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검찰과 ‘맞짱’ 뜬 서세원

“부장검사와 서로 통장, 가계부 까놓고 인생을 비교하고 싶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2005-11-29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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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자금, 성상납, 도박… 사실로 밝혀진 게 뭐냐”
    • “죄 없는 아내 불러다 떨게 한 것, 용서할 수 없다”
    • “변호사가 ‘적당히 시인해야 풀려날 수 있다’고 해서…”
    • “매니저 맞은 얘기 듣고 피가 거꾸로 솟구쳐”
    • 경찰, “최초 제보자, 검찰에서 허위 진술”
    • 검사, “다 인정해놓고 왜 이제 와서…”
    • 판사, “법정 진술보다 검찰 진술이 신빙성 높아”
    • 매니저 하씨, “검찰에서는 엄마 뱃속 일까지 기억나더라”
    검찰과 ‘맞짱’ 뜬 서세원
    “세금문제는 ‘PD사건(연예계 비리사건)’의 본질이 아니잖아요. 제발 대법원이 제대로 판단해 왜 이런 엉터리 수사가 시작됐고 말도 안 되는 수사결과가 나왔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2002년 세상을 시끄럽게 한 연예계 비리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던 서세원(49·서세원미디어그룹 대표)씨가 검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 핵심 증인인 전 매니저 하모씨가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며 검찰 수사관들을 고발한 데 이어 자신의 혐의를 검찰에 제보한 전 경리직원, 기자, 시민단체 대표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 당시 서씨는 PD들에게 홍보비 명목으로 800만원을 건네고(배임증재),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1억9500만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서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은 서씨는 대법원에 상고, 사법부의 최종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건은 수사권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에도 한몫하고 있다. 서씨의 명예훼손 고소사건을 조사한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10월26일 검찰 수사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사결과를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의 주요 증인인 전 서세원프로덕션 경리직원 이모(여)씨가 검찰에서 서씨의 혐의에 대해 ‘목격’이 아닌 ‘추측’으로 허위진술을 했다는 것.

    경찰 수사내용대로 제보자인 이씨가 허위진술을 했다면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서씨에 대한 수사가 이씨의 제보로 시작됐고 탈세 부분은 서씨의 주장처럼 사건의 본질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사저널’ 보도로 처음 알려진 하씨에 대한 검찰 가혹행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서씨가 결백하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하씨가 항소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폭로’했음에도 재판부가 검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검찰 허락받고 출국했다”

    서씨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들끓었다. 이런저런 물품이 널브러져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사무실 한가운데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가 제작한 영화 ‘도마 안중근’에서 소품으로 쓰인 것이라고 했다. 서씨가 검찰의 가혹행위 의혹을 고발하는 데는 문규현, 함세웅 신부 등 천주교 사제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도마 안중근’ 때문에 신부님들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안중근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인 윤원일씨와 호흡이 맞아 오래 전에 기획했는데 충무로에서는 다들 말렸죠. 망한다고. 신부님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저는 꼭 하고 싶었어요. ‘조폭 마누라’와 ‘긴급조치 19호’로 돈을 좀 벌었잖아요. 그 돈으로 국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영화 하나쯤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예상대로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우리끼리는 좋았어요. 안중근 페스티벌을 했죠.”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씨가 먼저 “사건 경위를 쭉 설명하겠다”고 하기에 동의했다.

    “2002년 7월 이른바 ‘PD사건’이란 게 언론에 보도됐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관련됐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어요. 서세원프로덕션이 방송사 PD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음반제작사도 아닌 데다 달랑 영화(‘조폭마누라’) 한 편 만든 군소업체였으니까요.

    불똥이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인 이수만씨쪽으로 튈 때만 해도 코스닥에 등록할 정도로 규모가 큰 회사니 그러려니 했죠. 이어 서세원프로덕션이 거론됐어요. PD들에게 돈 준 것이 포착됐다고. 어이가 없었죠. 설립한 지 1년밖에 안 되고 영업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회사에 뭐 조사할 게 있다는 건지.

    그런데 저와 관련된 사실이 검찰이 아니라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먼저 알려졌습니다. 지금도 가판대에서 보면 이가 갈릴 정도로 이 신문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왜 사실 확인도 않고 검찰과 짜고 치냐는 거죠. 보도가 나온 지 이틀 지나 집을 압수수색당했어요. 그즈음 홍콩에 출장 갈 일이 생겼습니다. 영화(‘조폭마누라’) 파는 일이었죠. 담당검사실에 얘기했더니 갔다 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홍콩에 가 있는 동안 언론은 제가 도피했다고 보도하더군요.”

