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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③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OPCOM)과 5·18 이후

美, 전두환 퇴진시키려 주한 미군 감축 검토했다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OPCOM)과 5·18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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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로 전면에 등장한 신군부를 미국은 못마땅해 했다. 그들이 사전 통보 없이 병력을 이동시킨 것은 미국을 직접 자극했다. 또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상황이 불투명해져 미국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신군부의 등장이 한국에서 자국의 국익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흠집을 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다.

다음은 글라이스틴 대사가 12·12 이후의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 1980년 1월29일자 문서다. 12·12 사태 직후의 사태 분석이다.

『 한국에서 미국의 기본적인 이해관계는 변하지 않았음. 지난해 ‘목적과 목표’라는 제목으로 작성·보고한 문서에서 기술했던 대략적인 내용에서 큰 변동이 없음. 다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 틀은 크게 변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박정희 암살과 12월12일의 정권 장악이라는 새로운 정치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새로운 게임을 치르게 생겼음. 지난 수 년 동안과는 전혀 다르게 한국 국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직접 개입이 요구됨.』

‘한국 - 대사의 정책 평가’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 앞부분 요약문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한국 국내 문제 개입 정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 사회 내 여러 요소가 우리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바 우리의 행동수준을 잘못 계산했다가는 그 대가가 클 것임. 충분히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반대로 너무 많이 움직였다가는 강력한 국수주의자들을 자극할 수도 있음.』



글라이스틴 대사의 이런 사태 인식은 결국 신군부의 등장이 ‘새로 발생한 불안정 요소’이긴 하지만 미 국익에 큰 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에서 한국 상황을 분석하는 그룹간에 이견이 있긴 했으나 글라이스틴 대사로 대표되는 미국의 이런 상황 판단은 광주사태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통고만으로 작전통제권 회수 가능

새롭게 등장한 정치 세력인 신군부에 대해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처음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런 내부의 자체 판단이 미국의 개입 수준을 낮추었고, 신군부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한 워싱턴의 논의 결과도 미국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너무 많이 움직였다’기보다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우려했던 대로 ‘충분히 움직이지 않은’ 결과 광주사태를 겪으면서 반미(反美)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12·12 직후 워싱턴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를 주축으로 여러 대응책을 논의했다. 당시 주한 미대사관 무관이었던 제임스 영은 자신의 비망록 ‘한국 관찰(Eye on Korea)’에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군사 쿠데타 이후 워싱턴에서는 대(對) 한국 정책을 검토하기 위해 연이어 회의가 열렸고,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첫째, 대한 군사 지원을 축소 또는 중단하거나 재조정하는 방안이었다.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에서부터 전면적인 철수에 이르는 다양한 세부 조건도 더불어 논의되었다. 카터 행정부의 일부 참모들이 진작부터 주한미군 철수를 지지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12·12사건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재론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둘째, 한미안보공약의 상징적 모임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방안도 거론되었다. 미 국방부는 안보협의회 연기나 취소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치와 안보를 연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셋째, 경제 제재였다. 그러나 이 대안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데, 경제 제재까지 취할 경우 상황이 더 나빠져 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시위가 더 늘어나게 되면 결과적으로 군부가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군사 지원 축소와 주한미군 철수, 안보협의회 연기 또는 취소 등은 워싱턴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실제 이런 조치가 취해질 경우 워싱턴으로서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중대 사안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두 가지 대안은 가능성으로만 거론됐을 뿐이고, 카터 대통령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강력한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선에서 결론이 내려졌다.

제임스 영도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는 제약이 아주 많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워싱턴은 한국에 민간인 지도자가 이끄는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현 상황을 유지시키며 북한의 공격을 저지하고 한국의 신군부가 국방이라는 본래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세 가지 기본 지침을 만들었다. 미 정부 성명서에도 언급되어 있는 이 세 가지 기본 지침을 제임스 영은 비망록에서 ‘행군 명령’이라고 표현했다.

이 세 가지 지침 가운데 결과적으로 민간 민주정부 수립과 신군부의 정치참여 저지라는 두 가지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12·12와 관련해 카터 대통령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긴 했으나, 신군부의 권력 장악 과정을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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