 보내는 제1의 방법은 인사를 잘하는 겁니다. 동네 사람을 두렁에서 보든, 두엄자리에서 보든, 길바닥에서 보든, 무조건 꾸벅 인사를 하면 합격이죠. ‘저 놈 인간성 괜찮네’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들 낭인과들이 하는 일은 다양해요. 기공(氣功)을 한다, 무속신앙인이다, 그림 그린다, 글 쓴다, 사진 찍는다, 녹차 만든다, 천연염색 한다는 사람에 떠돌이 중 노릇 하는 사람들까지. 그런데 무엇을 하든 밥을 굶지는 않아요.”

‘기아’와 ‘자살’이 없는 곳

지리산에 오면 무엇을 해먹고 사는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한국인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뭔가 하려고 하면 그 다음에 꼭 따라붙는 질문이 ‘뭐해 먹고 살지’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원인을 분석해 보니 우리 부모세대가 6·25때 절대 빈곤을 겪었던 탓이다. 이 세대는 자식들에게 늘상 “너희들은 밥 굶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자식세대는 저도 모르게 세뇌돼 상대적으로 풍요한 삶을 누리는 데도 항상 굶어 죽는 걱정만 하게 됐다. 그래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과 당뇨로 고생하면서도 항상 머릿속에서는 ‘뭐 먹고 살지’로 근심하는 사회가 한국이다.

이 시인은 “지리산에 와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자살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기아’와 ‘자살’이 없는 곳이 지리산이다. 약초만 하더라도 온갖 종류가 다 있다. 약초만 뜯어도 먹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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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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