    -출국하기 전에 분명히 검찰에 얘기했습니까.

    “강여찬 검사실에 전화해 얘기했어요. 수사관이 ‘검사에게 보고했다’며 ‘나갔다 오라’고 하더군요.”

    -검찰에서 제시한 혐의는 어떤 것이었나요.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특별한 게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출장 중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어요. 전 경리 여직원 이OO가 검찰에 불려갔다고. 이OO는 1년 전(2001년) 우리 회사에 수습사원으로 들어왔었는데,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한 달도 안 돼 퇴사한 아이예요. 당연히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지요.

    검찰 조사를 받은 다른 직원들 얘기가 그 아이가 검찰에 이상한 얘기를 한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귀국을 만류하더군요. 한 일주일쯤 지나 귀국하려는데 서울에서 급보가 날아들었어요. 이번엔 우리 회사 매니저를 하다 그만둔 하OO이 잡혀갔다는 거예요. 실컷 두들겨맞고 PD 세 명에게 800만원인가 줬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나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니, 잠잠해질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2002년 8월 출국한 서씨는 이듬해 4월에야 귀국했다. 그것도 휠체어에 누운 중환자의 모습으로.

    -수사도중 해외로 나가 장기간 안 들어온 데 대해 비난여론이 일었죠.

    “연예계 비리사건이 일어난 게 2002년 7월인데, 제 사건의 시계바늘은 2001년 6월1일에 맞춰져 있었어요. 당시 김규헌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거의 매일 언론과 인터뷰를 했어요. 서세원 회사에 조폭 관련 자금이 유입됐다느니, 연예인 성(性)상납이 있었다느니 확인도 안 된 얘기를 흘리면서. 이국땅에서 그 작태를 보고 들어오고 싶겠어요. 나보고 왜 안 들어왔냐고 묻는데, 그 얘기만 들으면 열 받아요.”

    “왜 확실치도 않은 걸 언론에 흘리나”

    서씨는 검찰 못지않게 언론에 대해서도 울분을 토해냈다.

    “모든 언론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그냥 써댔어요. 보도대로라면 나는 조폭 돈을 받아 영화 만들고 여자 연예인을 상납한 아주 몹쓸 놈이에요. 김규헌 부장검사에게 기분 나쁜 게 그런 거예요. 왜 확실치도 않은 걸 흘리느냐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당시 그 사람 어록이 다 나와요. 귀국할 시기를 재고 있는데, 이번엔 도박 기사가 뜨더군요. 내가 마카오에서 도박을 했다는 거예요. 연합뉴스에 맨 먼저 기사가 뜨고 다른 언론에서 받아썼는데, MBC ‘2580’에서는 현지에서 나를 봤다는 교민 인터뷰까지 내보냈어요.

    그런데 당시 마카오 카지노에서 나와 함께 도박을 했다는 P씨는 한국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어요. 나는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었고. 조금만 확인하면 알 수 있는 일인데, 마구 써대더군요. 정말 황당했지요. 언론보도로 나는 졸지에 도박 중독자로 몰리고 천하에 죽일 놈이 됐어요. 그래서 또 귀국하지 못했죠. 공항에 들어오자마자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 찍으며 도박에 대해 물어볼 텐데 내가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합니까. 내 처지가 돼 보라고요. 그래서 한국 언론 실컷 욕하며 미국으로 건너갔지요. 미국에 건너간 후 한국 검찰이 인터폴에 수배요청을 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검찰에 항의하지는 않았나요.

    “변호사를 통해 항의했죠.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린다고. 그런데 검찰 특징이 침묵이잖아요. 지난번에 제가 가혹행위 부분을 고발한 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잖아요. 석 달 후 더 이상 오해의 불씨를 키우면 안 되겠다 싶어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울화가 쌓이니 원래 좋지 않던 허리가 아예 주저앉았어요. 그래서 누워 들어온 거예요.”

    -휠체어에 누워 들어온 것에 대해 ‘쇼’라는 비난이 있었지요.

    “‘쇼’라고 얘기한 놈들,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요. 정말.”

    서씨는 지금도 허리가 몹시 안 좋다고 했다. 척추뼈 4, 5번 사이의 디스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디스크 때문에 한쪽 다리가 가늘어졌어요. 굉장히 심해요. 그런데 쇼라고 하니 기분 참 더럽더군요. 이런 생각으로 견디어냈죠. 그래, 30년 동안 연예계에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 정도 질타야 감수하자. 또 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알겠지. 귀국한 후 매일 새벽기도를 다녔어요. 큰 위로가 되더군요.”

    서씨가 구속된 것은 2003년 10월. 귀국한 지 6개월이 지나서였다. 그는 조세포탈과 관련해 1심에서 1억5000만원, 2심에서 5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금액은 벌금과 세금을 합쳐 10억여 원에 이르는데, 그중 4억원은 아직 내지 않았다고 한다. 형사재판이 마무리되는 대로 국세청이 무엇에 근거해 거액의 세금을 추징했는지 법적으로 따져보겠다는 속셈이다.

    “기소된 지 이틀인가 지나 검사실로 불려갔는데 세무서에서 사람이 나왔더군요. 1억9500만원을 탈세했다고 해서 기소 전에 다 냈는데, 추가로 조세포탈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계산했는지, 8억원이 넘는다고 해요. 환장할 노릇이었죠. 너무 분해 사인을 안 하려 했어요. 더 이상 못 해먹겠다, 한번 붙어보자고. 그랬더니 이걸 내야 (보석으로) 나갈 수 있다고 아내를 설득한 모양이에요. 아내가 울고불고 하면서, 지금 돈이 문제냐, 집안도 엉망이고 애들 생각해 빨리 나와야 되지 않느냐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을 냈죠.”

    “검찰에 대들면 자손대대로 당한다고…”

    구속된 지 20여 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서씨는 그길로 중국에 건너가 영화 ‘도마 안중근’을 제작했다. 그가 검찰에 맞서기로 작정한 것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난 다음이다.

    “1심이 끝난 후 하OO을 만나 ‘이제, (검찰에서) 맞은 것을 까자’고 설득했어요. 그러면서 ‘너 왜 검찰에서 (PD들에게) 돈을 줬다고 했냐’고 캐묻자 울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수사관들이 홀딱 벗겨서 수갑을 채운 채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끌고 다니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책을 말아 목 언저리를 100대 가량 때렸다는데 처음 맞을 때는 아픈 줄 몰랐는데 나중엔 머리가 울리더랍니다. 그 얘기 듣고 피가 거꾸로 확 솟구치더라고요. 이런 ×××들이 있나. 지금이 일제시대냐고.”

    서씨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눈에는 핏발이 섰다.

    -그전에는 하씨가 맞은 사실을 몰랐습니까.

    “맞은 건 알았어도 본인이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 않은 데다 저도 더 묻지 않아 그 정도인 줄은 몰랐지요. P병원(하씨가 검찰에서 풀려난 직후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 확인했더니 다 사실이더라고요. 진단서도 있고. 하OO의 부모님을 만났더니 ‘우리 같은 검불들이 검찰에 대들면 자손 대대로 당한다고 해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는 거예요. 변호사를 통해 재판부에 이 사실을 얘기했는데 인정되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공판검사가 하OO을 위협한 사건이 있었어요. 검사실로 불러 ‘위증죄로 구속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겁니다. 거기서 하OO의 머리 뚜껑이 열렸어요. 죽어라 때려서 진술 날조해 서세원한테 얼굴도 못 들고 연예계 활동도 못하게 만들어놓고는 이제와 집어넣겠다고 하니 돌아버린 거지요. 하OO은 검사실에서 나오자마자 1000만원 주고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그때 바로 고발하려다 대법원 최종심에 기대를 걸고 기다렸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선고하지 않는 거예요. 함세웅 신부님에게 상의했더니 이덕우 변호사님을 소개해주더라고요. 이 변호사님이 우리 얘길 듣더니 깜짝 놀라는 거야. 이 변호사님 도움으로 지난 6월 가혹행위에 대해 검찰에 고발했죠.”

    -서 대표는 검찰 조사시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나요.

    “저한테는 그런 것 없었어요. 그럴 필요가 없었겠죠. 이미 하OO과 PD들을 족쳐 없는 사실을 만들어놓았으니.”

    -1심과 2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내용을 인정했지요?

    “판사들도 반성해야죠. 허점이 많은 수사였는데, 그걸 그대로 인정했다는 건 큰 문제죠. 대법원은 다르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PD 세 명이 검찰에서 돈을 받았다고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PD들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아요. 검찰에 약점 잡힌 사람도 있고 협박당한 사람도 있고.”

    -수사기록에 따르면 하씨는 서 대표의 지시로 PD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는데요.

    “고문하고 때리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맞으면서도 내가 줬다고는 안 했어요. 왜냐, 진짜 내가 주라고 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는지 모르겠어요. 설사 하OO이 PD들에게 술 사주고 용돈 준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내가 책임을 질 일은 아니잖아요. 내 직원이니 책임지라는 얘기인데, 그렇게 따지면 검사가 이 사건을 엉터리로 수사한 것도 검찰총장이 책임져야겠네. 재벌총수는 밑에 사람들이 뭘 해도 한 번도 처벌받은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나는 회사 대표라고 집어넣고. 법의 형평성에 어긋나잖아요.”

    “울면서 변호사에게 맞은 얘기했건만…”

    -항소심 판결문을 보니 재판부가 검찰 수사기록과 1심 법정진술을 인용하면서, 서 대표가 하씨를 시켜 PD들에게 돈 건넨 사실을 자백했다고 지적했더군요.

    “이 수사가 웃기는 게, 처음 사건을 수임했던 이모 변호사 얘기가 검찰이 ‘큰 것 하나만 불어라, 그러면 구속 안 하겠다’고 제의했다는 거예요. 방송사 거물급 이름을 대라는 건데, 뭐가 있어야 얘기를 하죠. 나는 (PD들에게 돈 준 혐의에 대해) 처음부터 부인했어요. 사건의 본질이 PD 비리인데 왜 조세포탈로 잡느냐고 항의도 했지요.

    그런데 변호사가 ‘좀 억울하더라도 참고 넘어가라’고 권하더군요. 구속적부심 때도 그랬어요. 판사가 은모 PD에게 400만원 주라고 한 게 사실이냐고 묻기에 변호사 권유대로 그냥 ‘예’ 했어요. 변호사 말이, 그래야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어쨌든 당시 구속은 피하지 못했지만 한 달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지요. 검찰에서 나는 ‘하OO이 줬는지 안 줬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하OO이 그렇게 진술했다면 맞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했어요. 항소심 판결도 엉터리예요. 법정에서 우리가 부인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어요.”

    그는 1심이 끝나고 새로 선임한 박시환 변호사(현 대법관)에게 울면서 하씨가 맞은 얘기를 털어놓았다고 했다.

    검찰과 ‘맞짱’ 뜬 서세원

    서세원씨는 한이 맺힌 듯 인터뷰하는 내내 검찰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검찰에서는, 그토록 억울하고 맞은 게 사실이라면 진작 문제 제기를 하지 인정할 것 다 인정해놓고 왜 이제 와 그러느냐고 비난하던데요. 적어도 1심에서라도 ‘제대로’ 얘기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법정에서도 사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변호사가 여러 번 바뀌었는데 다들 하는 얘기가 ‘검찰 건드려 좋을 게 없다’는 거예요. 또 하OO이 진술을 뒤집을 경우 위증죄로 걸릴 수도 있다고 하니 조심스러웠지요. 그 공포감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제가 신부님들과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었기에 지금 이렇게 (검찰과) 싸우는 거지, 애초엔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1심에서 벌금형에 그쳤다면 문제 제기를 안 했을 수도 있나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벌금 정도였다면, 그리고 방송에 복귀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면 군소리 안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징역형에) 집행유예라는 유죄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방송 복귀도 어렵게 됐고 이제는 사실대로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내 아내가 안중근 의사 부인인가”

    서씨는 한이 맺힌 듯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정말 수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이건 명백한 인권 유린인데, 제가 홍콩에 나가 있을 때 검찰이 아내를 소환했어요. 아니, 이 사건과 서정희(서세원씨의 부인)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불러서는, 당신 남편이 골프 잘 치는 것 아느냐, 술 잘 먹는 것 아느냐 따위의 질문을 했대요. 저 골프 120밖에 못 치고 술은 체질적으로 한잔도 못해요. 담당 검사한테 묻고 싶어요. 거꾸로 내가 검사이고 자기가 사건에 연루됐다고 쳐요. 내가 자기 부인 불러다놓고 남편이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거 아느냐고 묻고 출입국정지시키면 좋겠어요? 이건 사나이의 룰이 아니잖아요. 남의 여자를 불러다 앉혀놓고 네 시간씩 벌벌 떨게 하다니. 무슨 일제치하 검찰입니까. 내 마누라가 김구 선생 부인입니까. 안중근 의사 부인이냐고요.”

    -부인이 따로 걸린 건 없었고요?

    “물론 없죠. 나를 압박하는 수단이었던 거죠.”

    -연예인이 검찰을 상대로 이렇게 맞서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인 듯싶은데요.

    “불안하죠.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하OO이 맞은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죠. 아무리 큰 두려움도 피부에 와 닿으면 사라져요. 이러다 또 끌려가면 하OO처럼 두들겨 맞거나 감옥 가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요.”

    -방송에 복귀할 계획인가요.

    “빨리 하고 싶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 어느 방송사에서 저를 쓰겠어요.”

    -질리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겪었는데.

    “타의에 의해 망했는데 질릴 게 없죠. 그리고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설사 내가 PD 3명에게 800만원 줬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게 그토록 큰 죄인가요. 그토록 사회에 엄청나게 물의를 일으킬 일인가요. 그보다 훨씬 중대한 정치권 범죄나 재벌 범죄에 대해서는 봐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검찰이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초기 수사를 이끈 김규헌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처음엔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수사결과 사실로 밝혀진 게 없잖아요. 다 경미한 사안이잖아요. 김규헌 부장이 다 책임져야 해요. 내 인생도 책임져야 하고. 김 부장한테 제의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왔는지, 각자 통장과 가계부를 까놓고 인생을 비교해보자고. 세금은 또 얼마나 잘 내왔는지. 그 사건으로 나는 돈 다 뺏겨 거지 됐고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천하에 악질이 됐어요. 이러니 내가 자다가도 그 사람 이름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지 않겠어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에 적극 찬성하시겠군요.

    “물론이죠.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야죠. 체포영장 남발하지 말고 구속수사 관행 개선하고 철저하게 과학수사 해야죠.”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로운 존재이고 살아가면서 늘 자유를 추구하지만 집단을 이루고 사는 한 그 자유는 제한되거나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집단의 룰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 룰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서세원씨가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맞서는 모습은, 그의 주장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서세원 사건의 진실게임

    경찰 수사

    경찰 수사의 초점은 서세원프로덕션의 전 경리직원 이모씨가 한 진술의 신빙성에 맞춰져 있다. 이씨가 맨 처음 일간지 기자와 시민단체 대표에게 제보한 내용은 ‘서씨가 매니저 하씨를 시켜 PD 30명에게 100만원씩 건넸다’였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3개 방송사 PD 세 명에게 1000만원씩 전달했다’로 바뀌었다. 이것이 공소장에서는 같은 방송사(MBC) PD 세 명에게 총 8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또 바뀌었다. 이씨는 “로비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검찰 심문에 “하OO 이사가 각 방송사 PD들에게 돈을 건네고 돌아와서 서세원 대표에게 보고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검찰이 이씨 진술을 뒷받침하는 물증으로 내세운 것은 사건 당일(2001년 6월1일) 이씨가 서씨의 통장에서 3000만원을 인출한 사실이다. 그중 700만원이 로비자금으로 쓰였는데, 두 PD에게 각 400만원, 300만원씩 전달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해 3월 또 다른 PD에게 100만원을 준 혐의가 추가됐다.

    반면 경찰은 3000만원의 용처가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중 1200만원은 직원 급여로, 800만원은 영화제작비로 쓰였으며 나머지 1000만원은 통장에 재입금됐다. 증거도 있다. 급여와 관련해서는 당시 서세원프로덕션 직원이던 6명이 확인서를 제출했다. 800만원의 용처는 제작사, 배급사 등 영화 관계자 3명의 진술로 확인됐다. 그리고 1000만원 재입금 사실은 통장 기록으로 뒷받침된다.

    그런데 이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후 MBC 인터뷰를 통해 “경찰이 강압조사를 벌였다.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다”는 취지로 경찰 진술 내용을 부인했다. 경찰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이씨를 심문할 때 녹음을 했는데 이씨도 자신이 가져온 녹음기로 동시에 녹음했기 때문에 강압조사를 할 필요도 없었지만 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고 들은 것처럼 착각하고…”

    실제로 녹취록에는 딱히 강압조사라 볼 만한 구석이 없다. 입 가리고 고개 숙이고 얘기한다고 몇 차례 조사관한테 혼난 것을 그렇게 간주한다면 몰라도. 녹취록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의 제보 내용이 하씨가 서씨에게 “주고 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추측’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물론 하씨와 서씨는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특히 이런 ‘고백’이 눈에 띈다.

    “구슬림에 당한 것 같기도 해요. 이OO씨(시민단체 대표)랑 검찰 아저씨랑 처음에 만나자마자 서세원 대표님 욕을 막 했어요.”

    “서 대표님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요. 제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보고 들은 것처럼 말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한번 기자에게 거짓말을 하다 보니 제가 실제로 보고 들은 것처럼 착각하고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인데, 잘못했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수사관계자는 “검찰이 엉터리 수사를 한 것 같다”며 “3000만원 중 일부가 다른 용도로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찰 수사의 신뢰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전형적인 물타기 기소”라며 “PD들에게 돈 준 혐의에 대한 공소유지에 자신이 없으니 조세포탈을 추가한 것 아니겠냐”고 검찰 수사를 폄훼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을 의식한 듯 “경찰 수사는 이씨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서씨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아닌지를 가린 것이지 검찰 수사의 잘잘못을 가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씨의 제보를 기사화한 문화일보 H기자와 ‘마카오 도박’ 기사를 쓴 연합뉴스 K기자, 시민단체 대표 L씨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 반박

    연예계비리 수사를 기획하고 초기 수사를 지휘한 김규헌 전 서울지검 강력부장(현 서울고검 검사)은 서세원씨의 주장에 대해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고 불쾌해했다. 2001년 6월 서울지검 강력부장에 부임한 김 검사는 연예계비리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2년 8월 하순 정기인사 때 충주지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서씨 사건에 대해 물어보자 “지금까지 말을 아꼈는데, 이제 나도 말 좀 해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으로 출국하기 전 검찰에 알리고 허락을 받았다는 서씨의 주장이 사실입니까.

    “잠깐 갔다 와서 출두하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습니다. 설마 자기 이름을 내건 방송 프로그램(‘서세원 쇼’)을 팽개치고 도주할 줄은 몰랐죠. 오히려 내가 배신감을 맛봤어요. 믿고 출국을 보장해줬는데, 약속을 뒤엎고 국가공권력을 우롱했습니다.”

    -가혹행위가 있었다는데요.

    “당시 수백명을 조사했습니다. 나는 하씨 얼굴도 못 봤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런 주장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검찰과 ‘맞짱’ 뜬 서세원

    2002년 8월 서울 청담동 P병원에서 발부한 서세원씨 매니저 하모씨의 진단서. ‘검찰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함’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하씨는 6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 일과 관련해 보고받은 적은 없나요?

    “(하씨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었어요. 상식에 반하는 그런 얘기, 이젠 지겨워요. 보고받은 바도 없지만,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서씨가 고발한 후 당시 수사팀에 확인해보진 않았나요.

    “당시 주임검사에게 물어보니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작 주장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왜 느닷없이 그러는지. 왜 그리 비겁한지, 남자답지 못하게.”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제보자인 경리 여직원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 보입니다.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기소한 검사에게 물어보세요.”

    -초기 수사팀에서 수사한 내용 거의 그대로 기소했다고 하던데요.

    “상식적으로 판단할 일입니다. 기자는, 다른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넘겨받을 경우 새로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기사를 씁니까.”

    “왜 그리 비겁한가”

    -조폭자금 유입, 성상납 의혹을 수사한다고 했지만 사실로 드러난 건 없지 않습니까.

    “언론이 앞서 나간 겁니다. 우리는 그런 얘기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만 했을 뿐이에요.”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 제대로 수사를 안 했으니…. 어쨌든 연예계에 자정(自淨) 바람이 부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았습니까.”

    -수사도중 충주지청장으로 발령 난 데 대해 외압설이 제기되기도 했는데요.

    “수사가 어렵고 외로웠던 건 사실입니다. 나도 섭섭한 게 많지만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서씨가 유난히 김 검사에 대해 감정이 많은 듯합니다.

    “내가 구속하거나 기소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한테 불만을 갖는지 모르겠군요. 오해가 있다면 풀어야겠지만, 지금 그의 행동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요.”

    사건 초기 주임검사였던 강여찬 검사(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인터뷰 자체를 거부했다. “전화상이라 신분이 기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는데, 서면 질의를 보내겠다는 제의도 거절한 채 전화를 끊었다.

    2003년 10월 서씨를 구속 기소했던 송인택 검사는 현재 순천지청 부장이다. 그는 경찰 수사결과가 재판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리 여직원 이씨의 진술이 공소사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매우 낮습니다. 이OO는 직접적인 증인이 아니에요. 우리 팀에서는 부르지도 않았어요.”

    -이씨의 진술이 주요 단서이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수사한 게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연예계비리 수사는 기획수사이지 않았나요?”

    -하씨와 PD들이 돈을 주고받았다는 진술 외에 다른 증빙자료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건의 경우 거의 100% 현금이 오가므로 물증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씨 통장에서 인출된 3000만원 용처 수사가 부실했던 것은 아닙니까?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그중 1000만원이 재입금된 기록이 있는데요. 나머지 돈의 용처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확인서가 있고요.

    “동일성이 있는 돈인지 따져봐야죠. 다른 돈으로 메웠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확인서야 부탁하는 대로 써줬을 테고.”

    -기소 당시 매니저 하씨와 PD 세 사람은 다 시인했습니까.

    “(사실관계에 대해) 크게 다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씨는 한번은 내가 직접 조사했는데, 다 인정했습니다. PD들의 경우 법정에서도 다 자백했고요.”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 없었다”

    -고문이나 구타 주장이 사실로 인정되면 공소사실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1심과 2심에서 서씨가 하씨의 진술에 동의했는지, 즉 증거 동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판결문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가혹행위를 당한 게) 사실이라면, 1심 때부터 주장했어야지. 부하직원의 허위진술 때문에 대표인 자신이 기소됐다면, 당연히 그 직원에게 따져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확인한 다음 곧바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서씨 사건 항소심에 공판검사로 참여했던 홍용준 현 여주지청 검사는 하씨의 협박 주장, 즉 “위증죄로 집어넣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사건을 인계받아 공판에만 참여한 처지에서 그런 협박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정덕모 판사(현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가혹행위 주장에 대해 “관련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 판결했다”며 그것이 판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주요 증인인 하모씨가 항소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판결문에는 그 부분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서세원씨가 유명 연예인이라 다른 재판보다 조금 더 기억나긴 하지만,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구타와 관련해 진단서 등 증빙자료까지 제출했는데,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나요.

    “글쎄… 판결문을 봐야 정확히 알 것 같습니다.”

    -판결문에는 ‘당심 법정 진술보다 검찰 진술이 신빙성이 더 높다’는 취지로 언급돼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가혹행위 부분에 대한 재판부 견해가) 다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기억에 그것은 쟁점이 아니었고 재판부는 세금포탈에 더 중점을 뒀어요. 세간의 관심사도 아니고 당사자인 서씨도 별 관심이 없었지만 탈세, 가장납입 등 세금 문제로 다툴 게 있었죠. 1심보다 벌금 액수를 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판결할 때 가혹행위 부분은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긴가요?

    “판결문에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참고인 하씨의 진술이 억압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어떤 진술이 더 신빙성이 높은지를 따져 판단했어요. 그리고 돈을 받은 PD들이 확정판결을 받은 점을 감안했습니다. 그중엔 우리한테 재판을 받은 사람도 있어요.”

    -결국 고문과 구타 주장을 감안하더라도 검찰에서 한 진술이 더 믿음직스럽다고 판단했다고 보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고문과 구타에 따른 자백이라면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증거로 쓸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개된 법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1심 법정에서 다 자백했던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심 법정에서 자백한 점 감안했다”

    -판결문에 언급도 안 한 것으로 봐 혹시 재판부가 피고인측의 가혹행위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단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답변하기 곤란합니다. 재판부의 심증 형성과정을 일일이 얘기할 수는 없어요. (재판부의) 합의내용을 공개할 수도 없고. 어쨌든 재판부가 내린 결론과 연결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정 부장판사는 “기억도 정확지 않은데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안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했다.

    전 매니저 하모씨의 울분

    서세원씨의 전 매니저로 가혹행위 논란의 주인공인 하씨는 “변호사도 못 믿겠다”며 법조계 전체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고문과 구타 관련 주장은 서씨가 고발한 내용대로인가요?

    “나는 당할 만큼 충분히 당했어요. 두 번 다시 그렇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검찰에 가서 (서씨의 가혹행위 고발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는데, 정말 욕 나오더군요. 나보고 ‘서세원한테 미안하지 않으냐’고 묻던데, 내가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얼마나 당했으면 그랬겠어요. 홀딱 벗겨서는 하루 종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고 얼굴에 침까지 뱉었습니다.”

    -검찰은 뭐라 하던가요.

    “‘에이, 뒤통수 한두 대 맞은 거지’, 이럽디다.”

    -가혹행위를 했다는 수사관들과 대질도 했나요.

    “대질했습니다. 조사실에서 내 얼굴도 못 봤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공판검사까지 나를 불러 욕지거리 내뱉으며 구속하겠다고 하고. 깡패 시켜 협박이나 하고. 대한민국에는 인권이고 나발이고 없어요.”

    하씨가 ‘깡패’라고 표현한 사람은 과거 룸살롱을 운영했던 S씨로, 최근 서세원씨 고소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그를 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S씨의 최근 통화 명세를 조사한 결과 고위직 검사와 검찰 직원, 검사 출신 변호사 여러 명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리 여직원의 진술에서 비롯됐는데.

    “2001년 6월1일에 PD들에게 돈 주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데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우리가 바보예요, 막 들어온 애 앞에서 PD들에게 돈 준 얘기를 하게. 내가 외판원이에요, 3000만원이 든 007가방을 들고 다니며 어떤 놈은 주고 어떤 놈은 안 주게. 그리고 세원 형이 돈 주고 PR할 군번인가요? 내가 인정한 것은 은OO PD에게 회식비 개념으로 돈 줬다는 것밖에 없어요.”

    -박시환 변호사가 법정에서 가혹행위 부분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박 변호사에게 울면서 맞은 얘기를 했습니다. 진단서도 갖다주고. 그런데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더군요. 너무 세게 얘기하면 안 된다며. 다 그 밥에 그 나물인 거지. 정말 오줌 쌀 정도로 맞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 잡듯이 두들겨 팼어요. 검찰청에서 나올 때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내 어머니가 알아요. 병원까지 기어서 갔어요.”

    “검찰이 하자는 대로 해줬다”

    -그 사실을 주변에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누구한테 얘기를 하겠습니까. 일주일 후 검찰에서 다시 부르는데, 거짓말 아니라 정말 오줌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왜 그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정말 욕 나옵니다. 매니저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어요. ‘PD 사건’ 나고 검찰에 가 조사 받으니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 6월1일에 무슨 일 했는지도 생각나더라고. 나도 생각났어요. 엄마 뱃속 일도 기억나더라고요.”

    -당시 조사받은 매니저들 중에 맞았다는 사람이 더 있나요.

    “그건 모르겠고, 하여튼 그때는 사람 보는 것 자체가 싫었습니다. 어디 가서 얘기를 하겠어요, 쪽 팔리게. 수사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고리더군요. 똘똘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말아버리고, 봐주려면 봐주고.”

    경찰 수사자료에 따르면, 하씨는 2002년 8월4일 검찰에서 ▲의자에 앉힌채 뒷목과 옆구리를 주먹으로 폭행 ▲꿇어 앉힌 상태에서 허벅지를 발로 짓밟음 ▲바닥에 머리 박게 하고 옆구리를 발로 참 ▲양손 깍지 끼고 엎드리게 한 후 옆구리, 가슴 구타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서세원씨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 PD 세 사람 중 한 명은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MBC 고위간부였다가 이 사건으로 해고된 그는 장시간 전화통화에서 “허섭스레기 같은 재판을 더는 하고 싶지 않고 검찰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어 항소를 포기했는데, 지금은 항소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그 안(검찰)에서 있었던 일은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고문이나 구타는 하지 않았지만, 수갑을 채운 채 장시간 벽을 보고 서 있게 하는 등 심한 모멸감을 줬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나를 조사하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어린 딸인 듯싶었다. 목소리 톤이 확 바뀌더라. 전화를 끊고 나서 나한테 하는 말이, ‘OOO씨. 당신 애들도 어리더구먼. 집을 압수수색해서 애들 앞에서 진짜 개망신 한번 줄까.”

    그는 “나한테는 백남수(당시 연예기획사 대표. 이 사건으로 구속) 건이 더 중요했다”며 “서세원 건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사안이었기에 검찰이 하자는 대로 해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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